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컥-! 끅! 끄르륵….”
철제 침대 위에서 발작하던 남자의 몸이 축 처졌다.
주륵-.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품을 보던 노인이 혀를 찼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흰 가운의 남자가 송구한 듯 고개를 숙였다.
노인의 이름은 장쉬안.
삼합회 홍콩지부장이자, 명운제약의 사장이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가 보군.”
“죄, 죄송합니다. 배합 비율을 최대한 따라 해 봤지만… 공정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자꾸…….”
“됐다. 더 연구해봐.”
“예.”
장쉬안은 길게 날숨을 뱉었다.
선생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대가로 받은 각성제, 성수.
효과는 뛰어나나, 양이 한정되어 있기에 명운제약의 기술력으로 양산을 시도하고 있었다.
다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료가 똑같다 하더라도, 이런 화학 물질은 과정에서 생기는 조금의 변수로도 결과물이 달라진다.
“고생하게.”
“예. 사장님.”
장쉬안은 가운을 입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실험실을 나섰다.
‘이 박사라고 했나….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야.’
얼마나 오래 연구했는지는 몰라도, 저런 복잡한 공정을 거쳐 성공해낸 걸 보면 대단히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 물건을 단시간에 양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난관이었다.
‘그래도 성공만 한다면…… 차기 산주山主 자리도 노려볼 만하다.’
막대한 자금과 권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 터무니없는 망상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즈음 사천四川의 애송이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던데, 야망가인 그놈이라면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하다.
삼합회를 이끌던 산주가 노쇠한 지금, 머지않은 시일 내에 차기 산주가 정해질 것이다.
명분과 배분으로는 그동안 산주를 보필한 장쉬안이 선택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끝까지 확신할 순 없다.
‘절대로 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야.’
30년을 가까이 함께했지만, 삼합회를 이끌기엔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가차 없이 다른 이에게 차기 산주의 자리를 줄 터.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당당히 보여줄 만한 명확한 성과가 필요했다.
“흠.”
장쉬안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DS컴퍼니의 새로운 대표가 현상금을 내걸었던 남자, 이주혁.
그놈을 잡는 것도 물 쓰듯 사용되는 연구비를 충당하기에 괜찮은 선택이다.
그러나 산주는 서클의 일에 깊게 관여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장쉬안도 굳이 이주혁을 건드려 선생의 계획을 방해할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스윽.
장룡도 문제였다.
연락이 끊긴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이쯤 되면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쯧.”
명목상이나마 아들 취급을 해 주고, 중요한 일을 자주 맡기던 녀석이다.
어중이떠중이들에게 쉽게 당할 실력도 아니고, 특히 도망치는 것 하나는 특출나다.
그런 장룡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전력 손실이 꽤 뼈아팠다.
그나마 야쿠자들이 장쉬안이 엮여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루성, 그놈 하나 정도면 싸게 먹혔지.’
청도지부를 복구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차기 산주가 누가 되느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어느새 60이 넘은 장쉬안에게는 다음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다른 놈들을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장쉬안이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음?”
핸드폰을 꺼내 수신인을 확인한 장쉬안이 입꼬리를 슥 올렸다.
“그래. 모르면 물어보면 되겠군.”
과연 언제 삼합회의 주인이 바뀔지 말이다.
* * *
“…….”
글라자 수뇌부의 일원, 마리아는 조직원들이 알아 온 정보를 추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스트 코퍼레이션…. 대체 뭐 하는 곳이지?’
마스트 코퍼레이션은 레이븐에게 마피아 조직 하나를 공격하라고 의뢰를 넣었다.
냉전 상태로 돌입한 마피아들을 자극한 원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마스트라는 곳을 조사했는데, 제대로 나오는 게 없었다.
유령 회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흔적을 발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마피아들 소유인 것 같긴 하나, 노숙자들의 신분을 사용했는지 사장과 직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레이븐이 얼굴을 분명히 봤다고 했지.’
그 얼굴을 토대로 수소문을 통해 찾아보는 것 외엔 방법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하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이런 사람 찾는 건 미하일이 잘하는데.’
한숨을 내쉰 마리아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를 쳐다봤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중후한 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는 글라자의 수뇌부 중 하나, 알렉산더였다.
“조사가 순탄치 않나 보군?”
“그렇네요. 최대한 조용히 하려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려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마피아들이 엮인 문제면 우리 쪽에서 알 수도 있으니.”
그러고 보니 마주하고 있는 이 남자도 마피아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런 쪽으론 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어차피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에게 비밀로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면… 조언을 좀 구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마리아는 알렉산더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유령회사를 이용한 의뢰라는 것까진 알아냈지만, 노숙자들의 신분을 사용한 탓에 꼬리를 잡기가 어렵다고.
그러자 고개를 주억이며 듣던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 서류, 봐도 되겠나?”
마리아는 혹시 하는 마음에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모두 알렉산더가 봐도 상관없는 정보였다.
“네. 여기요.”
팔랑.
알렉산더는 눈썹을 찌푸린 채 서류의 내용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확인했다.
“흐음…….”
수염을 매만진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알 것 같기도 한데.”
“정말요?”
“내 추측일 뿐이지만.”
“괜찮으니 아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레이븐이 받은 의뢰는 드라콘의 보스, 드미트리를 죽이는 것이었지. 맞나?”
끄덕.
“맞아요.”
“그럼 드미트리를 죽일 만한 원한이 있거나, 그놈이 죽음으로써 뭔가를 얻을 수 있는 놈의 짓이겠지.”
“그래서 드미트리와 마찰이 있던 마피아를 조사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글라자를 껄끄러워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하지만 놈들은 적극적으로 범인을 찾아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 말에 뭔가를 눈치챈 마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말했다시피 추측일 뿐이야.”
“으음….”
알렉산더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그들이 아니라면… 내부의 짓이겠지.”
그걸 들은 마리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혹시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없진 않아.”
“누구죠…?”
마리아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경호대.”
* * *
저벅.
우리 일행은 가부키초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이미 해가 져 어두움에도, 형형색색의 조명과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지금이 밤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몇몇 호객꾼들이 가끔 다가오려 했지만.
“…….”
“아, 스, 스미마셍.”
마종석의 살벌한 얼굴을 보고 다시 돌아갔다.
“야. 표정 좀 풀어라. 너 때문에 아무도 접근을 못 하잖아.”
내 핀잔에 마종석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잔챙이 같은데.”
“그건 모르지.”
“그리고 외곽이라 네가 찾는 놈들은 잘 안 보일 거다. 아까 말했듯, 이곳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을 꽤 들어가야 그런 놈들이 얼굴을 비추거든.”
“그래. 그럼 가보자고. 길 잃어버리지 않게 둘이 손 꼭 잡고 와.”
그 말을 들은 백기준이 마종석에게 손을 슥 내밀었다.
“미친놈이?”
“흐흐.”
우리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유흥업소, 술집, 호객꾼들을 지나쳤다.
거리에는 야쿠자로 보이는 덩치 몇이 순찰을 하는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미간을 좁히며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그러더니 별말 없이 멀어졌다.
그렇게 가던 길을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주혁 씨!”
여기서 한국어로 날 부를 사람이 있나 싶어서 돌아보니, 점심에 사이토 회장과 볼일이 있다며 헤어진 미우라였다.
“…여긴 어쩐 일로?”
내 물음에 미우라가 작게 한숨을 쉬며 되물었다.
“그러는 이주혁 씨는 왜 여기에 계십니까?”
“아니 뭐, 궁금해서 한번 들러봤습니다.”
“궁금해서 들렀단 말입니까? 가부키초를?”
“나름 유명한 곳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런 곳은 많이 봐서 익숙합니다.”
미우라가 나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정말 구경만 하러 왔다고요?”
“그럼요. 말 그대로 관광. 그나저나 미우라 씨는 어떻게 저를 찾아온 겁니까?”
“아, 저도 볼일이 있어서…….”
내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미우라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런 목적은 절대 아닙니다. 회장께서 시키신 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목적지까지 동행하시겠습니까?”
“음. 그건…….”
“어차피 이쪽으로 가시는 거잖아요. 혼자 다니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 상관없는데…….”
“가시죠.”
나는 난감한 듯한 미우라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미우라도 내가 회장과 나눈 대화를 들어서 그런가, 그리 껄끄러워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무슨 일인데 이런 데를 혼자 온 겁니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미우라가 결국 털어놨다.
“음…. 최근에 허가 없이 약을 파는 놈들이 있어서, 제가 직접 확인하러 왔습니다.”
“여기 그런 놈들이 있다고요?”
“몰래 거래하는 걸 봤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는 곳인지라, 스미요시카이에서도 가부키초는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이거, 우연히도 나와 미우라의 목적이 비슷했다.
타이밍이 좋은 건지, 아니면 사이토 회장이 일부러 붙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럼 같이 가시죠.”
“예? 같이 가자고요?”
“뭐, 당분간 한배를 탄 신세 아닙니까? 이럴 때 도와야죠.”
그래야 나중에 또 부려 먹지.
내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미우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굳이 숨길 것까진 없는 일이라 상관없을 듯합니다.”
그렇게 미우라의 뒤를 따라갔다.
“분명 이쯤이라고…….”
으슥한 쪽으로 걸어가며 두리번거리던 미우라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멈춰 섰다.
“여기인 것 같군요.”
낡은 네온사인 간판이 붙은 가게.
미우라는 서슴없이 다가가 문고리를 당겼다.
철컥. 끼익-.
오래된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대답하지 않으니 한 남자가 인상을 찡그린 채 걸어 나왔다.
놈은 우리를 살피다 깜짝 놀랐다.
“어엇! 누, 누구…?”
미우라는 말없이 당황한 남자를 옆으로 치우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뭐냐고! 이 자식아!”
콱!
미우라의 어깨를 향해 가던 남자의 손이 붙잡혔다.
“어.”
그리고 미우라가 힘을 주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아, 아! 아악!”
“너 혼자인가?”
“큭! 이거 놔!”
“질문에 대답해라.”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주변을 둘러봤다.
바깥은 무슨 술집이나 퇴폐업소같이 꾸며놨는데, 내부는 인테리어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영업하지 않는 가게 같았다.
스윽.
몇 없는 가구 위에도 먼지가 쌓여있는 게, 관리를 안 하고 사는 건가 싶었다.
수상한 짓거리를 할 때만 사용하는 아지트 느낌인 듯했다.
“다, 당신은 설마……!”
시선을 돌리자, 미우라를 알아봤는지 눈이 잔뜩 커진 놈이 보였다.
놈은 이내 뭔가를 꺼내려는지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죽… 컥!”
쿠웅!
미우라가 무감정하게 들고 있던 남자를 땅에 내리꽂았다.
땡그랑.
놈과 함께 작은 나이프가 땅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바닥에서 빌빌대는 놈을 보곤 물었다.
“찾는 게 이놈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심문을 좀 도와드릴까요?”
“예? 아…….”
미우라는 백기준의 미소에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히죽.
그 말에 백기준의 입가가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