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백기준이 음흉하게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끼익.
낡은 계단 밟는 소리와 함께,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남자들이 내려왔다.
“어이, 뭔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음? 어?”
인상을 구기던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당황했다.
그에 나는 빠르게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탓!
찡그려진 놈의 얼굴을 붙잡고, 그대로 계단 벽에 갖다 박았다.
쾅!
그리고 뒤에 멍하니 선 놈의 멱살을 잡고 팔을 뒤로 휙 당겼다.
“어엇! 으아악!”
대응할 새도 없이 끌려온 놈은 계단으로 굴러 내려갔다.
“멍청한!”
마지막 놈은 안쪽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길래, 칼을 쥔 손째로 움켜잡고 힘을 줬다.
우드득!
“끄아아아!”
이놈도 계단 아래로 던져 버렸다.
쿠당탕!
“위에는 내가 갔다 올 테니까, 얘네 좀 잡아 놔.”
“알았다.”
그렇게 삼단 패티를 만든 나는 혹시 더 있나 싶어 2층으로 올라갔다.
“흠.”
내부를 둘러보니 사람은 더 없어 보였다.
다만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흰색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들이…….’
비닐로 감싸 놓은 한 주먹 크기의 흰색 가루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게 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마약 유통을 준비하는 장소 같았다.
“미우라 씨! 잠깐 올라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계단 쪽으로 가 소리치자 미우라가 올라왔다.
“무슨 일입니까?”
슥.
책상 쪽을 턱짓하니, 미우라가 얼굴을 잔뜩 굳은 채 그리로 다가갔다.
그리곤 잔뜩 널브러진 흰 덩어리들을 집어 들었다.
“이런 건방진 것들이……. 회장님이 분명 마약에는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괜찮습니까?”
“후…….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군요.”
분개하던 미우라는 계단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놈들을 심문해 봐야겠습니다. 헛소문이길 바랐는데 사실이었다니…….”
“회장님이 시켰다는 일이 이겁니까?”
“예. 최근 가부키초에서 약이 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며 확인차 저를 보내신 겁니다. 이렇게 바로 찾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쇼.”
내 말에 미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더 신세 질 순 없습니다. 안 그래도 연락을 해 놨으니 저희 애들이 올 겁니다.”
“아, 그래요?”
“관광을 위해 들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이주혁 씨도 할 일이 있을 테니 도움은 정중히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어차피 내 목적은 일본에서 수상한 짓을 하는 놈들을 확인하는 거였다.
괜히 나중에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어서 여기 온 건데, 어쩌다 보니 마약상들을 현장에서 딱 붙잡아 버렸다.
슬슬 돌아가야 할 타이밍이기도 하고, 어차피 이놈들은 얘네들 측에서 알아서 조사할 터.
미우라 녀석들한테 호감을 사 뒀으니, 뭐…… 물어보면 알려 주겠지.
굳이 여기 더 남으면서까지 깊게 관여할 문제까진 아니었다.
다른 급한 일들도 이미 충분히 많았으니까.
“뭐? 그럼 그냥 간다고?”
백기준이 이 소식에 실망했지만, 어차피 녀석이 좋아할 일은 앞으로 많을 거라고 달래며 데리고 나왔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나가려는데, 이제 막 입구로 들어오던 남자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라는 거냐?”
“누구냐는데.”
“미우라 친구라고 해.”
마종석이 적당히 통역하자, 녀석들은 흠칫하며 허리를 숙였다.
우리는 대충 어깨를 두들겨 주며 밖으로 나왔다.
“씁. 뭔가 싱겁게 끝난 느낌이네.”
“개고생하는 것보단 싱거운 게 낫지.”
일을 여러 개 벌여 놓다 보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것도 가끔 있다.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지금처럼 남이 알아낸 걸 쏙 빼먹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스가와라의 목숨을 구해 준 내가 부탁하면 알려 줄 테니 말이다.
‘딱 보니까 굳이 숨길만 한 것도 아닌 것 같더구만.’
미우라가 우리 앞에서 망설임 없이 두들겨 패는 걸 보아 수하 관리 문제는 아닐 거고, 그럼 나한테 말해 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
우웅-
그때, 부장님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큰일 없으면 먼저 연락할 양반은 아니라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주혁아.
“무슨 일이에요?”
-나 저격당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예에?!”
* * *
스으-
복도를 걷던 라세흠은 뭔가 뒷목이 오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각을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파병을 나갔을 때, 적의 사선 안으로 들어가면 으레 이렇게 털이 곤두서곤 했다.
휙!
라세흠은 본능적으로 몸을 슬쩍 숙이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뭔가가 라세흠의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창문이 깨졌다.
쨍그랑-!
“…….”
눈을 부릅뜬 라세흠이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의 옥상을 훑었다.
그중 뭔가 반짝였던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꿈틀대는 검은색 무언가가 보였다.
‘저격인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저격이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확인해 보니, 바깥 유리창을 깨부순 탄환이 안쪽의 방탄유리에 박혀 있었다.
혹시 몰라서 이주혁이 자주 다니는 층마다 설치해 놓은 방탄유리 덕에 몸은 무사했다.
“부장님?!”
“머선 일입니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놀랐는지, 몇 사람이 다급히 복도를 달려왔다.
그리곤 금이 쩍 나 버린 방탄유리를 보며 경악했다.
“이, 이게 뭡니꺼?”
“뭐긴 뭐야. 누가 총알을 갈긴 거지.”
“미친 쉐끼가 이 대낮에 총을 쐈다고예?! 금마 어딨습니꺼!”
“아서라. 저격총인 걸 보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온 놈이야. 괜히 쫓아가다가 피 보는 수가 있다.”
“그럼 이제 회사 밖으로도 못 나가는 거 아이라예?”
덩치의 불안한 표정을 본 라세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다. 위치가 들킨 걸 알고 내뺐겠지.”
“아니, 그라모…….”
“그렇다고 바로 튀어 나가진 말고.”
덩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라세흠을 저격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고, 만약 방탄유리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라세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일단 주혁이한테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너희들은 애들한테 상황 설명해. 난 괜찮으니까 괜히 오버하진 말고.”
“아, 예. 진짜 괘안으신 거 맞지예?”
“그래, 인마. 방탄인데 멀쩡하지. 가 봐.”
“옙!”
덩치를 비롯한 녀석들이 후다닥 달려 내려갔다.
라세흠은 그 뒷모습을 보다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위험할 뻔했다.’
방탄인 걸 눈치채고 저격수가 몸을 뺐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일이 나도 크게 났을 것이다.
뭣도 모르고 올라온 애들이 맞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여튼 철저한 새끼.’
비싼 돈 들여가면서 이중으로 창문을 설치할 때는 굳이 저럴 것까지 있나 싶었는데, 그때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누군진 몰라도 직접적인 목숨의 위협이 들어온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주혁은 분명 이 일의 배후를 찾으려 할 테고, 그럼 다른 조직과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 조직은, 아마 러시아의 킬러 집단인 글라자일 확률이 높았다.
‘유현이라고 했나. 그놈이 범인일 수도 있겠군.’
이주혁이랑 잠깐 붙다가 도망쳤다는데, 어쩌면 앙심을 품고 저격을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주혁이 아닌 자신을 노린 게 이상했다.
그럼 한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라세흠이 SA시큐리티 내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알고 노린 것이 된다.
다만, 범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상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꾹. 꾹.
라세흠은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주혁아.”
-무슨 일이에요?”
“나 저격당했다.”
그 말에 이주혁이 펄쩍 뛰었다.
-예에?!
“다친 데는 없으니까 안심해라.”
-아니,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그래. 네가 달아 놓은 방탄유리 덕에 살았지.”
-어떤 새끼가 그랬는지 봤습니까?
“바로 내빼서 못 봤다.”
라세흠이 사정을 설명하자, 이주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래. 복귀는 언제야? 말한 것보다 좀 늦는데.”
-볼일이 좀 있었어요. 곧 돌아갈 겁니다.
“빨리 와라. 네가 상황을 좀 정리해 줘야 할 것 같다.”
-하긴, 대낮에 총알이 날아왔으니 혼란스럽긴 하겠죠. 곧 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 주십쇼.
“알았다.”
통화를 끝내고, 라세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 많이 컸네.”
갑자기 일이 터진 탓에 머리가 아파 오려고 했는데, 이주혁과 연락이 되고 나니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이번 일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 그런 건지.
군에 있을 시절에도 리더 역할이긴 했지만, 그때는 등 떠밀려서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산전수전을 거쳐 와서 그런가, 라세흠도 인정해줄 만한 리더가 된 것 같았다.
위험하게 일 벌이는 건 그대로긴 하지만 말이다.
피식.
“별생각을 다 하네.”
라세흠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이 모여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하아…….”
알렉산더가 돌아가고, 홀로 남은 마리아는 이마를 짚으며 신음했다.
‘니콜라이가 그랬다고? 아냐, 그럴 리가…….’
마피아를 통해서 암살을 의뢰한 사람.
그 탓에 마피아와 글라자의 관계를 무너뜨릴 뻔한 인물이 내부에 있던 인물이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니콜라이가 불만을 내보인 게 최근 일은 아니야.’
니콜라이는 군인 출신이다.
다만 불명예스럽게 제대했기 때문에 항상 자리에 대한 욕심이 존재했다.
그래서 가끔 극단적인 사상과 생각을 입 밖으로 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직을 배신할 성격까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나, 한번 시작된 의심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이런 짓을 의도적으로 꾸민 거라면……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분명하겠지.
-그것만으로 니콜라이를 의심하는 건가요? 너무 지나친 비약…….
-마리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나? 그게 설령 가족이라도 말이야.
-……알죠.
-물론 내가 니콜라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 걸러 듣는 게 좋을 거다. 대신 염두에는 두라는 소리다.
꾸욱.
‘왜 이런 때에 그런 말을 들어서…….’
마리아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민했다.
이 일의 배후에 니콜라이가 엮여 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마리아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집었다.
꾹. 꾹.
정보원들을 시켜 니콜라이의 주변을 캐 볼 생각이었다.
그녀도 내부를 의심하고 싶진 않았으나, 확실하게 믿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걸려던 그때.
쿵쿵쿵!
누군가 마리아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하.”
마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런데도 누군가 여기까지 와서 문을 두드린다는 건, 함부로 막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들어와요.”
마리아의 말에 문이 벌컥 열렸다.
“불쑥 찾아와 미안하군.”
색 바랜 칙칙한 금발에, 살짝 처진 입매가 위압적인 인상을 주는 남자.
무례한 방문객은 바로 니콜라이였다.
마리아는 고민의 주체가 되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 탓에 살짝 당황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죠? 그것도 말씀한 것처럼 불쑥.”
“조사는 어떻게 돼 가나 궁금해서 말이지.”
니콜라이는 묘하게 굳은 마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알아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