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한마디를 하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이 새끼…….”
피식.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마약 얘기를 꺼내니 바로 반응이 오네.
“뭐야. 끊었냐?”
옆에 있던 부장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맞는 것 같네요.”
포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동방파.
그리고 동방파의 보스, 왕근철.
이놈에 관해선 대강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한국 조폭들의 조직도를 만들 때 조사하기도 했었으니까.
물론 내가 이번 일의 배후가 왕근철일 거라고 생각한 건 미우라의 연락 때문이었다.
-심문해 본 결과, 놈들은 한국에서 마약을 들여오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말입니까?
-예. 하지만 정확히 누구와 거래하는진 이놈들도 모른답니다.
마약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면, 그 후보는 그리 많지 않다.
민지훈의 주도로 이 나라에 마약이 퍼지긴 했지만, 그건 다른 곳에서 밀수한 물건을 뿌린 거다.
직접 만드는 경우도 없진 않았는데, 그건 내가 직접 공장과 인프라를 박살 냈었다.
또 민지훈은 지금쯤 해외에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이런 작은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테고.
‘아무래도 부산 쪽일 가능성이 컸지.’
제조한 마약을 일본으로 넘길 땐 아마 뱃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럼 아무래도 일본과 가까운 항구가 있는 부산 인근이 가능성이 크다.
거기다 정광제의 국제파가 러시아 마피아들과 마약, 무기를 거래한 것도 부산이니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정광제가 죽은 후로 국제파는 세가 확 줄었다.
부두목 격의 인물이 남은 조직원들을 규합하긴 했는데, 예전처럼 많은 인원이 남진 않았다.
아무래도 경찰한테도 찍히고, 높으신 분들의 끈도 떨어진 탓인 것 같았다.
그때 마침, 정광제와 과거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던 왕근철이 떠오른 거다.
예전에는 의형제처럼 지냈지만, 정광제가 국제파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찢어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고세운에게 핸드폰과 CCTV를 해킹하라고 시켰더니, 마침 왕근철이 부산에 와 있더라고.
“야. 귀신 같네. 어떻게 한번 찔러 봤는데 딱 맞냐?”
“뭐, 상황을 보고 대충 때려 맞힌 거죠.”
물론 일본과 거래하는 게 왕근철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마약을 판다는 말에 깜짝 놀란 걸 보면, 분명히 구린 짓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내가 마약을 근절하려고 재단까지 만든 사람인데, 한국에서 제조하는 걸 두고 볼 순 없는 노릇이다.
우웅-
[박광훈 – 이쪽 인원과는 관계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진행하셔도 되겠습니다.]“오케이.”
혹시 모임의 인물이 비자금을 만들려고 벌인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박광훈에게 연락했었다.
그게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부장님을 저격한 그놈인데.
“실루엣만 봤다고 했죠?”
“어. 내가 보기엔 저기 흰색 건물 옥상이었다.”
눈으로 봐도 500m 이상이다.
“저 건물 CCTV는요?”
“가라더라. 그냥 달아만 놓은 거였어.”
“쯧. 근처 거리 카메라들을 싹 다 따야겠네요.”
물론 그놈도 CCTV를 의식해 자기 얼굴을 가리긴 했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장님한테 말했다.
“부장님은 가실 거죠?”
“물론.”
직접 저격당한 사람이니만큼 어지간하면 남으라고 했는데,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저, 부장님, 마종석, 이렇게만 가는 걸로?”
“춘식이도 데려가자.”
“걔요? 요새 잘 안 보이던데.”
“뭐 할 거 있다고 자주 돌아다니더라고. 그게 다 일거리가 없어서 그래. 걔도 좀 굴려야지.”
“그러죠, 뭐.”
그럼 이 넷으로 결정.
나는 마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하주차장으로 와라.”
-뭐? 왜.
“이번엔 부산행이다.”
-……일본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됐고, 지금 바로 와.”
뚝.
뭐라 불만을 토할 것 같아서 바로 끊고 춘식이에게 연락했다.
-아이고,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요새 출장을 자주 나가셔서 그런가, 얼굴 보기 참 힘드네요. 하하.
“그럼 오랜만에 좀 봅시다. 회사예요?”
-오. 안 그래도 복귀하셨다는 소식 듣고 돌아온 참입니다. 사무실로 갈까요?
“아뇨. 같이 부산에 좀 갑시다.”
-이야. 저도 같이 가는 겁니까? 이거 참 영광…….
“내려와요.”
어우, 잠깐 통화했는데도 기가 빨리네.
“우리도 내려가죠.”
나는 부장님을 데리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직원들의 차가 보였다.
우리는 주차장 한구석에 있는 특수제작 자동차로 걸어갔다.
턱.
검은색의 평범한 SUV처럼 보이지만, 방탄 기능이 들어간 유리에 방화 차체까지 일일이 커스텀한 물건이었다.
출고는 된 지 몇 주 지났는데도 사용할 일이 딱히 없었는데, 이참에 타 봐야겠다.
덜컥.
나는 SUV의 문을 열며 입꼬리를 올렸다.
씨익.
“가 봅시다.”
다시 한번 부산으로.
* * *
한편, 유현은 카지노 관리자가 잡아 준 근처의 호텔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당신을 고용하는 건 그분이 결정하시는지라 결과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유현은 투기장에서 우승한 뒤, 카지노의 관리자에게 고용 제안을 받았다.
내부로 잠입하려고 했던 그로선 기꺼운 상황이었기에 고민 후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아마 윗선의 허락이 필요한 거겠지.’
그리고 그는 아마 유현이 찾던 남자일 것이다.
유현의 부모를 죽이라고 사주한 인물이자, 이곳 허베이의 삼합회를 이끄는 인물.
“리신페이…….”
그가 중국으로 넘어와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까지 남아 있는 이유였다.
척.
유현은 늘 하던 대로 방 한쪽에 선 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을 떠올렸다.
“후우…….”
이번에는 이주혁과 고상미, 두 사람이 상대였다.
눈을 뜬 유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가상의 상대를 노려봤다.
이곳에서 리신페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면, 곧바로 고상미를 찾아가 담판을 지을 것이다.
왜 갑자기 소속되어 있던 글라자를 공격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탓!
이를 악문 유현이 두 사람에게 달려들던 찰나.
똑똑똑.
멈칫.
누군가 호텔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막 훈련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방해를 받아 짜증이 올라왔다.
“누구십니까.”
-룸서비스입니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오십시오.”
-급한 일이라서요.
유현은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이내 이상함을 느꼈다.
룸서비스를 한번 거절했음에도 재차 권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걸렸다.
최대한 고객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하는 직원의 어투가 아니었다.
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나이프를 들고, 베개 아래의 총을 꺼냈다.
“제가 씻고 나온 참이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예.
스윽.
조심스럽게 다가간 유현이 객실 문에 달린 렌즈를 통해 바깥을 살폈다.
복도에는 직원 옷을 입은 남자가 카트 옆에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무기는 당장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문제라면 직원이 한 명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단순한 룸서비스가 아니란 뜻이니.
“…….”
그들의 인상과 자세를 확인한 유현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객실을 찾아온 건 직원이 아닌 것 같았다.
철컥.
권총을 뒤춤에 넣은 유현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직원이 소리를 치며 밀고 들어왔다.
“쳐!”
유현은 기다렸다는 듯, 직원의 몸이 문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문을 발로 찼다.
쿵!
“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직원을 무시하고, 문을 잡아 몇 번 더 박았다.
퍽! 퍽! 퍽!
문과 벽 사이의 패티가 된 직원은 눈을 까뒤집으며 주르륵 쓰러졌다.
하지만 입구를 틀어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여러 명이 문에 달라붙으려고 하자 유현은 뒤로 살짝 물러났다.
그러자 문을 힘껏 밀려던 가짜 직원들이 관성을 못 이기고 앞으로 훅 쏠리며 들어왔다.
유현은 중심을 잃은 직원의 턱을 걷어차 돌려 버렸다.
퍼억!
실이 끊긴 인형처럼 무너지는 직원을 뒤로하고, 쇠로 된 짧은 봉을 피했다.
그걸 본 유현은 의아함을 느꼈다.
‘몽둥이를 들고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만약 그를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라면, 저런 게 아닌 날붙이나 총을 들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습하려고 찾아왔으면서 쇠몽둥이를 쥐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붕- 턱.
몽둥이를 피하고 직원의 목을 붙잡은 유현이 생각을 바꿨다.
‘다 죽이려고 했는데, 일단은 살려 둬야겠군.’
꾸욱.
“커헉……!”
목을 졸려 고통스러워하는 가짜 직원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고,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테이블을 붙잡아 던졌다.
쿠당탕!
그 와중에도 몽둥이를 든 남자들은 객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지 직원 복장도 아니었다.
유현은 나오려는 헛웃음을 삼키며 땅을 박찼다.
‘딱 죽지 않을 정도면 되겠지.’
그리고 당황한 상대의 옆구리를 쑤셨다.
푹!
“크악!”
배를 붙잡는 가짜 직원을 밀어내고, 옆에서 날아드는 쇠몽둥이에 칼을 갖다 대 궤적을 바꾼다.
당황하는 남자의 무릎을 걷어차 꺾은 뒤, 칼로 눈을 찔렀다.
또 계속해서 달려드는 괴한들을 베고 쑤시며 제압했다.
즉사하거나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칼질했다.
“커헉.”
“끄으으…….”
결국 객실 바닥은 피를 잔뜩 흘리는 남자들로 가득 찼다.
덥석.
쭈그려 앉은 유현은 한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중국어로 물었다.
“누가 보냈지?”
“크…….”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여 칼로 어깨를 찔렀다.
푹!
“끄아악!”
“마지막으로 묻는다. 누가 보냈지?”
유현의 경고에도, 남자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한숨을 내쉰 유현이 반대쪽 어깨를 찌르려던 그때.
“거기까지 하시지요.”
객실 입구에 나타난 이의 말에 손을 멈췄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이었습니까.”
“죄송합니다. 킴.”
카지노의 관리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그분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런 무례한 방식입니까.”
“휴식을 방해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유현은 작게 콧숨을 내쉬었다.
상처 하나도 없었고, 이렇게 사과를 하니 화를 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일단은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어차피 하려던 훈련을 이걸로 대체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확인은 하셨습니까.”
“여지없이 대단한 실력자시군요. 감탄했습니다.”
관리자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얼굴에 튄 피를 닦고 물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이제 저와 같이 보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갈 예정인데, 혹시 일정이 따로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좋습니다. 보스에게 연락드리고 오겠습니다. 챙길 짐이 있다면 준비해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리자가 흡족한 표정으로 객실을 나서며 손을 까딱했다.
그러자 복도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쓰러져 있는 남자들과 이리저리 흐른 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드디어 만나는군.’
부모님의 죽음을 사주한 그놈.
“후…….”
들끓으려는 분노를 가라앉힌 유현이 허리춤에 넣어 둔 권총을 매만졌다.
차가운 감촉을 느끼자 마음도 절로 차가워졌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