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유현은 관리자가 안내하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같이 타고 갑니까?”
그 물음에 관리자가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관리자는 그 말을 남기고 검은색 리무진의 뒷좌석에 올랐다.
유현도 그를 따라 탔다.
탁.
“…….”
유현은 조용히 리무진의 내부를 둘러봤다.
근처에서는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타본 것은 처음이었다.
달칵.
관리자가 저장고에서 와인을 한 병 꺼내 들었다.
그걸 본 유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좋은 와인입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술은 즐기지 않는 편이라.”
“아, 그렇습니까.”
유현은 다시 와인을 집어넣는 관리자를 향해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군요. 저는 시커라고 합니다.”
관리자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한 뒤, 유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저도 당신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레이. 레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아, 레이.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적당한 가명을 만들어 낸 유현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눈매를 좁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의 테스트 말입니다.”
“네.”
“당신이 말한 ‘그분’의 성에 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그 물음에 관리자, 시커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관심을 끊으셨을 겁니다. 당신이 고작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당신 수하들이 저를 죽여도 신경 쓰지 않았겠군요.”
“전 당신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숙소라서 방심하고 있었다면?”
“그럼 그 정도였던 거겠죠.”
냉정하고, 또한 잔혹한 말이었다.
하지만 유현은 차라리 이런 성격의 조직이 마음 편했다.
킬러 조직인 글라자에서 잘 적응한 이유도 그와 같았다.
스르륵-.
그렇게 이동하다 리무진이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예.”
덜컥.
고개를 끄덕인 유현이 내리자,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던 기사가 살짝 당황했다.
유현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미소를 지으며 내린 관리자가 말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스윽.
유현은 눈앞에 보이는 높은 건물을 올려다봤다.
‘저 위에 그놈이 있는 건가.’
얼굴을 보자마자 공격하진 않을 정도로 마음의 준비는 해뒀다.
“예.”
“좋습니다. 가시죠. 아, 짐은 놓고 가셔야 합니다.”
캐리어를 챙기려던 유현이 우뚝 멈췄다.
“…예.”
계획이 조금 틀어졌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었다.
결국 유현은 맨몸으로 시커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오가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에 유현은 앞장서 걸어가는 시커에게 물었다.
“그분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제가 말하기보단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왜, 삼합회 지부장이라서 그러나?’라고 할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그렇게 운전기사를 제외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스르륵-.
둘은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고개를 드니, 복도의 끝에 있는 문이 보였다.
문에는 용의 형상이 금으로 양각 되어있었다.
마치 자신이 황제라도 된다는 듯한 오만함에 유현이 미간을 좁혔다.
시커는 그 문으로 다가가 고리 형태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시커입니다.”
-들어와라.
허락을 들은 시커는 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끼이익-.
고풍스러운 문이 열리며 내부가 드러났다.
통유리로 된 창을 통해 외부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으며, 서랍장 같은 곳엔 공예품과 도자기 같은 물건들이 자신을 자랑하듯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먹으로 그린 느낌의 커다란 풍경화가 떡하니 걸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 화려한 공간 안에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게.”
남자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수려했다.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그리고 높은 콧대.
그의 나이는 40이 가까웠지만, 외양으로는 3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을 확인한 유현은 감상 대신 분노만을 느꼈다.
‘이놈이다.’
사진으로 본 리신페이.
그를 본 순간, 마치 망원경처럼 얼굴이 확대되어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스. 이분이 레이입니다.”
“그래? 킴이 아니었군.”
시커가 자신을 소개하는 걸 들은 유현은, 마음의 동요를 숨긴 채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레이입니다.”
“어디 출신이지?”
통성명도 없이 들어오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홍콩 출신입니다.”
“홍콩 어디.”
“구룡반도입니다.”
“광동 억양이 없는데.”
“부모님이 이주민이셔서 영어를 먼저 배웠습니다. 중국어는 독학해서 그렇습니다.”
막힘없는 답변에 리신페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준비한 것처럼 대답하는군.”
“가명을 사용했기에 의심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디 출신이지?”
“어머니가 덴마크 분이셨습니다.”
“어쩐지, 완전한 동양인의 얼굴은 아닌 것 같더라고.”
리신페이는 그제야 의심을 푼 듯 표정을 풀었다.
“리신페이다. 네가 우승한 투기장이 있는 카지노의 사장이지.”
“그렇습니까.”
“그리고 난 네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저벅.
유현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딘 리신페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가 뭘 하면 되느냐. 간단하다.”
척.
“내가 명령하면, 네가 수행한다.”
“…주로 어떤 일을 맡습니까.”
“네가 어디서 우승했는지 잊었나?”
그 말에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여기 짐을 들고 왔다면 진작 총을 꺼내 머리에 구멍을 뚫어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리신페이를 대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유현의 대답은 아니다, 였다.
저벅.
유현은 한 발짝 더 다가온 리신페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예.”
“그, 조 사장의 사정은 어떻게 알았나?”
“조 사장이라면.”
“투기장에서 널 고용한 사람.”
“입구 근처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길래, 지레짐작하고 물어본 겁니다.”
리신페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꼭 투기장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건가?”
“돈이 필요했습니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이유군. 그럼 여기 오기 전엔 뭘 하면서 먹고 살았나.”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의미심장한 말에 유현이 눈을 들었다.
“싸움은 어디서 배웠지?”
“…이곳저곳에서 보고 익혔습니다.”
“군용 무술의 흔적이 있던데.”
“어쩌다 보니 섞였나 봅니다.”
“시스테마Systema.”
리신페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러시아의 군용 무술이다. 알고 있나?”
“들어봤습니다.”
“내가 러시아에 안 좋은 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자꾸 그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
“그리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도 않은 놈이 열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고 제압해?”
유현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이제는 의심되니 해명해라? 정 찝찝하면 진작 처리하지 그랬습니까.”
“불쾌했더라도 이해해 주면 좋겠군. 예전에 러시아에서 온 놈이 내 가족을 해쳤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뚜벅. 뚜벅.
리신페이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기 기대져 있던 캐리어를 유현을 향해 쭉 밀었다.
드르륵-.
“선수금이다. 확인해 봐.”
유현은 캐리어를 열었다.
캐리어는 현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정도면 당분간 사용하기 적당하겠지?”
과연 이게 적당한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예.”
“돈을 위해 투기장까지 참가했다면서, 별 감흥이 없군.”
유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아직도 떠보기냐.’
작게 한숨을 내쉰 유현이 변명했다.
“액수가 너무 커서 실감이 안 나 그렇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써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가.”
피식 웃은 리신페이가 손짓했다.
“돌아가 있어라. 필요할 때 연락하지.”
“알겠습니다.”
“큰일 없으면 이제 대면할 일은 없을 거다.”
대면할 일이 없다라.
유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없으면 만들어 주지.’
여기까지 오는 길은 이미 머릿속에 담아뒀다.
다음에 만났을 땐, 이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 한 사람뿐일 것이다.
* * *
“배웅하고 왔습니다. 숙소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하겠다더군요.”
“별말은 없었나?”
“예. 가는 내내 조용했습니다.”
카지노의 관리자, 시커의 말에 리신페이가 혀를 찼다.
“아직도 마음에 걸리십니까?”
“너는 그놈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 완벽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자의 실력을 믿는 것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군. 하지만 난 마음에 들지 않아.”
리신페이가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그놈의 눈. 눈이 거슬린다.”
“눈이요? 인상이 조금 날카롭긴 합니다만…….”
“그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눈빛 말이다.”
창문이 깨지고,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뭘 할 틈도 없이 형의 머리에 총알이 박힌 뒤, 경악하는 리신페이를 바라본 남자는 미련 없이 떠난다.
혼자 남은 리신페이는 형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한다.
꾸욱.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에 리신페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걸 본 시커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크게 걱정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영 걸리시면 그때 없애지요.”
“뒤는 계속 캐 봐.”
“알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시킨 건 어떻게 됐지?”
“아.”
며칠 전, 리신페이는 시커에게 한 가지 조사를 맡겼다.
투기장에서 레이를 고용했던 조 사장은 원래 내보낼 사람을 섭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진 탓에 레이가 대신 나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거기서 이상함을 느낀 리신페이는 그 일에 관련된 걸 알아보라고 지시했었다.
“조 사장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만, 원래 후보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본인도 잘 모른다더군요.”
“그게 말이 되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고용했다고?”
“아실진 모르겠으나, 조 사장은 투기장에서도 나름 특이한 편으로 유명합니다. 자신의 안목을 믿고 항상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는데, 또 항상 좋은 성적을 냈죠. 커페이도 그가 발굴했었습니다.”
“커페이가 누구였지.”
그 말에 시커가 쓴웃음을 지었다.
“레이의 전임자입니다.”
“아아. 그래서, 결론이 뭔가.”
“예. 조 사장도 사라진 후보에 관해선 잘 모른다는 게 결론입니다.”
“그게 끝?”
“죄송합니다. 사진도 없고, 이름도 가명이었답니다.”
꿈틀.
리신페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이 사건에서 수상한 냄새가 풍겼다.
“더럽군.”
“예? 무엇이…….”
“기분이.”
툭. 툭.
책상을 두드리던 리신페이의 손가락이 우뚝 멎었다.
머릿속에 있던 퍼즐 조각들이 얼기설기 맞춰지며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내 형을 죽인 그놈. 자식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있었습니다.”
“그놈이 빼돌렸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찾지 못했습니다.”
탁.
손가락으로 강하게 책상을 찍은 리신페이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레이. 그놈을 철저하게 조사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