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리신페이는 쓰러진 산주를 내려다봤다.
입에서 토한 피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
지금껏 삼합회를 거느리며 권력을 휘두르던 사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절대 무너질 일은 없을 거라더니, 고작 이 정도였나.”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던 리신페이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수화기를 눌러 비서를 불렀다.
뚜-
“어르신이 쓰러지셨다. 빨리 사람을 보내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흰 가운을 입은 이들은 산주를 부축했고, 경호원들은 권총을 꺼내 리신페이를 겨눴다.
철컥.
그에 리신페이는 두 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쓰러지셨다.”
“일단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여기 계십시오.”
“내가 누군지 모르나.”
“압니다. 허베이지부의 지부장이시…….”
“그런데도 아직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군.”
고저 없는 목소리를 들은 경호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스윽.
총은 내렸지만, 경호원들은 경계를 풀진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대신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협조해 주십시오.”
“조사라.”
리신페이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 말은 마치, 내가 무슨 일을 꾸며서 어르신이 저렇게 됐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나?”
그러자 경호원들은 말없이 찻잔을 힐끗 쳐다봤다.
“왜. 내가 독이라도 탔을까 봐?”
“…….”
“어르신의 집무실에, 대놓고 들어와서 찻잔에 뭘 탔다고? 어르신은 그걸 의심 없이 마셨고?”
냉소적으로 쏘아붙인 리신페이가 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됐다. 난 가 보지.”
“지부장님.”
“한 번만 더 붙잡으면 그 혓바닥을 뽑아 줄 테니, 잘 생각하고 말하도록.”
살기가 담긴 경고에 경호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항변이 믿지 못할 말은 아닌 탓이었다.
철컹.
집무실에 있던 책장이 옆으로 밀리고, 그 안에서 환자용 침대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산주를 눕혔다.
리신페이는 책장 너머의 흰 공간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 뒤가 치료실이었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마련해 놓은 듯 보였다.
“이전에도 저렇게 피를 토하고 쓰러지신 적이 있었나?”
“…….”
“아니다. 잘 보필하기나 해라. 배웅은 사양하지.”
리신페이는 몸을 돌렸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을 테니, 아마 몸 상태와 관련된 것들은 최측근을 제외하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순순히 보내 주는 걸 보면…… 이런 일이 없진 않았겠군.’
리신페이가 보이지 않게 음험한 미소를 흘렸다.
‘정말 조만간이겠어.’
산주의 차도를 확인한다는 목적은 성공적으로 이뤘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피를 토하는 걸로 봤을 때 폐를 비롯한 장기가 심각하게 상한 듯했다.
암 말기라더니, 정말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저벅.
준비를 앞당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리신페이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끼익-
중앙지검에 도착한 나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핸드폰과 명함을 꺼내 윤현오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찰총장 라인으로 연락하면 바로 꽂아 넣을 순 있겠지만, 우선 검증이 필요했다.
이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정도는 내가 판단해서 걸러내야지.
뚜르르-
물론 서해결 검사의 추천이니 이상한 사람은 아니긴 할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신호음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예. 강력부 검사 윤현오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SA시큐리티 대표 이주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SA…… 혹시 서해결 검사 지인 이주혁 씨 맞습니까?
“서 검사님이 제 이야길 했나 봅니다?”
-어휴. 말도 마세요. 한때 내내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약자들을 생각하고, 정의를 쫓는 좋은 사람이라고요.
“크흠.”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양심에 찔렸다.
예전에는 서해결 검사에게 맞춰 주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는데, 지금은 본의 아니게 높으신 분들과 함께하는 처지가 돼 버렸으니까.
-그래서, 이주혁 씨가 저한테는 어쩐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화로는 힘든 이야깁니까?
“네.”
그러자 윤현오 검사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오후에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근처십니까?
“주차장입니다. 올라갈까요?”
-엇. 바로 앞이셨군요. 하하. 입구에 계시면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좋아. 흔쾌하네.
“알겠습니다. 입구에서 뵙죠.”
탁.
나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
.
.
“아이고, 소문의 그분을 이렇게 뵙게 되네요. 윤현오라고 합니다.”
“이주혁입니다.”
턱.
윤현오 검사와 손을 맞잡았다.
서해결 검사랑 동년배라길래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끽해 봤자 30대 후반. 어쩌면 30대 중반으로도 보이는 외모였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 건지, 피부에도 광택이 돌았다.
서해결 그 양반은 항상 사건에 찌들어 있어서 그런지 볼 때마다 퀭하던데.
“가실까요?”
우리는 둘 만의 대화를 위해 중앙지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바쁘게 움직이는 검사들이 보였다.
각자 손에 서류들을 쥔 채로 통화를 하거나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
“검사님들은 힘드시겠습니다. 볼 때마다 서류에 파묻혀서 사는 것 같네요.”
검사들의 옆을 지나가며 말하자, 윤현오가 웃으며 대꾸했다.
“솔직히 힘들긴 하죠. 그래서 제가 서 검사 그 친구를 존경하는 겁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잖습니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서 검사, 시간 날 때마다 자기가 후원하는 고아원에 봉사도 갑니다.”
“진짜 대단하네요.”
나도 이로운을 거둔 후부터 주변 보육원에 기부를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바쁜 업무 와중에도 봉사활동이라니,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이다.
그 정도의 끈기와 노력이 있었으니 나중에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라가는 거겠지.
탁.
“휴게실인데, 다들 바빠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인적 드문 곳으로 나를 안내한 윤현오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우선 이것부터 보시죠.”
윤현오는 내가 건넨 특수수사국의 기획서를 받고 잠자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흥미롭네요.”
“그렇습니까.”
“이걸 저한테 보여 주신다는 건, 제가 이 특수수사국이라는 곳에 배정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겁니까?”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검사님이 동의하셔야죠.”
“왠지 알 것 같군요. 이 담당 검사, 원래 서 검사 자리였죠?”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대체자라는 게 사람에 따라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거라,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서 검사님이 친분이 있어 우선으로 두긴 했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반려하셔서 이렇게 윤 검사님을 찾아뵙게 됐습니다.”
“저야 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좋죠.”
예상보다 윤현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인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꼬시기 위한 작업을 들어갔다.
“하긴, 윤 검사님은 원래 강력부에 계셨으니 이런 쪽 일이 더 수월하시긴 할 겁니다.”
“그렇긴 하죠. 혹시 정천파 얘기도 들으셨습니까?”
“예. 그 박정천을 직접 기소하셨다고. 담력도 좋으십니다. 보통은 보복 위험 때문에 꺼리잖습니까.”
사실, 아무리 증거를 모아 기소한다 하더라도 조직 전부가 잡혀 들어가는 건 아니다.
막말로 따까리 하나가 칼 들고 와서 책임지고 담가 버리면 그대로 죽는 거다.
그래서 보신적인 성향의 검사들은 어지간하면 그런 곳에 나서는 걸 꺼린다.
그런데 검사가 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던 시절에 주철수와 서울의 패권을 경쟁하던 박정천을 직접 기소했다니, 대단하긴 하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실적 때문에 한 건데요, 뭐.”
“아무리 그래도요.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선 건 사실 아닙니까.”
“이거 민망하네요.”
윤현오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저는 좋습니다. 안 그래도 위에서는 쪼지, 밑에서는 서로 떠넘기지. 개판입니다, 개판. 저도 다른 일 하면서 숨 좀 돌리렵니다. 아, 너무 앞서갔나요?”
“아닙니다. 환영합니다. 윤 검사님.”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윤현오의 손을 맞잡았다.
좋아. 이렇게 또 한 명의 충실한 노동자를 얻었구만.
* * *
후웅-!
마종석의 발차기가 배상훈의 앞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X바, 맞으면 뒈지겠네!’
배상훈은 이를 악물며 이어지는 공격을 노려봤다.
주먹, 발차기, 무릎을 이용한 콤비네이션이 마구잡이로 그를 노리고 들어왔다.
점차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걸 느낀 배상훈이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가면 진다. 흐름을 바꿔야 돼.’
해외 파견을 통한 실전 경험은 마종석이 우위다.
그리고 수련한 무에타이라는 무술 특성상 몸도 더 단단할 것이다.
정면으로 맞붙어선 이기기 힘들다는 걸 뜻했다.
스윽.
배상훈은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했다.
회피에 집중하며 틈을 노리다, 일발 역전을 노릴 생각이었다.
“후.”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배상훈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공세를 멈춘 마종석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드를 내렸군. 그런 뻔한 수는 상대가 쉽게 당해 주지 않아.”
“하, 씨. 힘드네. 진짜.”
확실히 라세흠 부장이 인정할 만한 강자였다.
배상훈은 킥복싱, 마종석은 무에타이.
비슷한 타격기를 수련했지만, 숙련도나 경험에서 차이가 났다.
‘진득하게 끝까지 해 볼 걸 그랬나.’
만약 운동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랐을까.
그렇다 해서 가르침을 받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을 거면 내가 먼저 간다.”
“오쇼.”
그렇게 마종석이 슬금슬금 스텝을 밟던 그때.
덜컹.
“음?”
대련실의 문이 열렸다.
“뭐야. 둘이 웬일이냐?”
돌아온 이주혁이 두 사람을 의외라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까지 하고 회의실로 와. 중대 발표가 있으니까.”
그리 말한 이주혁은 대련실 문을 닫고 다시 나갔다.
배상훈은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분명히 부대에 있을 때만 해도 자신과 이주혁의 실력은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차이가 벌어진 지 오래였다.
“하아…….”
배상훈은 복잡한 상념이 담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갑시다. 못 한 건 다음에 하고.”
* * *
회의실에 모인 SA시큐리티의 직원들을 둘러봤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내가 가는 길을 함께 걸어 주겠다고 한 진짜배기 정예들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나는 입을 열었다.
“자자. 중대 발표라고 해서 궁금했을 겁니다. 대체 또 무슨 일을 꾸몄을까 말이죠.”
그 말에 몇몇 사람이 피식 웃었다.
“우선, 한 가지 공지부터 하겠습니다.”
척.
“오늘부로, 우리 SA시큐리티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갑니다.”
“뭐?”
“예?!”
손가락을 들며 선언하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끼고 있던 팔짱을 푼 부장님이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이번에 새로 만들어지는 국가 기관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 새로 취직할 예정입니다.”
내 말에 이번엔 다들 당황한 얼굴을 했다.
반응이 휙휙 바뀌는 게 재밌네.
“아니, 야. 뭔 소린지 제대로 설명해 봐.”
“별거 없어요. 제가 주도해서 특수수사국이라는 기관을 창설할 거고, 우리는 거기 요원이 되는 겁니다.”
“뭐 하는 데길래.”
“국내에 있는 조직폭력배 타도. 외국인까지 포함해서요.”
“지금 하던 일이랑 똑같은 거 아니냐?”
배상훈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대신 한 가지가 다를 뿐이야.”
“뭐가.”
“이젠,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합법이라는 소리지.”
“……!”
팀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백기준 이 새끼는 눈깔이 위험하게 번들거렸다.
나는 녀석한테서 신경을 끄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젠, 우리 방식대로 갑시다.”
좀 더 빡세게 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