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저벅.
유현은 한 여관방 앞에 도착했다.
이번 목표는 사업체 중 하나의 재무를 관리하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리신페이의 자금을 조금씩 빼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제거 명령이 내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이곳에서 자신의 내연남을 만나고 있다.
잠시 문을 바라보던 유현은 이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탓!
그리고 그대로 문짝을 발로 차서 박살 냈다.
콰앙!
“꺄악!”
“뭐야?!”
유현은 비명이 터져 나오는 안쪽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그러자 당황한 얼굴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자가 내연남일 것이다.
칼을 빼 든 유현이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푹! 푹!
“커윽!”
복부 동맥과 경동맥을 찔린 남자가 목을 부여잡았다.
손으로 밀치자 쓰러지는 그를 지나친 유현은 벌떡 일어나 있는 중년의 여자를 마주했다.
그녀는 쓰러져서 피를 흘리는 남자를 보곤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누, 누구야.”
“후.”
“누가 보냈어?!”
스윽.
유현이 말없이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며 다가가자,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곧이어 뭔가를 깨달았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얼마 받았어. 내가 더 줄게! 두 배. 아니, 세 배!”
“…….”
“잠깐, 잠까… 꺄아아악!”
유현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목을 그어버렸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여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끄….”
“…….”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둘을 지켜보던 유현은 여관방 안의 서랍과 그들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일을 강도살인으로 꾸미기 위해서였다.
물론 조사하면 수상한 점이 발견되긴 하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쿵!
대충 집기들을 쓸어 바닥에 내던진 유현은 숨이 끊어져 가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강도가 깔끔하게 급소만 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푹! 푹! 푹! 푹!
마구 난자한 것처럼 보이게 몇 번 더 찔러주자, 여관방은 처참한 강도살인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마스크를 매만진 유현은 칼을 집어넣은 뒤, 창문을 열고 몸을 빼냈다.
드르륵!
유현은 배관을 빠르게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인적이 드문 여관이라 그런 건지, 아직 방금 일어난 일을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탁.
빠르게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돌아온 유현이 마스크를 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기회가 생기지 않는군.’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건 리신페이와 독대해 그를 죽이기 위해서다.
살인 청부는 익숙했기에 일이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으나, 타지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꾹.
유현은 보고를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수는 숙소에 두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은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듣기론 리신페이가 이 지역을 떠났다던데, 마침 지시를 수행 중이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동하는 걸 노려 처리했을 텐데.’
부모님의 복수를 하는 것이니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중이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풀어야 할 은원은 리신페이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유현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무슨 일입니까?
“리… 보스는 돌아오셨습니까?”
-아뇨. 아직입니다. 내일쯤 돌아오실 겁니다.
“몇 시쯤 오십니까.”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유현은 적당히 말을 지어냈다.
“보고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아, 그럼 정리해서 나중에 말해드리겠습니다.”
-예.
유현은 전화를 끊고 머리를 굴렸다.
베이징으로 향했다면, 돌아올 때 리신페이가 이용할 공항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공항에서, 유현은 그를 암살할 계획이었다.
저벅.
유현은 눈에 살기를 담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 *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어차피 관계자들은 다 내 편이었으니까.
거리낄 게 없으니 우리 직원들을 특수수사국의 작전팀으로 편입하는 것도 순식간에 처리됐다.
조직의 편제는 심플했다.
가장 윗선에 경찰청장 이기성.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에 특수과와 수사과가 있다.
수사과 과장은 송태석. 조직폭력배들의 조직도를 그리고, 현장을 지원한다.
수사과 인원은 자원자를 뽑거나 실력 좋은 경찰들로 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범죄자들의 제압과 체포를 담당하는 특수과의 과장은 박건이다.
원래는 직접 할까 고민했는데, 작년에 군대를 전역한 20대 초중반의 내가 과장 자리를 꿰차는 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썩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SA시큐리티의 인원은 특수과 산하의 작전팀으로 들어가게 됐다.
“이야, 감회가 새롭네. 내가 정부 기관에 취직할 줄이야.”
“그러게요.”
우리는 대련실 옆 훈련장에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이 정도 여유는 있었기에 오랜만에 마음을 놓았다.
“근데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런 놈까지 공무원으로 만들었냐?”
배상훈이 백기준의 등판을 퍽 치며 물었다.
“공무원은 개뿔. 어차피 우린 수면 아래에서 움직일 거다. 윗선도 나만 만날 거고.”
“어쨌든 인마.”
그러고 보니 배상훈은 공무원을 준비하다 부장님한테 잡혀 왔다고 했었나.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공무원에 대한 집착이 있어 보였다.
“됐고, 이제부턴 다들 입단속을 잘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마라.”
사실 내 목적은 서클과 선생을 박살 내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권력자들에게 붙어있었다.
그리고 또 송태석이나 박건은 조직의 창설 목적도 모르고 있다.
한 마디로, 정말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와 내 팀원들밖에 없단 소리다.
솔직히 하도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니 나도 슬슬 헷갈릴 지경이다.
“일단 경찰이 수사 중인 놈들 위주로 움직일 것 같은데, 저희도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겁니다.”
SA흥신소.
예전에 천안에 있던 커다란 흥신소를 흡수했었다.
그 뒤로 쏠쏠하게 써먹다가 선생 때문에 한 번 공중분해가 됐었고.
다시 남은 걸 우재성이 수습해서 조직을 꾸리긴 했지만, 예전만큼의 효율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사태였다.
사실상 애물단지라는 거지. 정보가 필요하면 고세운을 굴리면 됐으니까.
“흥신소?”
“예.”
나는 이 흥신소를 다시 부활시킬 계획이었다.
언제까지고 고세운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오프라인 쪽으론 약한 해커의 뒤를 받쳐줄 현장 요원들이 있으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다.
이런 내 생각을 말하자,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돼지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행님. 그럼 재서이햄한테 말씀 드릴까예?”
“그래. 가서 흥신소를 제대로 다시 운영해보자고 전해.”
“옙!”
살이 아주 조금은 빠진 듯한 돼지가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돼지 녀석이 흥신소 일에 관심이 많았던가.
뭐가 됐든, 우선 인프라부터 다시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규모도 확장해야 했다.
지금 남은 걸로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릴 테니 말이지.
“쓰읍.”
어디 흡수할 세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서로 이득이 되는 형태로 교류하는 거지.
중간에 수틀리면 방식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그 양반이 있었지?”
주철수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나한테 알려준 사람.
그놈의 과거 모시던 보스이자, 30년 전만 해도 서울의 골목을 호령하던 전설적인 주먹.
‘곽환성.’
오랜만에 만나봐야겠네.
.
.
.
나는 바로 곽환성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일전에 한번 가봤기에 위치가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끼익-.
찾아간 건 나 혼자다.
굳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올 것까진 없었다.
저벅.
한 호텔의 로비로 들어서자, 날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왔군.”
“오랜만입니다.”
노인, 곽환성은 묘한 얼굴로 날 맞이했다.
주철수에게 일말이 정이 남아 있던 곽환성으로선, 그놈의 죽음에 일조한 나를 마냥 환영하긴 힘들 거다.
뭐, 그 정도는 이해한다.
자기 뒤통수를 쳤더라도, 막상 죽어버리면 기분이 이상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어떻게, 바로 본론부터 들어갈까요?”
“그 전에 나도 물어볼 게 있으니 앉게.”
“그러죠.”
나는 곽환성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구석 쪽 공간이라 우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영감 휠체어를 밀어주는 아저씨가 있긴 한데, 예전부터 항상 뒤에 병풍같이 서 있던 사람이라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네, 조병철이라고 아나?”
“알죠. 비서실장 아닙니까.”
곽환성은 잠시 머뭇거렸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이러는 거야?
“사실, 비서실장은 과거에 날 도와줬네.”
“과거라면, 배신당했던 이후 말입니까?”
“그래.”
어쩐지. 나도 의문이었다.
칼침도 맞고 아끼던 수하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무사히 목숨줄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재기했다길래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조병철의 도움 덕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이후로 비서실장을 도울 수밖에 없었지.”
“주철수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만, 제 착각입니까?”
내 말에 조병철이 회한 깊은 표정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닐세. 나도 결국엔 똑같은 놈이니까.”
곽환성의 모순에 대해 뭐라 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바로 인정해 버리니 덧붙이기 좀 그렇네.
“어쨌든, 나는 그 후로 비서실장이 가끔 지시하는 일을 하곤 했네. 그중 자네의 조사도 있었어.”
“날 조사했단 소립니까?”
조병철은 비서실을 통해 나를 불러 대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날 미심쩍게 생각하는 눈치였는데, 뒤에서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거지?
“근데 왜 그걸 저한테 말해 주는 겁니까.”
“자네는 부모님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뭐라고요?”
나는 인상을 구기며 곽환성을 노려봤다.
만약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진정하고 듣게. 자네 부모님을 조사하는 게 비서실장의 지시였네. 아마 자네에 관한 정보를 찾지 못해서 그쪽을 알아보려 한 거겠지.”
“…….”
“물론 큰 의미가 있진 않았어. 자네 아버지가 특전사 출신이고, 지하철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한 뒤 희생했다는 것밖엔 알아내지 못했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조심하라는 뜻이야.”
곽환성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말했다.
“비서실장은 무서운 사람이네.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고, 모든 걸 끝까지 파헤쳐서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지.”
“그자가 앞으로도 날 계속 조사할 거란 뜻입니까?”
곽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각했다.
‘완전히 믿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선생의 뜻을 이어 모임을 주도하기로 했다는 것.
이 사실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선생과의 통화를 통해 다들 의심을 거뒀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곽환성이 말한 것처럼 절대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나도 믿지 않는다는 소리다.
한 마디로, 귀찮은 일이 계속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귀찮은 인간이야.’
마음 같아선 끌어내린 뒤 감방에 처넣거나 제거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내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는 걸 두고 본다?
그건 안 될 말씀이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곽환성에게 말했다.
“저한테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