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계획?”
곽환성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단 말인가?”
“당신 밑에 정보 조직이 하나 있잖습니까.”
내 말에 곽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흥신소 형태의 조직을 하나 만들 생각이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도와달라.”
“예. 이주혁이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얼마든지 조병철에게 넘겨도 됩니다.”
어차피 난 꿀릴 게 없다.
그리고 곽환성만 내 뒤를 캐는 게 아닐 게 분명하다.
조병철이라면 두 가지,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대신, 당신이 가진 정보와 인력을 빌려야겠습니다.”
“……비서실장이 그걸 두고 볼 것 같진 않은데.”
“두고 볼 겁니다.”
곽환성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병철의 지시로 한 사람의 뒤를 캤는데, 갑자기 그 당사자가 도와달라고 하는 상황.
이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겠지.
곽환성은 조병철과 내가 한패라는 걸 모르는 상황인 것 같으니까.
하지만 조병철은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해 줄 거다.
“그래. 뭐 그렇다 치고…… 정보와 인력을 빌려달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지.”
“좋습니다.”
“정확히 어떤 형태로 빌려달라는 건가?”
“간단합니다. 제가 어떤 인물이나 집단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면, 그에 맞는 정보를 정리해서 넘겨주십시오.”
“흥신소가 되어 달라?”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런 내 설명을 들은 곽환성이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가 없으니, 원…….”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윗선에서 이놈 뒤를 캐라길래 사이가 나쁜 건가 싶었겠지만, 본인이 대뜸 찾아와 뻔뻔한 부탁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영감에게 모든 진실을 조목조목 설명해 줄 이유는 없었다.
해 주면 고맙게 받으면 되고, 싫다면 윗놈한테 말해서 받아 내면 되는 일이다.
“일단 바로 확답은 주기 힘들 것 같군. 비서실장에게 상황을 먼저 보고하고, 그 뒤에 답변이 돌아오면 연락하겠네.”
조병철 그 뱀 같은 노인네랑 대화하는 건 기가 쭉쭉 빨려서 싫었는데, 긍정적인 반응이라 다행이었다.
“혹시 안 된다 하더라도, 자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하나 정도는 알아봐 주겠네.”
“최근에 강남에서 새로 등장한 조직, 아십니까?”
“음, 알지.”
“그놈들과 그 두목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알겠네. 정리해서 전달해 주지.”
곽환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내가 계속 강하게 나갔는데도 예상보다 호의적인 태도였다.
나도 노인을 데리고 더 갈굴 생각은 없었으니 슬슬 이 자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알았네.”
스윽.
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곽환성이 나를 쳐다보며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이주혁. 한때 나는 자네를 원망했었네. 비록 내 부탁이라고는 하나, 아들처럼 아끼던 녀석의 죽음에 일조했으니까.”
“…….”
“모순이지. 늙어서 사리 분별이 안 됐던 걸세. 철수는 명백히 없어져야 할 악인이었어.”
그렇게 말한 곽환성이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휠체어를 밀어 주는 아저씨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 사장님.”
“미안하네.”
나도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사과를 해 올 줄은 몰랐으니까.
일단 나보다 거의 세 배는 살았을 양반이 고개를 숙이는 건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고개 드시죠. 어떤 심정인지 이해합니다.”
곽환성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 일은 잊었으니 신경 쓰지 마십쇼.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쩐지 민망해진 나는 빠르게 덧붙이고 자리를 피했다.
어쨌든, 오늘의 목적은 성공적으로 이뤘다.
곽환성이 내가 요청한 정보를 넘겨주면, 나는 그걸 경찰이 조사한 내용과 취합해 대조하면서 정리할 생각이다.
경찰의 방식으론 알아낼 수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니까.
나는 다시 내 차에 오르며 생각했다.
텅!
지금부터는 일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해야겠다고.
.
.
.
회사로 돌아온 뒤, 난 한 사람을 대표실로 불렀다.
똑똑.
“들어와.”
끼익-
문이 열리며 아직 앳된 인상의 꼬맹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들어왔다.
녀석의 이름은 이로운.
고아 출신으로, 킬러 훈련을 받던 녀석을 내가 거둬 갱생시켰다.
이로운은 인생이 꼬인 원흉에게 직접 복수한 후로, 지금껏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공부하며 지내는 중이었다.
“앉아.”
“아, 넵.”
나는 중앙의 소파에 앉은 녀석에게 티백으로 우린 차를 한잔 내줬다.
“어떻게, 요새 공부는 잘 되냐?”
“아…….”
“그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어려운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예. 그럴게요.”
이로운이 차를 홀짝이는 걸 보며 본론을 꺼냈다.
“사실, 내가 이거 물으려고 부른 건 아니고. 뭐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예. 뭔데요?”
“혹시 학교 다닐 생각 없니?”
내 물음에 녀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학교요?”
“왜. 별로야?”
“너무 갑작스러워서…….”
“네가 싫으면 나도 보낼 생각 없어.”
절레절레.
“싫다는 건 아니에요. 근데 형이 부탁이라고 하신 거면 제가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겠죠.”
“예리하네. 이렇게 된 거 그냥 먼저 얘기해 줄게.”
최근에 강남에서 떠오르고 있는 폭력 서클.
놈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일을 시키며 돈을 벌고 있다고 알려진 상황이다.
송태석이 말하길, 어떻게 해 보려고 해도 워낙 점조직이라 윗놈을 치는 게 여의치 않다더라고.
그래서 생각한 작전이 스파이를 심는 것이다.
“그러니까, 형은 제가 그 조직 안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빼내는 걸 원한다는 말씀이죠?”
“어. 근데 굳이 안 해도 돼. 강요할 생각은…….”
“아니에요. 할게요.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로운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한 것처럼 정말 안 한다고 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다행이네.
사실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긴 했다.
예전과는 달리 자유롭게 살곤 있지만, 어느 한구석엔 우리 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 테니까.
“좋아. 네가 뭘 해야 되는지 설명해 줄게. 잘 들어.”
“예.”
나는 그 후로 약 한 시간 동안 이로운에게 작전을 설명해 줬다.
“이해했지?”
“이해했어요.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못할 거 뭐 있어? 실패해도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해.”
설령 스파이인 게 들켜서 녀석에게 해코지하려고 해도, 고작해야 폭력 서클 수준인 애들에게 살인 병기로 훈련받던 이로운이 질 것 같진 않았다.
툭툭.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어 줬다.
우선 입학하는 게 문젠데, 이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스윽.
이로운을 슬쩍 돌아보니, 녀석은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 잘 될 거다.”
안 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 * *
레이븐, 유현은 공항의 로비에 앉아 누군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합회의 본거지가 있는 베이징에서 돌아올 리신페이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후…….”
충동적으로 무작정 공항으로 달려오긴 했지만, 실제로 암살을 행동으로 옮길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뜬금없이 유현이 마중을 나오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테고, 또 공항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 리스크가 컸다.
툭. 툭.
유현은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
그때, 그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슬쩍 시선을 돌려 얼굴을 확인한 유현은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지?”
“레이븐, 당신의 처우가 결정되어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처우라고?”
“그렇습니다.”
“왜. 처형한다던가?”
유현의 싸늘한 물음에, 글라자의 조직원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꺼져라. 너와 있는 걸 보여선 안 되니까.”
스윽.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레이븐. 수뇌부들이 당신을 호출했습니다.”
“뭐? 분명히 당분간 복귀 불가능하다고 전했을 텐데.”
“이건 요청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당장 귀환해 주십시오.”
그 말에 유현이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
여기서 이자를 죽여 입막음한다 해도 의미는 없었다.
그럼 글라자, 중국의 경찰에게 쫓길 게 분명했다.
운 나쁘면 인터폴에 수배를 당할 수도 있었다.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최대 일주일 정도.”
“하지만…….”
“말로 하는 건 마지막일 거다.”
조직원은 유현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그의 불같은 성정과 막무가내의 성격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더 자극해선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조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예기간을 달라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일주일이라고 하셨지만, 그분들의 의사에 따라…….”
“이해했으니 닥치고 꺼지도록.”
“예.”
조직원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들에겐 보이지 않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유현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이대로 러시아로 돌아가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호출한다는 건, 아마 처벌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컸다.
“제기랄.”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엔 유현의 책임이 작지 않았다.
마피아를 처리하는 의뢰를 받지 말라는 내부 규정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던 탓에 마피아 하나를 박살내 버렸다.
바로 그 의뢰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마스트 코퍼레이션.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레이븐’은 나름 거물급의 킬러다.
하지만 워낙 자유로운 성향 탓에 수뇌부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의뢰를 넣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수뇌부와 커넥션이 있는, 속된 말로 끗발이 되는 이들만 레이븐을 이용하곤 했다.
다만 마스트 코퍼레이션은 경우가 달랐다.
직접 찾아와 일을 맡기길래 수뇌부와 이야기가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피아를 처리하는 의뢰가 미리 걸러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리아가 조사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지.’
만약 유현을 통해 마피아들을 자극한 게 계획된 일이라면, 아마 마스트 코퍼레이션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작정하고 숨겼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피아들은 의뢰가 줄어 돈벌이가 궁해진 글라자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면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은 직접 마피아들을 죽여 버린 당사자.
‘나겠군.’
러시아로 돌아가면 위험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으면 글라자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도 수뇌부들의 인맥 덕분이었으니까.
꾸욱.
유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우웅-
그때, 카지노의 관리자 시커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보스가 돌아오셨습니다.]“쯧.”
가장 가까운 이 공항으로 올 줄 알았는데, 다른 공항에서 내려 차량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하여튼 철저한 인간이었다.
‘어차피 암살은 불가능했겠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을 불렀으니 최소한 3일은 시간을 줄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해 봐야겠군.’
그렇게 유현은 인파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