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47
#347화
쏴아아-.
고속정 한 척이 바닷물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유현은 배의 난간에 손을 얹은 채 생각에 잠겼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배는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
강화된 단속을 어떻게 통과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법이 있다고 하니 일단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체 경호대가 왜 나를 돕는 건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경호대는 갑자기 글라자에 합류했다.
그래서 당연히 경호대도 자신을 적대할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었다.
그로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그 대가로 무엇을 바랄지가 의문이었다.
어쩌면 이걸 명분으로 살인을 사주할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겠지.’
지금은 살아남아서 부모님의 원수를 죽이는 게 최우선이었다.
‘미하일…….’
글라자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유현을 챙겨줬고, 아직 부족하던 그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미하일이 리신페이에게 부모님을 팔았다니.
상상도 못한 일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뿌득.
눈앞에 그가 있었더라면 찢어죽였을 것이다.
잠시 분을 삭이던 유현은 선실의 문을 열고 물었다.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그러자 배를 몰고 있던 군인이 대답했다.
“곧 도착할 겁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는 건가?”
“도착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 그때, 저 멀리서 소형정 한 척이 다가왔다.
그걸 본 유현이 몸을 긴장시켰다.
가까이 다가온 배를 살핀 유현은 그들이 한국의 해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상황은 유현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배가 나란히 옆으로 붙자, 군인은 서류가방을 들고 선실 바깥으로 나왔다.
휘익! 텅!
군인은 옆의 선박으로 서류가방을 던졌다.
경찰복을 입은 남자는 내용물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따라와.”
부아앙-.
그리고 먼저 배를 출발시켰다.
군인은 익숙한 듯 앞서가는 배를 따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현이 코웃음을 쳤다.
“단속을 강화했다더니, 돈만 주면 넘어갈 수 있는 거였나.”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수평선 가까이에 어렴풋이 육지의 형태가 보였다.
유현은 코끝을 스치는 바닷바람을 느끼며 눈매를 좁혔다.
이제 곧 한국이었다.
* * *
다음 날, 인천의 한 인적 드문 공터.
그곳에 십수 명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운택과 수하들이 거래 장소에 도착했다.
“왔군.”
먼저 왔던 이들 중,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김운택은 캐리어를 끌고 한 걸음 나왔다.
“여기 있소.”
까딱.
남자가 손짓하자, 그의 뒤에서 두 사람이 가방을 들고 왔다.
쿵.
남자는 머리를 까딱하며 물었다.
“확인해볼 거요?”
저벅.
캐리어를 끌고 걸어온 김운택이 가방을 열었다.
그 안은 비닐랩으로 포장된 마약으로 가득했다.
확인을 마친 김운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운택의 수하들 사이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뭐요?”
돈을 받고 돌아가려던 남자가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다.
“어이.”
수하들 사이에 섞여 있던 배상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너, 누구 허락 맡고 여기서 장사하는 거냐?”
“뭐?”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순간.
타앗!
배상훈과 라세흠, 춘식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에 남자는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질렀다.
“이런 개새끼들이! 이딴 짓을 해?!”
펄쩍-!
높이 뛰어오른 라세흠이 다리를 내뻗은 채 날아왔다.
“여기가 마약의 왕국이냐, 이 새끼야!”
퍼억!
.
.
.
“@%@#!”
배상훈은 휘둘러지는 칼을 피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가 뒷덜미를 잡은 뒤, 다리를 걸며 바닥에 내던졌다.
“컥!”
쿠당탕!
주변을 둘러보니, 무기를 들고 있던 놈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애초부터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처리는 금방 끝났다.
“끄아악!”
꾸욱.
한쪽에서,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손을 지르밟고 있는 라세흠이 보였다.
배상훈은 쓰러져 있는 캐리어를 가지고 김운택에게 다가갔다.
“돈은 다시 가져가시고.”
드르륵-.
굴러가던 캐리어가 김운택의 앞에서 멈췄다.
“…….”
김운택은 순식간에 펼쳐진 참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세 명이서 알아서 한다길래 반신반의했는데, 어떻게 대처할 새도 없이 상황이 끝나버렸다.
‘협조하지 않았다면… 내가 저 꼴이 됐겠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아귀가 맞으면 여기서 세 사람의 뒤통수를 칠까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배상훈은 김운택을 향해 통보하듯 말했다.
“이놈들은 우리 쪽에서 데려가겠습니다.”
“아, 예.”
“조만간 클럽으로 마약을 회수할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
김운택의 반응을 본 배상훈이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예. 그럼요.”
배상훈과 일행은 이 무리의 리더를 포함한 몇 명과 마약이 든 가방을 챙겨 들었다.
김운택은 축 늘어진 남자들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알아서 처리하십쇼.”
그 대답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엄청난 실력을 보여준 세 사람은 그렇게 한 명씩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사장님. 어떻게 합니까?”
“X발…. 일이 자꾸 X 같이 꼬이네.”
일이 어떻게 될진 몰라도, 일단 증거는 최대한 없애놓는 게 나았다.
김운택은 한숨을 내쉬곤 수하들에게 말했다.
“…일단 공구리 치자.”
* * *
“끄으…….”
김운택과 마약을 거래하던 남자, 정지룡은 눈을 떴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자,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봤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X발!”
덜컥!
화들짝 놀란 그가 벌떡 일어나려는데,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정지룡이 좌우를 살폈다.
지하실에서나 날 법한 퀴퀴한 냄새와 어두운 조명.
손발은 두꺼운 수갑으로 의자에 묶여있었다.
철컹! 철컹!
그리고 묘하게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씨…….”
어둠에 적응한 눈이 옆쪽에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
옷이 다 벗겨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늘어져 있었다.
생긴 건 노인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멀쩡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정지룡이 분위기에 압도되던 그때,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깼어?”
“으아악!”
비명을 지르던 정지룡의 머리칼이 턱 붙잡혔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한 남자가 얼굴을 스윽 내밀었다.
“반가워. 신입.”
백기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본 정지룡의 오금이 저릿해졌다.
끼익.
백기준은 의자를 끌고 와 정지룡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지?”
“…….”
“한국말 하는 거 다 알아.”
정지룡이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백기준은 트레이에 놓여 있던 펜치를 집었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텁.
턱을 잡힌 정지룡이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잠깐만!”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 알았어?”
“알았다. 알았다고!”
백기준은 펜치로 정지룡의 손가락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대답이 늦을 때마다 하나씩 없어지는 거야. 이름이 뭐지?”
“정지룡이다.”
“소속은.”
“…삼합회.”
꾸욱.
펜치가 손톱을 잡았다.
“왜! 대답했잖아!”
“삼합회라는 놈이 한국에서 약을 팔아?”
“…….”
정지룡의 말문이 막히자, 백기준은 그대로 손에 힘을 주고 확 들어 올렸다.
“끄아아악-!”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내가 말했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라고.”
“크윽…….”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흡. 후…. 처, 청도지부에 있었다.”
현재 청도지부는 망한 상태다.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지부장이 감방에 들어갔고, 한번 공안이 휩쓸고 간 탓에 지부를 재편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마약 거래를 하지 말라는 삼합회의 방침을 전달받지 못했던 것이다.
“청도지부. 오케이. 뽕은 어디서 났어?”
“지부에 있던 걸 가지고 날랐다.”
“그럼 물량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클럽에 넘길 게 없을 텐데.”
그 물음에 정지룡이 머뭇거렸다.
“그, 그건…….”
“대책이 없었구나? 급전이 필요했어?”
정지룡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김운택에겐 네가 먼저 접근했나?”
“…….”
콱!
펜치가 손톱을 잡자 정지룡이 펄쩍 뛰었다.
“새, 생각 중이었다! 생각 중이라고!”
“고민할 게 뭐가 있어?”
“그게….”
백기준은 더듬더듬 말하는 자초지종을 유심히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팔아먹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누군가 필요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며 접근했단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너랑 김운택을 중개해줬다는 거지?”
“그래. 맞아.”
“누군데. 그게.”
“…….”
정지룡은 진땀을 흘렸다.
“몰라.”
“아, 몰라?”
“정말이야! 누군지 들은 적도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믿고 중개를 받았다, 이 말이지?”
끄덕끄덕.
“돈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
“경찰에 덜미를 잡힐 걱정은 안 했니?”
“했다. 했는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소개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
말실수를 했다는 걸 느낀 정지룡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백기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탁.
펜치를 내려놓은 백기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동차 배터리처럼 생긴 뭔가를 가지고 왔다.
거기엔 집게가 달린 전선이 달려있었다.
“잠깐.”
찰칵.
백기준은 집게를 벌려 정지룡의 귀에 달았다.
“자, 잠깐만! 말할게. 내가 실수했다.”
“아냐. 그럴 수 있지.”
백기준이 발전기의 버튼을 켰다.
그러자 덜덜거리는 불길한 소음이 공간을 울렸다.
“이 X발! 잠깐만!”
“1분만 참아.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백기준은 발전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우우우웅-!
* * *
지하실로 내려가자, 의자에 죽은 것처럼 앉아있는 놈이 보였다.
“야. 살아있는 거 맞아?”
내 물음에 백기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지졌는데.”
“끄으….”
의자에 묶인 놈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머리를 잡고 들어 확인해보니, 놈은 초점이 없어진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 새끼 맛탱이 간 것 같은데?”
“그래?”
고개를 갸웃한 백기준이 굵은 대바늘 같은 걸 가져왔다.
“으으….”
그러자 늘어져 있던 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신이 드냐?”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제 좀 솔직히 말할 생각이 들지?”
“예에….”
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 김운택을 소개해준 그놈, 정체가 뭐야?”
“야, 야쿠자라고 했는데….”
“이름은?”
“그게, 이름이…….”
“횡설수설하지 말고. 새끼야.”
옆을 슥 돌아보니 백기준이 설명했다.
“원래 지지면 잠깐 오락가락해.”
“기, 기억났습니다. 김용수. 김용수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용수?”
바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
반쯤 잊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김용수. 일본 이름이 가네무라였나.
원래 선생이 주도하던 모임의 일원으로, 한인 출신 야쿠자 놈이었다.
분명히 내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결국엔 쓸데없는 짓을 했네.
스윽.
바로 핸드폰을 꺼내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잠시 신호음이 울리고, 김용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이. X벌럼.”
-뭐, 예?
놈의 당황한 목소리에, 나는 통보하듯 말했다.
“너, 나 좀 보자.”
안 그래도 언젠가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이참에 이놈이랑 담판을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