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레이븐, 유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화끈한 통증이 느껴져 인상을 구겼다.
“후우….”
힘겹게 몸을 일으키니, 선실 창문 너머로 항구가 보였다.
‘…기절하듯 잠들어버렸군.’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있으려 했지만, 피로와 고통 때문에 까무룩 기절한 모양이었다.
“…….”
선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 선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간 유현은 흠칫했다.
분명 한국으로 가자고 했었는데, 항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중국어를 하고 있었다.
“제기랄.”
낭패였다.
그가 기절한 것을 보고, 선장이 다시 중국으로 배를 돌린 게 분명했다.
유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정박해있던 배를 뛰어넘어 육지로 넘어갔다.
쿵!
고기잡이배에서 웬 피투성이 남자가 튀어나오자, 어민들은 당황한 듯 수군거렸다.
착지의 충격에 미간을 좁힌 유현은 자신의 몰골을 살폈다.
다 찢어진 옷에 덕지덕지 들러 붙은 핏자국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끌었다.
‘일단 옷부터 구해야겠어.’
.
.
.
“자, 잠깐! 커억…!”
쿠당탕!
유현은 골목에 있던 불량한 남자들을 두들겨 패고 옷을 빼앗았다.
꽃무늬 셔츠에 통 넓은 반바지가 어색했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쏴아아-.
식당으로 보이는 곳 뒤편으로 들어간 유현은 호스를 틀어 얼굴과 몸을 닦았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긴 했으나, 적어도 아까처럼 살벌하게 보이진 않았다.
유현은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고민에 빠졌다.
‘또 선장을 협박해야 하나?’
중국에 계속 머무르는 건 좋지 않았다.
리신페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삼합회 사이에선 이 일이 퍼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언제 삼합회가 추적해올지 모른다.
“후…….”
조금 진정되고 생각해 보니, 어제의 선택도 상당히 위험했다.
한국의 영해에서 해경이나 군인에게 붙잡힐 수도 있었고, 기절한 사이에 선장이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게 아마 육체적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우선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직접 배를 몰고 한국까지 넘어갈 능력은 없었다.
그때, 유현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지금까지 도망치며 그나마 건진 유일한 물건이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 핸드폰의 번호는 아무나 아는 게 아니었다.
글라자의 수뇌부나 정보원 몇 명 외에는 모르는 번호였다.
유현은 일단 다른 쪽의 상황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전화를 받았다.
“누구지?”
-레이븐. 반갑다.
한국어로 된 물음에 유현이 눈썹을 찌푸렸다.
“누구냐고 물었다.”
-새로운 수뇌부라고 하면 알아듣겠나?
“…경호대?”
-조직의 일에 관심이 없다더니, 소식은 들었나 보군.
“용건이 뭐지?”
-넌 위치 추적을 당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유현은 본능적으로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조용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건 추적이 불가능할 텐데?”
-그 핸드폰을 누가 줬다고 생각하나.
“…….”
글라자에서 일하며 지급 받은 핸드폰이었다.
추적할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걸 알려주려고 전화한 건가?”
-내가 도와주지.
“글라자는 날 처분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날 도와주고 이용해 먹을 생각이겠지.”
-그것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넌 지금 도움이 필요하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용당할 바엔 차라리 혼자 해결하는 게 나았다.
“거절한다.”
-그래도 되겠나? 네 부모의 원수가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뭐?”
유현은 리신페이가 죽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치명상을 입었을 거라 예상했다.
이내 그는 리신페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라는 걸 눈치챘다.
-내부의 배신자. 궁금하지 않나.
“내부의 배신자는 너겠지.”
-네 가족이 살던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지금까지 널 가지고 놀던 사람이 누굴까.
악에 받쳐 대꾸하던 유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의 수뇌부 중에, 있다는 건가.”
자신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었으며, 유현의 자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
그리고 20년 전에 그런 일을 꾸몄을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은 수뇌부 중 한 사람뿐이었다.
뿌득.
유현이 이를 악물며 질문했다.
“그러는 넌 그걸 어떻게 알지? 글라자가 경호대와 관련이 있다는 소린 처음 듣는데.”
-자세한 설명은 먼저 대답을 들은 후에 해 주지.
“…….”
선택지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인생은 항상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었다.
부모를 잃은 고아는 길바닥의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것 외엔 할 수 없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형제 같은 이들을 찾으려 글라자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부모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목적 모를 집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냐.”
-우리 쪽 인원이 네가 있는 곳으로 배를 타고 갈 거다. 핸드폰은 안에 든 부품까지 모조리 부수고, 가장 북쪽에 있는 부두에서 대기하면 된다.
“그러지.”
뚝.
통화가 끊기고, 유현은 핸드폰을 들고 있던 팔을 늘어뜨렸다.
툭. 달그락.
그는 핸드폰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았다.
콱!
주먹을 꽉 쥔 유현이 다시 한번 다리를 들었다.
콰직!
* * *
-아아. 들리지?
“어. 잘 들린다.”
배상훈은 귓구멍에 꽂은 소형 무전기를 매만졌다.
무전기에선 이주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그는 클럽 스텔라의 사장실에 앉아있었다.
사장 주성재에게 클럽 운영권과 마약을 넘겨줬다는 그 친척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를 만나면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랐기에, 실시간으로 이주혁이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후….”
-너무 긴장하지 마라. 어차피 세게 나가면 상대는 쫄게 돼 있어.
“오케이.”
주성재는 친척을 데려오겠다며 잠시 나간 상황.
아마 곧 돌아올 것이다.
조명도 밝지 않고, 상체를 살짝 틀면 각도상 무전기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금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춘식아. 근데 나이 많은 할아버지면 반말로 해야 되냐, 존대해야 되냐?”
“글쎄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가장 삼합회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배상훈을 따라오게 된 춘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배상훈의 옆에 험악한 인상으로 서 있는 수하 역할이었다.
“아니, 그래도 어른한테 반말하긴 좀 그러니까…….”
-그건 알아서 하고, 얕보이지만 마라. 그렇다고 너무 세게 나가면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
똑똑.
옷깃 안에 숨겨진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던 배상훈은 노크 소리에 자세를 바로 했다.
끼익.
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주성재와 함께 한 남자가 같이 들어왔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 남자는 배상훈에게 다가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김운택이라고 합니다.”
“배상훈입니다.”
턱.
배상훈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상대의 외형을 살폈다.
50대 정도의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체형을 하고 있었지만, 한쪽 눈에 차고 있는 검은 안대가 인상적이었다.
김운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배상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손짓했다.
“성재야. 니는 나가 있그라.”
주성재는 어딘가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춘식을 보고 말했다.
“삼촌. 하지만….”
“니가 낄 자리가 아이다. 나가 있어.”
“…예.”
결국 주성재는 고개를 숙이곤 사장실을 나갔다.
탁.
그걸 보던 배상훈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상대에게 카메라가 향하도록 자연스럽게 들어 올렸다.
-보인다. 가만히.
씩 미소를 지은 김운택이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희 쪽이 실수를 했다고.”
“예. 그랬죠.”
“그래서 제가 거래하는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한국에서 약 팔지 말라는 말은 없었답니다.”
그 말에 배상훈이 인상을 구겼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그런 뜻이 아입니다. 어쨌든 지금 두 사람의 말이 다른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놈이 정말 삼합회가 맞긴 한 겁니까?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배상훈은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이주혁에게 듣기론, 삼합회 내에서 한국과의 거래는 당분간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그때, 이주혁이 무전기로 말했다.
-김운택. 강남파 잔당이다. 주철수 최측근으로 추정되는 놈 중 한 명이긴 한데, 뒤가 깨끗한 놈이라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어.
배상훈은 곧바로 입을 털었다.
“우리 삼합회는 강남파와의 거래를 끊은 지 오랩니다.”
강남파라는 단어를 들은 김운택의 표정에 오묘한 파문이 일었다.
“그런 상황에서 규칙을 어기고 당신과 거래를 튼 사람이 과연 누군지 궁금하네요.”
김운택은 배상훈의 압박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들을 제가 불러낼 수 있습니다. 삼자대면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거절해. 다음 거래가 언젠지, 어디서 하는지 물어보고.
이주혁의 지시를 들은 배상훈이 코웃음을 쳤다.
“그놈이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그거는…….”
“다음 거래는 언젭니까.?”
“2주 뒤입니다.”
“내일 밤 10시, 거래 장소로 그놈들을 불러내요.”
-마지막 기회라고 해.
배상훈이 한 마디 덧붙였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겁니다.”
경고를 들은 김운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무지해서 발생한 일일 뿐, 절대로 삼합회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는 점은 알아주십시오.”
김운택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배상훈은 이주혁이 불러주는 걸 읊었다.
“삼합회의 문제이니만큼 당신을 탓하진 않겠지만, 그자들과 거래한 마약은 회수해가야겠습니다. 대금은 돌려드리죠.”
“아….”
“이해 바랍니다. 마약이 삼합회 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서.”
그 말에 김운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VIP들에게 제공하는 마약이 끊기면 중독자 연놈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럼 어떻게든 약을 구해야 하는데, 일이 틀어졌으니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꿈틀.
주철수가 죽은 날 직접 찔러버린 한쪽 눈이 욱신거렸다.
김운택은 턱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겨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달그락.
나는 귀에 꽂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작게 혀를 찼다.
“쯧….”
김운택.
전생에서 내가 강남파를 조사할 때 이놈도 잡아넣을 대상 중 하나였다.
의심 많은 주철수가 상당히 신임하는 놈이었는데, 그때도 김운택은 구린 구석을 찾기가 힘들었다.
겉으로는 주철수의 DG그룹에게 하청받는 회사의 사장이었으니까.
‘머리가 좋은 놈이지.’
직접 더러운 일을 하는 게 아닌, 거의 도구의 형태로 주철수를 도왔다고 해야 하나?
그런 놈이 마약 거래에 나섰다는 건,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가 뭔지는 나로선 알 수 없었지만.
스윽.
뭐가 됐건,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김운택 말고도 강남파의 잔당이 있는지.
또 그놈과 거래하는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회수한다는 명분으로 위치를 알아낸 다음, 그걸 증거물 삼아 특수수사대의 실적으로 만들어버릴 거다.
‘김운택,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던 건진 모르겠지만…….’
히죽.
초장부터 박살 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