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끼익-.
배상훈이 들어서자, 룸 안에서 대화를 나누던 대여섯 명의 시선이 모였다.
“오! 오셨네.”
그들의 가운데에 앉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맞이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요새 여기서 화끈하게 노신다고.”
“예. 뭐, 그렇긴 한데….”
“반갑습니다. 최정수라고 합니다.”
“아, 예. 배상훈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배상훈은 그가 만들어 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딱 붙는 옷을 입은 여자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빠. 오빠는 무슨 일 해?”
“음?”
“쟤가 가져온 저거, 비싼 술이잖아.”
눈을 돌리자, 웨이터가 원래 룸에 있던 배상훈의 위스키를 테이블에 세팅하고 있었다.
“돈 많이 버는 거 아냐?”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적당히 벌어.”
“에이, 오빠 너무 겸손하다.”
실제로 배상훈의 월급은 이런 곳에 와서 펑펑 쓸 만큼 많은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쓴 것만 해도 거의 두 달 치 월급이었으니까.
배상훈은 적당히 화제를 돌렸다.
막 놀 때와는 다르게, 이 사람들 앞에선 말을 조심해야 했다.
“그나저나,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정수 씨.”
“하하. 단골끼리 안면도 틀 겸 해서 친해지면 좋잖습니까.”
“저는 단골이라기엔 좀 부족하긴 하죠.”
“VIP면 단골이라 불러도 되지 않겠어요?”
최정수는 사람 좋게 웃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을 소개했다.
“여기, 이 친구는 대명제약 장남입니다. 얘는 정종식품 회장님이 애지중지하는 손녀딸.”
“참나. 애지중지는 무슨.”
소개를 들은 배상훈은 그들의 신상을 머릿속에 담아뒀다.
이 클럽에 구린 돈이 돈다던데, 만약 관련 증거를 발견하면 여기 있는 인간들도 싹 다 엮어버릴 생각이었다.
“저는 개인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라.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긴요. 다 아버지 잘 만난 덕이죠.”
최정수의 말에 배상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모님 잘 만나는 것도 복 아니겠습니까.”
“상훈 씨는 어떤 쪽에서 일하십니까?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최정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알려줘요.”
“음…….”
배상훈은 잠시 고민하다 둘러댔다.
“외국에서 돈을 좀 벌었습니다. 무역 관련해서요.”
“오오. 무역?”
“예. 물건 유통하고, 납품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대단하시네요.”
적당히 대답하자, 다른 이들도 더 자세히 물어볼 생각은 없는지 넘어가는 눈치였다.
“그럼, 한잔할까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술판으로 흘러갔다.
배상훈은 달라붙는 여자들에게 대꾸하며 눈치를 살폈다.
‘단순히 술만 같이 마시려고 부른 건 아닐 텐데… 어디 재벌 집 아들이라고 소개했어야 했나?’
배상훈은 일단은 대충 어울리며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때, 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손에 쟁반을 든 웨이터가 들어왔다.
탁.
웨이터는 작은 상자들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았다.
그러자 최정수를 비롯한 남녀들은 자연스럽게 상자를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의 정체를 눈치챈 배상훈이 인상을 구겼다.
‘역시 약이었나.’
탁. 탁.
최정수는 익숙한 듯 봉투에 들어있던 흰색 가루를 얇은 판 위에 뿌리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 있으십니까?”
“…….”
배상훈은 의아함을 느꼈다.
보통 이런 불법 행위를 초면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하진 않을 터.
손을 내젓자, 고개를 끄덕인 최정수가 종이를 돌돌 말아 들었다.
불쾌한 공기에 배상훈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형님은 안 하십니까? 이거 좋은 물건인데요.”
그 물음에 배상훈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익.
봉투를 연 배상훈이 손가락으로 가루를 쿡 찍었다.
그리고 슬쩍 혀에 댔다.
배상훈은 얼얼하게 마비가 되는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난 거야? 이거.”
“엇.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웨이터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 대답을 들은 배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장 나오라 그래.”
.
.
.
클럽 스텔라의 사장, 주성재는 주기적으로 있는 VIP 모임에서 자신을 호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X발. 또 무슨 일인데?”
“그… 잘생긴 날라리 있잖습니까.”
“어. 그놈이 불렀어?”
웨이터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루 한번 찍어서 먹어보더니, 갑자기 사장님 데려오랍니다.”
“쯧. 일단 가자.”
주성재는 재킷 단추를 잠그며 걸음을 옮겼다.
돈 많은 망나니들은 어린 나이부터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긴다.
그럼 당연히 질리기 마련이고, 더 큰 자극을 찾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VIP 제도를 만들고, 그들에게 자극과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마약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약의 위험성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덕과 윤리를 벗어던진다는 유혹에 넘어갔다.
‘최정수, 이 X발 새끼. 알아서 잘 관리하는 것 같아서 놔뒀더니만…….’
똑똑.
주성재가 노크하자, 대답 대신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어디가…?”
“놀고들 계세요. 잠깐 얘기만 하고 오는 거니까.”
안쪽을 향해 손을 흔든 배상훈이 룸의 문을 탁 닫으며 나왔다.
갑자기 자신을 불렀다기에 분위기가 험악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표정이 나쁘진 않았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장님.”
“사장은 그쪽이 사장님이죠.”
그 말을 들은 주성재가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 그건 그렇네요.”
“일단 조용한 데로 가죠. 남들이 들으면 좀 곤란한 얘기라.”
“예.”
주성재는 배상훈을 사장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와인을 집어 들며 물었다.
“좋은 와인이 있는데, 한잔….”
“됐습니다. 요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 그렇군요.”
다시 와인을 놓아둔 주성재가 배상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입이 텁텁한 듯 입맛을 다시던 배상훈이 물었다.
“담배 한 대만 빌립시다.”
스윽.
담배를 꺼내 건넨 주성재가 불을 붙여줬다.
‘이 X발 놈. 대체 뭔 소릴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주성재는 속내와는 달리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담배를 피우며 분위기를 잡던 배상훈이 입을 열었다.
“밀가루를 주던데.”
“예? 밀가루요?”
“짭새는 아니니까 모르는 척은 집어치우자고.”
그 말에 주성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배상훈은 담배를 문 채 눈빛을 싸늘하게 가라앉혔다.
“누구 허락 맡고 서울에서 약을 파는 거지?”
“……누구십니까?”
그 눈을 마주한 주성재는 조용히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배상훈은 긴장한 듯한 주성재를 보며 속으로 더 긴장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이주혁이 귀띔해 준 몇 가지 시나리오대로 끌고 오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구라를 치려니 어딘가 불안했다.
“물건 누구한테 받았어?”
주성재는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괜히 상대의 신분도 모르고 뻗댔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있었다.
“중국 쪽입니다.”
“설마 삼합회?”
“…예. 그렇습니다만, 혹시 문제가 있는 겁니까?”
“그놈 이름이 뭐지?”
주성재가 움찔했다.
클럽 스텔라로 들이는 마약이 삼합회 발이긴 하다.
하지만 주성재가 직접 거래를 하는 건 아니었다.
“물건은 제 친척이 받아오는 거라, 저는 잘 모릅니다.”
“우선 내 소개부터 해야겠네. 난 성남지부장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삼합회 말입니까?”
“그래. 한국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진 이유로, 여기에선 물건을 팔지 말라는 규정이 내려왔지.”
주성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금시초문이었지만, 삼합회에 소속된 사람의 말이라 쉽사리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눈앞의 이 남자가 정말 삼합회 소속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한 심기를 거스를 순 없었다.
“그… 렇습니까.”
“만약 당신이 정말 삼합회한테 물건을 받은 거라면, 그놈은 우리 조직의 명령을 어겼다는 뜻이다.”
“으음…….”
“그쪽은 몰랐다지만, 규율을 지키지 않는 놈은 처벌해야 하지.”
“아는 게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입을 털던 배상훈은 이때다 싶어 쐐기를 박았다.
“그럼 그 놈과 거래한다는 친척을 만나봐야겠는데.”
이쯤 되니 주성재도 수락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예. 우선 제가 그분께 연락드린 후에….”
그렇게 대답하려던 순간, 뭔가 기시감을 느꼈다.
며칠 전, 찾아와서 가장 비싼 세트를 시킨 이혁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 혹시 그 친척분을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클럽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길래 찾아봤지만, 이혁주라는 이름의 사업가는 서울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또 친척을 만나길 원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긴 하나, 주성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준 감이 어딘가 이상하다 외치고 있었다.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배상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이 필요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다시 왔을 땐, 그 친척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길 바라지.”
“알겠습니다. 저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배웅은 됐다.”
슥.
배상훈은 담배를 끄고 몸을 일으키고 뒤돌아섰다.
‘어우, 쓰벌. 이런 말투도 힘드네….’
이주혁처럼 무게 잡으면서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잘 털었다고 생각한 배상훈은 이주혁에게 연락하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주성재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꾹. 꾹.
이내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운택이 삼촌. 저예요.”
-그래. 무슨 일이냐.
차가운 표정을 한 주성재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잠시 시간 되세요?”
* * *
나는 사무실로 올라온 배상훈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가 나쁘진 않네.”
“그래?”
“어. 거기서 터뜨렸으면 주성재까지만 엮이고 끝났을 확률이 높지. 우리 목표는 그놈의 뒷배니까.”
하지만 또 그렇게 좋다고도 할 순 없었다.
첫날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걸 비롯해 놈이 수상함을 느낄 만한 여지가 존재했다.
“어쨌든 상황은 만들어졌네. 이제 그 친척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만 확인하면 되겠어.”
“그러게. 근데 너 삼합회 관련해서는 좀 아냐? 그럼 나 좀 알려줘.”
“그래. 매뉴얼이 필요하긴 하지.”
탁.
나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짚으며 말했다.
“이것들 정보는 내가 경찰에 넘길게. 넌 대충 그놈 만나서 뭐라고 할지 고민해 봐.”
“하. 알았다. 이놈의 언더커버는 대체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진짜.”
배상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난 15년을 언더커버로 굴렀다. 새꺄.’
그러고도 보상 하나 없이 죽어버렸지만.
“일단 좀 자러 간다. 밤낮이 바뀌니까 존나게 힘들다.”
“쉬어라.”
배상훈이 좀비처럼 비척거리며 나가고, 나는 녀석에게 알려준 삼합회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웅-.
그러던 중,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나한테 이렇게 전화를 걸 놈은 몇 되지 않았다.
꾹.
“왜.”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자,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 너머로 민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쁘십니까?
“어. 용건만 말해.”
-글라자의 레이븐이 사라졌습니다.
“뭐?”
그 말에 절로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중국에 있다가 생사불명 상태가 됐는데, 어쩌면 한국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경고 차원에서 연락했습니다.
“그놈이 왜 중국에 있어?”
-삼합회 허베이지부장이 부모의 원수라, 암살하려 했다가 일이 꼬인 모양입니다.
그래. 그놈이 다시 올 수도 있단 말이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뛰어난 킬러가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에도 딱히 긴장이 되진 않았다.
씨익.
“무덤으로 기어들어 오면 나야 편하지.”
이번엔, 우리 팀원들과 함께 놈을 맞이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