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2
#362화
나는 송태석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이 계장. 바빠?
“음. 그렇게 바쁘진 않은데, 무슨 일이에요?”
송 과장이 먼저 전화한 거면 꼭 전해야 할 게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저번에 국립공원에서 체포한 러시아 놈 있잖냐.
추격전 끝에 두들겨 패서 붙잡은 수염 난 러시아 킬러. 그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왜요. 자백이라도 했답니까?”
-그건 아닌데, 지난번에 이 계장이 신고했던 총격 사건 있잖아?
“예.”
-거기서 발견됐던 총알이랑 똑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창문이 방탄유리가 아니었다면 부장님이 잘못될 뻔한 그 사건.
누군가 어디쯤에서 저격했다는 건 알아냈지만, 놈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던 차였다.
그것 때문에 방탄 처리가 된 SUV도 장만했던 거고.
“동일 인물이라는 소립니까?”
-아마 그런 거 같다. 그놈 소지품에서 이 계장이랑 그때 그 부장이라는 사람 사진이 나왔거든.
“그럼 맞겠네요.”
같은 총알에, 우리 사진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99% 범인이 맞았다.
-일단 총기는 국과수에 넘겼고, 거기서 발사됐다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저격이 일어났던 장소 근방의 CCTV를 확인해 볼 거야.
“증거 나오면 기소 되겠네요.”
-밀입국에 불법체류, 불법무기 소지랑 살인미수까지 다 때려버릴 수 있겠지.
“어차피 러시아에서도 범죄 저지르던 놈이라, 그놈 나라에서도 신경 안 쓸 겁니다.”
이거, 마침 내가 수갑 채운 놈이 딱 그놈일 줄은 몰랐네.
-문제는 걔 말고 나머지는 애매하단 거지.
“그렇긴 하네요. 다른 놈들은 꼬투리 잡을 만한 거 없어요?”
-글쎄다.
“정 없으면 말씀하세요. 어차피 러시아에서도 꼬리 자를 놈들이니까.”
증거는 만들면 그만이다.
억울해서 항변해봤자 킬러들 말을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어?
뭐가 됐든, 체포된 이상 그놈들이 한국을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거다.
-일단 전달할 내용은 끝이고…. 레이븐이 문젠데 말이야.
레이븐.
익히 알려진 유현의 별명이자, 현재 수배지로 배포되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내가 경찰 쪽에 놈의 본명은 안 알려줬거든.
지칭할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알려준 게 바로 저거였다.
-분명히 위치 특정하고 검문까지 했는데,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러게요.”
나는 괜히 찔려서 적당히 대꾸했다.
유현을 내 쪽에서 데리고 있다는 걸 알면 기겁하겠구만.
-그래도 CCTV에 찍힌 얼굴이 있어서 다행이야.
“밀항 루트는 단속 중이죠?”
-당연하지. 그 덕에 밀수꾼이랑 브로커들도 많이 잡았다.
유현 때문에 애먼 놈들만 콩밥 먹겠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넌 계속 레이븐 추적할 거냐?
“일단은 계속해야죠.”
-그래. 고생해라. 나오는 거 있으면 다시 연락하마.
“네. 과장님도 고생하십쇼.”
나는 전화를 끊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고민했다.
유현을 러시아로 보내고 나면, 잠시 미뤄뒀던 스가와라부터 만나봐야겠다.
덜컹.
뒤에서 의료 트럭의 문이 열렸다.
어느새 처치가 끝났는지, 유현이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트럭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치료는 끝났나?”
“그래.”
“그럼 차로 가 있어. 바로 배 타러 가야 하니까. 고상미 씨도요.”
고상미가 유현을 데리고 차로 향하며 말했다.
“치료비는 꼭 나한테 청구해. 알았지?”
“그러죠, 뭐.”
트렁크로 향한 나는 현금을 넣어 다니는 돈 가방에서 800만 원을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소.”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신 닥터를 뒤로하고, 나도 다시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던 고상미가 물었다.
“바로 배 타러 간댔지?”
“네. 항구 쪽 단속이 상당히 강화된 상태라, 더 늦으면 한국 뜨기 힘들 겁니다.”
부릉-.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이 고세운을 포함한 우리 넷뿐이라, 그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신분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항구까지 운전해 가야 한다.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서자, 유현이 뜻밖의 감사 인사를 해왔다.
“고맙다.”
“음? 네가 그런 소리도 할 줄 아냐?”
“……말 한마디를.”
유현은 내 반응이 멋쩍었는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나는 룸미러로 놈을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우면 나중에 일이라도 좀 돕던가.”
“일? 무슨 일.”
“네 특기 살리는 일. 재능 기부한다고 생각해도 좋고.”
“…암살?”
내가 고상미에게 슬쩍 고갯짓하자, 옆에 있던 고상미가 설명했다.
“아까 말했던 내 복수 말이야. 여기 이 대표도 그놈에게 원한이 있다고 했거든.”
“그래서 협력하는 건가.”
“어.”
몇 초간 침묵하던 유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복수가 끝나고도 내가 무사하다면.”
“오케이.”
저놈이 살인 전문가에 말 더럽게 안 듣는 인성파탄자이긴 해도, 킬러 조직 내에서 이름있는 실력자다.
중요할 때 한 번 써먹으면 꽤 쏠쏠하단 소리지.
나는 속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뽕을 뽑아줄게.’
.
.
.
약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 도착한 곳은,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부두였다.
‘여긴가.’
아마 경호대는 여길 통해서 유현을 한국으로 들여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위치를 나한테 오픈한다라.
들켜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뭔지.
“일단 내립시다.”
탁.
우리는 부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한쪽에 있는 초소와 정박해 있는 고속정 하나가 부두의 전부였다.
저벅.
초소 쪽으로 다가가자, 거의 불투명한 창문과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나는 문 쪽으로 향해 지정된 대로 노크를 했다.
똑똑-. 똑똑. 똑똑-. 똑-. 똑똑-.
그러니 이내 초소 안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나다. 선생.”
-…….
“농담이고, 이주혁이다.”
끼익-.
문이 열렸다.
경호대원으로 추정되는 놈이 나를 지그시 노려봤다.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해서 그런가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리고 왔다. 바로 출발하면 되는 건가?”
“예. 이쪽으로.”
경호대원은 한 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놈을 따라가던 유현이 뒤를 슬쩍 돌아봤다.
“신세 졌다. 이 빚은 갚지.”
“그래. 꼭 두 배로 갚거라.”
그렇게 난 돌아가려는데, 옆에 서 있던 고상미가 말했다.
“나도 따라가도 될까?”
“네?”
“복수를 돕고 싶어. 나도 아직 풀지 못한 원한이 있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기 같은 것도 안 챙기셨잖아요?”
스윽.
그러자 고상미는 어느새 들고 왔는지 칼집과 파우치가 달린 벨트를 슬쩍 들어 올려 보여줬다.
참고로 내 거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트렁크에 넣어뒀던 건데.
“…이건 또 언제 들고 왔어요?”
“미안. 좀 빌려도 돼?”
“예. 뭐… 뜻대로 하세요.”
솔직히 경호대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게 두는 듯해서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가는 걸 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고상미가 어디 가서 객사할 사람은 아니니까, 알아서 상황 보고 움직이겠지.
우리 주요 전력 중 하나라, 잃게 되면 상당히 뼈아플 것 같다.
부장님도 슬퍼할 테고.
“대신 멀쩡하게 복귀하셔야 합니다.”
“걱정마.”
시원하게 입꼬리를 올린 고상미가 멀어지는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뭐라 얘기하는 듯하더니, 허락을 받았는지 이내 같이 고속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저 인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그럼… 이제 밀린 일을 처리해 볼까?’
* * *
인천에 자리 잡은 스미요시카이의 야쿠자, 스가와라 켄타.
그는 부하들을 불러 보고를 듣고 있었다.
“수금 장부는 전부 정리했습니다.”
“아가씨들 밤 영업도 멈췄습니다!”
“약 건드는 놈은 없지?”
스가와라의 물음에, 왼팔과 오른팔 격인 유토와 미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하게 확인했습니다.”
“좋아.”
이로써 책 잡힐 만한 부분은 전부 정리했다.
원래도 심각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진 않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니 굴러가는 현금도 전부 투명하게 정리했다.
다만 야쿠자 출신이니만큼 문제 삼으려면 얼마든지 삼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주혁이 큰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그자 볼 낯은 있겠어.”
오늘 저녁에 이주혁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폭력 조직 근절을 목적으로 창설한 조직, 특수수사국.
그 타깃에 야쿠자가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주혁과 만나는 건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드륵-.
고개를 끄덕인 스가와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출발하지.”
끼익-.
스가와라 일행은 이주혁과 처음 만났던 고급 일식당으로 향했다.
이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방으로 향하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벌써 와 있는 건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식탁에 음식들이 속속들이 놓이고 있었다.
“왔구만.”
식탁 옆에 앉아있던 이주혁이 여유롭게 그를 맞이했다.
스가와라는 빈 상석에 앉으며 물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을 텐데, 생각보다 일찍 왔군?”
“운전을 오래 해서 그런가, 배가 고파서.”
이주혁은 젓가락으로 장어구이 한 점을 집으며 씩 웃었다.
“제일 비싼 코스로 주문했지.”
“본론은 식사 이후에 할 생각인가?”
“먹으면서 하자고.”
꿀꺽.
흡족한 얼굴로 장어를 씹어 삼킨 이주혁이 말했다.
“그때 말했던 특수수사국 말인데, 당분간 야쿠자들은 건드리지 않을 거다.”
“이번에 수배서가 나온 그자 때문이겠군.”
“정답. 당분간 특수국은 그쪽에 신경 쓰느라 바쁠 예정이거든.”
이주혁이 젓가락을 까딱이며 덧붙였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단속에 걸릴 일은 당분간 절대 안 하지 마라.”
“물론. 깔끔하게 정리해 뒀다.”
달그락.
사케 병을 집어 든 스가와라가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해 두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러시아 쪽 일이 마무리되면, 특수수사국이 우리에게 눈 돌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스가와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이주혁이 명확하게 대답해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본토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있긴 하나, 거기에선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게 분명하다.
이주혁은 대답 없이 잔을 내밀었다.
쪼르륵.
그에 스가와라는 그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한잔을 그대로 쭉 들이킨 이주혁이 입을 열었다.
“특수수사국은 내 손안에 있다.”
“뭐?”
“얼마든지 너희 쪽은 건드리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소리지.”
그 말에 스가와라는 의문을 느꼈다.
“솔직히 바로 믿긴 힘들군. 자네, 대체 정체가 뭐야?”
어지간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선생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질 않나.
그와 비슷하게 미래를 읽을 수 있다질 않나.
지금은 한 국가의 경찰 산하 조직을 제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직 새파란 젊은이가 말이다.
“정체라.”
이주혁이 잔을 놓았다.
“난 당신네 식구들을 보호해 줄 수 있고, 그쪽 회장의 복수도 도울 수 있지.”
그리고 고개를 들며 입꼬리를 슥 올렸다.
“그런데도 내 정체가 그렇게 중요한가?”
“…….”
한동안 말문이 막혀있던 스가와라가 사케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탁-!
잔을 거칠게 내려뒀다.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옳은 말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