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나는 마침내 유현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날 믿는 건 아니지만, 일단 협조는 해준다는 것 같았다.
‘경찰 쪽에 어떻게 얘기할지가 고민이구만.’
이놈 하나 잡겠다고 경찰 수십 명을 동원했는데,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소리였으니까.
체포돼서 병원에 누워있는 경호대 놈을 진범으로 모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도 좋은 수는 아니었다.
이게 다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 탓이었다.
“이 새끼는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뭐?”
“아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유현의 물음을 적당히 대꾸했다.
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에 오르자, 저 앞 도로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미 유현의 위치는 대강 확인된 상태였다.
도보로 도주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대강 있을 만한 지역을 특정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우우-.
나는 속도를 줄이며 경찰의 옆에 차를 멈췄다.
똑똑. 지잉-.
창문을 내리자, 경관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여기요.”
척.
송태석에게 받은 경찰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경관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엇, 특수수사국…?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럼 동행하시는 분도 같은 소속이십니까?”
고상미 쪽을 보며 하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경관은 다시 공무원증을 돌려주고선 머리를 숙였다.
“확인됐습니다. 가시면 됩니다.”
“예. 고생하세요.”
부웅-.
나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부스럭.
뒷좌석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유현이 기어 나오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계속 도망갔어도 잡혔겠군.”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
유현이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둘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지?”
“왜. 질투 나냐?”
“개소리를….”
“내가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일하는 사이다.”
내 대답을 들은 유현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누군가와 협력할 사람은 아닌데…….”
그 말에 조수석에 있던 고상미가 발끈했다.
“날 뭘로 보는 거야?”
“세상에 가족 말고는 아무도 믿을 사람 없다고 하지 않았나?”
“……쩝.”
고상미가 머쓱한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일단, 너는 러시아로 간다.”
“음.”
“배를 타야 해서 시간은 좀 걸려. 너한테 수배가 떨어진 거라, 몰래 나가기 쉽지 않거든.”
이름있는 전前 공직자를 죽였으니, 경찰 쪽도 위신을 위해 어지간하면 이놈을 잡으려고 할 터.
나도 이대로 유현을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도와주는 게 양심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죗값을 치르게 할 예정이다.
이놈의 쓸모가 다했을 때 말이지.
“러시아로 넘어가면, 아마 경호대원 쪽 사람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합류해서 때를 기다려.”
“때?”
“그래. 경호대가 글라자의 뒤통수를 갈길 예정이거든.”
유현이 흠칫 놀라는 게 룸미러를 통해 보였다.
“경호대가?”
“그래.”
놈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군. 하지만 경호대만으로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르지.
경호대의 무장은 이전에 봤듯 높은 수준이었다.
군대에서나 쓸 법한 물건들도 있고, 개개인의 전투력도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이골이 난 킬러들 상대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놈들이 바보같이 경호대를 상대로 방심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뭐, 그래도 방법이 있으니까 글라자는 자기가 무너뜨릴 거라고 호언장담했을 거다.
“널 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전력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넌 미끼다.”
내 말에 유현이 미간을 좁혔다.
“미끼라…. 이해했다. 내가 글라자로 복귀해 놈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소리겠군.”
“빙고.”
민지훈이 괜히 유현을 살려뒀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전해 듣기론, 현재 이놈은 글라자의 공적이 된 상황이다.
위에서 내린 명령을 무시하고 잠수를 타버렸으니까.
그런 놈이 제 발로 돌아오면, 수뇌부들은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때 한꺼번에 덮쳐 그들을 몰살한다.
이게 바로 민지훈의 계획이었다.
‘지도층이 사라지면, 조직은 자연스럽게 무너지겠지.’
솔직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민지훈이 난 놈이긴 하다.
똑같이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걸로 주철수 하나를 없애버렸을 뿐인데, 이놈은 세계 굴지의 범죄조직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니까.
대체 몇 년도까지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 대표.”
옆에 있던 고상미가 질문을 던져왔다.
“그럼 현이는 이제 대한민국에 못 들어온다는 거야?”
“그렇겠죠. 현상수배가 내려질 테고, 해외로 도주한 게 밝혀지면 인터폴이 나설 수도 있으니까요.”
“…….”
고상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유현 놈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인지라 입을 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물론 내가 경찰청장에게 부탁하면 수배를 늦추거나 사건을 흐지부지할 순 있었다.
근데 내가 이놈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잖아?
“지금 당장 감방으로 보내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아시죠?”
“…알지.”
반성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나와 협력하고 있는 사발이나 고광목도 사기꾼, 조폭 출신이긴 하다.
하지만 그놈들은 내가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더 이상의 범죄도 저지르지 않는 상황이다.
만약 유현을 내 쪽에서 다룰 수 있다면 몰라도, 그 전에 먼저 호의를 베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웃기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전생에서, 경찰이 되기 전의 나는 정의심으로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처럼 의인이 되고 싶고, 악을 뿌리 뽑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언더커버가 된 뒤론 선행보다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 더 많아졌다.
주가도 조작하고, 사람 묻는 일에 일조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때부터 변해버린 건가.’
겉으로는 정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민지훈만큼의 위선자일지도 몰랐다.
“얼굴이 안 좋네.”
“아….”
“미안해. 이 대표. 저놈 빼내는 게 많이 부담이었지?”
고상미가 살짝 침울해진 투로 말했다.
“괜히 나 때문에 이 대표가 객관적인 판단을 못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저놈 구해준 거요?”
“응.”
피식.
“고상미 씨 때문에 도와주기로 한 건 아닙니다. 괜히 부채감 느끼진 마세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고상미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게 보였다.
스윽.
나는 눈치껏 입 다물고 있는 유현을 불렀다.
“야. 유 씨.”
“……나 말인가?”
“그래. 너. 돌아가면 치료부터 받아라. 식은땀으로 시트 다 젖겠다.”
“병원은 안 된다.”
“병원 말고,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
출발하기 전 조폭 전문 의사, 신 닥터한테 연락해 뒀다.
페이는 높아도 입이 무거워서 믿을 수 있는 양반이다.
부웅-.
나는 그렇게 용산구로 돌아가며 고민했다.
잘만 하면 고상미의 호의도 얻고, 쓸 만한 전력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유현 이 새끼, 어떻게 꼬실 방법 없나?’
.
.
.
그렇게 우리는 회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복귀하기 전에, 유현의 치료를 위해 근처의 공용주차장으로 향했다.
끼익-.
주차장으로 들어온 나는, 한쪽에 주차 되어있는 화물 트럭 옆에 차를 멈췄다.
“내립시다.”
똑똑. 똑똑똑.
일정한 리듬으로 트럭 뒤쪽을 두드리자, 짐칸에서 신 닥터가 문을 열었다.
덜컹.
“오랜만입니다. 신 닥터.”
마스크를 쓴 중년인지 노인인지 모를 인상의 남자가 유현을 보자마자 물었다.
“환자는 이쪽?”
“예. 총상이 두 갭니다.”
“일단 들어오쇼.”
안으로 들어서니, 실제 병원이나 수술실에서 볼 법한 장비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게 눈에 들어왔다.
“환자는 여기 앉고, 웃옷은 벗으쇼. 총알은 어쩌셨소?”
“깊게 박힌 건 아니라 알아서 뽑았다.”
스윽.
상처 부위를 살핀 신 닥터가 혀를 찼다.
“쯧쯧. 봉합은 얼추 해놨는데, 처치가 제대로 안 됐구만.”
신 닥터는 장갑을 낀 손으로 거침없이 유현의 상처를 살폈다.
“큭.”
“음. 장기는 괜찮은 모양이고, 감염이 좀 됐는데…. 이 정도면 명줄에 지장은 없을 거요.”
그 말에 고상미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인을 끝낸 신 닥터는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한 장.”
“한 장이요?”
“원래 총상은 더 받는데, 지난번에 웃돈 받은 것까지 해서 한 장이요.”
아, 이놈 치료하는 데 천만 원을 쓰는 건 너무 아까운데.
“어떻게, 조금만 에누리 안 되겠습니까?”
“거참, 돈도 많은 양반이 병원비를 후려치나.”
“총알도 알아서 빼놨잖습니까.”
“씁…….”
잠시 고민하던 신 닥터가 물었다.
“근데, 비용은 누가 내는 거요? 이쪽이 내는 건가?”
그 물음에 나는 유현을 돌아봤다.
“너, 돈 없냐?”
“……지금 당장은 없다.”
유현은 자기도 머쓱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고상미가 손을 슬쩍 들었다.
“내가 모아둔 돈이 조금 있어.”
“천만 원, 있어요?”
“엑. 그렇게 많진 않은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 닥터가 쩝 소리를 냈다.
“그래. 그럼 800으로 해 주겠소.”
“오오, 고맙습니다.”
우웅-.
그때, 품 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송태석 과장]송태석. 이 양반이 별것도 아닌 일로 나한테 먼저 전화를 걸 리가 없었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일단 치료 시작해 주세요.”
“알았소.”
턱.
트럭에서 내린 나는 괜시리 마음이 불안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 * *
이주혁이 나가고, 신 닥터는 유현을 향해 말했다.
“일단 환부 소독부터 하겠소.”
“음.”
신 닥터가 필요한 것들을 가지러 간 사이, 고상미가 유현에게 물었다.
“현아. 미하일에게 복수한다고 했지?”
“그래.”
“솔직히 마음 같아선 말리고 싶지만, 네 심정을 아니 그러질 못하겠다. 대신 하나만 대답해줘.”
고상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미하일을 죽이고 나서?”
잠시 침묵하던 유현이 대꾸했다.
“생각해 본 적 없다. 그것 말고는 삶의 이유가 없으니까.”
“없긴 왜 없어. 여자친구도 사귀고, 애도 낳고…….”
유현의 눈빛을 본 고상미가 입을 다물었다.
“농담. 어쨌든, 복수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현아.”
“…….”
“복수가 나쁜 건 아냐. 나도 도와줄 거고. 하지만 네가 복수 하나에 모든 걸 불태우는 건 두고 볼 수 없어.”
고상미가 진지한 얼굴로 유현의 팔을 붙잡았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
유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는 복수를 끝마치고 더 살아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너, 지금까지 충분히 불행했잖냐. 그리고 아직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할 일?”
“그래. 누나도 너처럼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거, 말해줬었나?”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다 이어지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범인, 찾았다.”
“……정말이야?”
“정말이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그놈이 너무 강한 놈이라는 거야.”
고상미는 유현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내 복수 좀 도와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