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고상미가 글라자로 향한 그날, 유현은 늘 훈련하던 뒷산으로 가고 있었다.
몰래 구해둔 칼로 나이프 파이팅을 연습하는 장소였다.
집에서 칼을 만지면 항상 고상미가 압수해 갔으니, 다른 곳에서 몰래 다뤄야만 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웬 남자들이 나타나 그를 불렀다.
“어이, 거기 원숭이.”
“……?”
“너 말이야. 너. 가진 거 있으면 좀 내놔 봐.”
그 말에 유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던 길을 갔다.
그러자 험악한 얼굴로 다가온 남자 세 명이 그를 둘러쌌다.
“건방진 놈. 어딜 가려고?”
유현은 눈을 굴려 남자들을 살폈다.
상대는 건장한 체격인지라, 그냥 붙으면 이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유현은 신발을 만지려는 듯 몸을 웅크렸다.
꽈악.
그리고 길에 있던 흙을 한 움큼 쥔 뒤,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향해 뿌렸다.
화악-!
먼지가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유현은 그 틈을 타 도망가려고 했다.
이들이 자신을 쫓아와 집의 위치까지 알아내면 곤란했으니까.
그러나 그의 계획은 오래가지 못했다.
덥석.
“이 새끼가……!”
순식간에 뒷덜미를 잡힌 유현의 몸이 훅 떠올랐다.
어떻게 대응할 새도 없이 내던져진 그는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윽….”
낙법을 친 뒤 주저앉아 있는 유현의 얼굴로 발차기가 날아왔다.
후웅-!
유현은 머리만을 틀어 발차기를 피했다.
이어 아직 회수하지 못한 그의 무릎 위로 손깍지를 끼고, 그대로 몸을 확 낮췄다.
그러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발차기를 날린 남자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드득!
“끄아악…!”
한 명을 무력화시킨 유현의 등판에 충격이 가해졌다.
“컥.”
유현은 그 충격을 이용해 몸을 굴리며 이어지는 공격을 피했다.
그걸 본 나머지 두 남자가 이것 보라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통이 아닌데.”
“……게 배운 건가.”
“……도면 괜찮군.”
유현은 저들끼리 중얼거리는 걸 보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주는 실패하고 말았다.
퍼억-!
어느새 따라붙은 남자가 뒤에서 그를 발로 차버린 탓이었다.
앞으로 쏘아지듯 날아간 유현은 나무에 부딪혔다.
쿵!
“끅…!”
유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닥에 툭 쓰러졌다.
가슴을 세게 박아서 그런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좀 자라.”
그런 유현의 시야에 투박한 신발이 들어왔다.
뻐억!
그와 동시에 그는 의식을 잃었다.
.
.
.
유현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였다.
“젠장할.”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털었는지 주머니가 마구잡이로 헤쳐져 있었다.
그러나 가진 게 없었기에 뺏긴 것도 없었다.
입막음을 하지 않고 간 건 의외였지만 말이다.
“후…….”
그렇게 유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훈련할 기분도 아니었고, 기절한 동안 시간도 꽤 흘러있었으니까.
또 그가 말없이 자리를 비우면 항상 고세운이 고자질하곤 했다.
그게 듣기 싫어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저벅.
결국 걸어서 집까지 온 유현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들이 사는 집은 구석진 곳에 있어 찾아올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끼익-.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곳저곳을 뒤진 듯 어질러져 있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늘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놈도 보이지 않았고, 벽에 걸려있던 고상미의 무기들도 사라진 상태였다.
유현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그때,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쾅!
문이 열리며, 갑작스럽게 침입한 남자들이 그에게 총을 겨눴다.
철컥.
유현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은 없었고, 웬 이상한 놈들이 총을 들이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그들 사이로 한 노인이 걸어들어왔다.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었고, 가늘게 뜬 눈이 어쩐지 불길함을 자아내는 인상이었다.
“여긴가. 그 마녀의 집이.”
혼자 중얼거린 노인, 미하일이 굳어 있는 유현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구길래 여기 있나?”
“…….”
“혹시 여기 사는 건가?”
미하일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유현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가 정보를 노출할 수도 있었다.
눈앞의 앳된 청년이 머리를 굴리는 걸 느낀 미하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 총을 내리게.”
“하지만…….”
“총 내려.”
단호한 지시에 남자들은 결국 총을 내렸다.
미하일은 유현을 향해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힘들 테지. 일단 앉아서 얘기하세나. 나도 자네한테 궁금한 게 많거든.”
턱.
식탁의 의자를 빼낸 미하일이 그곳에 앉았다.
그러나 유현은 앉지 않았다.
“뭐, 서 있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대신 내 질문에 대답해 주게나. 자네도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게.”
“당신은 누구지?”
“미하일이라고 한다. 물론 내 이름이 궁금한 건 아니겠지.”
칙.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미하일이 자신을 소개했다.
“글라자에 대해 알고 있나?”
“…아니.”
“살인 청부 전문 조직이다.”
“…….”
유현은 본능적으로 이 자가 고상미를 아는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고상미가 글라자라는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에 유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더 묻지.”
“음? 이번엔 내가 물어볼 차례 아닌가?”
“여긴 왜 찾아온 거냐.”
미하일은 자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유현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건 그놈이랑 똑같군. 내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유현이 흠칫했다.
자신을 덤으로 제거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바바 야가…. 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여자가 이곳에 살았지. 안 그런가?”
“…….”
“글라자에 속해 있던 그녀가 조직의 간부 하나를 살해하고 도주했네. 우린 그녀를 추적하기 위해 여기 온 거고.”
유현은 고상미가 저지른 일에 놀랄 새도 없이 이어진 정보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망갔다고?’
그래서 고세운도 매일같이 앉아있던 이곳에 없었던 것이다.
‘……나를 두고?’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유현만을 여기 남겨두고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유현은 차오르는 배신감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어디 있는지는 찾았나?”
“그 전에 하나 묻겠네. 그녀와 무슨 관계인가?”
“…그냥 알던 사이다.”
“자네도 여기 살았나?”
끄덕.
미하일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꽤 가까운 사이였을 텐데, 그런 짓을 벌이고 혼자만 도망갔군.”
“잠깐… 확인할 게 있어.”
유현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에 수하들이 미하일을 쳐다봤지만, 그는 가만히 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벅.
문밖으로 향한 유현은 문간에 달려있을 나무패를 확인하기 위해 그를 가리고 있던 작은 천을 치웠다.
이게 O가 새겨진 방향으로 되어있으면 집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X자로 뒤집혀 있으면 반대의 의미였다.
예전에 고상미가 알려줬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도주 방법을 마련해 뒀던 장소.
그곳으로 오면 되는 거였다.
“…….”
하지만 나무패는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표시해 놓는 걸 까먹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항상 위기 상황을 대비하던 고세운의 성격상 까먹었을 리는 없었다.
“…….”
그 말인즉슨, 그들이 유현을 버리고 둘이서만 도망갔다는 뜻이었다.
오해할 만한 정황과 비약 때문에 도출된 결론이었다.
다만 배신감과 혼란에 빠진 유현은 거기까지 고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꾸욱.
역시, 진정한 가족이 될 수는 없었다.
턱.
미하일은 다시 안으로 들어온 유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확인은 끝났나?”
“…….”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유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
“뭐라고?”
“당신이 말한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고 있다.”
고개를 든 유현의 눈빛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의 복수심이, 고상미 남매에게도 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이 미친 새끼! 그놈들이 들이닥친 게 너 때문이었단 거냐!
유현의 이야기를 듣던 고세운이 노발대발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하냐? 아직도 비가 오면 흉터가 남은 등짝이 쑤신다고!
유현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복수심에 잠식되어 한때 가족같이 지내던 이들을 팔아넘긴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멍청아. 우리가 널 버린 거였으면 나무패를 없애뒀겠냐? 그대로 놔뒀겠지.
“너무 뭐라 하진 마.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누나는 왜 그놈을 감싸는 건데?
“감싸는 게 아니라…….”
-미안해하는 건 알겠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죽을 뻔했어. 알아?
“그렇다고 거기서 저항했으면 죽었을 거야.”
두 사람의 갈등을 지켜보던 유현이 말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밀고한 일은…… 사과하지.”
그 말을 남긴 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난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 같이 있어봤자 좋을 거 없어.”
“다쳤다면서. 우리가 도와줄게.”
“됐다.”
유현은 복잡한 심경으로 고상미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고상미에 대한 복수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자신을 왜 두고 갔는지에 관한 의문이 더 컸기에,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그날의 전말을 들었고, 그를 버린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오해는 풀었다지만, 이제 와서 다시 함께할 순 없었다.
‘너무 변해버렸어.’
그도, 상황도. 많은 게 달라졌다.
어차피 복수를 위해 불사를 몸. 다시 관계를 회복할 이유가 없었다.
“현아….”
유현이 말없이 떠나려던 그때.
“잠깐 스탑.”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그의 정체를 확인한 유현이 깜짝 놀라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이주혁이 양손을 들며 말했다.
“진정해, 진정.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무슨 꿍꿍이지? 날 잡기 위한 함정이었나?”
유현은 고상미와 이주혁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그런 거 아니고, 상황이 조금 바뀌어서 말이야.”
이주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널 체포할 수 없게 됐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고상미 씨.”
“응?”
이주혁은 고상미를 부르며 말했다.
“잠깐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아, 그래.”
군말 없이 고상미가 자리를 비키자, 유현은 조금 놀란 듯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그에게 이주혁이 물었다.
“너, 경호대장에게 들었겠지. 네 부모님의 원수.”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냐?”
“다 아는 방법이 있다. 어쨌든, 내가 그걸 도와줄게.”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자신을 잡으려고 나서던 사람이, 이제는 도와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이주혁이 덧붙였다.
“그래. 날 믿기 힘든 거 안다. 하지만 글라자를 적대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
“듣기론 조직을 배신하고 떠났다지? 글라자가 존재하는 한 넌 평생 쫓길 거다.”
스윽.
이주혁이 손을 내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글라자를 없애버리는 건 어때?”
“…….”
“복수할 수 있게 도와주마.”
유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그는 이주혁의 손을 맞잡는 대신,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나를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그 물음에 이주혁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