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9
058화
“더 휴식을 취하셔야…….”
접수대에 간호사가 걱정스럽게 나를 보며 말했다.
“그냥 퇴원하겠습니다. 몸이 워낙 건강해서요.”
“안 되는데…….”
퇴원 절차를 밟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 주혁 씨. 괜찮으신 거예요……?”
임유나의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다.
거칠게 숨까지 몰아쉬는 걸 보면,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가 보였다.
그녀의 이런 반응, 싫지 않았다.
사고당해볼 만한데?
“하하. 뭐 제대로 치인 것도 아닌데요. 멀쩡합니다.”
“그래도요. 벌써 퇴원해도 되는 거 맞아요?”
“걱정 마요. 진짜 괜찮으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건강은 타고났다고요.”
그렇게 임유나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은 또 왜 온 거야?
“어, 뭐야.”
화장실에 갔던 라세흠 부장이 갑자기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장난기가 서린 표정으로.
‘설마. 또 헛소리하려는 건 아니겠지.’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라세흠 부장을 막으려 했지만 내 어깨에는 이미 두꺼운 팔이 올라와 있었다.
턱.
“이분이 그 소문의 임유나 사장님이셔? 주혁이가 그렇게 끙끙 앓던?”
아니나 다를까.
나는 라세흠 부장의 팔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부장님.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죠.”
하지만 내 말을 제대로 들어먹을 리가 있나.
“반갑습니다. 임유나 사장님. SA시큐리티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라세흠이라고 합니다. 이놈이 군대에만 있어서 그런지 여자 마음을 잘 몰라요. 그러니 부디 너그럽게 봐주십쇼.”
이 양반이 진짜.
내가 손가락 끝으로 옆구리를 푹푹 찌름에도, 라세흠 부장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임유나도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화난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마음을 추슬렀는지, 임유나는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풍원한정식 사장 임유나입니다.”
“주혁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젊은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라세흠 부장이 슬슬 또 헛소리에 시동을 거는 것 같기에, 귓속말로 조용히 협박의 메시지를 보냈다.
“또 이상한 소리 하면 다음 작전에선 부장님 이름 뺄 겁니다.”
“!”
순식간에 라세흠 부장이 조용해진다.
그러게 처음부터 이럴 것이지.
되지도 않는 오기를 부리기는.
라세흠 부장이 과장된 몸짓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주혁이랑 말씀 잘 나누십쇼.”
“아, 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부장님.”
성능은 확실했다.
부장은 나를 놀리는 것보다 강자와 겨룰 기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아. 다음부터 적극적으로 써먹어야겠어.
그렇게 라세흠 부장을 쫓아내고, 드디어 임유나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나 했더니…….
“행님! 어, 임 사장님 아입니꺼?”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난쟁이가 나를 봤는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
라세흠에 이어 이번엔 난쟁이?
이놈들 단체로 짜기라도 한 거야, 뭐야?
들어올 거면 한꺼번에 들어오지, 사람 이야기를 못 하게 만든다.
“행님. 차에 치이셨담서 멀쩡히 걸으시네예?”
“너 말이 이상하다? 더 다쳐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에이, 설마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요새 좀 편하게 대해 줬더니 감을 다 잃은 모양이다.
재교육이 필요하겠어.
일단 임유나 앞이라 최대한 좋게 말했다.
“미안한데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임 사장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예? 저 이제 왔는데예?”
가라고, 인마.
내가 임유나에게는 보이지 않게 살벌한 표정을 짓자, 난쟁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아. 맞네. 할 일이 있는데 깜빡해뿟네. 행님,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릴께예. 임 사장님도 담에 뵙겠심더.”
“아, 네.”
그래……. 드디어 둘만 남았군.
나는 다시 임유나를 보며 말했다.
“일단 풍원한정식으로 돌아가시죠.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네? 괜찮은데…….”
“하하. 어차피 응급실은 앰뷸런스 타고 와서, 돌아가려면 택시 타야 했거든요. 병문안까지 와 주셨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타고 가자는 거죠.”
그런 내 말에 임유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부장님도 계시던데, 그분 차로 가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
“라세흠 부장이요? 그 사람은 자기 차 없습니다.”
“아…….”
“운전만 하면 근손실 온다나 뭐라나. 그래서 뛰어다닙니다.”
“예?”
이 정도면 라세흠에 대한 소개는 충분하겠지.
아닌가?
***
내가 운전하는 임유나의 차는 풍원한정식을 향해가고 있었다.
원래는 어제 그놈과 있었던 일을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뭐 말해 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런데 임유나가 사고를 당한 놈이 자기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기에, 난 어쩔 수 없이 사건의 진상을 설명해 줬다.
“그렇군요. 그분이…….”
“네. 정치권에서 보낸 놈이었습니다. 숨겨놓은 걸 찾다가 정 안 되면 유나 씨를 협박했을 거고, 결국엔 해쳤을 겁니다.”
“대체 제 가게에 뭐가 남아 있길래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놈을 보낸 쪽의 약점이 될 만한 게 아닐까 싶네요.”
임유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쁜 얼굴에 그늘이 지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걱정 마시죠. 제가 반드시 지켜 드리겠습니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하자, 임유나는 시선을 슥 돌리며 중얼거렸다.
“운전 중에는 전방주시해요.”
“아, 넵. 죄송합니다.”
다시 정면을 보고 민망함에 괜스레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그래도 고마워요. 주혁 씨.”
저런 말까지 하다니…….
이제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나는 임유나의 솔직한 감사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1,000만 원 값은 해야죠.”
“그럼 5,000만 원어치 회식은 뭐였어요?”
“원래 다른 회사들도 그 정도 복지는 있지 않나요? 하하.”
끼익.
어느새 차는 풍원한정식에 도착했다.
임유나와 차에서 내린 뒤 가게 쪽으로 걸었다.
그러자 저 멀리 덩치 큰 한 사람이 보였다.
좋아. 제때 와 있었군.
녀석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본 임유나가 불안했는지 한 발짝 물러났다.
“혹시…… 아는 분이에요?”
그동안 당한 게 많으니 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건 당연하리라.
심지어 큰 덩치에 굳은 인상의 남자라면 말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미리 말해 놓을 걸 그랬네요. 죄송합니다. 저 녀석은 SA시큐리티에서 일하는 정태섭이라고 합니다.”
꾸벅.
정태섭이 겉모습과는 달리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임유나도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 주혁 씨. 이분은 어쩐 일로……?”
“이제 앞으로 이 친구가 풍원한정식에서 근무하면서 유나 씨를 보호해 드릴 겁니다.”
씨익 웃는 내 모습에 임유나는 살짝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네? 그게 무슨…….”
“하하. 걱정되시는 건 알지만, 사실 이 친구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거든요. 혹시 그쪽에서 감시를 붙여도, 그냥 덩치 큰 요리사인 줄로만 알 겁니다.”
나의 설명에도 임유나의 표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혹시 설명도 없이 이런 일을 진행해서 기분이 나쁜 건가?
“유나 씨. 제가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황급히 손을 내저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는 주혁 씨가 지켜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응?
임유나는 그 한마디를 뱉고선 다시 홍조증이 도졌는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그 모습에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설마 정태섭 대신 내가 곁에 있기를 원하는 건가?
물론 그럴 수 있다.
내가 강북도끼파를 치워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누구든 직원보다야 사장이 직접 보호해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거니까.
그게 임유나라도 다르진 않겠지.
또 오해할 뻔 했네.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바빠서 매일 붙어 있기에는 무리가 있네요.”
“아…….”
어쩔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자, 임유나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가장 실력이 좋은 내가 경호에서 빠지니 내심 불안하겠지만, 정태섭의 실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정태섭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수상한 놈들 접근하면 바로 보고하고, 일 터지면 임유나 씨를 최우선으로 보호해. 알았지?”
끄덕.
정태섭은 과묵하긴 하지만, 믿을 만한 녀석이었다.
“그럼 유나 씨.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찾아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감사해요. 이렇게 직원분……도 보내 주시고.”
말에 뭔가 다른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덩치와 돼지의 일차적인 조사 결과를 들어야 했기에 자리를 떠났다.
덜컥.
자연스럽게 정태섭이 타고 온 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정태섭이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혁아. 그거 내 찬데.”
“어, 알아.”
좀 타고 갈게. 택시 부르긴 귀찮아서.
“주혁아?”
“택시비는 보내 줄게.”
부르릉.
나는 황급히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
사무실에 도착하자 덩치와 돼지가 날 반겼다.
“행님. 오셨네예.”
“그래. 알아본 거 쭉 말해 봐.”
“예. 생각보다 금마를 아는 사람들이 없어가 고생 좀 했다 아입니까.”
둘은 조사한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김태수. 원래 복싱 국대였다 카데예.”
“역시.”
녀석의 기술은 올림픽 메달권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아마추어일 리가 없지.
“그르케 잘 나가다 중간에 부상 때매 그만뒀다 그라드라고예. 근데 그때 홀어무이 병까지 터져서 빚을 어마무시하게 졌답니더.”
“역시 돈 때문이었나.”
그 정도 재능이면 충분히 선수로도 먹고살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돈이 나올 구멍이 없어지자 뒷세계에 발을 들였을 것이다.
실력을 알아본 조직 보스가 돈으로 스카웃했겠지.
“그라고 뭐 빚 때문인지 친척들은 다 연을 깐 것 같고, 군대는 부양가족 뭐시기로 안 갔답니더.”
“쯧.”
사연이 있긴 하지만,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깡패짓 한 돈으로 치료비 내는 걸 참 좋아하셨겠어.
결국 그놈도 다른 사람들 패고 협박하면서 살아온 놈이다.
동정할 필요는 없었다.
“근데 금마를 스카웃한 조직이 용달파라고 하더라고예. 근데 그 대가리였던 최용달이가 지금 알아보니까 어디 국회의원 뒤 닦아 주고 있다 안 캅니까.”
“국회의원 누구?”
최용달. 지나가다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마 나중에 주철수와 짝짜꿍하면서 붙어먹었던 놈이었던 것 같은데.
“그건 모른답니더. 지금 여당 의원이라고는 카던데……. 아무리 캐물어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예.”
“정보의 출처는?”
빠른 시간 내에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들고 온 탓에 궁금해졌다.
“그 용달파 대가리 옆에 딱 붙어 있던 놈 하나 잡아서 족치니까 술술 불드만요.”
“음?”
용달파 보스의 수족 정도면 허접한 놈은 아니었을 텐데, 덩치와 돼지 둘이서 그놈을 족쳤다고?
“니들끼리 간 거 맞아?”
그 말에 신나서 정보를 풀어놓던 둘이 머뭇거렸다.
“그, 그게…….”
“아, 이건 비밀로 하라 카셨는데…….”
하. 이것들이.
“야.”
목소리를 깔고 부르자, 덩치와 돼지의 표정이 싹 굳었다.
그리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기 시작했다.
“라, 라세흠 부장님이랑 갔으예.”
“우, 우덜만 간다고 했는데 억지로 따라붙으셔가지고…….”
라세흠 이 인간이 진짜. 왜 자꾸 일을 키우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렇게 사람 족쳐서 알아내면, 최용달이 가만히 있겠어?”
“죄, 죄송합니다, 행님.”
“그래서, 그 최용달 부하는 어딨는데?”
덩치가 내 눈치를 보며 바닥을 가리켰다.
“묻었다고?”
“아니, 그거 말고. 기준이 행님이 델꼬 가셨지예.”
“아.”
또 한 명의 불쌍한 놈이 백기준의 컬렉션에 추가됐겠군.
“그래도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겠네. 기준이한테는 용달파 내부 정보 빠르게 캐내라 전해. 그놈 폰으로 최용달한테 고향 내려간다고 문자 보내 놓고.”
“행님은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따로 움직여야겠다.”
그냥 내 발로 직접 뛰어야겠어.
그게 제일 마음이 편하다.
재킷을 둘러 입으며 어떻게 최용달을 조져 버릴지 고민했다.
‘라 부장이 갔다면, 알아서 얼굴을 가렸을 거야.’
그렇다면 부하가 사라진 일에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최용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거고.
이렇게 되면 가장 빠르게 접근할 방법은 정해져 있다.
내가 괜히 경호업체를 만들고, 주변 상가에 명함을 싹 다 돌린 것이 아니다.
조직에 위험한 일이 생겼다면, 타인의 도움을 쉽게 거절하지 않게 된다.
씨익.
자, 그럼 용달파 사무실이나 구경하러 가 볼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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