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8
057화
복싱엔 상극인 운동은 없다.
그만큼 복싱은 전후무후하게 완벽한 격투기 중의 하나다.
링 위에서라면, 사각의 틀 안에서 구석으로 몰아 태클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여기처럼 길가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범위가 넓고 움직일 곳은 많다.
백스탭을 밟으며, 요리조리 피하고 자잘한 펀치를 날리기에 최적에 장소라는 말이다.
툭. 툭.
저 어리바리한 새끼가 지금 그걸 하고 있다.
나를 상대로 적당한 거리를 벌리면서, 자신의 사정권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스텝을 밟으며 들어와, 몸통이나 턱을 노리는 과감함을 보여줬다.
물론, 그것쯤이야 내가 다 막아 냈지만.
“야. 하나만 물어보자.”
“…….”
녀석은 대답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빈틈을 찾는다.
어깨, 허리, 머리.
한 대 맞으면, 바로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위해 쉴새없이 주먹을 날려 댔다.
난 놈의 그런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금한 걸 물었다.
“너 올림픽 출신이냐?”
“……!”
순간, 놈의 주먹이 잠시 멈칫했다.
이걸로 대답은 대신한 거 같다.
HID 선배 중에 국내 복싱 챔피언이 있어서 붙어봤는데, 내가 압살했었다.
날아오는 주먹이 뻔히 보였고, 루트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라 근접격투술의 연계기 몇 번으로 금방 제압했다.
근데, 이놈은 다르다.
주먹이 어디로 뻗어 올지 어깨를 봐야 겨우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뭣보다 빠르기가 무서울 정도다.
국내 클래스를 한참 뛰어넘은 실력.
적어도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 정도는 딴 실력이 아닐까 싶다.
“운동하던 놈이면, 계속 운동이나 하지. 왜 이런 더러운 판에 끼어들어서는…….”
무슨 연유로 나쁜 짓에 몸담은 건지 모르겠다.
뭐, 이제 슬슬 알아 가면 되지.
‘이 녀석은 전형적인 아웃복서야.’
긴 린치를 이용해 거리를 유지하고 빠르고 간결하게 싸우는 타입.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바로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스타일이다.
이런 놈하고 싸우기에 적절한 격투기가 있다.
라세흠 교관에게 치를 떨어 가며 배운 그것.
“합!”
난 상단세를 취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놈이 웃는다.
“훗. 겨우 태권도야?”
“에이. 겨우라니. 듣는 사람 섭섭하게.”
무려 ITF 실전 태권도란다.
라세흠 교관의 주특기이자, 한 방만 맞아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 드는 실전 무술이다.
내가 많이 맞아 봐서 안다.
자. 이제 너도 좀 맞자.
휙.
가볍게 뒤돌려차기부터 날려 주고.
곧이어 몸을 띄워 주먹을 뻗었다.
“……?!”
놈의 얼굴이 변한다.
뛰어서 주먹으로 내려칠 줄은 몰랐지?
ITF 태권도가 그런 거야.
변칙으로 무장된 무술이거든.
“읍!”
가드로 막았지만, 팔등에 제법 충격이 전해진 건지 몸이 뒤로 밀렸다.
체중을 실어서 내려찍는 주먹이다.
막아도 아픈 게 이거야.
슉-. 퍽!
내려찍기로 발이 내려오는 동시에 바로 옆차기를 날렸다.
놈의 당황한 눈이 정면에서 보일 정도다.
이런 변칙적인 발차기는 본 적이 없을 거다.
‘이제 시작이다.’
재밌는 건 이제 시작이다.
철권이란 게임을 해 본 사람은 알 거다.
화랑이라는 캐릭터가 공중에서 두 번 연속 발차기를 하는 에어팡이란 기술을.
퍼퍽!
복부를 향해 연달아 두 번의 킥을 날렸다.
놈이 최대한 가드를 내려 막았지만, 목 아래로 향하는 두 번째 발차기는 미처 막지 못했다.
“으윽…….”
뭘 벌써 아파해?
제대로 된 기술을 보여 주지도 않았는데.
퍼퍼퍽.
연달아 하단, 중단, 상단으로 이어지는 발차기를 펼치고, 뒤돌며 하단부를 공략했다.
정신없이 날아드는 다리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나중에 유행할 노래를 떠올리며, 발차기에 힘을 실었다.
“쌰앙-!”
발차기에 맞아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놈이 고성을 뱉었다.
“넌 뭐야? 갑자기 튀어나와서 왜 지랄이야?!”
“지랄이라……. 내가? 네가 하고 있는 게 지랄이 아니라?”
“뭔데, 남의 일에 초를 치냐고! 어?! 임유나인가 하는 그년 남친이라도 되는 거야? 뭐야?”
남친. 되고 싶지.
아주 되고 싶어.
근데, 너 말실수 한 거 같다.
“뭐? 유나 씨한테 녀언?”
이게 사람 심기를 건드리네.
타타탁. 퍼퍽. 퍼퍼퍽!
가드를 하든 말든 연달아서 주먹과 발차기를 퍼부었다.
ITF 태권도의 기술은 3,000개의 동작으로 이뤄진다.
그걸 조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연계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쏟아부은 공격에 놈의 허벅지가 좁혀진다.
이미 서 있기도 힘든 상태라는 거다.
“야. 너 누가 보낸 거냐?”
“…….”
“재벌 총수냐?”
“…….”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보낸 거구나.”
“……!”
순간, 흠칫하는 게 보였다.
복싱은 잘해도 머리는 비었구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복싱만 잘하는 놈이네.
역시,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가 맞았다.
재벌 총수의 비밀 회담이나 밀실 정치가 오갔던 풍원요정이다.
지금은 풍원한정식으로 바뀐 그곳에 뭔가가 남겨져 있다는 거였다.
“정치하는 놈이 풍원요정에서 뭔가를 했구나. 그 증거가 풍원요정에 남아 있는 거고. 그걸 찾으라고 네 뒤에 있는 정치인이란 놈이 너를 고용해서 보냈겠지. 찾아서 가지고 오라고 말이야.”
“……!!”
포커페이스 좀 유지해라.
정치인한테 큰돈 받고 일하러 왔을 텐데, 얼굴에 그렇게 다 드러나서야 되겠냐?
쯧. 저런 놈을 돈 주고 고용한 정치인이란 놈도 썩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은 아니네.
“누가 보냈어?”
“씨X.”
“욕하지 말고 누가 보냈냐고? 그것만 말해. 그리고 넌 도망가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랄하네.”
“후…….”
안 되겠다.
너 백기준이라는 친구 모르지?
내가 아는 고문 기술자 중의 최고인 놈이야.
그놈 좀 만나러 가자.
자세를 잡고 뒤돌려차기로 피니쉬를 날리려는데…….
“?!”
멀리서 상향등이 켜진 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온다.
그걸 보며, 어리바리한 놈이 씨익 웃었다.
“크크크. 이제야 오네.”
뭐야? 그새 연락한 거야?
아무래도 내가 이놈 뒤를 밟기 시작한 순간, 연락을 한 거 같다.
어쩐지 그때 핸드폰을 뒤적뒤적거렸었는데, 그게 이거였나 보다.
“어?”
근데, 뭔가 이상하다.
저 차에 이놈의 동료들이 있다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 거 아닌가?
차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것도 이 좁은 골목길에 속도도 전혀 줄이지 않고 있다.
“……!!”
저 속도로 달려들면, 그대로 부딪힐 게 뻔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리를 후들거리는 어리바리한 저놈도 매한가지다.
“젠장!”
어리바리한 놈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시속 100km가 될 정도로 달려오는 차가 너무 빠르다.
시간이 없다.
급하게 다리를 구부린 뒤, 다리의 근력을 집중해서 용수철처럼 최대한 높이 뛰었다.
퉁. 퉁.
차 지붕을 치고 트렁크에 부딪힌 후에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차에 치일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리바리는?’
몸을 추스르며 주위를 돌리자, 차에 치인 어리바리가 수십미터를 날아 벽에 곤두박질쳐져 있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저런 중상 수준이 아니다.
숨이 붙어 있으면, 다행인 정도.
“젠장!”
재빨리 고개를 틀어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확인했다.
‘!!’
번호판이 없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번호판이 없다.
이거 뭔가 크게 엮이고 있는 기분이 든다.
***
“행님. 괜찮으십니꺼?”
“안 아파예? 차에 치였담스예.”
덩치와 돼지가 병원 응급실로 와서 목청을 높였다.
그만해라.
안 그래도 덩치 큰 놈들이 목청까지 올리면 어쩌냐?
주변 사람들 다 쳐다보는 거 안 보여?
“야. 괜찮냐?”
“괜찮습니다. 단순 타박상이에요.”
“그래. 그렇게 보이네.”
은근히 걱정됐는지, 라세흠 부장도 응급실로 왔다.
나야 제때 잘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해서 별 상처는 없다.
피멍이 든 정도 밖에.
문제는……. 의뢰인을 알고 있는 어리바리한 그놈이다.
“헉! 헉!”
응급실 침대에 앉아 있자, 난쟁이가 달려왔다.
어리바리한 놈의 상태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난쟁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행님. 그 사람 지금 수술 중인데……. 일어나도 가망이 없다는데예. 뇌를 다쳐서 일어날 확률이 희박하답니더.”
“하……. 그래?”
“폐하고 신장하고 다 망가졌대예. 벽에 머리가 부딪히가 출혈도 심하고예. 영……. 힘들다카네예.”
유일하게 의뢰인의 신분을 알고 있는 놈이 불구가 돼 버렸다.
누가 의뢰한 건지, 풍원한정식에서 뭘 찾고 있었던 건지.
중요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큰일이네.’
자동차로 죽일 듯이 돌진한 놈들이다.
아니, 그냥 죽이려고 했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운전하는 놈은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으며 우리를 뭉개버리겠다는 의지를 뿜어냈었다.
이는 쉬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건 풍원한정식과 관련된 일이고, 임유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다.
조치를 취해야한다.
“난쟁아. SS건설 인수는 어떻게 돼 가고 있냐?”
“덩치하고 돼지하고 저하고 지분 나눠서 인수했고예. 한국자산관리공사한테 행님 이름으로 지분만 매입하면 됩니더.”
“언제하는데?”
“종업원 노조 눈치를 보고 있어서 시간은 좀 걸릴 거 같아예. 그래도 구두 계약은 끝냈으니께나 조만간이지 싶어예.”
SS건설 인수는 눈 앞에 다가왔고.
“‘원소주’ 런칭은?”
“그건 조금 더 있어야 할 거 같아예. 생산 라인 깔고 대량 생산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네예.”
“그래?”
‘원소주’ 런칭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난 시선을 들어서 덩치와 돼지를 번갈아 봤다.
SS건설 지분 매입을 끝냈기에, 둘에게는 시간이 있다.
“덩치야.”
“예. 행님.”
“너는 이제부터 수술 받고 있는 저 사람의 신원이랑 연관된 모든 것들을 찾아내라. 하나도 빠짐없이 관련된 모든 것들을. 가족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 친구나 군대 동기까지 전부.”
“숟가락 숫자까지 세어 올까예?”
“그 정도로 빡빡하게 조사해.”
“알겠슴니더. 돼지랑 같이 하면 되지예?”
“둘이 움직이는 게 더 빠르지. 서둘러라.”
덩치와 돼지가 눈을 마주치더니, 내게 인사를 하곤 밖으로 향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더.”
“부탁한다.”
둘도 제법 눈치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하나 하나 알려 줘야 할 텐데, 이젠 적당히 의도만 말해도 알아서 움직인다.
“난쟁아. 너는 하던 일 계속하고.”
“예. 행님.”
난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수액 바늘을 뽑아 버렸다.
그러고는 라세흠 부장을 향해 다가갔다.
“대화 좀 하시죠.”
“그래. 그러자.”
심각한 내 분위기를 안 건지, 라세흠 부장이 두말 없이 나를 따라온다.
우린 병원 안에 마련된 정원으로 향했다.
.
.
“뭐?! 죽이려고 달려들었다고?”
“예. 작정하고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하! 이 씨부레 놈이 미쳤나? 차로 밀어 버리려고 했다는 거 아냐? 완전 막가파네.”
막가파지.
그것도 정치인이 움직이는 무시무시한 막가파.
“단서는 하나뿐입니다. 뒤에 정치인이 있다는 거.”
“흠……. 이거 일이 커지네. 정치인이 직접 죽이려고 차로 밀어 버리진 않았을 테고……. 정치 깡패가 연루되어 있다는 건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라세흠 부장이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어쩌긴요. 지켜야죠. 그리고 해결해야죠.”
“……?”
“임유나 옆에 있을 겁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내고 처리할 겁니다. 뿌리를 뽑을 정도로요.”
누군지 몰라도 잘못 걸렸다.
더러운 정치인 새끼야.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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