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57
056화
“저기……. 주혁씨. 안 가세요?”
“아…….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시음 요청을 해 놨는데, 그냥 갈 순 없죠. 손님들 반응도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제가 직접 알아보고 나중에 정리해서 드리면 되는데…….”
내가 풍원한정식 카운터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임유나는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핑계는 좋게 댔다.
‘원소주’를 서비스 주류로 손님들 상에 내보내니, 그 반응을 보겠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임유나의 말처럼 손님들의 반응을 취합해 나한테 보내 주면 끝이지만…….
‘저 새끼가 영 거슬려.’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음식 카트를 끌고 있는 남자가 눈에 밟힌다.
“저 직원은 언제 고용한 거죠?”
“한 2주 정도 됐어요. 서빙 직원 모집하는데 찾아왔더라고요.”
“……일을 잘 못 하는 거 같은데. 채용하신 이유가……?”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생계가 힘들다고 하고, 장애도 있는 거 같고. 뭐……. 그런 이유로 뽑은 거죠.”
카운터를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다.
그녀의 측은지심이 움직여서 뽑은 거다.
‘참……. 생긴 거랑, 행동이랑 달라.’
겉으로는 비록 차가울 정도로 냉랭한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그녀였다.
감추려고 하고, 강해 보이려고 하지만, 내 눈엔 보였다.
누군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이.
‘근데, 대상이 문제지.’
저 어리바리한 새끼는 임유나가 측은지심을 부릴 놈이 아니다.
계속 지켜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어수룩하게 걷는 모습은 건들거리는 걸음을 애써 숨기는 거고.
틱 장애처럼 눈을 깜빡이며 말하는 건, 머리를 하도 많이 맞아서 말투가 이상해진 거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실수는 원래 조심성이 없는 거다.
그건 반대로 말해서 조심해서 살 필요가 없는 놈이었다는 거지.
‘왜 유나 씨한테 들러 붙었을까?’
임유나의 인생이 기고 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요정으로 운영되던 풍원요정을 풍원한정식으로 바꿔서 강북 최고의 한정식집으로 발돋움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마찰도 많고 꼬이는 날파리들도 많았다.
풍원요정을 먹으려고 했던 깡패 무리도 있었고, 여사장 혼자라고 스토킹하는 인간도 있었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 되어 버린 거다.
‘두 문제는 내가 해결했고.’
저런 날파리가 꼬인 거면,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데…….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아버지다.
풍원요정을 운영했던 그녀의 아버지.
요정은 말이 좋아서 전통 한식 식당이지, 유흥주점에 가깝다.
옛날에는 거물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들이 모임 장소로 쓰일 정도로 필수적인 곳이었다.
그것 때문에 저런 파리가 붙은 건가?
정치인의 비리나 총수의 흑역사가 풍원한정식에 남아 있을까 봐?
아니면, 밀실 정치의 증거가 여기 보관되어 있는 건가?
‘이게 제일 가능성이 있긴 해.’
임유나에게 꼬인 파리는 털어 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녀의 아버지가 풍원요정이었던 이곳에 뭔가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이런 추측이 가장 신빙성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본 몇몇 사건 때문이다.
밀실 정치와 정관계 유착은 보통 요정에서 이뤄진다.
한복 입은 젊은 여자들 옆에 끼고 술 한잔 마시며, 온갖 추악한 일들을 꾸민 거지.
그걸 기록하고 보관한 사례들이 간혹 있었다.
요정에서 일했던 여자가 제보한 일도 있었고, 요정 사장이 세무 조사가 들어오자 녹음 파일로 협박한 일도 있었다.
‘풍원한정식 안에 뭔가 있을 거야.’
그리고 저 깡패 새끼는 그걸 노리고 여기에 잠입한 거다.
내가 이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주혁 씨.”
“……네?”
“아까부터 멍하게 뭐 하고 계세요?”
“아……. 하하. 유나 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었나 보네요.”
“예?”
“남자란 동물이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거든요. 제가 그랬네요. 하하.”
“…….”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그러자, 임유나가 고개를 휙하고 돌리며 붉어지는 얼굴을 숨겼다.
‘또 홍조증인가?’
자주 얼굴이 붉어지네.
나중에 병원이라도 알아봐야지.
홍조증 잘 고치는 곳으로.
.
.
“어휴. 술이 좋네요. 고소하고 단내도 나고 입에 들어가자마자 호로록하면서 넘어갑니다.”
마지막 손님이 계산하고 나가며, ‘원소주’에 대한 평을 남겼다.
“이거 22도 맞죠? 전혀 아닌 거 같아요. 어지간한 저도수 소주보다 훨씬 부드럽습니다.”
“입맛에 맞으시니 다행이네요.”
“이게 부해양조에서 나온다는 ‘원소주’ 맞죠?”
“네. 맞습니다. 아직 출시 전인데, 풍원한정식 손님들을 위해서 특별히 가져왔습니다.”
“오! 그래요?”
손님의 표정이 밝아진다.
“풍원한정식이 좋긴 좋네요. 허허. 이런 술도 먼저 마셔 볼 수 있고요. 여기 자주 와야겠어요.”
손님이 카드를 받아 가며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임유나도 기분이 좋은지 감사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도 정성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유. 저야말로 잘 먹고 갑니다. 허허.”
중년의 손님 떠나고, 종업원들이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임유나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원소주 반응이 좋네요. 프리미엄 소주라는 타이틀에 맞게 평가도 후하고요.”
“…….”
“응? 왜 말이 없으세요? 뭐 잘못된 거라도?”
“아! 아닙니다.”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미소 지으면, 심장이 떨리잖아.
나대지 마라 심장아.
그녀는 내게 관심이 없다.
난 천천히 임유나에게 호감을 살 거다.
나를 조급하게 만들지 말아라. 심장아.
“다들 좋게 평가해 주네요.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히겠습니다.”
“잘 됐어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아! 내일도 5박스 정도 더 가지고 올게요. 손님들한테 무료로 나눠 주시고 반응이 어떤지 전화 한 통 부탁드려요.”
“물론이죠.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좋죠. 남들은 못 먹는 프리미엄 소주를 먼저 마실 수 있게 해 줘서 손님들 반응이 좋으니까요.”
그럼, 다섯 박스로는 부족하겠네.
“유나 씨한테 도움 되는 거면……. 한 달 정도 계속 제공하겠습니다. 무료로 마음 껏 나눠 주십시오.”
“예? 무리하시는 거 아니예요?”
“하하.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대주주예요. 원소주 기획도 제가 했고요. 달라고 하면 바로바로 줍니다.”
부해양조 부 사장한테 전화하면, 원소주 공급이야 문제 없지.
“그래도 받기만 하면, 좀 그런데…….”
“부담 가지지 마세요. 부담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시장 조사 겸 풍원한정식의 단골 확보를 위해 드리는 거니까요. 마음 편하게 받으세요.”
“…….”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럼, 감사의 의미로 제가 저녁 한 번 살까요?”
“예?”
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여기 먹을 게 천진데?”
“아…….”
내가 어지간한 고급 식당은 다 가 봤는데, 여기만큼 맛있는 곳은 없었다.
굳이 왜 멀리 간단 말인가?
그것도 돈 주고 왜 사 먹지?
“그럼, 와인이라도……. 아. 그것도 저번에 마셨군요.”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나 보군.
그렇다면, 좋은 게 하나 있지.
“심야영화 보실래요?”
“네?”
“조만간 ‘킹의 남자’라는 작품이 개봉하거든요. 그거 같이 보러 가요.”
“영화……. 네! 좋아요.”
내가 투자한 ‘킹의 남자’가 수일 내로 개봉한다.
투자만 하고 작품을 안 볼 수는 없지.
그리고 내가 투자해서 작품의 내용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 봐야 한다.
‘응? 근데, 왜 또 얼굴이 빨게져?’
홍조증이 심한가보다.
아니면, 영화를 싫어하는 건가?
이런 의문에 다시 되물으려고 할 때였다.
“사장님. 정리 마쳤어요. 저희 먼저 가 볼게요.”
“네. 수고했어요. 들어가세요.”
직원들이 하나둘 사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리바리한 깡패 새끼는 마지막으로 탈의실에서 나와 꾸벅 인사했다.
“저, 저도 가 보겠슴니다.”
“네. 수고했어요. 들어가세요.”
그놈이 천천히 밖으로 나가고, 나도 외투를 껴입었다.
“저도 이만 가야겠네요.”
“네? 바로 가신다고요? 그냥……. 가시는 거예요?”
“하하. 내일 또 오겠습니다. 원소주 잔뜩 실어서요.”
“저……. 주혁 씨…….”
“예?”
“아, 아니에요.”
뭐라 말할 게 있는 거 같은데, 아쉽게도 지금은 들어줄 수가 없다.
저놈 뒤를 쫓아야 한다.
왜 풍원한정식에 잠입한 건지, 무슨 의도를 가진 건지, 확실히 알아내야 한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급하게 어리바리한 놈의 뒤를 따라나섰다.
임유나가 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걸 물어볼 시간은 없다.
.
.
“야! 어리바리.”
“……?”
한적한 골목.
걸어가던 놈의 뒤통수에 대고 어리바리한 놈을 불렀다.
‘확실히 한정식 집을 나오니까 다르네.’
건들건들하게 걸으며, 어깨가 왔다 갔다 한다.
전형적인 깡패거나, 운동 좀 한 놈이다.
“저……. 불렀슴까?”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
“왜……?”
“왜인지는 네가 알고 있을 거 같은데.”
“……?”
그렇게 말하며 놈의 앞에 섰고, 동시에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휙-.
백스텝을 밟으며, 자연스럽게 피한다.
맞으라고 때린 건데, 이걸 피하네.
“이! 이게 뭐 하는 검니까?”
“너는 뭐 하는 새끼냐?”
“예?”
“뭐 하는 새낀데, 풍원한정식에 들어갔어? 이 깡패 새끼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오리발 내밀지 마.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지 알겠다.
두두둑.
난 손을 풀며 말했다.
“요즘 내가 배운 게 있는데, 깡패 놈들은 맞아야 실토를 하더라고. 자. 맞고 시작하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먹을 뻗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진심이 실린 주먹이다.
빠르고 날카로우며, 상대의 몸을 향해 가는 주먹.
스르륵. 스르륵.
이야. 이걸 흘려 버리네.
“너……. 복싱한 놈이구나.”
어리바리한 놈은 슬립이라는 기술을 보여 줬다.
몸통을 살짝 회전시켜서 펀치의 대미지가 없도록 흘려 버리는 기술.
복싱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고, 저놈처럼 자연스럽게 구현하려면 적어도 메달급은 되어야 가능한 기술이다.
“나한테 왜 이러는 검니까?”
“그 이유는 네가 안다니까. 내가 아는 게 아니라. 왜 풍원한정식에 들어갔냐? 임유나 사장한테 접근한 이유는 뭐고?”
“아, 아무 이유 없슴니다. 그냥, 취업한 검니다.”
“그래? 그렇구나. 아무 이유가 없구나.”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보자.
난 곧바로 근접격투술을 선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주먹과 팔꿈치를 날리고, 니킥과 올려차기를 연달아 펼쳤다.
휙. 휙. 하며 다 피해 낸다.
피할 수 없는 주먹은 완벽한 가드로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
“하! 이래도 아무 이유가 없다?”
“……?”
“내가 국내 챔피언도 이 기술로 넘어트렸어. 근데, 그걸 다 막아 내고 피하는 놈이 아무 이유이 한정식집에서 서빙이나 하고 있다고? 너 같으면, 믿겠냐?”
“…….”
놈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좀 더 자극할 필요가 있겠네.
난 놈의 머리카락을 잡고 무릎차기를 선사했다.
이게 은근 기분 나쁘다.
머리를 잡히는 것도 기분 나쁜데, 무릎차기를 막아야 해서 벗어날 수도 없다.
계속 막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 머리카락을 빠질 만큼 아프니, 기분이 아주 아주 더러워진다.
“이 씨X새끼야!”
이렇게 본색을 드러낼 정도로.
머리카락 한 움큼을 헌납하고 거리를 벌린 놈이 본격적인 복싱 자세를 잡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서늘한 목소리를 뱉었다.
“눈치챘으면, 그냥 가지. 왜 걸리적거리고 지랄이야.”
“오호. 이제 말이 통하네.”
역시, 깡패들은 쳐맞아야 말이 통해요.
“너……. 여기서 죽는다.”
“훗. 해 봐. 할 수 있으면.”
오랜만에 나도 땀 좀 흘려야겠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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