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70
069화
임유나와 함께 극장을 나서며 대화를 나눴다.
“주혁 씨. 연극 어땠어요?”
“음, 재밌던데요?”
“그쵸? 주인공이 결국에 범인 잡을 때 통쾌하더라고요.”
“그러게요.”
“그리고 극장이 작아서 막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요. 시간 되면 다음에도 또 보러 와요.”
“저야 좋죠.”
임유나가 신나게 말하다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혹시 주혁 씨는 어떤 게 제일 좋았어요?”
“어, 그…… 주인공. 주인공이 목소리가 좋으시던데요?”
“맞아요. 극중에서는 계속 상기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커틀콜 때 목소리 들으니까 엄청 나긋나긋하시던데요? 깜짝 놀랐어요.”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연극 중간에 들어온 탓에 내용도 제대로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임유나가 만족스럽게 관람한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하나도 집중 안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임유나가 허리를 쭉 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으, 오래 앉아 있으니까 뻐근하네요. 너무 집중했나 봐요.”
“스트레칭은 현대인에게 필수죠. 저도 매일 운동하니까 병 같은 게 안 걸리더라고요.”
“운동 좋네요. 나중에 시간 되면 운동 좀 알려 줘요.”
“저야 좋습니다.”
임유나는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지 평소보다 기분이 업 되어 있었다.
내가 그런 임유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고 있자, 임유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너무 혼자서 떠들었나요?”
“하하. 떠들다뇨. 그만큼 재밌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가요……. 그럼 혹시 저녁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음.”
조금 고민되네.
원래 여유가 좀 생기면 임유나와 저녁 식사도 같이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았다.
“저, 유나 씨.”
“네?”
“제가 일이 생겨서 식사는 같이 못 할 것 같습니다.”
“아…….”
임유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선물한 꽃이 효과가 있었나?
“혹시 오늘 가게로 출근하세요?”
“아뇨. 오늘 하루는 시간 비웠죠.”
“아이고. 이거 죄송하네요. 바로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음, 아마 그럴 거 같네요.”
임유나는 오랜만의 휴가가 끝나는 게 아쉬웠는지 나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 절대 붙잡거나 그러려고 묻는 건 아니에요.”
조금은 붙잡아 줘도 되는데 말이야.
“그냥 뭐, 경호 요청이 들어와서요.”
“경호요? 저한테 해 주신 것처럼 개인 경호인가요?”
“아뇨. 급하게 검토할 일이 생겨서…….”
임유나는 왜인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저녁은 집에서 먹어야겠네요.”
“차로 가시죠.”
“데려다주시게요?”
“그럼요.”
당연한 말씀을.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봐?
탁.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운전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맸다.
옆을 슥 보니 임유나는 아직 벨트를 안 맨 상태였다.
지익.
“아, 감사해요.”
안전벨트를 내가 매 주자, 임유나는 그제야 깜빡했다는 듯이 말했다.
부잣집 딸내미라 남이 매 주는 게 익숙해서 자꾸 까먹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임유나의 집으로 몰았다.
‘아쉽네.’
원래 목적은 박준규를 붙잡아 정보를 캐는 거였지만, 막상 임유나와 헤어질 때가 되니 아쉬웠다.
박준규는 나중에 잡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임유나가 나를 불렀다.
“주혁 씨.”
“네?”
“오늘 재밌었어요.”
“아,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네.
임유나에게 집중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막상 재미없었다고 했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 같다.
“그리고 아까는 제대로 말 못 했는데…… 꽃 선물,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비싼 꽃도 아니었는데요 뭐. 저도 별거 아닌 선물에 유나 씨가 좋아해 주시니까 기분 좋네요.”
“그…… 주혁 씨.”
“네?”
내가 힐끔 쳐다보자, 임유나는 우물거리기만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벌써 도착했네요.”
“어, 그렇네요.”
임유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궁금하긴 한데, 캐물어도 말할 것 같진 않아서 일단 차를 아파트 단지 안으로 끌고 갔다.
끼익.
“도착했습니다.”
“고마워요. 태워다 주셔서.”
“고맙긴요. 제가 당연히 모셔다드려야죠.”
“그래도요.”
탁.
나도 임유나를 배웅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런 나를 임유나가 묘한 목소리로 불렀다.
“주혁 씨.”
“네?”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묘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날도 슬슬 어두컴컴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나에게 임유나가 말했다.
“저, 저번부터 말 못 한 게 있어요.”
“어떤 걸……?”
임유나의 입술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 그. 저…….”
한 마디가 튀어나오려는 순간.
따르릉-.
“엇.”……
울리는 벨소리에 분위기가 확 풀어졌다.
“죄송합니다. 유나 씨. 잠깐…….”
“바, 받으세요. 괜찮으니까.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무슨 하실 말씀 있던 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었어요. 잘 가요!”
나는 아파트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는 임유나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차에 탔다.
유나 씨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뭔가 찝찝했다.
중요한 얘기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임유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얼굴에 두 손을 얹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상황에서 말을 꺼냈을까.
분위기 좋은 바도 아니고, 골목의 가로등 아래도 아닌데…….
“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니…….”
임유나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으으……!”
유리문을 통해 바깥을 슬쩍 보니, 이주혁은 차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뭘 하고 다니길래 항상 저렇게 바쁜 걸까.
뭐 하던 사람이길래 그렇게 잘 싸우는 걸까?
새삼 이주혁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임유나는 이주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잘생겼네.”
생기기도 잘생겼고, 나이도 어리면서 회사 대표에다가, 몸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남자.
객관적으로 봐도 조건이 너무 좋았다.
아마 여자들이 줄을 서겠지.
여자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게 흠이긴 하지만 말이다.
‘……진짜 눈치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턱.
임유나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호감 표시하는 거…… 쉽지 않네요.”
***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주혁아. 말한 대로 했다. 네 이름으로 미팅 잡아 놨어. 내일 14시.
“고생하셨어요, 부장님.”
-밥이나 한 끼 사라. 풍원한정식에서.
“……순대국밥은 어때요?”
-물려. 새꺄. 내일 혼자 가기 좀 그러면 연락해라. 안 그래도 할 일 없어서 심심하니까.
대체 이 인간은 언제쯤 평화라는 걸 즐길 수 있을까.
부모님 가게에서 알바는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운전석에 기대앉아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다.
“이걸 어떻게 조질까…….”
몇 시간 전.
나는 동아극장 사장실을 향했다.
복도 정면에 사장실이 바로 보이길래, 발로 차고 들어갔다.
쾅!
“음?”
그런데 사장은 자리를 비운 건지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컴퓨터 한 대와 서류들이 보였고, 책장에는 알 수 없는 사주팔자 책들이 꽂혀 있었다.
나는 모니터로 다가가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이 안에 명단이 있어야 일이 편해질 텐데, 과연 있을까?
컴퓨터 부팅이 끝나자 익숙한 초록색 언덕 위에 폴더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회계장부, 극단 일정……. 이런 것들 맨 밑에, ‘명단’ 딱 두 글자가 적힌 파일이 있었다.
이거다 싶어 폴더를 클릭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그러자 ‘연’, ‘검’, ‘경’ 같이 한 글자씩 적힌 파일들이 나왔다.
나는 파일을 순서대로 열어봤다.
“빙고.”
‘연’은 연예인, ‘검’과 ‘경’은 각각 검찰과 경찰이었다.
[이주용/배우/37회] [유미애/탤런트/16회] [박준화/고검 차장/58회]“미친놈들.”
명단에는 이름, 직업에 투약 횟수까지. 아주 꼼꼼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연예인에, 검사에, 별의별 인간들이 다 여길 찾아왔었네.
명단을 눈으로 훑던 중 사장실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컴퓨터 화면을 끄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그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하, X발. 사람 귀찮게 하네.”
중년 정도의 남자 목소리였다.
극장주는 이주혁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자에 털썩 앉으며 투덜댔다.
“병신 같은 놈들. 그냥 돈이나 내고 얌전히 놀다 가면 되지, 왜 감 놔라. 배 놔라. 지랄 염병을…… 음?”
우웅-.
극장주가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세요? 어. 그래?”
끼익.
뒤로 기대앉은 극장주가 피곤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반한 여자가 연극 보러 왔다고? 어. 그럼 잘 꼬셔 봐 봐. 좋은 서비스 있다고. 그래. 그런 애들이 한번 빠지면 써먹을 데가 많…….”
나는 책상 밑에서 극장주의 구둣발을 툭툭 쳤다.
“야.”
“음? 어, 뭐, 뭐야! 이 X발……!”
나는 책상 밑에서 빠져나와 당황한 극장주와 마주했다.
“이 개새끼야. 좀 맞자.”
“뭐, 이런 썅!”
극장주는 다급하게 몸을 돌려 창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있을 내가 아니지.
턱.
“억!”
나는 뒤에서 극장주의 바지춤을 잡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패대기쳤다.
훅, 쾅!
“끄억!”
일단 분이 풀릴 때까지 좀 패야겠다.
퍽! 퍽! 퍽!
“악, 악! 아악!”
“새끼가, 새끼가! 어딜 감히!”
“자, 잠깐……!”
“응? 잠깐 뭐? 할 말 있어?”
“왜, 왜 이러시는 건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빠악-!
가슴팍을 걷어차자, 뒤로 벌렁 넘어간 녀석이 켁켁 댔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다시 켜서 파일을 다시 뒤졌다.
그리고 눈에 띈 ‘재’라는 파일을 열었다.
[이창호/이훈건설 삼남/47회] [윤택수/윤가식품 장손/64회] [변석천/동백물산 차남/39회]그러자 굴지의 유명 기업 이름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장남에, 차남에, 손자에…… 아주 그냥 삼 형제가 약쟁이인 기업도 있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던 내 눈에 한 이름이 들어왔다.
‘이놈은?’
***
다음 날,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충청흥신소 관리를 맡긴 최용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너머로 피곤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여보세요.
“형님. 잘 지내십니까.”
내가 실실대며 묻자 최용달이 발끈했다.
-아침부터 지랄 그만하고. 이번엔 또 뭔데.
“많이 바쁜가 보네.”
-그래. 죽을 거 같다. 규모도 규모지만 인력들 관리가 제일 힘들어. 충청식구파에 있던 애들 설득해서 남기고, 사람들도 충원하고……. 돈이라도 많이 안 받았으면 진작 때려치웠다.
좀 빡세긴 할 거다.
충청도는 물론이고 거의 전국을 웃도는 범위의 정보들을 모으고 관리해야 하니까.
대신 그만큼 페이는 세게 쳐 주고 있다.
“최철호 의원 쪽은. 어때?”
-어떻긴. 녹음기 갖다주니까 좋아 죽던데.
“다른 소식은 없고?”
-요새도 돈 받아먹으러 다니는 건 똑같지. 돈 쓸데가 뭐가 그렇게 많은지.
“누구 만나는지는 모르고?”
최용달은 서류를 뒤지는지 부스럭대며 말했다.
-어디 보자……. 잠깐만. 그건 정리해서 보내 줄게.
“오케이. 그건 문자로 보내 놓고. 지금 흥신소 애들 몇 명 정도 움직일 수 있어?”
-뭔데, 급해? 지금 당장은 열 명 조금 넘게 움직일 수 있는데.
나는 팩시밀리로 다가가 흥신소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프린트한 ‘재’ 명단을 최용달에게 전송했다.
“팩스 확인해 봐.”
-어. 음? 이게 뭔데.
“돈줄.”
-……투약 횟수? 또 무슨 짓을 꾸민 거야?
꾸미다니, 서운하네.
“이 명단에 아는 이름 있어?”
-몇 명은 들어본 것 같은데. 내가 뒤를 봐준 데도 몇 개 있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흥신소 애들 풀어서 명함 하나씩 돌려. 여기 있는 회사들 싹 다.”
-음?
“그리고 이 약쟁이 자식들을 둔 부모한테 전해.”
-뭐라고.
씨익.
“돈 내놓으라고.”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