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71
070화
고급스러운 한 중국집.
테이블 위에 온갖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하나씩 놓였다.
“이야. 주혁아, 잘 먹을게.”
“맛있게 먹어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까.”
라세흠 부장이 탁자 위에 놓인 음식들을 상기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짬뽕, 탕수육부터 시작해서 팔보채, 유산슬, 유린기…….
뭐 중국집에서 비싼 것들은 이것저것 다 시켜 줬다.
그래도 앞으로 고생할 텐데, 맛있는 것들 먹여 놔야지.
“먹자, 먹자.”
“그럽시다.”
젓가락을 비비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떠 있었다.
그동안 소식도 없더니, 무슨 일로 전화한 걸까.
“부장님. 잠깐 전화 좀.”
“어, 그래. 먼저 먹고 있을게.”
나는 가게 바깥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어. 고광목 씨. 오랜만이네?”
-그래, 이주혁이.
서울광목파의 고광목.
몇 달 전. 미추리파 밑으로 들어가 조직을 흡수하고, 한강 위쪽을 통합해 주철수의 강남파와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 보냈던 녀석이다.
고민하는 고광목에게 마음이 결정되면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이제야 연락이 온 상황.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나?
“왜 이제 연락해? 까먹을 뻔했네.”
-일이 많았다.
“무슨 일?”
-미추리파 먹었다.
“뭐?”
연락이 오길래 이제 결심한 줄 알았는데, 이미 미추리파를 먹었다니?
-신덕수는 이제 걷지도 못할 거고, 약아빠진 놈이라 수하들도 생각보다 쉽게 흡수했다.
“빠르네, 빨라.”
확실히 십 년이 넘게 조직을 이끌던 놈이라 그런가.
일 처리가 빠른 게 마음에 들었다.
-이제 뭘 하면 되나.
“음.”
뭘 하면 되냐라.
원래는 더 이후에 써먹을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열심히 면을 흡입하고 있는 라세흠 부장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부장이 입에 음식을 가득 담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고광목.”
-듣고 있다.
“강남파 다리 한쪽을 날려 버릴 생각인데, 도울 생각 있나?”
내 말에 고광목이 낮게 웃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케이. 다시 연락줄 테니 대기해.”
-알았다. 이 고광목이 드디어 서울을…….
뚝.
전화를 끊고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라세흠 부장이 먹다 말고 나를 보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뇨. 드세요.”
원래는 라세흠 부장이랑 직원들을 시키려고 했는데…… 타이밍 좋게 고광목이 튀어나왔다.
어차피 정리해야 될 놈이니, 이참에 알차게 써먹어야겠어.
내가 미소를 짓자, 라세흠 부장이 음식이 걸렸는지 콜록거렸다.
“컥, 어우.”
“갑자기 왜 그래요?”
“그렇게 음흉하게 웃지 마라. 체할 뻔했어. 살인 미소다. 살인 미소.”
“참나. 거울이나 보고 말해요. 부장님 얼굴만 보면 여자들이 슬슬 피하는 거 알아요?”
“……아픈 곳 찌르지 마라.”
라세흠 부장은 입을 꾹 다물고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기 시작했다.
***
사무실 책상에 두 발을 올려놓고 졸고 있던 남자가 갑작스러운 소음에 화들짝 놀라며 깼다.
쾅!
“변석천 씨. 안에 있습니꺼.”
‘재’ 명단에 적혀 있던 동백물산 차남, 변석천은 갑자기 들어온 남자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구야?”
“오, 있네.”
“있네? 이런 씨…….”
화를 내려던 변석천은 잠이 깨며 보이는 남자의 덩치에 멈칫했다.
190은 되어 보이는 키에 깡패 같은 얼굴과 체형.
변석천은 턱 끝까지 차오른 쌍욕을 잠깐 집어넣고 물었다.
“누구신데 갑자기 들어오셨어?”
“아. 지 소개를 잊었네예.”
덩치 큰 남자는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다.
“SA해결소에서 일하는 덩치……가 아이고, 김석호라고 합니더.”
SA해결소. 충청흥신소를 먹은 이주혁이 이름을 바꾸라고 하길래 김석호가 지은 거다.
명함도 김석호 자신이 흥신소 직원에게 부탁해 찍어 냈다.
김석호는 흐뭇한 표정으로 변석천이 받아든 명함을 바라봤다.
변석천은 손에 든 명함을 확인하더니,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김석호는 그걸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니, 이 X벌 놈이?’
명함을 준 사람이 별거 없는 놈이란 걸 안 변석천이 거만한 말투로 손짓했다.
“해결소? 참나. 일없으니까 나가.”
“뭐?”
김석호는 변석천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이보쇼. 예의를 갖춰서 명함까지 줬으면 그짝도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 아뇨?”
“하, 예의는 지랄.”
“아직 내가 왜 찾아왔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김석호가 품에서 대강 접힌 서류 하나를 꺼내 변석천에게 보여 줬다.
그걸 본 변석천이 코웃음을 쳤다.
“뭐야, 이건? 보험 팔이야?”
김석호도 똑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아극장서 주사 맞은 것들 명단이다. 니 이름 함 찾아봐라, 이 새끼야.”
“뭐?”
변석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놈이 동아극장은 어떻게 아는 것이며, 저 명단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걸까.
김석호의 말이 이어졌다.
“느그 부모님한테 연락해. 아니면 할배한테나.”
“X발. 너 뭐야?”
“허이고. 이 새끼 아직 정신을 몬 차맀나 보네.”
김석호가 난데없이 변석천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악!”
“야 이 망나니 쉐끼야. 느그 애미애비 부르라고.”
변석천의 사무실 바깥에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달려왔지만, 이미 김석호가 문을 잠궈 놓은 상태였다.
그걸 확인한 변석천이 악에 받친 눈으로 소리쳤다.
“이 개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 말에 김석호가 표정을 무섭게 굳히며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어이. 동백물산 둘째 아들 변석천이.”
“…….”
“내가, X발 그것도 모르고 이러는 것 같나.”
변석천은 위축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왜…….”
턱.
김석호가 변석천의 뒷덜미를 잡고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엄마 부르라꼬, 이 새끼야.”
***
탁.
나는 차에서 내린 뒤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봤다.
[서울광목파]옛날 사무실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아무래도 미추리파 보스 신덕수가 돈을 꽤 긁어모았나 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엘리베이터에서 덩치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리고 다가와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뭐야, 이거.”
“형님이 직접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가시죠.”
나는 얼떨결에 덩치들한테 둘러싸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들이 안에 자리가 없는데도 계속 들어오려고 했다.
“아, 내려. 내려! 이 새끼들아. 내려올 때도 끼어서 와 놓고 전부 다시 타면 어떡해!”
덩치들의 얼빵한 얼굴을 퍽퍽 때리며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쫓아냈다.
네 명만 남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나는 눈을 돌려 깡패들의 위치를 시야에 담았다.
내가 중간에 있고, 이놈들이 구석에 한 명씩 서 있는 상황.
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광목이가 시키드나.”
“예?”
“아니다.”
“예.”
그렇게 침묵에 잠긴 엘리베이터가 고광목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말씀 잘 나누십쇼!”
“어.”
깡패들을 뒤로하고 정면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웃통을 깐 채 바닥에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고광목이 보였다.
“왔나.”
“뭐야. 왜 이러고 있어?”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일어난 고광목이 근육을 꿈틀대며 웃었다.
“매일 단련은 필수지.”
왜인지 우리 직원들이랑 잘 맞을 것 같은데.
고광목은 나를 보더니 은근하게 말을 꺼냈다.
“혹시 그 사람은 어떤 운동을 하는지 알려 줄 수 있나?”
“음? 누구.”
“마종석 이사를 제꼈던…….”
“아. 라세흠 부장?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한 번 자리 마련해 줄게.”
고광목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나는 의자 하나를 빼 자리에 앉았다.
“마실 건 없나?”
“음. 내가 커피를 끊어서. 생과일주스는 줄 수 있다.”
“오. 갈아 주는 건가?”
고광목이 커다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씩 웃었다.
“수제지.”
“에이 씨. 너 많이 처먹어라.”
“음.”
고광목은 셔츠를 대충 걸치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강남파는 어떻게 칠 생각이냐.”
“강남파가 약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건 알지?”
내 말에 고광목이 이를 갈았다.
“당연하지. 그놈의 약 때문에 서울광목파가 한번 흩어졌는데.”
“널 믿고 따르던 동생도 배신하고 말이지.”
“그래. 박태구 그 새끼는 내 손으로 잡을 거다.”
나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읽어 봐.”
“음?”
고광목은 봉투 안에서 서류를 꺼내 펼쳤다.
“이게 뭔데. 강남파…… 마약 사업 구획?”
“강남파가 약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사업체들의 위치를 정리한 거다.”
“뭐?”
삭. 삭.
“이 개새끼들. 어디서 돈이 자꾸 나오나 했더니. 음? 잠깐. 이거…… 다 주소지가 우리 구역 안인데.”
“일부러 모아 놨지.”
슬쩍 웃은 고광목이 웃었다.
“이것들 다 밀어버리면 되나?”
나도 마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전히 밀어 버려.”
“크흐흐.”
고광목이 두꺼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주철수, 이 개새끼한테 드디어 복수할 수 있겠구만. 이게 내 역할의 다는 아니겠지?”
나는 흥분한 고광목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 일부터. 당연히 끝이 아니지. 나중에 다시 연락할 거야. 중간중간 상황 알려 주고.”
“알았다.”
고광목이 머뭇거리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을 턱 붙잡았다.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 솔직히 처음에는 널 믿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믿어도 될 것 같군.”
뜨거운 포옹을 하려고 하길래, 나는 몸을 슥 뺐다.
어딜 땀 잔뜩 흘린 남자가 포옹을 시도해?
나는 대충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가 보지.”
“그래. 연락하겠다.”
그래. 날 믿고 따라라.
어차피 너는 주철수와 공멸하는 역할이니까.
나는 덩치들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슬슬 시간이 됐나.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3 : 24]어느새 라세흠 부장이 미팅을 잡아 놓은 16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이명학입니다. 오늘 4시에 만나기로 하신 분이죠? 또 제가 또 돈 필요한 건 어떻게 아시고 이렇게 연락을 주셨대 ㅋㅋㅋ 뭐 어쨌든 얼른 와요 비즈니스 얘기는 짧게 끝내고 놀러나 갑시다 ㅋㅋㅋㅋㅋ 제가 물 좋은 데로 화끈하게 모시겠습니다~]나는 핸드폰을 품 안에 넣고 핸들을 잡았다.
헛웃음만 나오는 문자였다.
“허.”
아무래도 화끈한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화끈하게 조져 줘야겠네.
이명학. 내가 명단에서 봤던 망나니 중 가장 유명한 놈이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자기 차를 소형차가 추월했다고 거기 탄 사람들을 폭행한 놈이다.
피해자들은 뇌출혈이 생길 정도로 다쳤지만, 거액의 합의금 탓인지 집행유예로 끝났었다.
그리고 마약으로 몇 번 걸렸을 때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아주 미친놈이지.’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서 자길 붙잡던 경찰관을 차 문에 매달고 질주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한 것이다.
결국 그 경찰관은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고, 결국 이놈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런 망나니 새끼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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