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75
074화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송태석 팀장의 책상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뭐야…….”
요새 피곤했던 탓에 잠깐 눈 좀 붙이려는데, 갑자기 온 전화 탓에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에이 X발……. 여보세요?”
입에 붙어 버린 욕을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 30대 정도의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마약수사팀 송태석 팀장님 맞으시죠?
“아, 예. 저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우리 경호업체에서 업무 중 마약을 적발해서요.
“예?”
-강남클럽, 유앤약국, 동아극장. 뭐 여러 곳에서 나오길래 저희 측에서 모아 놨거든요?
송태석 팀장은 느낌이 왔다.
이 새끼들 때문에 작전이 물거품이 된 거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물었다.
“혹시, 성함과 회사 내 직책이 어떻게 되십니까.”
-영업이사 이현수입니다.
이현수. 사발의 가짜 신분이었다.
“예. 이현수 이사님. 혹시 잠깐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음……. 제가 근처로 가겠습니다. 서 옆에 카페 있죠? 2시까지 거기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나와 주십시오.”
그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송태석 팀장은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빠르게 설명했다.
“다른 의도로 한 말은 아닙니다. 제가 긴밀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가 뚝 끊기고, 송태석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X발. 이게 위에 보고되면 큰일 난다.’
이대로 조서를 작성하고 사건이 접수되면, 송태석 팀장은 작전도 실패하고 실적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럼 진짜 X되는 거다.
진급은 개뿔, 좌천되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그래서 송태석 팀장은 이현수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경찰 실적을……. 안 되면 내 실적이라도 챙겨야 모가지 보존할 수 있다.’
송태석 팀장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겉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송태석 팀장은 카페 앞에 도착했다.
유리창 안을 슬쩍 보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크흠. 아, 아.”
목을 푼 송태석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로 다가갔다.
알바생이 하루에 세 번씩은 들리는 송태석 팀장을 알아보고 말했다.
“또 오셨네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빼고. 맞으시죠?”
“예.”
지폐 한 장을 건넨 송태석 팀장은 걸음을 옮겨 창 바깥에서 봤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아까 들었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끽해 봤자 그의 외모는 20대 중반도 안 됐을 것 같은 청년이었다.
“저, 혹시 이현수 이사님?”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송태석 팀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사님?”
송태석 팀장이 다시 한번 부르자, 그제야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송태석 팀장님. SA시큐리티 사장, 이주혁입니다.”
“…….”
송태석 팀장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X발. 갑자기 사장? 이사는 어디 가고?’
이사 정도면 몰라도, 갑자기 사장이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건지.
송태석 팀장은 당황한 감정을 숨기며 손을 맞잡았다.
“하하. 이사님한테 연락받으셨나 봅니다.”
“그렇죠. 우리 사발 이사가 보고 하나는 기깔나거든요.”
“사발이요?”
“아, 아닙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송태석 팀장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젊은 놈이라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말투나 태도를 보아하니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았다.
“마약을 발견하셨다고요.”
“예. 이야…….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양을 본 건 처음이거든요.”
“그럼 적은 양은 본 적이 있으시다는?”
“하하하……. 뭐, 사소한 건 넘어갑시다. 아, 커피 나왔네요.”
알바생이 건네는 커피를 받으며 송태석 팀장이 눈을 굴렸다.
어디 재벌집 아들놈인지, 능구렁이 같은 게 제법이었다.
‘확실히 도덕적이진 않은 새끼 같은데……. 이러면 한번 꺼내 봐도 되겠어.’
송태석 팀장은 미지근한 커피를 한입 마시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딜을 좀 합시다.”
“딜 좋죠. 어떤 거 말이신지?”
“경찰 측에서 일 년 가까이 들여서 계획한 작전이 있습니다. 강남파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송태석 팀장의 물음에 이주혁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으십니까?”
“아……. 들어 봤습니다. 보안, 경호업체다 보니 의도치 않아도 그런 쪽 정보가 흘러들어 와서요.”
“그렇습니까? 어쨌든, 주철수 이 깡패 새끼가 조직의 기업화를 노리고 자꾸 여기저기 발을 걸치길래 그걸 막기 위해 자금줄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 계획의 일환이 주철수의 마약 사업체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을 위해서 자금과 인력을 갈았단 소립니다.”
“그래서요?”
“하.”
송태석 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이 정도 설명을 했는데도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사장님.”
“예.”
“강남파 친 거, 사장님 업체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대.”
송태석 팀장은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꾹 눌렀다.
이 자리에서 갑은 맞은 편에 앉은 놈이었다.
“퀵 보낸 것도 사장님입니까?”
이주혁이 송태석 팀장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작전 망친 건 미안합니다. 저희가 경찰 작전을 알 방법이 없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 같네요.”
“후…….”
“그래서, 형사과장 자리를 노리시는 거죠?”
“예?”
미소를 지은 이주혁이 송태석 팀장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진급하려면 실적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신 거고요.”
“…….”
송태석 팀장이 말없이 커피를 마시자, 이주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깔끔하게 갑시다. 실적 드릴 수 있습니다. 대신, 이번에 제가 대기업과 연계해서 재단을 하나 만들게 됐습니다. 마약 근절이라는 모토로요.”
“예.”
“거기랑 협력해서 강남파 마약 소탕한 거로 합시다. 그러면 실적 챙길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리고 재단 설립 승인 좀 빨리 되게 도와주시고요. 앞으로도 마약 관련해서는 제 재단이랑 얘기하면 좋겠습니다.”
송태석 팀장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생각했다.
‘무서운 새끼.’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공정하지는 않은 계약이었지만, 간절한 건 송태석 팀장이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 저희가 경찰 작전을 미처 모르고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잖아요? 다음에는 이럴 일 없게, 현재 형사과에서 어떤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 주시면 좋겠네요.”
“지금 저한테 경찰 기밀을 넘기라는 겁니까?”
“그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고, 그냥 협력을 위한 정보 공유 정도로 하죠. 마음에 부담을 덜 수 있을 정도로는 챙겨 드릴 겁니다.”
송태석 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손해 볼 건 없는 제안이었다.
재단 관련해서도 적당히 찔러 주면 어렵지 않게 처리될 거고, 작전 날짜나 대략적인 정보 등을 유출하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주혁은 깡패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인물처럼 보였다.
설령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해도, 세력이 가장 큰 강남파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깡패든 킬러든 상관없었다.
‘강남파만 잡으면 서장은 우습게 단다. 이건 좋은 기회야.’
안 그래도 대출 갚느라 생활비가 빠듯했는데, 이주혁이 조금 챙겨 주면 와이프한테 바가지도 덜 긁히겠지.
결론을 내린 송태석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이주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송태석 팀장의 손을 잡았다.
“저야말로. 송 과장님.”
“아? 하하.”
송 과장이라니.
송태석 팀장은 겸연쩍은 마음에 괜히 웃었다.
“하하하…….”
“그럼 계약서부터 쓰시죠.”
“아, 예.”
***
그렇게 송 과장, 아니 송태석 팀장과의 협상이 끝나고, 사건이 접수되었다.
나는 경찰서 바깥에서 줄줄이 잡혀 들어가는 깡패 놈들을 구경했다.
서 앞에는 기자들이 잔뜩 모여 사진을 찍어댔다.
찰칵. 찰칵.
“이야…….”
옆에서 사발이 의미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서울을 뒤덮은 마약, 그걸 유통한 조직 대거 소탕. 뭐 이런 식의 이름으로 대서특필되겠는데요.”
“그러게요.”
협상 후, 우리가 접수한 마약 대부분과 조직원들을 경찰에 넘겼다.
송태석 팀장은 내가 만든 재단 승인을 진행한 뒤에, 이 사건을 알아서 잘 실적으로 엮은 것 같았다.
오며 가며 보니, 경찰서 내부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나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송 과장을 여기서 볼 줄이야.’
날 전생에서 언더커버로 보낸 사람이 송 과장이다.
지금은 송 팀장이지만, 아마 곧 과장을 달지 않을까.
내가 죽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원망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나도 정의감으로 자원한 작전이기도 하니까.
뭐, 송 과장이 정보 가져오라고 갈구긴 했지만 말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던 때, 카메라를 든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예?”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경찰서 뒷문 쪽으로 송태석 팀장이 나오는 걸 보고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경찰 쪽의 얼굴마담인 송태석 팀장과 내가 사진을 찍으면 저절로 재단에 지원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내가 찍을 필요는 없다. 인터넷에 얼굴을 달아 놓기도 싫고.
그래서 우리 이현수 이사를 데리고 왔지.
나는 다가온 송태석 팀장에게 말했다.
“저 말고, 여기 우리 이현수 이사님이랑 찍으시죠. 어차피 재단은 이사님이 관리할 거라.”
“예?”
당황한 사발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도 얼굴 팔려서 좋을 거 없잖습니까.”
“사기꾼 출신이라 그래요? 어차피 청산했잖아.”
“아니, 그래도…….”
나는 사발의 말을 무시하고 송태석 팀장 옆에 데려다 놨다.
찰칵.
“아, 이거 아닌데.”
사발의 투덜대는 걸 뒤로하고 송태석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송 팀장님.”
“아, 예. 마약은 잘 받았습니다. 트럭으로 넘겨 주실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 우리 애들이 항구에서 입수한 주철수의 트럭.
그 화물칸의 아보카도 안에 들어있던 마약과 함께, 이번에 턴 것까지 더해서 경찰에 싹 다 넘겼다.
아마 주철수는 지금쯤 속 터져 뒤지기 직전일 거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일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저녁에 술 한잔 어떠십니까?”
***
다시 들린 풍원한정식.
아쉽게도 유나 씨는 오늘 안 오는 날이었다.
직원이 또 날 보고 어딘가로 전화하던데, 설마 아니겠지?
“송 팀장님! 아니, 이제 송 과장님이지! 받으시죠.”
“아이고, 고맙습니다……. 크!”
“키야! 과장님 잘 드시네! 요게 우리 사장님이 투자한 원소주 아니겠습니까.”
“어우, 기가 막힙니다. 기가 막혀요…….”
참나. 잘들 노는구만.
한정식집에 오자마자 사발이 입을 계속 털면서 송태석 팀장한테 술을 먹이니, 팀장은 완전히 떡이 되어서 사발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술 더럽게 약한 건 그대로네, 송 과장.
송태석 팀장은 취해서 신세 한탄도 하고, 자기 자식 자랑도 했다.
“이, 이게 우리 딸내미거든요? 이 쪼끄만 녀석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야. 장군감이네, 장군감이야! 우리 팀장님을 너무 많이 닮아 버렸네!”
“그쵸, 그렇지. 날 닮으니까, 더 이뻐해 주게 되더라고. 요새는 얘 보는 맛에 삽니다……. 내가 왜 이 개고생을 하면서 진급하려고 하겠어요. 다 돈 때문이죠. 돈. 이놈의 돈……. 돈이…….”
완전히 맛탱이가 갔구만?
취해서 중얼거리던 송태석 팀장이 손을 마구 젓더니, 씩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작년부터 생각한 작전이 있거든요. 근데 이 작전이…… 내가 막 추진할 수가 없는 작전이란 말이지. 그래서 과장 달려고 한 거고……. 강남파 개새끼들, 싹 다 잡아 처넣으려고 세웠습니다. 주철수 개새끼를 말이에요.”
술을 홀짝거리다 흠칫했다.
저 작전이 뭔지 알 것만 같아서 송태석 팀장에게 물었다.
“그 작전이 뭔데요?”
“무간도 봤어요? 영화 무간도.”
“아, 알죠.”
아, 본 기억이 난다.
경찰의 스파이가 된 깡패와, 깡패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
이런 소재로 스토리를 재밌게 풀어내 흥행했던 작품이다.
“설마 언더커버 말씀인가요?”
“예. 맞습니다. 스파이, 세작, 밀정. 철옹성 같은 강남파를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겁니다.”
“좋은 작전이네요.”
그 작전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게 나다.
애초에 내가 당사자였으니까.
그런데 몸을 휘청거리던 송태석 팀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
“하. 이게 사실 제가 처음 발안한 게 아니라, 마음대로 하기가 힘들었지 않습니까.”
“그래요?”
“이미 이 작전을 스타트한 쪽이 있거든요…….”
“예?”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송 과장의 언더커버 작전이 시작된 건 2008년.
지금은 아직 작전이 시작될 시기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잔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꽈드득.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내자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X발…….”
언더커버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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