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83
082화
킬러들이 야밤을 틈타 풍원한정식에 들어오기 몇 시간 전.
임유나는 가발을 매만지며 말했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와야죠. 유나 씨가 위험에 처했다는데. 그나저나 제가 너무 귀찮게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이 정도는 간단하니까 너무 안 그러셔도 돼요.”
“아니, 보기 좀 흉하니까…….”
피식 웃은 임유나가 앞에 놓인 거울 안을 바라봤다.
그 안엔 긴 머리의 이주혁이 머쓱한 얼굴로 얼굴을 긁고 있었다.
“푸핫.”
“왜, 왜 웃어요?”
“잘 어울려서요.”
얼굴도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장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런데 왜 굳이 여장을 하시는 거예요?”
“여장이라뇨. 여장이라기보단 위장이죠. 잠깐이라도 적들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그래요?”
“그런 거죠.”
임유나는 순간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나한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이주혁의 정체성을 의심하던 임유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괜찮으시겠어요? 저 대신 여기 남으실 텐데……. 태섭 씨가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그 말에 이주혁이 피식했다.
“태섭이가 그런 말은 안 했어요?”
“뭘요?”
씨익.
거울 속 이주혁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누가 오든, 제가 다 이길 수 있다고.”
그 미소에 임유나는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가방 안에서 커다란 파우치 하나를 꺼냈다.
그걸 본 이주혁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꺼내신 거예요?”
“이왕 여장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아니, 여장 아니라니까요.”
임유나는 이주혁의 말을 무시하고 파우치에서 화장품들을 한 움큼 꺼냈다.
이주혁은 눈빛을 떨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설마 아니죠?”
“흐. 저 이런 거 꼭 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베이스부터 해 볼까요?”
“아니, 잠깐…….”
그리고 현재.
위장용 가발을 벗어 던지고,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화장품은 옷으로 대충 비벼서 없앴다.
그 덕에 내 얼굴은 기괴하게 바뀌었고, 내가 짓는 미소는 놈들에게 조커의 찢어진 미소를 연상케 했다.
‘총 다섯 명.’
정태섭에게 들은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매복은 없을 확률이 높다는 뜻.
“인상 참 더럽네.”
킬러들이라 그런가, 몸에 밴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특히 벙거지를 눌러 쓴 40대 정도의 남자.
분위기가 독특한 게, 아마 이놈이 이 집단의 리더인 것 같았다.
순간 내 머릿속에 전생의 기억이 스쳤다.
‘조선족에,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킬러 집단.’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주철수가 가끔 고용하던 놈들인데, 돈만 주면 뭐든지 해서 ‘돈 귀신’이라고 불리는 놈들이었다.
겉늙어 보이는 건 똑같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언뜻 기억하는 녀석들의 얼굴과 비슷했다.
“죽여라.”
리더의 말과 함께 놈들이 달려든다.
가장 먼저 공격해온 건 염소수염을 기른 놈.
놈이 휘두르는 손도끼를 가볍게 피하며 다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욱.”
외마디 비명과 함께 염소수염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염소수염은 떨어지는 내 발을 보고 황급히 굴러 피했다.
쾅!
“X발!”
마체테를 든 지저분한 장발이 열이 오른 염소수염과 같이 흉기를 휘둘렀다.
그에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핏자국이 묻은 날들을 피했다.
나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마체테를 흘린 뒤, 장발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발은 급하게 다리를 틀어막고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 빈틈을 노린 염소수염이 손도끼를 뻗었지만.
우득!
“뜨악!”
내 손에 걸려 그대로 팔이 꺾였다.
떨어지는 손도끼를 잡아 날의 뒷부분으로 염소수염의 몸 곳곳을 다지듯이 팼다.
퍽! 퍽! 퍽!
“끼어…….”
거품을 무는 염소수염의 가슴팍을 차 날리고 달려오는 대머리의 중식도를 몸을 틀어 피했다.
이어 옆으로 그어지는 중식도의 옆면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러자 팔이 위로 휙 들린 대머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나는 몸을 회전하며 파고들어 팔꿈치로 대머리의 턱을 올려 쳤다.
“억!”
쩍 소리와 함께 대머리의 머리가 덜컥했다.
대머리는 눈을 뒤집으며 오줌 마려운 자세로 주저앉았다.
그걸 본 장발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던 그때.
“삼귀. 그만하라.”
안경 중년의 말에 장발이 멈칫했다.
“돌아가자. 사귀 챙기라. 오귀는 내가 챙기마.”
장발이 무기를 집어넣더니, 후다닥 달려가 염소수염을 챙겼다.
안경도 다가와 주저앉은 대머리를 부축해 일어났다.
“누가 보내준대?”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안경이 코에 걸쳐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일귀. 시간 좀 벌어 다오.”
“그러지.”
일귀라 불린 벙거지 중년이 양 허리춤에서 칼을 촥 빼 들었다.
일반 칼과는 달리 짐승의 발톱처럼 휘어진 칼날.
동남아시아 지역의 전통 도검, 카람빗이었다.
우리 부대에도 멋있다는 이유로 저걸 주력으로 쓰는 놈이 있었는데, 곡선 모양의 칼날 탓에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웠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야. 개폼 잡지 말고 들어와.”
어차피 내가 다 이겼으니까.
“흡!”
달려드는 일귀의 카람빗 두 자루를 몸을 돌리며 피했다.
피할 수 없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건 손목을 맞대 흘렸다.
그렇게 몇 번 더 합이 오가고, 일귀는 자세를 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다른 놈들이 부상자를 부축해 가게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딜……!”
내가 뚫고 나가려 하자 일귀의 손놀림이 더 빨라졌다.
어지간한 조직의 보스는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만들 정도였다.
일귀는 내 눈치를 보며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하는 것 같았다.
여길 빠져나가려고 하나 본데, 쉽게 보내 줄 순 없지.
슬슬 더 속도를 높이려던 순간, 내 눈앞에 날붙이가 날아왔다.
“훕.”
황급히 몸을 날려 피하자 일귀가 바깥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나는 땅을 박차며 놈을 쫓아 달렸지만, 출구에 다다르니 안경 중년이 내 쪽 바닥에 작은 물체 몇 개를 던졌다.
작은 구슬 모양의 무언가였다.
설마 폭탄인가 싶어 손을 휘저어 뒤로 흘리듯 튕겨 냈다.
“잠깐, 가게가……!”
그 순간 뒤에서 팡 소리와 함께 흰색 연기가 휘날렸다.
다행이다. 연막탄이었어.
환기 조금만 시키면 금방 빠질 거다. 아마도.
출구 쪽을 보니 어느새 놈들은 사라진 상태였다.
“쯧. 깜짝 놀라게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젓고 창문을 하나씩 열며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저 안쪽에서 라세흠 부장이 슬쩍 걸어 나왔다.
“새끼, 실력이 더 늘었다? 질투 나게.”
“회사 대표한테 새끼가 뭡니까? 확 연봉 깎아 버릴라.”
“이 대표. 내 실수했네.”
“농담입니다.”
흐흐 웃은 라세흠 부장이 어지럽혀진 복도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끼어들지도 못 하게 할 거면서 난 왜 부른 거야?”
“저놈들이 총이라도 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혼자서는 힘들죠.”
“그래? 혹시 모르니까 유언장에 내 이름 써라. 상속인으로.”
“참나.”
라세흠 부장은 조금 전 날아온 표창 같은 모양의 날붙이를 집어 들었다.
“이 새끼들 뭔 닌자냐?”
“큭. 그러게요. 무슨 연막탄을 들고 다녀?”
손으로 연기를 휘저어 날린 라세흠 부장이 물었다.
“그런데 이 대표. 저놈들은 왜 놔준 거야? 임유나 사장을 위협했다면서.”
“두 놈을 조져 놨으니까 바로 움직이진 못할 겁니다.”
나는 안심하라는 듯 씩 웃었다.
“그리고, 이게 주철수에게 독이 될 겁니다.”
***
배성복 서장은 송태석 과장과 서장실에서 다시 마주 보고 앉았다.
커피를 홀짝인 서장이 물었다.
“준비는 어떻게 돼 가나?”
“조 편성 중입니다.”
“그래. 어지간하면 입 무거운 애들로 모아.”
송태석 과장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서장에게도 건넸다.
“아, 난 이거 안 펴. 목에 콱 걸리는 맛이 덜하더라고.”
“그러십니까.”
자신의 담배를 꺼낸 배성복 서장이 라이터를 켜며 물었다.
“계획은 어때?”
“일단 주철수와의 약속 장소인 산의 길목을 모두 차단할 겁니다.”
“그걸로 되겠어? 호락호락한 놈이 아닌데. 산 바깥에 연락책을 둘 거야.”
“어차피 들키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다. 최대한 일반인으로 위장해도 한계가 있을 거고 말입니다.”
송태석 과장도 이주혁에게 대충 서장에 관해 들은 터라 적당히 장단을 맞출 수 있었다.
처음에는 충격에 빠졌지만, 그동안 강남파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계속 재고하던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프락치였으니까. 이 개새끼.’
잠깐 뜸을 들인 송태석이 말했다.
“그럼 저격수 배치는 불가능합니까? 헬기나.”
“미쳤어? 사격 허가는 물론이고, 그 정도 인원이 움직이면 내 오더라는 게 드러나잖아.”
“…….”
송태석은 배성복 서장의 노골적인 의도에 순간 열이 뻗쳤다.
잘하면 주철수까지 잡아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송태석은 강남파에서 돈을 받아먹는 동료이기에 크게 불만을 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네도 주 사장한테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거 아닌가?”
“……예?”
“너무 무리하다 괜히 역풍만 맞을 수 있어. 나중에도 기회가 있겠지.”
뻔뻔하게 말하는 배성복의 얼굴에 송태석은 애꿎은 담뱃재만 털었다.
‘그냥 이주혁 대표한테 다 불어 버릴까.’
근데 이주혁도 문제였다. 그놈은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무서웠다.
주철수와 적대 관계인 것 같긴 한데, 왜 자신을 서장한테 강남파 끄나풀이라고 했을까.
“뭐, 어쨌든 말이야.”
“예.”
담배를 비벼 끈 배성복이 기대앉으며 말했다.
“발포는 허가해 줄게. 대신 책임은 자네가 지는 조건으로.”
그 말에 송태석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
배상훈은 불안한 마음으로 사장실을 향했다.
이주혁 그 괴물 같은 놈이 킬러한테 당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녀석의 주변 사람은 다르니까.
부대에 있을 때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래방 사장님, 작업반장님을 포함해 녀석 밑에서 일하는 3인방까지.
지금까지는 주철수와 전면전을 펼치진 않았다.
하지만 주변인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전쟁이지.’
이주혁 성격상, 또 다른 애들은 데리고 오지도 않을 거다.
혼자 쳐들어와서 주철수 모가지를 따려고 하겠지. 하여튼 걱정이었다.
덜컥.
“사장님.”
“어, 배 팀장.”
주철수가 통화 중인지 기다리라며 손짓했다.
그리고 중국어로 쏼라쏼라 전화를 이어 갔다.
‘쯧. 뭐라는 거야.’
탁.
핸드폰을 접은 주철수가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아, 내일 배성복 서장 건 경호원 편성 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그 말에 주철수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말했다.
“배 팀장. 그런 걸 뭘 묻고 있어?”
“예?”
주철수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싹 다 준비시켜.”
배상훈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이 미친 새끼……. 경찰이랑 싸울 생각인 거야?!’
***
다음 날 나는 풍원한정식에 다시 찾아왔다.
임시 휴업을 내건 임유나가 물었다.
“그럼 언제까지 휴업해야 하나요?”
“제가 따로 말씀드릴 때까진 외부 활동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놈들이 유나 씨 얼굴을 봤으니까요.”
임유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창 장사 잘되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저도 놈들의 얼굴을 봤거든요.”
“주혁 씨. 정말 다치신 데 없는 거죠?”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임유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그리고 유나 씨가 위험에 처한 게 저 때문인데, 당연히 제가 책임을 져야죠.”
“책임… 이요?”
“네. 유나 씨가 저한테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놈들이 노린 걸 테니까요.”
“소중한 사람요……?”
끄덕.
나는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유나 씨는 안전해질 때까지 저와 같이 지내셔야 합니다.”
“네, 네에……?”
“밀착 경호 서비스입니다.”
물론 사심은 없다.
정말로.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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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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