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82
081화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한 남자.
그를 마주치는 사람들이 남자에게 허리를 팍 숙이며 인사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어.”
이주혁의 스파이, 배상훈은 손을 대충 흔들어 주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주혁, 이 개새끼.’
처음에는 연봉을 올려 준다길래 자원한 임무였다.
하지만 정보만 넘겨주면 되던 일이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었다.
나름 안면 있던 조태수 부장은 공구리를 당하질 않나.
주철수 이 새끼는 허구한 날 사색에 잠겨 있다 화를 내길 반복하질 않나.
낙하산으로 맡게 된 경호팀 내에서도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에휴…….”
배상훈은 썩어 있던 표정을 돌려놓은 뒤 사장실의 문을 열었다.
덜컥.
“사장님.”
역시 주철수는 의자에 기대앉은 채 개폼을 잡으며 담배를 빨고 있었다.
재를 턴 주철수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배 팀장. 무슨 일이야.”
배상훈은 코를 한번 슥 만진 뒤 이주혁이 전달하라고 했던 말을 꺼냈다.
“배성복 서장이 만나자는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만나자고? 그놈이 먼저 만나자고 하는 건 처음인데.”
“일시는 이틀 후. 시간은 나중에 연락한답니다.”
“늙은이가 감이 다 떨어졌나…….”
턱을 쓰다듬던 주철수가 배상훈을 슬쩍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연락을 배 팀장한테 했지?”
“사장님 인천 가셨을 때 온 전화라 제가 받았습니다.”
“음. 그래?”
배상훈은 철렁했던 가슴을 진정시켰다.
‘눈치 빠른 새끼. 의심받을 뻔했네. 아니, 이미 받고 있나?’
최근 이주혁에게 정보를 자주 넘겨줬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주철수가 경호팀장으로 진급시켰다.
이 진급은 배상훈을 믿는다기보다는 자신을 가까이 두고 감시하기 위함일 확률이 높다.
그 때문에 배상훈은 일 분 일 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알았다고 전해. 시간은 내가 정한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돌아서 나가려던 때, 배상훈은 경호팀 애들이 얘기하던 ‘돈 귀신’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혹시 뭐라도 캐낼 게 있나 해서 자연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인천 공항에는 누굴 만나러 가신 겁니까?”
그러자 주철수가 입꼬리만 슥 올리며 되물었다.
“그건 왜 궁금한데?”
“죄송합니다. 그냥 얘기가 들려서…….”
고개를 숙이자 주철수가 손을 저었다.
“죄송하긴, 궁금할 수도 있지. 배 팀장. 경호팀장이 되더니 태도가 더 딱딱해졌어. 실력으로 스카우트됐으면 좀 더 당당해도 되는데 말이야.”
“…….”
“그래서 누굴 만났냐고. 돈 귀신이라고 들어 봤어?”
“아뇨. 처음 듣습니다.”
주철수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배상훈에게 건넸다.
팅-.
“연변 킬러. 비싸게 주고 데려왔지.”
손으로 가리고 불을 붙이던 배상훈이 쿨럭댔다.
“킬러요? 그렇게까지 해서 죽일 사람이 있습니까?”
“있지. 배 팀장도 알잖아? 요새 자꾸 앞길을 막는 놈이 하나 있는 거.”
“아.”
그 말에 한 사람이 바로 떠올랐다.
‘이주혁, 이 미친 새끼.’
드디어 제대로 찍혔다는 생각에 착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연변 킬러 따위에 당할 놈은 아니지만, 주철수는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계속해서 사람을 보낼 것이다.
이놈은 한번 문 인간을 절대 놓지 않으니까.
배상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이주혁 집으로 보내신 겁니까?”
“아니. 보통 놈이었으면 그랬겠지만, 그놈은 난 놈이야.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처리하는 방법이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주철수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인질이야.”
“……인질이라면.”
“내가 그놈 뒷조사를 좀 해 봤는데 말이야. 하나 남은 가족이었던 아버지는 이미 죽었더라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요새 풍원한정식 여사장이랑 만나는 거 같아서, 그리로 가라고 했지.”
배상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풀렸다.
“납치입니까?”
“글쎄. 현장에서 판단하겠지. 납치하든, 죽이든.”
“음, 문제가 생기진 않겠습니까?”
그 말에 주철수가 피식 웃었다.
“문제? 그놈들이랑 내 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문제.”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보수도 추적할 수 없는 경로로 제공했을 것이다.
“배 팀장. 궁금한 건 다 풀렸나?”
“예? 아, 예.”
“그럼 가 봐.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해서.”
“알겠습니다.”
배상훈은 뒤돌아 사장실을 나가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주혁이한테 빨리 전해 줘야겠어.’
달칵.
문이 닫히고, 담배만 한참을 피우던 주철수가 배상훈이 나간 곳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뚝 꺾었다.
***
임유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청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가 밑반찬을 세팅하는 여직원 강예원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튕기기는. 여기 앉아 보라니까.”
한숨을 내쉰 임유나가 남자의 팔을 떼어 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이 그럴 의무는 없어서요.”
“거 참 깐깐하구나 야. 아니면 니가 앉아 보라.”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의 말에 임유나는 혈압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성질을 내거나 경찰을 부른다고 협박해 내쫓을 수도 없었다.
툭 튀어나와 보이는 가방의 무언가. 그리고 남자들의 얼굴과 손에 난 흉터들까지.
‘위험한 사람들이야.’
함부로 자극했다간 위험할 거라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경계를 낮추지 않는 임유나에게 한 남자가 대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여기 서비스가 좀 별론데?”
히죽거리는 남자의 미소에 임유나는 불쾌감을 숨기며 강예원을 데리고 나갔다.
옆에서 강예원이 인상을 구기며 속삭였다.
“사장님.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요? 너무 싫다, 진짜.”
“저 사람들, 가방에 무기가 있는 것 같아.”
“네? 그럼 더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랬다가 해코지하면 어떡해? 일단 내가 주혁 씨한테 연락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던 그때, 주방에서 덩치 큰 남자가 걸어나왔다.
앞치마가 아기 턱받이처럼 보일 만큼 커다란 남자는, 얼마 전 이주혁이 경호를 위해 여기 취직시킨 정태섭이었다.
‘맞다. 태섭 씨가 있었지? 워낙 말수가 없으셔서 몰랐어.’
임유나는 무슨 일 있냐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이는 정태섭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정태섭은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남자들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여직원 강예원이 임유나의 팔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 어떡해요. 사장님! 순해 빠진 태섭 씨가 저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같이 가 보자.”
방 안을 들여다본 임유나는 깜짝 놀랐다.
정태섭이 조용히 남자들을 노려보고, 염소수염, 대머리, 그리고 장발 남자는 벌떡 일어나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유일한 포식자였던 짐승이 자신을 위협할 만한 존재를 보고 경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 설마 여기서 싸우진 않겠지?’
이주혁이 믿고 일을 맡긴 사람이니만큼 실력은 확실하겠지만, 그래도 여길 난장판으로 만드는 건 곤란했다.
하지만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벙거지를 쓴 중년은 청주 한 잔을 쭉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정리했다.
“가자. 실례했다.”
그 사납던 남자들이 중년의 한마디에 얌전해졌다.
그리고 중년의 뒤를 따라 짐을 챙겼다.
남자들은 정태섭의 어깨를 툭 치고 방을 나섰다.
복도에 나온 중년과 임유나의 눈이 마주쳤다.
임유나는 사람의 눈만 봐도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보오. 사장.”
“네?”
“이주혁이라고, 아오?”
중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임유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그 사람은 누구죠?”
임유나의 말에 줄곧 무표정이던 중년이 피식 웃었다.
“정말 모르오?”
“네. 저는…….”
“알 텐데?”
“…….”
숨 막히는 긴장감에 임유나가 입을 떼지 못하던 그때.
“나가 주시죠.”
정태섭이 묵직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에 중년은 조용히 고개를 까딱이곤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던 대머리가 중얼거렸다.
“操(X발).”
문을 열던 중년이 잠깐 멈칫하더니, 임유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이 가게 몇 시까지 하오?”
“……10시요.”
“알았소.”
중년은 그 말만을 남기고 남자들과 함께 사라졌다.
임유나는 찝찝한 마음에 정태섭을 돌아봤다.
강예원이 뒤에서 정태섭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고 있었다.
“태섭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카리스마 있네요?”
“또 올 겁니다.”
“네?”
“사람 여럿 죽여 본 놈들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저, 정말요?”
임유나의 표정이 어두워지던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임유나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었다.
“걱정할 필요 없겠네.”
***
이주혁과의 대화 후 다음날.
배성복 서장은 송태석을 서장실로 불렀다.
‘이 새끼. 강남파 끄나풀이었으면서 어떻게 티가 안 났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생각에 배성복은 은근히 괘씸함을 느꼈다.
하지만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송 과장은 현시점에서 강남파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으니까.
서장실의 문이 열리고, 형사과장 송태석이 들어왔다.
“어, 왔어?”
“예. 서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일단 앉아.”
송태석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다.
안 그래도 이주혁이 넘긴 비리 증거물들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데, 평소에 부르지도 않던 양반이 갑자기 호출하니 당황스럽기만 했다.
“크흠.”
헛기침을 내뱉은 배성복 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믹스 커피 두 개를 챙겼다.
그리고 믹스를 뜯어 종이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 두 잔을 테이블로 가져왔다.
탁.
“자.”
“감사합니다.”
송태석은 서장실의 커피를 난생처음 맛봤다.
혀로 입술을 슥 훑은 배성복이 본론을 꺼냈다.
“저, 송 과장. 요새 일은 할 만해?”
“아, 예.”
“힘든 건 없고?”
“……용건만 말씀하시죠. 어색합니다.”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신 배성복 서장이 종이컵을 탁 내려놓으며 물었다.
“얼마 받고 일해?”
“…예?”
“얼마 받고 일하냐고.”
뜬금없는 질문에 송태석이 귓불을 긁으며 말했다.
“공무원 월급만큼 받으면서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시치미를 떼시겠다.
배성복은 떠보는 건 집어치우고 본론을 꺼냈다.
“자네, 강남파 잡을 생각이지?”
“예. 항상 말씀드렸지만, 서장님이 항상 빠꾸먹이신 걸로 아는데.”
“에헤이. 날 세우지 말고. 대신에 면 한번 세워 줄게. 강남파 체포 작전 진행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송태석이 눈꼬리를 올렸다.
“진심이십니까?”
“아니, 속고만 살았나. 자네가 일선에서 진행하고, 나한테 현황 보고만 해. 필요한 지원은 다 해 줄 테니까.”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눈치챘나?’
송태석은 갑자기 바뀐 서장의 태도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어? 어, 가봐.”
성큼성큼 서장실을 걸어 나가는 송태석의 뒷모습을 보며 배성복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새끼……. 연기 잘하네.”
***
“조용하구만.”
“그러게 말임다.”
안경을 쓴 중년과 대머리 남자가 속닥였다.
“불도 캄캄한 게, 그 여자도 퇴근한 거 아임까.”
“아이다. 안에 인기척이 있다.”
대화를 나누던 둘의 뒤에서 염소수염과 장발이 걸어왔다.
“眼镜(안경) 성. 뒷문은 잠겼소.”
“그래. 오귀(五鬼)야. 일귀 데려오라.”
“알았소.”
대머리 남자가 낮은 자세로 사삭 달려갔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던 벙거지 중년을 불렀다.
“大哥(형님). 가심 됨다.”
대머리 오귀의 말에 중년, 일귀가 움직였다.
돈 귀신들은 기척을 숨기고 불이 꺼진 한정식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가게 안에 인기척은 있었는데, 조명이 켜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슥, 슥.
안경 중년, 이귀가 손짓하자 삼귀와 사귀가 움직였다.
장발 삼귀가 마체테(정글도)를 들어 올리고, 염소수염 사귀가 품에서 손도끼를 꺼냈다.
그때, 모두의 눈에 복도 끝을 지나는 여자 하나가 보였다.
“…….”
돈 귀신들은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다가갔다.
여자가 들어간 방의 문이 살짝 열려있는 걸 본 대머리 오귀가 문고리를 잡았다.
끄덕.
‘염다.’
‘열어라.’
벌컥!
문을 열자,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기를 들고 다가가던 염소수염과 장발이 멈칫했다.
여자가 뭔가 이상했다.
중년 둘을 제외한 모두가 짓고 있던 미소가 지워졌다.
염소수염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고 손짓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소?’
여자의 뒤태라고는 너무 강인한 모습.
발달한 승모근과 어깨, 등 근육이 화가 난 채 꿈틀대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느낀 일귀가 중식도를 꺼내며 물었다.
“너 뭐야.”
그 말에 성난 근육의 소유자, 이주혁이 가발을 벗으며 뒤로 돌았다.
그리고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늦었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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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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