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81
080화
배성복 서장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에 앉은 남자, 이주혁을 쳐다보고 물었다.
“주 회장이 언제 보자고 하셨소?”
“삼 일 후, 오후 9시. 장소는 추후에 전달해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소. 송태석. 내 이 새끼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배성복 서장을 남자가 불러세웠다.
“서장님.”
“음?”
“송 과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당연히 경찰 생활 끝내 버려야 하지 않겠소?”
“음.”
송태석. 따까리였을 때부터 나름 챙기던 놈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니 얼얼했다.
그런데 남자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사실, 송태석 과장도 서장님과 같습니다.”
“뭐요?”
나랑 같다고?
의문에 빠진 배성복 서장의 눈에 남자가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게 보였다.
“강남파와 깊게. 연결돼 있다는 말입니다.”
‘설마 송태석이가 강남파랑 붙어먹었다고?’
강남파 잡아야 한다 노래를 부르더니, 그럼 그게 다 연기였단 말인가?
배성복 서장은 한 가지 의문이 들어 남자에게 물었다.
“그럼 송태석이가 주 회장 사업장은 왜 친 거요?”
“진급 때문이지요. 제가 지시했습니다. 송태석이 팀장보단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게 나으니까요.”
미심쩍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팀장보단 과장 선에서 알 수 있는 정보다 더 많으니까.
그런데 저 남자는 주철수의 부하 아닌가?
“왜 그런 짓을? 주 사장 편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하는 말씀인데…….”
남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모습에 배성복 서장이 미간을 좁혔다.
입꼬리를 올린 남자가 말했다.
“주철수를 공격하십시오.”
“뭐?”
아까까지 주 사장 밑에 있다고 말했으면서, 이제는 공격하라니?
배성복 서장은 당황한 나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게 무슨…….”
“이건 협박이니 잘 새겨들으셔야 합니다. 서장님. 지금부터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서장님이 찍힌 사진들은 다 폐기해 드리겠습니다.”
눈썹을 찌푸린 배성복 서장이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지금 주 회장을 배신하겠다는 거요? 아니, 애초에 강남파 소속은 맞소?”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혹시 저놈이 주 회장과 나를 이간질하기 위해 온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말이다.
남자는 배성복의 물음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따님이 이번에 석사 학위를 땄는데, 논문이 글쎄 다른 논문이랑 거의…….”
“그만, 그만.”
배성복 서장은 순간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해졌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시치미는 다른 데서 떼시고. 송 과장 통해서 마약 건 주철수한테 엮으라고 지시하세요. 그럼 서장님 비리는 제가 미뤄 두라고 하겠습니다.”
“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삼 일 후 9시. 꼭 나오세요.”
“아, 알겠…….”
쿵.
서장실의 문이 닫히고, 배성복은 진이 빠져 소파 뒤로 기대앉았다.
“X발. 주 사장, 안 그래도 상황 꼬여서 민감할 텐데…….”
그런 상태에 저 남자가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주철수는 그대로 폭발해 서울을 집어삼킬 것이다.
단순 조직의 크기로는 경찰이 앞서지만, 강남파는 선을 쉽게 넘을 수 있는 인간들이 그득했다.
하지만 항상 손해를 덜 보는 쪽에 붙으며 살아가던 배성복은 남자의 협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당장 내가 살아야 하니까…….’
배성복에게 자신의 이득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배성복 서장과 주철수는 이주혁에 의해 의도치 않은 약속이 잡혔다.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배성복 서장은 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젠장. 다음 주가 딸 생일인데…….’
***
라세흠은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산 청소기의 플러그를 꽂고 전원을 켰다.
위이잉-.
“어찌 그리 소리가 안 나는겨?”
“신기하죠?”
라세흠이 씩 웃으며 할머니를 돌아봤다.
이번에 나온 신상 청소기. 봉사활동을 통해 신계구역 가구마다 하나씩 제공한 제품이었다.
“저기도, 저기도 해봐 봐.”
“여기요?”
“아이고, 깨끗허네.”
어린아이같이 웃는 할머니를 보며 라세흠이 코 밑을 훔쳤다.
처음에는 용역 깡패들을 잡기 위한 명목으로 온 봉사활동이지만, 어느새 동네 사람들과 정이 들어 버렸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로 오늘이 봉사 마지막 날이라 아쉬워했다.
라세흠은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할머니. 오늘이 마지막 날인 거 아시죠?”
“그려? 벌써 말여?”
“시간이 빠르죠?”
순식간에 청소를 끝낸 라세흠이 가져온 가방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재개발 및 이사 비용 지원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할머니도 봉투를 보고 대충 예상했는지, 라세흠을 향해 물었다.
“그동안 고생 많었지?”
“아뇨, 고생은 무슨. 얼마나 재밌었는데요.”
“하이고. 펜이나 갖구 와. 사인해 줄려니께.”
라세흠은 흔쾌히 나온 대답에 깜짝 놀랐다.
“괜찮으시겠어요? 이 집을 떠나셔야 하는데.”
“그래도 자네 같은 젊은이가 이리 고생하면서꺼지 좋은 집으로 보내 줄려 하는디, 계속 버티는 것도 못 할 짓이제.”
“음…….”
“미련을 버릴 때가 된 겨.”
라세흠이 말없이 펜을 건네자, 할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웃들도 똑같을 거여. 우덜이 깡패들이랑 자네들 겉은 건실한 청년들 구분도 못 할 거 같혀?”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
어쩐지 먹먹해진 라세흠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려.”
라세흠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이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됐어요?
“어. 사인받았다. 아마 별문제 없이 마무리될 것 같네.”
-하.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시골에 계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크게 고생한 것도 없었는데, 뭘.”
전화 너머로 이주혁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거 또 사 드려야겠네.
“저번 것까지 두 번인 거 알지?”
-당연하죠. 덕분에 주철수가 진행하려던 재개발을 통째로 먹을 수 있었는데.
“흐흐. 주철수 그 새끼. 배 좀 아플 거다.”
-존나게 아프겠죠.
라세흠이 낄낄대며 물었다.
“그런데 재개발은 어떻게 진행한다는 거냐? SA건설도 만들려고?”
-아뇨. ‘SS건설’이라고, 제가 인수한 건설사가 있어요. 그쪽으로 진행하면 될 겁니다.
“음…….”
이놈은 대체 없는 회사가 뭐야?
그래도 뭐, 결국 일은 다 잘 풀렸으니 다행이다.
***
인천국제공항.
주철수는 수하들과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러다 가방을 멘 한 무리를 발견하고 다가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음?”
다섯 명 정도의 남루한 남자들.
리더로 보이는 벙거지를 쓴 평범한 중년이 주철수를 돌아봤다.
주철수는 중년의 때가 탄 옷을 보고 손을 내밀려다 말고 물었다.
“목표는 확인하셨습니까?”
“확인했소.”
“최대한 빠르게 처리 바랍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라.”
중년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철수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뱉으며 주철수를 스쳐 지나갔다.
“명령하지 마시오.”
“…….”
그에 중년의 뒤에 있던 남자들이 낄낄대며 중년을 따라갔다.
“이 새끼들이…….”
주철수가 발끈하는 수하들을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수하 하나가 남루한 무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회장님. 저 조선족 새끼들 그냥 두실 겁니까? 제가 따끔하게…….”
“둬. 저놈들 누군지 몰라?”
“아, 예. 유명한 놈들입니까?”
“연변에서 돈만 주면 누구든 죽여 줘서 전귀(錢鬼), 돈 귀신이라 불린다. 실력으로는 한 손에 꼽히는 놈들이야.”
그 말에 수하가 깜짝 놀랐다.
“저 노숙자 같은 놈들이 말입니까?”
“그래. 타겟을 잡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안에 처리하지. 돈을 좀 많이 처먹긴 하지만.”
“그놈이 보통 놈이 아닌 건 맞지만…… 전문 킬러들한테서 살아남기는 힘들겠지.”
“예. 이주혁, 그 새끼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설마 킬러한테 되겠습니까. 이번엔 확실히 죽을 겁니다.”
그 말에 주철수는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그래야지. 반드시…….”
***
벙거지 중년은 고급스러운 한 가게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구나.”
“大哥(형님). 우리가 여기 들어가도 되는 검까?”
“돈만 있으면 안 될 거 뭐 있나. 가자.”
앞장선 중년을 필두로 돈 귀신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웃으며 인사하던 여직원이 돈 귀신들의 모습에 멈칫했다.
여직원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프로 정신을 발휘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몇 분이세요?”
“다섯 명이오.”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돈 귀신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리저리 가게를 둘러보며 여직원을 따라갔다.
여직원은 뒤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시선에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무표정인 돈 귀신들의 리더, 중년이 여직원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여기 사장은 어디 있소?”
“네? 사장님이요? 그건 왜…….”
중년은 방문을 열다 당황한 여직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직원은 그를 따라 우르르 들어가는 남자들을 보며 소름이 돋은 팔을 몰래 문질렀다.
“메뉴 결정되면 벨 눌러 주세요.”
여직원은 방을 닫은 후 빠르게 걸어 방에서 멀어졌다.
‘뭐 저런 이상한 사람들이……. 사장님한테 조심하라고 말씀드려야겠다.’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가던 여직원을 누군가가 불렀다.
“예원아. 무슨 일 있어?”
“사, 사장님……!”
여직원은 커진 눈으로 임유나에게 다가가 방을 가리켰다.
“사장님. 저기 저 방에 이상한 손님들이 왔어요. 막 옷도 꼬질꼬질하고, 말투도 이상하고……. 막 계속 실실 웃으면서 저를 쳐다봤다니까요.”
속사포 같은 여직원의 말에 임유나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운터에 가 있어. 내가 한번 볼게.”
“안 돼요, 사장님. 위험할 수도 있어요……!”
“내가 안 가면, 네가 주문받을 거야?”
“아……. 그럼 같이 가요.”
그 말에 임유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직원은 그걸 보며 뜬금없이 사장님이 참 웃음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됐어. 별일 없을 거니까 기다려.”
“진짜 조심하셔야 돼요. 막 품을 계속 뒤적거리는 게, 진짜 킬러 막 이런 거면 어떡하죠?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빨리 가.”
여직원의 급발진에 임유나가 등을 밀며 그녀를 보내버렸다.
하지만 임유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설마 또 조직폭력배인가……?’
더 이상은 진절머리가 나는 족속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끌 순 없었다.
이주혁이 왠지 몰라도 이런 쪽을 잘 아는 것 같으니, 들어가서 인상착의를 확인한 다음 그에게 알려 줄 생각이다.
그 시각, 돈 귀신들은 무기가 든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염소수염을 기른 돈 귀신 하나가 신나서 말했다.
“이야, 메뉴가 뭐 이리 비싸나? 성님. 우리가 이런 데도 다 와 보고, 출세했소?”
그 말에 물 한잔을 마시던 중년이 피식 웃었다.
중년의 옆에 있던 안경을 낀 남자가 혀를 차며 핀잔을 줬다.
“놀러 온 거이 아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
“거 이런 날은 좀 즐깁시다. 장 형.”
“즐기긴 무얼 즐겨. 여기 여사장이 타케트랑 아는 사이라 온 기다.”
대머리 청년이 실실대며 물었다.
“그놈이랑 뜨거운 사이람까?”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족쳐보면 알지 않겠니.”
“흐흐. 뭐 여차하면은, 우리가 좀 즐겨도 되지 않겠슴까.”
대머리의 말에 염소수염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그 여직원도 이쁘장하던데.”
그들이 저열한 대화를 나눔에도 중년은 물만 홀짝거릴 뿐 제지하지 않았다.
그때, 방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메뉴는 고르셨나요?”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던 임유나의 표정이 살짝 어색해졌다.
일행 다섯 명이 모두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벙거지를 눌러 쓴 남자가, 굳어 버린 임유나를 향해 섬뜩한 무표정으로 물었다.
“여기, 뭐가 제일 맛있소?”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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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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