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245
245 ? 알브하임의 요정들 #5
“핫산, 그럼 난 네메아한테 가볼게! 과제 안했는데, 큰일 났다!”
“뭔 훈련이 과제도 있어?”
“거미독을 이용하기 위해선 컹컹이 데리고 바깥에 산책도 가야 한다 했었거든. 근데 못했네. 혼나겠다.”
으으-하고 어깨를 떠는 루나였다. 네메아라는 이름 때문에 상당히 걱정하긴 했는데, 굉장히 의아하면서도 수상쩍게도 그녀의 수업은 평범하게 진행되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루나와 헤어진 뒤.
그날의 오후.
나는 베누스 신전의 정원에서 다시 만난 칼리두르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내가 주점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또 엘프 녀석들과 어떻게 싸웠는지,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름 자세히 설명해주었단 말이다.
“내가 그 새끼 무릎을 삭, 피해서 어깨로 팍 친 다음에 주먹으로 내리 쳤다니까?”
“그렇군요.”
촤르르-.
다만 녀석은 그저 시큰둥한 대답을 보일 뿐이었다. 아마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서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않은 듯하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꽃에 물을 주고 있는 겁니다.”
칼리두르 녀석은 베누스 신전의 정원에서 꽃과 나무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 자그마한 물 조리개 같은 것을 이리저리 흔들며 얇은 물줄기들을 바닥에 뿌린다.
“이 꽃의 이름은 셀리콜리라고 하지요.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 물을 주면, 이렇게 은은한 가루를 뿜어낸다고 헤르시 자매에게 들었습니다.”
과연 녀석의 말대로 은방울을 닮은 꽃망울이 기이한 꽃가루를 분사하듯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솨아-.
페브리즈라도 뿌린 것처럼 향기가 그럴싸했는데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아니 걔네들이 너보고 막 그랬다니까?”
“그렇군요.”
소귀에 경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 새끼, 너 병신이냐.”
“그렇군요.”
“이런 쓰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이 녀석의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걸 알아차리고 말았다. 지금 칼리두르는 이 꽃에 물을 주는 것에 온통 흠뻑 빠져있듯 했으니까.
“칼리두르 씨! 거기 말고 다른 곳에도 물을 줘야 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저기 반대편에서 칼리두르와 마찬가지로 꽃과 나무들에 물을 주고 있는 헤르시라는 여성 때문이겠지.
“올 해는 비가 너무 안 와서 큰일이네요. 칼리두르 씨께 제 일을 분담시킨 것 같아서 죄송한데.”
“아닙니다. 자연과 생물들의 공생을 추구하는 것이 소승의 구도. 의미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저기 나무 그늘에서 잠깐 기다려 보세요! 차갑게 식힌 젖은 수건이라도 가져다 드릴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베누스 신전 안으로 후다닥 뛰어 모습을 감추는 헤르시. 그런 여성의 뒤를 칼리두르는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녀석의 눈은 언제나처럼 냉담하기 그지없고 표정조차 변함이 없다.
마음이야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서늘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여성을 스토킹하는 사이코패스 같아서 내가 다 기분이 나빠질 느낌이었다.
“야, 칼리두르. 내가 한 말은 다 들었냐?”
“형제여, 다 들었습니다. 데르모드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셨다고-.”
“그래, 뭐 아주 안들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네.”
“데르모드는 저희 구도승 중에서도 떠오르는 신성과 같은 형제이지요. 그런 데르모드를 쓰러트리고 패배를 인정하게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뭐, 너랑 싸웠던 때의 기억이 도움이 되긴 하더라.”
칼리두르와 데르모드의 행동은 똑같았다. 때문에 이미 칼리두르와의 대결에서 한번 겪었던 바를 토대로 대응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칼리두르라는 녀석의 실력에 한 단계 점수를 더 높여주기로 했다.
아마도 이 녀석 적어도 대인전에 있어서는 정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히폴리테에게도 우위를 점할지 모르겠다.
물론 히폴리테라면 “일류의 싸움은 변수가 많다.”라고 말을 해오겠지. 최후의 결과가 정해질 때까지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웨폰 마스터라 불리는 해골 기사랑 이 녀석이랑 싸우면 어떻게 될까.
그 녀석은 해골이라서 인간이랑은 거리가 먼데. 그래도 팔 다리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형태기도 하고. 그래서 한참 궁금함을 느끼고 있을 때 칼리두르가 한 마디 한다.
“결전은 오늘 밤이라 하였습니까?”
“그래.”
“결국 그렇게 되는 군요. 사실 그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머니의 말을 진리처럼 따르는 이들이니….”
“어머니라면, 세계수?”
“그렇지요. 세계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나무입니다.”
세계의 중심이라.
그러고 보면 엘프들은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또 이 가이아 대륙 사람들을 무슨 변방의 오랑캐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녀석들이 자주 보였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나 같은 사마리안은 야만인 중에서도 변방의 야만인이었겠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엘프리데가 나를 어째서 마구 갈구고 때렸는지 살짝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내가 물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 밤 엘프리데를 잡으려고?”
“안 됩니다. 오늘 저녁은 헤르시 자매와 약속이 있는지라.”
“오, 약속? 저녁이라도 같이 먹기로 했나 보지?”
“신전의 뒷정리를 돕기로 했습니다.”
뭐야, 나는 또 뭐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해보니 데이트라는 게 별 거 있나 싶었다.
나도 루나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근사한 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좋았으니까.
칼리두르에게서 몇 달 전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과연, 지금 이 녀석에게 헤르시라는 아가씨와의 일보다 중요한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녀석들은 오늘 일을 끝낼 거라던데.”
“헤르시 자매가 정식 사제로 세례를 받는 것이 이틀 후. 그러니, 오늘 하루. 적어도 내일 까지는 일을 미룰 수 있으면 좋겠지요. 형제여, 추가적으로 의뢰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의뢰비용은 비싼데.”
“형제의 육체는 고강하나. 부족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체로 상체와 손재주에 공을 들인 나머지, 보법의 경우가 다소 경지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보법?”
“걸음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만약 이번 일을 무사히 도와주신다면, 제가 직접 깨우치고 터득한 보법을 전수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법이라.
나는 칼리두르가 기척도 없이 나의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을 떠올려 봤다.
나름대로 감각이 예민한 나의 뒤를 소리 없이 잡을 수 있는 것은 이 녀석 그리고 히폴리테 이렇게 둘 뿐이었던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오늘 하루. 엘프리데를 숨겨 주시는 것으로 충분 합니다. 그녀에게 가, 이 도시를 떠나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겠지요.”
“그 정도라면, 네가 직접 말해도 되는 거 아냐?”
“안 됩니다. 저희는-, 어머니의 개이므로.”
칼리두르는 그것으로 말을 끝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으나, 녀석의 냉담한 표정이 평소보다 더욱 딱딱하게 굳어 있는 기분을 느껴서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
*
*
심연에서 탈출한 백은의 장미.
그녀들은 부자들이 많은 동문의 치료소에서 치유를 받아 상태를 회복중이라고 했었다.
듣기로, 모종의 이유로 정신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듯했지만 신체 능력이나 모험가 생활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했던가.
“야, 들었어. 네가 날 구하러 심연까지 함께 했다며?”
동문의 치료소 물망초의 정원에 찾아가자, 4인 병실에 누운 델피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나를 향해 시선을 보내왔다.
서늘하고 너풀너풀한 치료소 특유의 가운을 걸치고 있는 그 모습들을 보니 치료를 한다기 보다는 그냥 요양을 하고 있는 듯했다.
“델피나, 어디 뭐 다치거나 한 곳은 없나보지?”
“뭐야,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듣던 것보다 더 자상한 것 같은데.”
“헛소리 하는 거 보니까 그리 문제는 없는 모양이네.”
“뭐, 그렇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주일은 쉬고 있는 게 좋아. 우리가 뭐, 바깥에 돌아다니며 떠들어댈 입장도 아니기도 하고. 망할, 왕성에서 감찰관들이 올 거라며. 신전 기사단에 감찰관에-. 이래서 대도시는 질색이야.”
아-, 칼카타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툴툴 거리며 자신의 침대 위에 걸터앉아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델피나였다.
스륵.
덕분에 녀석의 가운 앞섬이 살짝 흐트러지며 윗 가슴과 하얀 겨드랑이가 나의 눈을 찌르는 듯이 들어왔다.
처음부터 깔끔했던 것인지, 아니면 정리를 잘 한 것인지 무척이나 맨들맨들하다.
하지만 일부러 짐짓 못 본 척 표정을 굳히고 있자니, 구석 쪽의 침대에서 아령 비슷한 걸 기릭거리던 권각사, 리리가 한 마디 한다.
“델피나. 남자가 네 가슴과 겨드랑이를 봤다.”
스벌, 무슨 cctv같은 건가. 어떻게 알았지?
나는 조짐을 느꼈다. 혹시 델피나가 “저 새끼가 내 겨드랑이를 핥듯이 봤습니닷!”하고 경비대원들에게 말하면 나는 끌려가서 문초를 겪어야 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델피나는 흐트러진 자신의 옷깃을 여미며 가볍게 말했다.
“아? 됐어. 일부러 보여준 거야. 우리 때문에 고생했다는 데, 그 정도는 서비스 해야지. 닳는 것도 아니고.”
델피나는 생각보다 더 마음이 넓은 녀석이었구나. 과연, 은 등급 모험가 팀의 파티장이라는 것은 이 정도의 넓은 아량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겠지.
“상-.”
바로 그 순간 격투가 리리와 마찬 가지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여자가 입을 연다. 법술사, 에드윈이었나 그럴 것이다.
“제 가슴을 만지셔도 좋아요오-.”
아니, 실화냐?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하게 됐다. 가슴을 만지게 해준다니. 이런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온 건 아니었는데. 루나가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구나. 물론, 물론 이번 일은 거절 할 것이다.
“나는-.”
“푸흡-.”
“프흐흐.”
다만 곧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들에 나는 내가 놀림 받은 것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곳은 여성 모험가 4인이 사용하는 병실. 암사자들의 굴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숫사자가 아니고 한 마리 가젤이었다.
가젤 존나 약하다.
“아, 모처럼 재밌었다.”
그렇게 한참 웃었던 델피나가 자신의 광대뼈를 엄지로 슬금슬금 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를 보러온 건 아닐 거고. 엘피를 만나러 온 거지?”
“그래.”
“보러와 주는 남자도 있다니, 엘피는 좋겠네. 왜 우리는 하나도 없나.”
“그런 낭만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그래?”
나는 병실을 슥 둘러 봤다.
이 녀석들은 실버 티어의 모험가들. 그리고 엘프리데의 지금 동료였다. 솔직히, 나는 이 녀석들을 처음 봤을 때 그 깐깐하던 엘프리데에게 단순한 일일 파티원이 아닌 고정 동료라는 것이 생겼다는 걸 믿지 않았었다.
엘프리데에게 있어서 동료란 자신이 이용하기 좋은, 또 그들 또한 엘프리데의 화력을 이용하거나 다른 목적을 통해 접근한 녀석들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엘프리데의 동료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이다.
물론 그 점수를 뭣도 아닌 내가 내는 것도 웃기긴 한데, 아무튼 요약하자면 이 녀석들은 나름대로 믿을 만 한 녀석들이라는 것이었다.
“오늘, 엘프리데를 노리는 녀석들이 공격해올 거라고 하던데.”
칼리두르의 의뢰는 헤르시가 사제로 서원을 맺는 때까지 엘프리데의 포획을 뒤로 미루는 것. 여차할 경우 무력 충돌로 엘프 추격대를 막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거한의 엘프 데르모드를 제압했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만, 그 녀석의 옆에 있던 여성 엘프 미미르나, 과묵함을 지키고 있던 달토르라는 녀석까지 함께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특히 그 전광의 달토르라는 녀석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칼리두르가 이야기 했었다. 그 녀석이 하는 말이니, 분명 달토르라는 녀석도 상당한 수준에 달한 투사라고 보는 것이 좋겠지.
그렇다면 나 역시 동료 몇쯤은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히폴리테 자매는 심연에서 빠져나온 전후 처리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했나. 그럼 내가 알고 있는 녀석들 중 가장 강한 녀석들은 손에 꼽을 수 있어진다.
그리고 그 중에서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이 녀석들이고.
“알브하임의 엘프들이, 흐음-.”
내 설명을 들은 델피나는 방금까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엘피가 추격자들에게 쫒기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역시 요즘 너무 시끄럽게 지냈나. 그 녀석들과 싸우게 된다면, 이제는 정말 자작 나리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지는데.”
“너희는 엘프리데 동료 아니냐? 그럼 지켜주던가 해야지.”
“맞아, 동료긴 한데. 동료이기 전에 칼카타의 모험가기도 해서 말이야. 하, 고려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네. 엘피가 사형이라….”
고민하는 듯한 델피나에, 격투가 리리도 법술사 에드윈도 아무말 않고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야 이들과 힘을 합치려 했던 내 계획이 틀어지지 않나?
“너희들, 엘프리데 동료라면 조금 더 열정을 지녀야지. 이대로 엘프리데가 사형을 당해도 좋다는 거냐?”
“그런건 아니지만.”
“엘프리데는 너희가 자신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해줄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던데. 너희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뭐, 그렇긴 한데. 뭘 그리 흥분 했어? 진정해.”
“내가 흥분을?”
나는 어느새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을 받았던 모양이다. 엘프리데의 일이 엮이면 본래 나는 여러모로 진정하기 힘들긴 했다.
내가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 앉히고 있을 때 자신의 침대 맡에 놓인 검집에서 스릉-하고 검을 뽑아 날을 확인하는 델피나.
녀석이 말 한다.
“이봐, 사마리안. 네가 대답하기에 따라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수가 있다면 어쩔래.”
“내 대답?”
“너 말이야. 엘프리데를 지키는 것이 이번 의뢰라고 했지. 하지만, 정말 그거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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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회
알브하임의 엘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