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262
262 ? 경매장에 간 핫산 #9
엔야 사르디치의 진맥 상태는 내가 만났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기이했다.
스르륵.
내 새끼손가락 끝에서 엔야의 손목을 향해 기를 살짝 흘려 넣자. 지릿-하는 것이 그녀의 손목을 타고 팔 어깨 그리고 가슴과 배를 내달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녀의 하반신 아래로는 신호가 가질 않는다.
그녀의 하반신은 완전히 죽은 사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기운을 흘려 두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녀의 하반신으로 보낸 기(氣)는 배꼽 아랫부분에서 끊겨 자취를 감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녀의 반신은 죽어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나는 놀란 마음으로 말했다.
“혹시 다리나 발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제 바, 발을-!?”
무척 당황한 듯이 묻는 엔야.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하녀들이 스릉-하고 품속에서 날붙이를 꺼내는 소리를 낸다.
방금까지는 배경사물처럼 있는 줄도 몰랐던 하녀들인데, 갑자기 굉장한 압력을 뿜어내는 게 느낌이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야만인, 감히 아가씨의 몸을 엿보려 하다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 같이 혼란과 슬픔을 틈타 추행하려는 치유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당신에게 할애된 시간은 끝. 검을 꺼내기 전에 꺼지세요.”
자신의 아가씨를 지키려는 그녀들의 살기가 피부를 저리게 만들었다.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성들은 아마 이 눈앞의 여성 엔야와 비슷할 정도로 강할 듯하다. 과연 호위 시녀 같은 건가.
“어서 꺼지세요.”
“계속 자리에 남아 있겠다면 죽이겠습니다.”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모양새가 살벌하다. 그리고 아마도 이 여자들은 정말 나의 목을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귀족의 딸인가. 남작의 딸을 만났을 때에도 여성의 몸을 만지는 것에서 식은땀을 흘렸는데, 지금은 백작의 딸인 만큼 더욱 신경이 쓰인다.
내가 그런 느낌으로 살짝 긴장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었던 엔야가 자신의 손바닥을 스윽 들어 올렸다.
“괜찮습니다. 저희 가이아 대륙에서는 여성의 발을 소중히 숨기는 풍습이 있지만, 검은 광야의 땅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들었죠. 오히려 그곳에서는 여성이나 남성 할 것 없이 건강한 신체를 드러내는 것이 미덕이라 하던가요?”
엔야는 나의 의견을 검은 광야와 가이아 대륙의 문화적 차이 같은 것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엔야의 말에 옆에서 칼을 뽑아들 것처럼 펑퍼짐한 원피스 치마 아래에 손을 집어 넣은 하녀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몸을 드러내다니, 추악한 풍습입니다. 그러한 것을 아가씨께 권유하다니. 당장 이자를 내쫓아 목을 베겠습니다.”
다만 그러한 격정적인 하녀들의 반응과 다르게 엔야는 다시금 나름의 차분함을 되찾았다.
“저 엔야 사르디치는 대륙 너머에서 온 이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발을 보여달라는 것은 조금 당혹스럽군요. 저의 당혹감과 제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해주실 수 있나요?”
나에게 물어오는 건가?
“이해합니다.”
“사마리아의 핫산. 그대는 이방의 야만인답지 않게 제법 예의를 아는 분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녀자의 발을 보겠다는 뜻이 어떤 말인 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저의 발을 보자고 하는 까닭은-?”
“그게,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아, 아가씨, 이 자가! 이자가! 말도 안 되는 말로 저희를 현혹하려 들고 있습니다! 여성의 발은, 배우자에게만 보여주는 것이 예법! 하물며, 이런 야만인에게 아가씨의 신체를 내어주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사르디치의 200년 역사가 이방 야만인의 손에 더럽혀질 바에야, 제가 이 손으로 야만인을 베고 벌을 받겠습니다!”
하녀들은 그야말로 노발대발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태도는 이해하는 바였다.
델피나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발을 보여 달라거나 만지게 해달라는 것은 여성의 가슴을 보여 달라는 말보다 더욱 무례하고 파렴치한 말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밀려선 아무것도 안 된다. 나도 물러설 수 없는 각오를 하고 이 저택의 정원을 들어선 것이니 말이다.
내가 말했다.
“당신들, 책임질 수 있습니까?”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야만인!”
“만약, 이대로 제게 발을 보이지 않아 엔야 아가씨가 영원히 신체의 절반을 잃고 살아야 한다면, 혹 더 나아가 건강을 위협해 목숨에 지장이 생긴다면, 당신들은 책임 질 수 있는 겁니까?”
“뭐라구요?”
“제가 듣기로, 사르디치 백작님의 자녀는 엔야 아가씨 한 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문을 잇고, 더 나아가 후계를 낳아야 하시는 분이, 이렇게 고장이 나버린 것은 그야말로 도시의 불행. 더 나아가 왕국의 실태. 그걸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신들의 알량한 규범이나 예법 따위로 그것을 막겠다면, 그야말로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실 수 있는 건지 묻고 있는 겁니다.”
“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녀들이 크게 당황한 듯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적당히 단답과 우물거리던 야만인이 이렇게 장황한 말을 늘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지금의 나는 흡사 머리에 번개가 친 것처럼 혀와 입술이 핑핑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인지 나조차도 놀랍다.
오러를 연마하다 보니 아니라 오럴 쪽의 기능도 향상 된 건가. 물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슨 말로 더 쐐기를 박아 넣을까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엔야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의 핫산. 당신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겁니까?”
검은 베일 아래로 나를 바라보는 황록빛의 눈동자가 보이는 듯했다. 몸은 앙상하게 말랐으나 그 눈빛만큼은 아직 죽지 않은 듯하다. 생명의 삶에 대한 의지란 언제나 강한 것이니까.
내가 말했다.
“책임집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음, 내가 생각해도 그럴 듯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그것이 엔야의 마음을 감화 시킨 것인지, 그녀는 이내 베일 아래로 호탕하게 웃었다.
“파흐하핫-.”
병마에 시달리는 귀족의 아가씨라기보다는, 전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람들을 호령하는 장군 같은 웃음이 따로 없었다.
때문에 으르릉거리고 있던 하녀들도 모두 치마폭에서 손을 땐 체 다시 다소곳한 자세를 다잡았다.
그렇게 한참 웃던 엔야가 말한다.
“저 엔야는 천재라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재가 아니죠. 물론 바보도 아닙니다. 저의 위광, 사르디치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는 저를 떠받들려는 알량한 처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거짓과 모략을 간파하는 데에는 나름의 재주가 있습니다. 사마리안, 그대의 이야기에는 일체의 거짓도 없군요.”
“아, 아가씨 설마-.”
“좋습니다. 일찍이 미네르바 님께 축복과 은혜를 받은 이 몸. 이런 말을 하면 불경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마리안 그대의 기개에서 그때 그날과 같은, 드높은 하이포스의 섭리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어디 해 보십시오.”
됐다.
나의 혼신을 담은 언변이 통한 모양이었다. 잘은 모르겠다만, 이 머리 좋은 아가씨가 내 말을 자기 멋대로 오해하거나 형편 좋게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사실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은 별 것 아닌 이야기에도 쉬이 감화된다.
때문에 뱀기름을 파는 약장수들이 벌어먹고 사는 것이고, 여러 의학 약품이 팔려나가고 종교가 힘을 얻는 것이기도 했다.
살고자 하는 이들은 무엇에든 믿음을 쏟고 싶어 하는 법.
물론 나는 그러한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나름의 진짜다.
내게 믿음을 보였으니, 나 또한 이 여성에게 그에 합당한 대가를 보답할 의무가 있다. 날 믿은 것에 후회는 없어야 할 터.
나는 그런 느낌으로 여성의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자, 엔야가 어깨를 파르르 떤다.
“여, 역시 그래도 좀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후-. 잠깐, 잠깐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저야 상관없는데요. 그보다, 만약 당신이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이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게 될 수 있다면 하나만 보상을 약속해주실 수 있습니까?”
“보상? 보상이라면 무엇을-?”
“전쟁이 끝났을 때 주셨던 것을 똑같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스윽-.
내가 살짝 뒤를 돌아보자, 안쪽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문지기가 바깥을 향해 소리친다.
“약재사님들! 잠깐 휴식입니다!”
이것으로 내 면담 시간은 기존에 예정 되어 있던 1분을 아득히 넘어서게 됐다. 그런 나의 앞에서는 엔야가 후-하고 계속해서 숨을 골랐다.
그야 떨리긴 할 테지. 내 입장으로 보면, 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낯선 여성 앞에서 쥬지를 내밀어 보이라는 말과 비슷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야 자존심 말고는 잃을 게 없지만, 엔야의 경우 지금까지 귀족의 영애로 쌓아온 많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망설임은 배가 될 것이다.
스륵-.
마침내 엔야가 이불을 걷었다.
그러자 휠체어의 발받침 같은 것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는 그녀의 발과 다리가 보였다. 정갈하게 구두가 신겨진 발, 그것에 손을 대자 이 상황을 수긍하고 있던 것 같은 하녀들의 입에서 탄식이 났다.
“주여-.”
“이 환란을 어서 거두어가시기를.”
다만 그들의 기도가 길어지거나 말거나, 나의 손은 천천히 엔야의 다리로 향해 그 차가운 발목을 붙잡을 뿐이다.
“으윽-.”
그에 엔야가 배에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느낌이 느껴집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래도, 기분이 좀 이상해서….”
“그럼 저기, 먼 산이라도 보고 계시면 알아서 끝날 겁니다.”
“후-, 그럴 수는 없죠. 전부 제 두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혹시, 그래서는 안 될 까요?”
“아뇨, 그런 건 없는데요.”
스윽.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엔야의 구두를 벗겼다. 그러자 그 안에 소담하게 담겨 있던 그녀의 발이 결국 내 손바닥 위에 드러났다.
하녀들에게 정중한 시중을 받기 때문인지, 마비된 그녀의 발은 예쁘게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피부도 매끄럽고 말랑말랑하다.
스륵.
나는 그런 엄지발가락을 손으로 감싸 쥐어봤다.
“흥으, 으으-.”
그러자 아까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던 여장부는 어디로 갔는지 벌써부터 울 것 같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참고 있는 하녀들로부터도 파지짓-하는 기운 같은 것이 피부를 찌를 듯 뿜어져 나왔다.
나는 EOD폭탄 해체반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빨간 선, 파란 선, 잘못 뇌관을 건드리면 폭발해버릴 지도 모르는 폭발물을 해체하고 있는 기분. 실제로 그것과 별 다를 바 없겠지.
섬세하고 정확하고, 빠르게 끝낸다.
텁-.
이윽고 양 손바닥으로 발을 감싸쥐둣 붙잡은 나는 그것을 살짝 들어 올린 뒤 양쪽 엄지로 발 중앙에 위치한 용천의 혈을 눌렀다.
강하게 누르면 가장 강하게 자극 받는 부위. 죽은 자마저도 깨울 수 있다는 곳으로 하반신을 감싸고 있는 모로스의 상흔을 해주한다.
지릿, 지리릿-.
나는 나의 엄지가 저릿저릿해지며 기이한 감각 같은 것이 손끝으로부터 뿜어져 나가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흐어아, 아앗-!”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엔야 역시 높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이 자가, 이 자가 무슨 못된 사술이라도 행하고 있습니까?”
“바, 발이 간질간질한 느낌인데. 발에서 무엇이 올라오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게, 이게 대체-.”
좋아, 반응을 보니 효과가 있는 듯했다.
나는 며칠 동안 치료소의 봉사를 하며 익힌 것을 바탕으로 그녀의 발바닥에 강한 기운을 다시금 불어 넣었다.
지릿, 지릿-.
그러자 나의 몸에서 퍼진 기운 같은 것이 그녀의 발, 발목을 타고 종아리를 뻗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파들파들.
“응아앗-!”
그에 엔야는 번개라도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각은 그것과 다를 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몸에 막힌 혈과 기운들을 억지로 뚫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으아앗, 아억, 앙, 아항, 아아읏-!”
다만 그녀의 입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몹시 야릇한 소리가 났다. 그것에 당황한 것은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가만히 지켜보기를 그만 두고 그녀들은 나의 어깨와 팔을 붙잡았다.
“떠, 떨어지세욧!”
“야만인! 당장 그만두는 겁니닷-!!”
하지만 지금 내 몸은 딱 좋을 정도로 열이 받은 상태. 무릎까지 퍼뜨린 기운을 조금만 더, 허벅지까지, 허벅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퍼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응, 앙, 앗, 앙아앙-! 하아앗! 하아…!”
바들바들.
붉은 드레스 아랫부분이 기이한 짙은 색으로 젖는다. 그 모습에 하녀들은 그야말로 머리칼을 곤두세우며 화를 낸다.
“아, 아가씨! 이 귀축 변태! 무슨, 무슨 힘이 이렇게 강해!”
“사람을 불러와!”
“안 돼! 이, 이러한 모습이 발각되면 모두 끝이야!”
나는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목이나 어깨를 꼬집는 하녀들을 뒤로 한 채 점점 더 내면의 의식에 침전했다.
허벅지까지 밀어 올렸던 기운은 이제 아랫배에 도달해가는 상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이 기이한 반신의 마비도 해제될지 모른다.
구우우욱-.
마침내 엄지에 잔뜩 힘을 줘 혈을 부술 듯 자극한 나의 동작에, 엔야는 더 이상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물 밖에 빠져나온 고등어처럼 파닥거렸다. 이대로 가다간 휠체어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하녀들! 아가씨가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어깨를 붙잡아!”
“누, 누군데 제게 명령을-!?”
“내 몸이, 머, 멋대로-.”
나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가 잘 통한 것인지 나를 방해하고 있던 하녀들은 이내 엔야의 어깨와 팔을 휠체어에 내리 눌렀다.
좋아.
나의 기운은 이제 엔야의 아랫배에 위치한 단전을 향해가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 기운을 저장해놓는 가장 중요한 장소인 관원혈.
그곳에 나의 기운을 퍼뜨린다. 아주 작은, 물방울 만한 것이라도 좋다. 손톱보다 작은 겨자씨가 거대한 수풀을 이루는 것처럼.
내가 뿌린 생명 한 방울이, 이 여성 안에서 창대하게 자랄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시, 싫어엇-! 그만해! 그, 그만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어여, 어어, 그, 그만해에엣! 이, 이거 놔아앗!”
정신을 차린 엔야가 바둥바둥거리며 내 구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했다만, 그녀의 팔과 어깨를 누르고 있는 하녀들에 의해 무의미한 몸부림이 될 뿐이었다.
“이, 이거 놓아! 이거 놓으란 말이얏, 아으, 아응, 아아앗-!”
“아, 아가씨! 아가씨-! 죄송해욧! 제 몸이 제 말을, 제 말을 안 들어요옷-!”
“아아아앙-!”
파지지짓-.
마침내 벽력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엔야가 자지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팔을 붙들고 있었던 하녀들 또한 큰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쓰러진다.
파앗-하고 코에서 피가 뿜어짐과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나의 눈앞으로는 언제나처럼 과업의 수치가 들어온 다는 이야기가 보이고, 엔야는 걷어진 베일에, 잔뜩 눈물을 머금은 채 나를 올려 봤다.
“이게 대체….”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엔야. 엔야 사르디치. 당신이 절 믿는다면, 분명 걸을 수 있을 겁니다.”
스륵, 스륵-.
자신의 두 발을 허우적거리는 엔야.
그녀는 자신의 하반신이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물었다.
“이게, 이런 게 가능하다니, 당신은 대체, 대체 누구죠?”
스륵, 스륵.
이내 그녀는 자신의 휠체어를 딛고 온전히 땅에 바로 섰다. 그간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근육이 빠진 탓인지 갓 태어난 사슴처럼 비틀거리긴 했는데, 그럭저럭 휠체어와 벽을 잡으며 균형을 잡는다.
“아가씨-.”
“세상에, 아가씨가, 아가씨가 다시 일어나셨어.”
그 모습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하녀들이 무척 놀라워했다. 그들 중 하나는 눈물샘이 가벼운 것인지 울음을 보이기도 한다.
스륵.
엔야는 자신의 이마에 얹어진 검은 베일을 내리며 다시 물었다.
“대체 무엇을 한 겁니까?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 황록색 눈동자는 제법 깊고 맑아 보인다. 거짓말을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허세 같은 게 아니겠지.
“제가-. 누구였으면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