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44
47 차송진은 벨츠머츠가 싫다 (1)
‘일이 왜 이렇게 됐더라?’
벨츠머츠에게 질질 끌려가며 차송진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다.
생각해 보면 보육원에 버려졌던 그 순간부터 차송진의 인생은 진창에 처박혔던 게 아닐까.
게이트가 나타나고 전국에는 아이들을 맡아 기를 수 있는 보육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늘어난 보육원 중에는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운영하는, 이른바 불법 보육원의 수도 꽤 되었다.
불법적으로 보육원을 운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노동력 착취 때문이었다.
게이트의 등장으로 일자리의 수요는 폭발했지만, 검증받지 않은 위험한 물질을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차송진이 자란 곳도 그런 불법적인 일과 연계된 곳이었다.
자신이 생각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부터 차송진은 여러 곳의 공장을 전전하며 살았다. 픽픽 죽어 나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자신 또한 언젠가 저렇게 될 거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차송진의 목숨 줄은 길었고, 24살까지 살아남았다. 공장에서 어느새 차송진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 스물넷. 차송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각성을 하게 됐다.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며 차송진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였다.
늦어도 10대 중후반까지 각성을 마치는 평범한 각성자들과 달리 차송진이 각성한 나이는 무려 스물넷. 아카데미에 들어가기에도, 재능을 단련하기에도 늦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뭐가 됐든 ‘각성’이다. 차송진은 그날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뻤다.
그러나 상태 창에 떠오른 제 재능의 이름은 형편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귀환, 기껏해야 자신에게 화를 내는 공장장을 피해 회사 기숙사로 몰래 기어들어 갈 때나 유용한 능력 아닌가.
하지만 그 능력으로 차송진은 공장에서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고, 각성자 시험장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치렀던 그 시험으로 무려 시리우스의 부길드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차송진을 보며 말해 주었다. 당신이 우리의 히든카드가 될 거라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차송진은 이제 자신의 인생에 남은 게 반짝이는 성공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 될 놈은 안 되나 보다.
첫 출전에서 탑의 빌런에게 잡히더니, 그다음으로는 벨츠머츠라니.
처음 쪽지가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날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니, 이 경우는 구원자도 아니잖아! 그냥 납치잖아! 그것도 제2의 착취를 위한!
그럼 그렇지. 자신의 인생에 빛이 들 리가 없지.
‘네 인생이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언젠가 들었던 가시 돋친 말이 또 자신을 찔렀다. 차송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는 인파를 피해 잘도 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이미 모든 걸 체념한 차송진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학습된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체념 때문인지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에게 휩쓸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으슥한 골목이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그 골목길 끝, 차송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여기에서 나를 쓱싹할 계획은 아니겠지?’
골목길 끝에 다다르자 검은 모래가 그림자를 타고 내려왔다. 백화점 안에서 나타났던 바로 그 모래였다.
‘역시 그 습격은 네놈 짓이었잖아!’
뻔뻔하게 둘러대던 벨츠머츠가 생각나 차송진은 어이가 없어졌다.
모래 사이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어른이라고 부르기에는 미성숙한 얼굴에, 그림자가 내려앉은 듯 음침한 인상. 서늘한 눈빛.
벨츠머츠의 일원으로 이미 한 번 공개 수배가 됐던 네크로맨서, 한서현이었다.
‘저 녀석 수배 전단을 볼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 어린놈이 인생 참 더럽게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앞에 서니, 자신보다 몇 살은 어린애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림자를 깎아 빚은 듯한 어둑한 눈동자가 차송진을 훑었다. 그러나 그 음침한 시선도 잠시였다. 반짝, 그림자에 해가 들 듯 제 옆에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긴 녀석의 눈에도 빛이 들었다.
“보스!”
“어, 왔냐.”
“저 녀석은 뭐예요?”
자신을 가리키며 그렇게 묻는 녀석의 눈길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말했잖아, 탈출 능력자를 챙겨서 나올 거라고. 빨리 집에나 가자, 피곤하다.”
“설마 쟤도 집으로 데리고 갈 생각?”
“응.”
“진짜로요?”
“그래, 그리고 쟤가 뭐냐. 너보다 몇 살은 많아.”
“알 게 뭐예요. 세상에, 저런 놈을 데리고 간다니…….”
그렇게 말하는 놈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에 차송진은 문득 억울해졌다.
‘나라고 좋아서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눈빛에 차송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당장 도망쳤을 거라고!’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리가.
그림자에서 거대한 덩치가 나타났다.
‘히이익.’
흉터가 가득 박힌 몸의 남자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서현의 옆에 섰다.
진한 이목구비에 짙은 피부색, 거기에 지저분하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짐승 같은 눈까지.
모든 게 무서웠다.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무려 게이트에서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이잖아.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글쎄, 앞으로도 10년 이내에는 나오지 않을걸?”
가면을 쓴 남자의 말에 차송진은 어깨를 떨었다. 역시 자신을 데리고 온 건 자신의 능력 때문인가.
……싫다고 말해도 소용없겠지.
모래로 만들어진 새를 타고 이동하면서 차송진은 쉴 새 없이 속으로 자신의 운명을 욕했다.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능력을 써 봤자 차송진이 돌아갈 곳은 ‘탑’이다.
탑의 빌런이 나은지, 아니면 벨츠머츠가 나은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 다음 다시 탑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거다.
그렇게 벨츠머츠와 함께 차송진이 도착한 곳은 산 중턱에 있는 절벽 앞이었다.
“좋아, 들어가자고.”
“예?”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마치 어렸을 때 봤던 해리X터에서 나왔던 장면 같았다. 해리X터가 학교 입학을 위해 갔던 기차 정거장. 9와 4분의 3 정거장. 막혀 있던 벽 속으로 쓱 카트가 밀려들어 갔던 것처럼 꽉 막혀 있는 절벽 속으로 한 사람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 어어.”
“뭐 해, 들어가자고.”
가면을 쓴 남자가 차송진의 등을 밀었다. 차송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딱딱한 벽에 얼굴을 처박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차송진의 몸은 무사히 절벽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끔찍한 환영이 눈앞을 덮쳤다.
“으아아악!!”
“아, 맞다. 우리 팀으로 등록해 두는 걸 잊었네.”
남자의 말과 함께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놀란 가슴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허억, 허, 엄, 엄청나게 끔찍한 걸 본 거 같은데.”
허우적거리는 차송진의 등을, 남자가 후려쳤다.
“으악!”
놀란 차송진은 남자의 손짓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짜잔, 우리 기지에 온 걸 환영해.”
벨츠머츠의 기지. 첫인상은 무척이나…….
‘이, 이게 뭐야.’
눈앞의 남자는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송진의 눈앞에 보이는 건 벽돌들의 무덤이었다. 그래, 벽돌들의 무덤. 그냥 벽돌을 얼기설기 쌓아 놓은 걸로 보이는 건물은 마치 여섯 살짜리 애들이 지은 것처럼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멋지지?”
‘진심이냐.’
차송진은 농담인 줄 알았지만, 가면을 쓴 남자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묻어났다. 진심으로 이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거다, 저 남자는.
차송진의 시선을 느낀 걸까. 헛기침을 내뱉은 남자가 문을 열고 차송진을 그 안으로 안내했다.
“큼큼, 안으로 들어갈까.”
혹시나 건물 안은 괜찮을까 했지만, 건물의 안은 더 형편없었다.
‘어두워! 너무 어둡다고!’
조명을 사방에 달아 놨는데도 지나치게 어두웠다.
‘벽, 벽이 죄다 검은색이잖아?’
벽지를 온통 검은색으로 해 두니까 이렇게 어둡지.
가뜩이나 음침해 보이는 한서현과 덩치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가 완성되었다.
그래도 거실에 있는 가구는 제법 멀쩡했다.
‘꼭 모델하우스 같네.’
가구 카탈로그에서 그대로 꺼내 온 것 같은 구성이었다.
“여태까지 힘들었을 텐데, 편히 앉아서 쉬어.”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가면을 벗었다. 차송진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 의외로 괜찮게 생겼잖아.’
벨츠머츠라는 편견 때문일까. 끔찍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가면 아래에 있던 건 제법 깔끔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지나치게 수상쩍어 보이는 눈매라는 걸 제외하면, 제법 미남 축에 들 수 있을지도. 그러니까 너무 야비해 보이기는 하는데…….
‘아니, 잠깐. 내가 왜 저 인간 얼굴 품평을 하고 있는 거지?’
차송진이 화들짝 놀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집에 왔으니까 자기소개나 해 볼까.”
“자, 자기소개요?”
태연하게 자기소개라니. 지금 이 상황에?
“그야, 정보의 불균형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해치잖아. 게다가 일단 이름 정도는 알아 둬야 서로 간에 편하지 않겠어?”
누가 봐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상식적인 발언이라 순간 당황했다.
“그, 그야 그렇지만…….”
“자, 나부터 시작할까. 내 이름은 강이신. 올해 스물둘이고. 벨츠머츠의 리더를 맡고 있지. 션이라고 불러도 좋아.”
“스물둘?”
어려 보인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다. 그 벨츠머츠의 수장이 올해 겨우 스물둘밖에 안 됐단 말인가. 차송진의 눈빛에 강이신이 실실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보기보다 정신연령은 높은 편이라.”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맞다, 스물둘이. 꼭 어린놈들이 자기가 나이보다는 성숙하다고 말하곤 하지. 그다음으로 자기소개를 한 건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한서현이었다.
“한서현.”
덜렁 던져진 말에 강이신이 타이르듯 말했다.
“서현아, 제대로 소개해야지.”
“뭘 제대로 소개해요. 어차피 나에 대해서는 다 알 텐데.”
“보통 사람들은 수배 전단지를 그렇게 열심히 안 본다니까.”
그렇게 말한 강이신이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봐, 나도 못 알아봤잖아.”
저 말은 뭐야? 강이신, 저 사람도 수배 전단지에 올라가 있다는 뜻인가. 그때, 차송진의 뇌리에 얼핏 몇 달 전 봤던 뉴스가 스쳤다.
‘그, 그, 그 살인범이잖아!’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한 놈이 살인마가 됐다고 하도 뉴스에서 떠들어 대서 도저히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었지.
“가, 강이신!”
“오, 이제 기억이 났나 보네.”
저렇게 상큼하게 말할 내용은 절대 아닐 텐데! 자신이 살인 용의자라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밝히다니.
역시 멀쩡해 보여도 이들은 빌런이었다.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됐다.
어쩌다 이런 놈들과 엮이게 돼서는…….
“한서현. 벨츠머츠에서는 토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니, 근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아무도 나를 토트라고는 안 부르는데…….”
“이왕 정한 활동명 말하면 좋잖아.”
“어쨌거나 네크로맨서고. 그게 전부야.”
“나이는?”
“열여덟.”
강이신과 스무고개처럼 주고받은 말이 끝났다. 그다음 두 사람의 시선이 차송진에게로 쏠렸다.
‘정말 해야 하는 건가. 해야겠지? 하기 싫다고 말하면 큰일이 나겠지?’
차송진은 치밀어 오르려는 눈물을 꾹 눌러 삼키고 입을 열었다.
“차, 차송진이고요. 올해 스물다섯, 다섯 됐고요…….”
“오, 나보다 형이네.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강이신의 말에 차송진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요. 됐, 됐습니다.”
“좋아, 나도 형이라고 부르기 싫었거든.”
부르기 싫으면 왜 물어본 건데! 툭 튀어나올 뻔한 말을 애써 억누르며 차송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능은 ‘안전지대로의 귀환’입니다아.”
“귀환? 탈출이 아니고?”
“예, 그게 탈출이라는 게 조금 더 극적이라서 그렇게 부르고는 있는데요. 시스템 창이 말한 건 귀환이 맞습니다.”
“조건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렇게 묻는 강이신에게 차송진은 자신의 밑천을 탈탈 털어 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제가 능력을 사용하면 미리 안전지대로 설정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안전지대를 설정하려면 최소 3일은 머물러야 하고요. 한 번 능력을 쓰고 난 다음에는 못해도 사흘 정돈 쉬어야 해요.”
쿨 타임이 너무 길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도 재능을 사용할 수 있단 장점은 그 모든 단점을 덮고도 남는다. 게이트 안이든, 어디든. 차송진은 자신이 ‘안전지대’로 설정해 놓은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게이트를 공략하는 공략 팀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보험은 없었다. 시리우스가 괜히 차송진을 그렇게 꽁꽁 숨겨 둔 게 아니었다. 누구든 차송진의 능력을 알아내면 차송진을 훔치려 들 테니까.
그러니 이 빌런 놈들도 자신을 붙잡은 거겠지.
‘차라리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낫지, 범죄 현장에서 내빼려고 날 데리고 다닐 셈이면서.’
생각에 빠진 차송진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김재호.”
달랑 이름 세 글자. 지나칠 정도로 짧은 소개에 차송진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걸로 끝?”
강이신이 김재호를 대신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연한 반응에 발끈한 건 차송진이 아닌 한서현이었다.
“나한테는 제대로 소개하라면서요!”
“재호한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보냐?”
“뭐, 무리겠죠.”
저 사람의 정체가 대체 뭐길래?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는 김재호는 자신에 대한 험담이 오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태연해 보였다.
세 사람을 둘러본 강이신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배고프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얘기할까?”
제1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