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164
51 미국, 기회의 땅 (3)
“빌어먹을 놈의 새끼들.”
혈마 추마걸은 잔뜩 열이 올랐다.
탑의 빌런들이 각범부에 잡혀간 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마걸은 그들의 정보조차 알 수 없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벨츠머츠의 주요 증인이 실종된 일로 각범부의 보안이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곳으로 뛰어 들어가 그 녀석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정보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경비가 삼엄한 곳으로 뛰쳐 들어갈 순 없었다.
인형사는 담담히 말했다.
“거긴 철옹성이야. 아무리 영감이라도 거기로 가면…….”
아무리 각범부가 타락했다고는 해도 중범죄자들이 갇히는 감옥이 허술할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갇혀 있을 제미니가 걱정되어 추마걸은 다리를 달달 떨었다. 다른 놈들이야 알 바가 아니었지만, 제미니만큼은 그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 조그만 것이 지금 무슨 고초를 겪을지 모른다고!”
혈마 추마걸은 자신을 놀리면서도 귀엽게 구는 그 작은 녀석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 편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마치 제 피붙이처럼 아꼈다.
“어떻게든, 그 녀석들을 구해야 해.”
혈마 추마걸이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인형사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그들에게 설록진 의원이 접근해 왔다.
인형의 입을 빌려 설록진이 말했다.
“탈출하게 해 드리죠.”
“어떻게?”
“방법은 이쪽에서 생각할 테니, 혈마께서는 가장 잘하는 일을 하세요.”
그 말에 혈마는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 * *
유타주에 도착한 날, 우리는 다음 일정을 서두르는 대신 호텔에 들어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5시간이 걸린다고 했던 여정은 8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주변에 차가 꽉 막힐 정도로 밀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귀성길도 아니고, 늘 텅 비어 있는 미국의 도로가 이렇게까지 막힌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음, 근래 유타주 근처에 게이트 발생이 폭발적으로 늘어서요. 그 소식을 들은 용병대가 다들 이쪽으로 몰려서 말이죠. 저 인파 중 반은 에이전시와 상인들이겠지만요.]
[게이트 발생이 폭발적으로 늘어요?]
[예.]
그런 기사는 본 적이 없는데.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에 노먼이 덧붙였다.
[그만큼 용병대도 많이 모이고 있으니까,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겁니다. 고등급의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도 아직은 없고요. 오히려 골든데이로서는 운이 트인 거예요. 게이트 발생이 늘었다는 건 공략할 수 있는 게이트의 수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설명을 잇는 노먼에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확실히 이 주변에 무언가 문제가 터졌다는 기억은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 기억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과거의 나는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설록진 밑에서 구르느라고 바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뭐 감이 잡히는 거라도 있습니까?’
━게이트의 발생이 많아졌다라. 글쎄……. 나라고 기억이 온전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지.
‘영 도움이 안 되는데요.’
━내 존재만으로도 네게 도움이 되고 있는데, 무슨. 쩝, 어쨌거나 좋은 징조가 아니긴 하다. 이렇게 마나 농도가 높은 건 이상해.
레이의 말대로 이 주변의 마나 농도는 이상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나 농도가 다른 곳보다 짙은 거 같지 않아?”
내 말에 우리 중 감각이 제일 예민한 김재호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한서현도 가만히 눈을 감고 마나를 느끼더니 곧 내 말에 긍정했다.
“확실히 공기가 조금 더 무거운 느낌이 들긴 하네요.”
“최근 이 근처에서 게이트 발생이 늘었대. 그 영향이든가, 아니면 마나가 늘어서 게이트가 많이 생기는 것이든가.”
“어느 쪽이든 좋은 예감은 안 드는데요.”
한서현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차송진이 있는 한, 위기 상황에서 한 번은 도망칠 수 있다는 거겠지.
내 시선의 끝에 걸린 사람을 눈치챈 한서현은 입술을 삐죽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도로 중간에는 터지지 않았던 휴대폰 신호가 잡히면서 쌓여 있던 문자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문자는 모두 남주현에게서 온 거였다. 요 며칠 내내 쏟아졌던 쑤어하오주에 대한 하소연일까 했지만, 생각과는 다른 정보가 문자 창에 담겨 있었다.
“탑의 빌런들이 탈출했대.”
내 말에 차송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 그래요?”
“그래. 그 과정에서 각범부 본부가 날아갔다더군. 혈마가 제대로 날뛴 모양이야.”
언제까지 탑의 빌런들이 얌전히 갇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피해가 컸다.
그냥 피해가 크다 수준으로 말할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말해야 할 정도다. 당장 각범부 소속 각성자가 열이나 죽었고 구치소가 반파되어 그곳에 갇혀 있던 다른 범죄자들까지 빠져나갔다니까.
과거에는 없었던 일인 만큼, 이 피해가 어떻게 각범부를 흔들지 전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걸 기획한 게 설록진이라는 거였다.
‘이걸 트집 잡아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겨우 테러를 덮었더니 그다음으로는 각범부 흔들기에 들어간 거다.
그 각범부에 들어갈 도채희와 정호산이 걱정되었지만, 그 생각은 애써 털어 냈다. 더는 그 녀석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으니까.
‘어떻게든 잘하겠지…….’
아니, 하필이면 이럴 때 꼭 각범부에 들어가야겠냐고!
현장에 남아 있던 CCTV에 따르면, 범인은 혈마 추마걸 그리고 인형사였다. 인형사의 움직임은 혈마의 압도적인 활약상에 묻혔다. 그걸 활약상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혈마 추마걸이 지나간 곳에 남은 건 피. 오로지 피뿐이었다. 살점도, 뭣도 없었다. 시체조차 제대로 찾을 수 없어, 현재 각범부는 사망자를 제대로 발표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리저리 튄 핏자국만으로 신분을 가려내야 할 판이라니까. 덕분에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단다.
남주현이 여론을 어떻게든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그야, 자극적인 뉴스가 하루에도 몇십 개씩 쏟아질 테니.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한국에 가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일단, 지금은 이곳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완전히 게이트 브레이크를 정복하고 게이트 관리를 시작한 로스앤젤레스와는 달리 유타주는 아직까지도 게이트 브레이크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전부 처리하지 못했다.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호주처럼 이곳에도 ‘벽’이 있다는 뜻이었다.
몬스터들을 막는 저지선, 저 벽 바깥에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지. 호주만큼 상황이 심각하진 않을 테지만, 확실히 조심해야 했다.
노먼은 이 벽 안에서 우리가 머물 숙소를 구해 왔다.
[겨우 자리를 구했습니다.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어디든 괜찮습니다. 호텔에 가는 것만큼은 사양이거든요.]
이 정도로 인파가 모인 가운데서 벽 안쪽의 자리를 구한 것만으로도 C급 용병대 에이전시로서는 선방한 거다.
아니었더라면 벽 바깥의 호텔에서 머물러야 했을 테고, 게이트를 오갈 때 무척이나 불편해졌을 거다.
벽 안쪽의 숙소는 호주와 비슷했다. 욕실과 부엌이 갖춰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벙커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용케 4인실을 구했다 싶었다.
호텔보다는 확실히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대신 벽을 나갈 때의 절차가 대폭 간편해졌다.
이 숙소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에이전시와 계약된 용병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숙소에 짐을 풀어놓은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호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여유로웠다.
확실히 여긴 절박하다는 단어보다는, 활기차다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얼굴에도 다들 자신감이 넘쳤고 말이다.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노먼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벽 안쪽에 있는 특수 밴에 올라탄 노먼은 우리를 앉히고 간단하게 오늘 우리가 공략할 게이트에 대해 브리핑해 주었다.
C등급으로 추정되는 게이트를 공략할 것이며, 위치는 이곳에서부터 15분 거리. 오갈 때는 이렇게 밴을 타야 하니, 공략이 끝나면 연락을 달라는 말이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공략이 되지 않을 시에는 구조 팀을 파견할 텐데, 그 경우에는 추가적인 비용이 들 수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그 긴말들을 내뱉는 노먼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역시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반복한 프로라서 그럴까.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 말을 모두 귀담아들었다. 노먼의 설명이 끝난 뒤 나는 그 내용을 팀원들에게 번역해 주었다.
한서현과 김재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차송진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겨우 C급 게이트인데 뭘 그래. 전에는 S급 게이트에 갔잖아.”
“거기에서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기가 죽은 차송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참.
“그때보다는 훨씬 괜찮을 거야.”
내 위로에도 차송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라고. 나중에 어딜 가든, 이 경험은 도움이 될 거야.”
“예에.”
노먼은 게이트 앞에 우리를 내려다 준 뒤 떠났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배낭을 체크했다.
C급 게이트라고는 해도 만만하게만 볼 건 아니다.
예전에 바다 기후인 게이트에 들어가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공략 팀도 있었거든. 겨우 C급에 불과한 게이트에서 무려 네 팀이 전멸했지.
다섯 번째로 들어간 공략 팀에 있던 빙결 능력자가 얼음으로 뗏목을 만들어 띄워 겨우 공략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뭐, 우리 팀이야 내가 있으니 어떤 환경에서도 대충 대응이 될 테지만, 그래도 만사가 불여튼튼이다.
게이트 안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삼겹살 챙긴 거 잘 있지?”
“예.”
한서현이 나를 조금 한심하다는 듯이 흘겨본 것 같지만, 게이트 안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이 그렇게 꿀맛이라고 들었다고!
준비가 끝난 걸 확인한 나는 줄을 세웠다.
김재호, 한서현, 차송진,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 이 순서대로 선 우리는 초록색 게이트를 통과했다. 긴장한 기색으로 눈을 깜빡였지만, 다행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숲이었다.
“운이 좋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최적의 온도에 숲 지형이라니.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숲 지형의 문제는 저 우거진 숲 너머에 무슨 몬스터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어느 세계에 떨어졌는지 대략 유추가 가능하고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감이 오지만 이렇게 특징이 없는 세계는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도 문제다. 몬스터가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그들의 흔적을 가려 줄 테니.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에게는 장애가 될 수 없다.
내 눈짓에 한서현은 스태프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검은 모래가 흘러나와 주변으로 흩어지고, 흑마력을 머금은 하운드가 공중에서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최강의 정보원이 있으니까.
제16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