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1
9 얽히는 관계 (1)
“현장에서 도주라, 이거 아주 죄질이 나쁘네.”
강이신의 사진이 붙은 보고서를 앞에 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인상을 구겼다.
잡티 하나 없이 흰 피부는 찹쌀떡만큼이나 뽀얗고 말랑해 보였다. 둥글고 큰 눈동자는 마치 귀여운 강아지처럼 반짝였다. 칼같이 자른 단발마저 귀엽다는 인상을 줄 만큼 여자는 맑고 청초한 미모를 뽐냈다.
그녀의 이름은 도채희. 귀여운 인상과는 정반대로 흉흉한 별명을 잔뜩 달고 있는 각성자 범죄 전담 팀의 팀원이었다.
눈앞의 개요서를 모두 읽어 내린 도채희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놈이 모든 일의 주모자라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그녀의 상관이자 브레이크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박철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채희야, 내가 뭐랬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전까지 확신은 금물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무슨 사건이든 가장 큰 이익을 얻는 놈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했었죠.”
“이득이 큰지 어떤지는 모르지. 피해자들을 구한 데다가 마나석까지 따로 챙겨 줬다지 않냐. 그냥 나쁜 놈이라고 땅땅 하기에는 좀.”
박철완의 말에 도채희는 탕, 하고 책상을 두드렸다.
“아니죠. 그건 회유일 수도 있어요.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거나 받고 입 닥쳐 줘라.”
“죽여서 입을 막는 게 제일 편할 텐데 굳이?”
“이번이 초범인 놈이잖아요. 아직까지는 머릿속이 말랑말랑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범죄자는 범죄자. 현장에서 다섯이나 죽였다잖아요?”
도채희의 눈가에 살기가 돌았다. 마치 말티즈나 포메라니안처럼 깜찍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별명이 미친개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번 물면 웬만해서는 사건을 놓지 않는 데다가, 범죄의 냄새만 맡아도 미친 것처럼 눈을 까뒤집고 짖기 시작하니.
“손에 피를 묻힌 이상 이놈은 갱생의 여지도 없는 범죄자예요.”
그렇게 말하는 도채희의 눈에서는 살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범죄자들을 지나치게 증오한다는 건 박철완도 늘 지적하는 도채희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그녀가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으로서 박철완은 그녀를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가족을 전부 범죄자에게 잃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그때는 인프라가 턱도 없이 부족했다. 당시 막 만들어진 각성자 범죄 전담 팀에 팀장으로 임명받았던 박철완은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안일한 사람들의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비극, 사고가 아니라 인재.
각성자의 몸값은 너무 높았고, 공무원직에 종사하는 각성자의 수는 한정적이었다. 체포까지는 각성자가 맡았지만,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를 수송하는 건 일반 경찰의 몫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아티팩트로 무장시킨 다음이긴 했지만, 진짜 각성자를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렇게 탈출한 각성자는 출퇴근 시간 도로를 점거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인질극을 벌였다. 그 인질극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해야 셋. 현장에서 구조된 도채희는 눈앞에서 끔찍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전부 잃어야만 했다.
피투성이의 그녀를 발견하고 박철완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그날 그녀를 거둬 지금까지 그녀를 키워 오고 지켜보면서, 박철완은 그녀의 생각을 고치는 데에 실패했다.
어떻게 그녀를 말릴 수 있을까.
‘저처럼 단호하게 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범죄자는 범죄자답게 인권 따위 챙겨 주지 말고 강경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제 가족은 그날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예요.’
몇 번이나 과잉 진압으로 끌려가 문책을 받으면서도 도채희는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위는 개나 주고 벌써부터 그놈을 잡아 족칠 생각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후, 속으로 한숨을 내쉰 박철완이 말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채희를 말려야만 했다.
“오늘 낮에 설 의원님도 여기 오신 거 알잖냐. 이번 사건은 그만큼 중해. 전 대한민국이 다 지켜보고 있는 사건이라고.”
이번 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사건이 되었다.
피해자로 추산되는 인원만 백여 명. 게이트가 닫히는 바람에 증거는 모두 사라졌지만, 현장에 있었던 증인이 무려 길드의 마스터인 김명철이었다.
그가 직접 공언했다.
저 안에서는 비인륜적인 범죄가 일어났다고. 그의 비서가 직접 목격했다는 시체의 수만 해도 수십 구. 그중 당일 살해당한 다섯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무리한 던전 채굴 도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까지 있었다.
현장에서 구출된 피해자들의 참담한 몰골도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이번 사건은 더더욱 커졌다.
증거가 없으니 더욱 현장은 혼란스러워졌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모두 몰려들어 자신의 가족을 찾으려 들었으니까.
반(反)각성자 측의 대표로 이름이 높은 설록진 의원도 총대를 메고 이 사건을 비판하기에 앞장섰다. 수없이 많은 법률로도 아직까지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에 참담한 심경이라고 밝힌 그의 말에 도채희는 뒤돌아서 눈물까지 훔쳤다.
친구의 실종을 조사하다가 이 일을 알게 되었다는 길드의 루키 정호산의 사정이 알려져 인터넷에서 한 번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에는 여러 사람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질 좀 죽이고, 으응?”
박철완은 반쯤 빌다시피 도채희에게 부탁했다. 막상 도채희는 그 말을 듣고서도 뾰로통한 얼굴로 이렇게만 말했지마는.
“피해자 인터뷰에 무슨 성질부릴 일이 있으려고요.”
박철완은 도채희를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 *
“각성자 범죄 전담 팀 소속 도채희 경위라고 합니다. 한조희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이미 대략적인 사건 경위를 모두 알고 있는 도채희가 굳이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하나뿐이다.
이 일의 주범이라고 생각되는 강이신과 접점을 가진 이는 한조희뿐이었다.
곧 죽을 거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피해자 중 유일하게 연명 치료에 들어가 인터뷰를 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도 그 이유가 됐다.
하지만 도채희의 인터뷰 시도는 시작부터 좌절됐다.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형이 알고 있는 건 모두 말씀드렸다고 알고 있는데요.”
덥수룩한 앞머리로 자신의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는 소년은 축축 처지는 우울한 목소리로 도채희를 막아섰다.
아마도 얘는 한조희의 동생, 한서현이겠지.
도채희는 그의 신상 명세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올해 열일곱,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고 했지. 기가 질릴 정도로 우울한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다 빠질 정도였다.
집안의 가장이 저런 상태가 되었으니 우울할 만도 하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서 추가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에요.”
“형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어요. 거기에 나와 있는 대로 강이신 그 사람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모른다고요.”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대답을 들어 버렸다. 도채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꼭 본인에게 확인해 봐야 하는 게 있어서…….”
“형 상태가 안 좋아요.”
한서현은 도채희의 말을 훅 하고 끊었다. 절절하게 가슴을 울리는 그 말에는 도채희마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가족이 시한부가 돼서 돌아왔어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게 그리 힘든 요구일까요?”
그제야 도채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내가 실수를 했네요.”
범죄자들에게는 나찰과도 같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게 도채희였다.
도채희의 진심 어린 사과에 마음이 풀린 듯 한서현도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속으로 혀를 찬 도채희가 메모지에 질문을 적어 한서현에게 건넸다.
“질문지를 남겨 드리고 갈 테니 혹시라도 나중에 답을 해 줄 수 있다면 부탁드려요. 그 나쁜 새끼를 꼭 잡고 싶거든요.”
그렇게 도채희는 별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병원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강이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강이신의 절친한 친구. 정호산.
여태까지는 붉은개 길드의 보호 아래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질 거다.
도채희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붉은개 길드로 향했다.
* * *
도채희가 가고 나서 한서현은 침대 옆에 앉았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던 한조희가 슬쩍 눈을 떴다.
“갔어?”
“그래. 명함이랑 인터뷰지까지 남겨 놓고 갔던데.”
한서현은 도채희가 남긴 인터뷰지를 확인하며 혀를 찼다.
“오, 범죄를 저지를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현장에서는 협조해 줬는지. 따로 연락한 적은 있는지. 참 나, 이런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한서현은 그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넣었다. 그 과격한 행동에 한조희가 놀라 눈을 찡그렸다.
“서현아.”
“저런 일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푹 쉬면서 회복에나 전념해.”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는 한숨을 쉬었다. 한서현이 울면서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당장 퇴원하자. 여기 병원비가 얼만지나 알아?”
“알지, 아는데 여기서 나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하루? 이틀?”
한서현의 말에 한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이곳에 나가면 자신은 곧장 쓰러질 테니까.
하루에 세 번 자신의 몸에 스며든 마나를 빼내는 작업을 해 주지 않으면, 골수에 침투한 마나가 곧장 장기를 녹일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순 없었다.
망할 놈의 돈 때문이다.
“병원비는 어떻게 마련했는데.”
“붉은개 길드에서 보상금 조로 얼마간 챙겨 줬어.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그럴 돈이 있으면 너한테 써야지. 아카데미에…….”
“형은 지금 이 상황에도 그런 얘기야?”
참았던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인상을 구긴 한서현이 소리쳤다.
“애초에 그 빌어먹을 놈의 아카데미 실습비만 아니었으면 형이 이 지경이 될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한조희의 눈에는 한서현의 새하얗게 물든 손마디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플 텐데.
“너 때문 아니야.”
한조희는 힘없이 그렇게 말했지만, 한서현에게 그 말은 닿지 않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한서현이 한조희에게 말했다.
“돈은 걱정하지 마. 일단 형은 치료 잘 받고 회복하는 거나 생각하라고.”
한서현은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한조희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회복에만 전념하라고 했지만, 선납한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2~3주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한조희가 가지고 온 마나석과 그 둘이 지내던 집의 보증금을 빼내서 가능한 일이었다.
붉은개 길드가 보상금 조로 얼마를 건네긴 했지만, 막대한 병원비를 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앞으로 들어갈 엄청난 병원비를 구해야 한다.
강이신, 그 남자를 따라다니면 뭐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희대의 살인마에 범죄자가 등장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자신의 형을 살려 둔 걸 보면 그리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다.
막대한 등록금이 들어가는 아카데미는 바로 관둘 생각이다.
아카데미를 관뒀다는 걸 알면 형은 난리를 칠 테지만 형의 목숨값으로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자신의 재능이 징그럽다고 떠들어 대는 놈들투성이였고.
골목 구석에 무릎을 꿇은 한서현은 손끝에서 검은 마력을 풀어냈다. 쓰레기통 틈에 죽어 있던 쥐가 한서현의 마력을 받아먹고 되살아났다. 새빨간 눈을 빛내는 쥐를 본 한서현이 말했다.
“찾아봐, 그 사람.”
한서현의 명령을 받은 쥐는 찍찍거리며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제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