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37
64 welcome (1)
카지노에서 번 돈은 전부 존에게 줘 버렸지만, 다행히 다이애나를 턴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갈 돈은 충분했다.
한서현이 불러낸 검은 구멍 사이로 손을 넣어 돈을 꺼내는 내 모습을 본 에드워드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 마법의 구멍은 뭐야?]
[마법의 구멍이라고 하지 말아 줄래, 느낌이 이상하니까…….]
[뭔데 구멍에 손을 넣으니까 돈이 막 나와?]
[전에 넣어 뒀던 거야.]
나에게 무슨 뚝딱뚝딱 금을 만들어 내는 도깨비방망이라도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에드워드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 줄 수도 있으니 다음부터는 몰래 꺼내야겠다.
━몰래 구멍에서 뭘 꺼내는 꼴이 더 수상해 보일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하게 돈을 은행에 입금해 두면 안 되는 거냐?
‘그야, 뭔가 이렇게 현금을 쌓아 두고 그때마다 유통하는 게 훨씬 악당 같으니까요?’
━참 나, 별걸 다.
한서현은 구멍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에드워드를 동냥 온 거지를 쫓아내듯 성의 없는 손짓으로 쫓아냈다.
“아저씨 돈 아니니까 절로 가세요.”
“아저씨라니…….”
막상 그 말에 타격을 받는 건 나였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흠, 정신연령으로 따지자면 너도 아저씨가 되기엔 먼 것 같으니 안심해라.
‘신체 나이도 아니고 정신연령이요?’
정신연령으로 따지자면 내가 여기서 제일 아저씨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레이가 더 말을 잇지 않았기에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어쨌거나 그 돈으로 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가는 티켓을 샀다.
사람은 총 다섯이었지만, 내가 산 티켓은 네 장뿐이었다. 그야, 준비된 신분이 4개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국외로 나가는 검사는 생각보다 꼼꼼해서 미리 준비해 둔 신분증이 아니면 통과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뭐, 돈이 많으니 새로운 신분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 믿음직한 신분 위조 업자를 찾아 의뢰하겠나.
‘절대로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거 아닙니다. 예? 시간은 금이라잖아요.’
━따지자면 금도 돈 아니냐?
‘어라?’
━그냥 솔직하게 말해라.
‘합법 무임승차가 가능한데, 돈을 쓰는 건 왠지 아깝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 그 정신이다! 늘 떳떳하라고! 구질구질하게 괜한 변명을 말해대는 것보다는 이쪽이 낫다!
다음부터는 괜한 변명은 하지 말라는 레이의 말에 나는 주먹만 꽉 쥐었다. 젠장! 언젠가 이 수모를 갚아 주고야 만다.
그때, 종아리 쪽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으윽!”
나는 내 다리를 쥐어뜯는 김재호의 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좀만 참으라니까!’
내리면 맛있는 걸 잔뜩 사 주기로 했는데! 그 잠깐을 못 참냐!
기내식을 놓친 김재호의 분노는 대단했다.
* * *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도착한 우리는 수속을 마치자마자 우리 숙소로 향…… 하지는 못하고 국밥집으로 달려갔다.
일단 화가 난 김재호의 입에 뭐라도 물려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필 귀국 후 첫 식사 메뉴가 국밥이 된 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입맛이 중후하신 우리 팀 대마법사 때문이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뚝배기를 들어 올려 국물을 원샷하는 한서현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쟤도 어울리지 않게 아저씨 같은 면이 있다니까요.’
국밥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에드워드도 생각보다 잘 국밥을 먹고 있었다. 섣부른 첫 수저질에 혀가 덴 다음에 계속 혀를 내밀고 있는 꼴이 좀 꼴 보기 싫긴 했지만, 그 혀를 하고서도 꾸역꾸역 그릇을 전부 비우는 게 좀 기특하다고나 할까.
‘뭐든, 잘 먹는 사람이 좋죠.’
깨작깨작대면 뭐랄까, 보는 맛이 없달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이 떨어지는 기분이랄까.
“으허허엉?”
“입에 든 건 다 삼키고 말해라.”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입에 있는 내용물을 다 보여 주는 타입은 또 별로긴 한데. 내 말에 밥을 꿀꺽 삼킨 김재호가 말했다.
“디저트는 뭐 먹어?”
“디저트라는 단어도 알아?”
“……재호 형 무시하시는 거예요?”
뾰족한 한서현의 말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나 화이트 초콜릿 모카 프라푸치노 먹고 싶어.”
내 인생에서 김재호가 이렇게 복잡한 단어를 말하는 걸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재호가 무려 열 세글자나 되는 단어를 외우다니.
“카페 가자. 당연히 사 줄 수 있지, 내가 우리 재호가 먹고 싶다는데 그거 하나 못 사 주겠니?”
* * *
카페까지 가서 멋진 2차 먹부림을 마친 우리는 그제야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생각지도 못한 짐 덩어리 하나를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빈방이 남았으니, 걱정할 건 없다. 흠, 차송진의 방도 조금 더 제대로 꾸며야 하니, 오랜만에 에케아나 갈까.
━네놈이 드디어 그 빌어먹을 창작욕을 버려서 다행이구나.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빴다! 나빴다고.
쳇. 내게 조금만 더 손재주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결과물이 영 별로라서 그렇지, 만드는 동안 제법 재밌었단 말이다. 쩝, 어쨌거나 다들 이렇게 뜯어말리니 새로운 취미를 찾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레이와 말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한서현의 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는 산 중턱으로 보이는 곳에 새가 멈춰 서자 에드워드가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여기가 맞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하하, 우리 기지를 보면 깜짝 놀랄걸.]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에드워드를 손님으로 등록하는 걸 잊지 않았다. 환상을 보고 놀라 자빠지는 건 차송진으로도 족하니까. 나는 에드워드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절벽 안으로 쑤욱 들어가는 내 몸을 본 에드워드의 눈이 흔들렸다.
[짜잔, 우리 기지에 온 걸 환영해.]
우리 기지를 본 에드워드가 입을 떠억 벌리고 중얼거렸다.
[이런 데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그 말에 차송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뜻이냐, 그건! 여기가 얼마나 멋진데. 저기 보이는 벽돌 하나하나에 나랑 서현이의 정성이 담겨 있다고.]
[여기에 있는 벽돌을 모두 직접 만든 거라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런 짓을?]
그렇게 묻는 에드워드의 말에 나는 무어라 따질 의욕을 잃어버렸다. 대신 나는 외쳤다.
[겉에서 보기엔 이렇지만, 안은 또 다르거든? 엄청나거든?]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인테리어는 아니지 않냐.
레이의 딴지를 나는 애써 무시했다. 겉보다는 확실히 안이 볼 법한 건 사실이니까.
나는 입으로 마법의 bgm을 연주하며 문을 열었다.
“따라따라따~ 따라라라~.”
기대를 잔뜩 담았던 에드워드의 눈이 탁해졌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황급히 조명을 켰다. 하지만 조명을 켠 뒤에도 에드워드의 반응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벽이 너무 칙칙한 거 아니야?]
[칙칙하다니! 그럼 빌런 기지가 총천연색이어야겠어?]
[그렇다고 이렇게 올 블랙으로 할 이유가 있었어?]
[이잇!]
이런 미적 감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이! 나쁜 놈이!
━글쎄, 쟤가 만든 교과서를 생각해 보면 둘 중에 누가 미적 감각이 없는지는……. 여기까지만 말하마.
레이의 말에 나는 삐쳤다. 미적 감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빌런 기지는 자고로 보기만 해도 그럴싸한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고. 비록 에케아 가구를 들여놓은 시점에서 이미 빌런 기지 특유의 아우라를 기대하는 건 글러 먹은 일이 됐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검은색 벽지는 포기할 수 없단 말이다.
뒤에서 번역기를 손에 든 한서현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벽 우리 보스가 칠한 건데.]
그 말에 에드워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퍼티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발랐는데…….]
[어어, 다시 보니까 멋진 거 같기도 하고.]
누가 봐도 안 멋지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해 봤자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거든. 성큼성큼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에드워드의 목덜미를 나는 재빨리 잡아챘다.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지.]
어딜 그냥 들어가려고.
귀여운 동물 실내화를 신은 다음에야 에드워드는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빌런 기지의 아우라가 어쩌고 하는 놈이, 저건 또 뭐냐.
‘……재호가 사자고 했어요.’
그리고 김재호의 고집을 나는 도저히 굽힐 수 없었다.
그래, 이미 우리 기지의 아이덴티티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에케아 가구를 들여놨을 때부터…….
━아니, 그게 네가 한 선택 중에 제일 좋은 거였다니까.
역시 장인이 정성껏 만들어 낸 수제가구를 들여놨어야 하는데. 그래, 공산품 따위에 져 버린 이상,
“역시 검은색 벽지는 좀 그런가……?”
에드워드의 지적에 나는 침울한 나를 보며 한서현이 이를 깍 깨물었다.
“아뇨! 저 검은색 좋아요. 칙칙하고, 어둡고. 누가 봐도 어? 빌런 기지답잖아요.”
“맞아! 나도 처,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어, 보면 볼수록 정이 들고 그렇더라고! 지, 집중도 왠지 더 잘 되는 거 같고.”
한서현과 차송진의 말에 내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그래? 그, 그렇지? 역시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 그럼, 내가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고른 색인데. 그거 알아? 차콜이랑, 블랙이랑, 리얼 블랙이랑 엄청 고민했다고.”
툭툭, 차송진이 에드워드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참 거실을 둘러보던 에드워드가 아차 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하! 뭐, 뭐 다시 보니 그럴싸하네. 아니, 근데 이 거지 같은 그림은 뭐냐? 여기만 다시 칠하면 훨씬 거실이 깔끔하고 괜찮겠어!]
[어…….]
그 그림은…….
[아하하, 나도 우리 거실 인테리어에 그 그림이 안 어울린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래도 말이지, 옛날에 내가 돌봐 주던 애들이 떠나기 전에 그려 놓은 그림이라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더라.]
그 말에 차송진과 에드워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딱히 죄책감을 가지라고 한 소리는 아닌데. 눈동자를 잘게 떨던 에드워드가 황급히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내가 그림이라고 그랬나? 아니, 의자를 말한다는 게 잘못 말했어! 그래, 이 거지 같은 의자만 내다 버리면 딱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니까. 어, 내가, 영어에 좀 서툴러서 말이지.]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진 건 내가 아니라 한서현이었다. 한서현은 마치 바람처럼 날아들어, 에드워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의자, 안 돼! 다, 닥쵸!]
그 반응에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말로 구리구나, 내 의자.
“나, 나는 좀 쉬어야겠다.”
갑자기 몰려드는 어지럼증에 나는 황급히 휴식을 정했다.
아팠다. 마음 쪽이. 내 방 안으로 들어온 나는 가만히 쪼그려 앉아 중얼거렸다.
‘내일 저 의자를 내다 버려야겠습니다.’
━아니, 버릴 필요까지는 없는데…….
‘거지 같다잖습니까!’
━아니야, 그렇게까지 거지 같진 않을지도. 그냥, 의자로서는 조금의 쓸모도 없지만, 빌런 기지에는 저런 귀신 들린 의자가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고…….
‘실드를 치는 겁니까, 실드로 치는 겁니까?’
며칠 전 들었던 말을 비슷하게 돌려주며 나는 무릎에 얼굴을 박았다.
흑흑, 절대로 내다 버린다 저런 의자!
* * *
강이신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간 뒤 차송진은 이마를 딱 쳤다.
“저 의자, 보스가 만든 거였어?”
“어! 우리 보스가 어? 없는 재주로 저걸 만들겠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어떡할 거야, 이 분위기!”
차송진은 어리둥절해하는 에디를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하필이면 연달아 3연타석 홈런으로 강이신의 멘탈을 작살내다니. 이것 또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씩씩대면서 번역기를 두들긴 한서현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에디에게 외쳤다.
[왜 우리 보스 기를 죽이고 그래!]
차송진은 에디를 보며 말했다.
[수습하자, 이 일.]
에디는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어떻게?]
제2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