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57
91 어서 오세요, 환장의 나라로 (1)
한서현은 최근 김명철의 행동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바보 같아요.”
“바보라니…….”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단 사람들에게 감정을 호소한다고, 그 인간들이 갑자기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오, 그렇군요!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겠어요’라고 하겠냐고요.”
말이 좀 험해서 그렇지 한서현의 말이 아주 그릇된 건 아니었다. 옆에서 한서현의 말을 듣고 있던 차송진 또한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니까. 벨츠머츠의 외장형 양심인 차송진 또한 동의할 정도라니.
내 시선에 차송진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서현이 말에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길드는 사기업이잖아? 김명철 길드장 같은 사람도 있겠지마는, 보통은 길드의 이득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지. 길드장 마음대로 하면, 길드원들이 남아 있지 않을 거 아니야.”
확실히 길드장 본인의 양심이나, 신념만으로는 길드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
붉은개 길드의 길드원들이야, 김명철이라는 길드장을 믿고 온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다른 길드는 그저 ‘조건’을 보고 들어간 이들일 테니까 말이지.
“애초에 논란이 생길 게 뻔한 자리에, 그럴싸한 비전도 없이 함께하자는 게 문제였지.”
김명철의 문제는 본인이 너무 정의로운 행동파라는 거다. 자잘한 ‘손해’ 따위는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사정상 조금의 손해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쪽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지.
“그렇다고 자기 뜻을 꺾을 것 같지는 않아요. 조금 시무룩하다가 금방 다시 여기저기를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친구를 편하게 죽여 두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
도대체 내 인생이란 왜 잘 풀리는 게 없단 말인가.
“계속 감시해 줘. 으음, 밀착 마크로.”
“‘곰’ 쪽보다요?”
“응. 당장은 죽어 있는 그쪽보다는 김명철, 그 사람한테 어그로가 끌릴 테니 말이지.”
참고로 곰은 정호산의 코드명이다. 죽어 있는 사람을 실명으로 부를 순 없다며 한서현이 정한 이름인데, 어째 부를 때마다 느낌이 이상했다.
어쨌거나 김명철은 단번에 우리 조직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왜냐, 설록진은 이렇게 설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살려 둔 적이 없거든. 5대 길드에 꼽힐 정도로 잘 나가는 길드의 길드장인 데다가, 본인이 7성급 헌터라고는 해도 상대가 설록진인 이상,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우리 쪽이 먼저 선수를 치는 게 낫지 않을까?”
차송진의 질문에 내가 말했다.
“무슨 수로? 무슨 수로 7성급 화염 술사를 잡아다가 지금 하는 짓 좀 그만하라고 설득할 건데?”
“정호산이 살아 있다는 걸 알린다든가…….”
“길드장들까지 다 불러서 요란 법석하게 모임까지 가진 다음에? 이미 늦었어. 게다가 그걸 말하는 건 내 몫이 아니야. 도채희를 만났다며? 그쪽에서 말하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괜히 끼어들어서 정호산의 계획을 망칠 생각까지는 없다. 사회적으로 죽여 놨으면, 일단은 그쪽을 계속 믿어야지. 나름대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 내가 그쪽이 살아 있다고 말하면 모든 게 어그러지겠지.
내 말에도 차송진의 얼굴은 여전히 울상이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또 그 사람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설록진만 잘 마크하면 돼. 무력으로는 이 대한민국에서 김명철을 어떻게 할 사람이 많지 않거든.”
영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김명철 또한 7성급의 헌터였다. 무려 화염을 다루는 자연계 재능을 가져 대한민국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강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 김명철을, 게이트 안도 아니고 이 현실에서 조용히 처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김명철 정도의 각성자라면 육체 강화계가 아니더라도 몸뚱이가 튼튼한 편이기도 하고 웬만한 독은 다 해독해 버리니까. 암살은 거의 불가능하겠지.
물론, 그런 김명철도 한순간에 보내 버릴 수 있는 게 있긴 하다.
설록진의 ‘세뇌’. 그것만큼은 김명철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김명철을 밀착 마크하고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런 위험 요소를 모두 배제할 수만 있다면야,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김명철의 말대로 지금 이 상황에선 목소리가 필요해. 썩기 직전인 고인 물에 움직임을 만들 사람이 바로 그가 될 수도 있어.”
지금 도채희와 정호산은 무척이나 고전 중이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을 테니까.
김명철의 말대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덩치가 큰 사람이 지금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난리를 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이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낼 테니까.
“꺾인다고 울고불고할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잘 됐어.”
“그러니까 당분간은 내버려 두자는 거지?”
차송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게다가 우리한테는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잖아.”
“아.”
내 말을 들은 한서현은 곧장 얼굴을 구겼다. 그럴 만도 하지.
드디어, 오늘 그녀가 우리 쪽으로 오기로 했거든.
그래, 쑤어하오주가 온다.
* * *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을 맞으며 남주현은 고개를 돌렸다.
캐리어 두 개에, 배낭까지 야무지게 챙겨 든 쑤어하오주가 자신을 끌어안는 유채린을 떼어 내고 있었다.
“돼, 됐어! 안지 마!”
“그래도 언제 또 이렇게 볼 수 있을지 모르잖아…….”
유채린은 잔뜩 아쉽다는 얼굴로 쑤어하오주를 바라보았다. 제법 무뚝뚝한 얼굴을 해서 그렇지, 이희원 또한 아쉬움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남주현 또한 그랬다.
하지만 이 그룹의 얼렁뚱땅 리더로서, 섭섭함을 너무 드러내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무리 아쉬워도 담담하게 보내 주는 거다. 응, 그렇지. 담담하게…….
“울어?”
“으허어엉.”
하지만 다짐은 어느샌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남주현은 눈물을 터트리며 쑤어하오주를 끌어안았다. 강한 포옹에 배낭을 짊어진 쑤어하오주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잘 지내야 해. 응?”
“나 죽으러 안 가.”
“알아, 아는데…….”
쑤어하오주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남주현은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다. 쑤어하오주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고.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이 되자 너무나도 마음이 허했다.
강이신에게 했던 말대로 정이 너무 들었다. 그게 문제였다.
쑤어하오주를 끌어안은 채로 남주현은 말을 골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정말로 그 자식이 좋아? 정말로 그 자식한테 가고 싶은 거야? 이 모든 일을 겪고도 그놈이 좋다니. 사람을 죽이는 나쁜 놈에, 무슨 사고를 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고작 그런 놈이 좋아서 인생을 던져 버린다는 게 말이 돼?’
하지만 남주현은 그 말을 꾹 삼켰다.
“있잖아, 거기에서 못되게 굴면 언제든 여기로 와도 돼. 응? 우리는 다 네 친구니까.”
그 말에 쑤어하오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린 다 친구야. 너랑, 나랑, 이희원 씨랑 유채린 씨 전부.”
그 말에 쑤어하오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남주현은 쑤어하오주를 놓아 주었다.
“언제든지 힘들면 우리한테 전화해. 당장 데리러 갈 테니까.”
그 말에 쑤어하오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을 시켜도 전화해요.”
이희원이 말을 보탰고, 유채린 또한 쑤어하오주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쑤어하오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뭔데요, 무슨 얘기 했는데?”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야! 나 빼놓고 얘기하지 마요!”
“그냥, 저도 비슷한 얘기 했는데…….”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뭔데 그렇게 귓속말로 몰래 속닥거려요?”
남주현의 말에 유채린이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의 행적이 의심스러우면 나한테 택배로 뭐라도 보내라고…….”
가장 얌전해 보였던 유채린이 이런 말을 하다니!
“‘행, 행적이 의심스러우면’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데요.”
“다,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다든가……. 아니, 옛날에 그런 사건을 맡았던 적이 있거든요. 제가 각성한 초, 초반의 일이지만…….”
“와악!”
생각지도 못했던 유채린의 과거에 남주현이 비명을 토해 내는 사이, 저 먼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그들에게로 점점 가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쑤어하오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휴, 왔네요.”
“그러게요.”
이제 정말로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다. 남주현은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에 놀라 비명을 꺅 질렀다. 그녀를 끌어안은 쑤어하오주가 귓가에 속삭였다.
“고마웠어. 정말로.”
“……응!”
* * *
쑤어하오주의 짐은 상당히 많았다. 거의 우리 모두의 짐을 합친 것만큼이랄까. 한서현과 쑤어하오주가 새의 등에 짐을 싣는 동안 나는 남주현의 손에 질질 이끌려 구석으로 향했다.
유채린과 이희원도 합류해 여자 셋이 나를 둘러싸고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잘해 줘야 돼요.”
“맞아, 잘해 주세요!”
연달아 들리는 말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자, 잘해 줄 거라니까요.”
“진짜! 다시 쟤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하기만 해요!”
남주현의 윽박에 기가 질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을 노려본 남주현이 살벌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약에 다른 사람을 던져 둘 생각이라면, 제발 말 좀 하고 데리고 와요! 나도 마음의 준비라는 게 필요하거든요?”
“자, 잘못했습니다…….”
남주현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 그래도 남주현을 만난 김에 해 둬야 하는 얘기가 있긴 했다.
“친각성자 라인의 언론인이나, 국회의원 중에 아는 사람 있어요?”
내 질문에 남주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있겠어요? 저 겨우 일 년 차 신입이었거든요?”
흠, 확실히 인맥을 쌓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겠군.
“그건 또 왜요?”
“그건 아직 비밀. 어쨌거나 조사해서 내 쪽에 보내 줘요.”
“으으, 알겠어요.”
잔뜩 불만 섞인 얼굴로 남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고용주였으니까 말이지.
남주현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저쪽에 접근해 볼 생각이었다. 음, 김명철에게도 같이 활동할 총알받이, 아니, 친구들을 만들어 줘야겠지. 나 혼자 열 대를 맞는 것보다는 열 사람이 한 대씩 맞는 게 낫지 않은가.
━어째 영 불손한 의도다만.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지금처럼 혼자 나서다가는 김명철이라고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서요.’
친구를 만들어 주면, 그래도 조금 괜찮겠지.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의,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의 목소리가 크기도 하고 말이다.
음, 그래도 설록진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잠시만 시간을 벌어 주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럼 이제…….
“보스! 다 실었어요!”
저 문제 덩어리를 데리고 가 볼까나.
나는 한숨을 쉬며 발을 옮겼다. 어째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제3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