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65
23 벨츠머츠의 하루 (3)
암시장에 들르기 전 나는 금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요한 아티팩트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어어? 나한테?]
“예.”
[뭘 부탁하고 싶은 건데.]
어째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영 찜찜했다. 내가 부탁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건가?
막 그렇게 물으려 입을 열었을 때였다.
“혹시…….”
[그게, 요새 내가 많이 바빠져서 말이다! 대신 암시장에 있는 장인 몇 명을 소개해 줄게! 자세한 건 문자로 보내마!]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끊는 게.
━거짓말은 참 더럽게 못하는 인간이구나.
“그러게요.”
우리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단 판단을 했나? 그래도 이렇게 예의 없게 사람을 끊어내?
이래서 자본주의의 돼지들이란. 좋은 사람인 척하다가 이렇게 순식간에 낯빛을 바꾼다니까?
또다시 몸속의 붉은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피는 원래 붉지 않나?
‘그게 아니라, 에휴, 됐습니다.’
━뭔데! 포기를 말고 설명을 하게!
나는 레이의 말을 무시했다.
어차피 금 박사가 이렇게 나와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가면의 업그레이드를 맡길 수 없게 된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시제품이 있는 한 아티팩트 회로를 뜯어서 어떻게든 응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을 좀 아껴 보나 했는데.”
금 박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내 생돈을 써야 할 때다.
나는 한서현과 함께 암시장으로 향했다. 암시장에 트라우마가 있을 김재호에게는 집을 부탁했다.
암시장에 도착한 한서현은 들뜬 얼굴로 사방을 훑어봤다.
“여기가 암시장…….”
누가 봐도 암시장 초행으로 보이는 어리바리한 모습이었다.
나는 한서현의 머리에 씌워진 야구 모자를 꾹 눌러 주며 말했다.
“그렇게 어리숙하게 굴면 다른 사람이 잡아간다.”
“으!”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한서현이 볼을 붉히며 입을 닫았다. 이곳에 챙겨 온 현금을 모두 토큰으로 바꾼 나는 한서현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늘 여기에서 뭘 살 거예요?”
“일단 너희 두 사람의 신분이랑, 둘이 쓰기 좋은 아티팩트 몇 개를 구할 생각이야. 가장 중요한 건 네가 다룰 수 있을 마수 사체지만.”
그동안 한서현이 부릴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마수들과 스켈레톤 하나뿐이었다.
최근 마력이 는 것 같아 하나 정도 추가로 계약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적당히 언데드로 만들 시체가 없었다.
나는 오늘 여기에서 마수의 사체를 살 생각이다. 내 말에 한서현은 놀랐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 마수 사체요? 그거 엄청나게 비싸지 않아요?”
당연히 멀쩡한 마수의 사체는 엄청나게 비싸다. 하지만 말이다.
“저번 일 보수로 받은 현금만 10억이다.”
“허어억!”
“네 마수는 충분히 사 줄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백도산을 통해 온 의뢰금이 짭짤했다.
하긴 아예 사라질 뻔한 회를 되살려 준 것이니 사실 10억도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적사회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한 은월회로서는 현금 10억을 마련하는 것만도 벅찼을 터. 나는 감사하게 그 돈을 챙겼다.
“돈은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마. 따지자면 이 돈에는 네 지분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금 박사가 소개해 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 이 근처는 우중충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수다 따위는 일절 금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살벌한 분위기를 눈치챈 한서현의 어깨가 떨렸다.
금 박사가 소개해 준 장인이라는 사람의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눈썹에 피어싱을 다섯 개는 꽂은 것 같은 독특한 인상의 남자였다.
“이 가면을 업그레이드할까 하고 왔는데요.”
내 가면을 받아 든 남자가 물었다.
“어떻게 업그레이드하고 싶은데요?”
“부피나 무게를 좀 줄일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이 부분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바꾸고 싶은데요.”
지금의 가면은 아무래도 부피가 좀 컸다. 워낙 가지고 있는 기능이 많아서인지, 가면치고는 무겁기도 하고 두껍기도 두꺼웠다.
게다가 얼굴과 목을 잇는 부분이 영 어색해 그 부분을 가려야 한다는 부분도 신경이 쓰였다.
이 단점을 없애 버리는 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음, 부피를 줄이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이 격차를 없애려면 아예 새로운 걸 만드는 게 나을 겁니다.”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흠, 이 정도 퀄리티까지는 뽑을 자신이 없는데요.”
흠, 어떻게든 가내수공업으로 해 봐야 하나.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가 내 앞에 재료를 하나 꺼내 건넸다.
척 봐도 부드럽게 휘어지고 살결처럼 착 달라붙는 것이 남자가 말한 새로운 재료가 이건가 싶었다.
“형태 변환자의 살가죽이에요. 이걸로 가면의 턱 부분을 가리면 완벽하게 살갗을 위장할 수 있겠죠. 아니면 이걸로 가면을 만든다거나.”
확실히 이 살가죽으로 가면을 만든다면 내 얼굴에 찰싹 달라붙는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있는 대로 주시죠.”
필요한 재료를 구매한 나는 값을 지불하고 그곳을 떴다.
두 번째로 들러야 할 곳은 간단한 무기를 파는 곳이다. 나는 그동안 평범한 단검을 써 왔다. 평범한 사람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무기였지만, 이왕이면 아티팩트로 된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해 놓는 게 좋았다.
게다가 김재호에게도 슬슬 제대로 된 무기를 줘야 할 때가 왔고.
그렇게 해서 찾은 무기점은 일반적인 장물을 취급하는 곳과는 달랐다.
부스의 주인은 덩치가 크고 눈에 흉터를 달고 있는 남자였는데, 척 봐도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고집이 보이는 인상이랄까. 확실히 암시장에서 통하는 장인이라는 사람들은 다 이렇다.
내가 부스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선 남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남자에게 허리춤에서 끌러낸 단검을 보여 주었다.
“이런 형태를 가진 검을 구하는데요.”
대략 50cm 정도에 양날, 내가 구하는 단검의 사이즈를 본 남자가 물었다.
“기능은?”
“단단하기만 하면 좋습니다.”
“무게 경량화도 필요 없나.”
“네.”
나는 오히려 묵직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와이어를 달아 유성추 형태로 쓸 때도 그편이 더 다루기 쉬웠으니까.
“아, 손잡이 끝에 와이어를 달 수 있는 고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고리야, 추가로 달아 줄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허리를 숙여 아래쪽에 있던 상자에서 검을 꺼냈다.
“길이가 조금 길지만, 폭은 비슷한데.”
남자가 건넨 검을 받아 든 나는 가볍게 공중에서 휘둘러 보았다. 길이 차이는 5cm 정도인가. 살짝 길어졌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걸로 하죠.”
“고리는 바로 달아 주지.”
“아, 그리고 30cm 정도 되는 단검을 다섯 개 정도 사고 싶은데요. 1m쯤 되는 장검이랑요.”
남자는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한 번에 말하지 그랬나.”
“이 검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어서.”
내 말에 남자는 헛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안쪽에 재고가 있는지 살펴보고 올 테니까. 아, 그것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능도 필요 없나?”
“네.”
저 단검들과 장점은 김재호에게 줄 생각이었다. 유사시에 날릴 수 있는 단검과 주 무기로 사용할 검.
슬슬 김재호도 검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 두는 게 좋았다.
간단하게 전투술을 가르치기도 했으니, 이제는 검술로 넘어가야지.
남자는 곧 검을 가지고 왔다.
“가격은요?”
“네가 들고 있는 단검 삼천, 작은 검들은 오백씩. 장검은 이천. 총 칠천오백이야. 고리를 달아 줄 테니 기다려.”
별다른 기능이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가격이 꽤 비쌌다. 그건 이 검을 이루고 있는 금속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강철로는 몬스터의 가죽을 견딜 정도로 튼튼하지 못하니까. 이건 특수한 제련법으로 만들어진 특수 강철이었다.
몬스터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이런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갖춰야 했다.
장물아비를 찾아갔다면 훨씬 싸게 살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왕 선물할 건데 새것이 낫지.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남자가 나에게 단검을 건넸다. 내가 말했다.
“서비스 없습니까? 한 푼도 안 깎았는데요.”
그 말에 남자는 질린 표정을 짓고 단검집을 선물로 줬다.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남자에게 토큰을 건넸다.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검이 생각보다 되게 비싸네요.”
“저 정도면 싼 거야.”
나는 한서현에게 말을 이었다.
“자그마한 마법이라도 더하는 순간 가격은 천정부지로 뛴다고. 저 앞에 있는 장물아비한테 사도 오천 이상은 줘야 할걸.”
당장 내가 유용하게 쓰고 있는 단검도 3천만 원쯤 하니까. 절대 재호 거라고 싼 거로 사 준 게 아니다, 흠.
“장비는 엄청 비싸네요.”
“그만큼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비싸니까.”
괜히 헌터가 되면 인생이 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게이트 안에 있는 것들은 그게 뭐든지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서 자신들의 구역에 게이트가 생기는 걸 오히려 반기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지.
━그 게이트라는 게 너희 세계를 망치러 온 침략자들의 것이라고 해도 말이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말이지요.’
게다가 세계의 멸망이 시작되기 전, 대한민국에서는 게이트가 제법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유례없는 평화와 발전을 누렸고 말이다.
마수들의 사체를 판매하는 곳은 아예 다른 관에 있었다. 부피가 엄청난 만큼 일반적인 부스 크기로는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몬스터의 사체를 파는 부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몬스터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느껴졌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건, 몬스터의 사체를 잘라 놓고 파는 일종의 정육점이었다.
정력에 좋다면 뭐든 입에 넣어 대는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일까. 이곳에서도 몬스터의 사체를 식용으로 사는 사람은 꽤 됐다.
━실제로 정력이 좋아지나?
‘아니요. 오히려 독에 걸려 발기부전이 된 쪽은 봤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렇게 잘게 자른 몬스터 사체가 아니다. 나는 정육점을 그대로 지나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 들어온 사체가 하나 있었다. 깔끔하게 처리된 블러드하운드의 시체를 통째로 부스 위에 올려놓고 파는 사람이 있었다.
블러드하운드는 기본적으로 경찰견으로 흔히 훈련되는 저먼 셰퍼드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크기가 약 2배 정도인 걸 제외하자면 거의 다른 게 없을 정도였다. 단단한 가죽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끈질긴 체력이 이놈들의 강점이었다.
흑마력으로 되살린다고 하더라도 시체의 본래 속성을 따라가는 일이 많은 만큼, 블러드하운드는 제법 괜찮은 마수였다.
“저건 어때?”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블러드하운드의 사체를 바라보는 한서현의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무언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서 사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거나 하면 사지 않는 게 좋을 테니까.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사체의 상태는 흠잡을 데 없이 좋았다.
“단번에 베었네.”
심장을 바로 찔러 죽였다. 이렇게까지 손상이 없는 몬스터의 사체를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자 가게 주인이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대단하죠?”
“확실히 괜찮네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렇게 깔끔한 사체는 흔치 않았으니. 여기서 트집을 잡아 봤자다.
“얼맙니까?”
“4억입니다.”
“허억.”
옆에서 한서현이 헛숨을 집어삼켰다.
제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