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92
32 과거의 악연 (1)
‘벨츠머츠라…….’
요즘 들려오는 뉴스에 정호산의 마음은 영 심란했다. 벨츠머츠에 소속된 용의자라며 공개 수배된 얼굴을 보는 순간, 정호산은 순간 숨 쉬는 것을 잊을 만큼 놀랐다.
한서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 이름과 얼굴은 익숙했다.
지금쯤은 모두가 잊었을 ‘한조희 살인 사건’, 피해자 한조희의 하나뿐인 동생이 바로 그였으니까.
그리고 그 사건의 용의자는 자신의 친구, 강이신이었고.
정호산은 살인 사건이 발생했단 소식을 듣는 순간 한서현을 찾았다.
어리석은 죄책감과 책임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하루아침에 천애 고아가 된 17살짜리 아이를 그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가 강이신인 이상은, 도저히.
하지만 정호산은 한서현을 찾아갈 수 없었다.
영안실에서 한조희의 시체를 탈취한 뒤 실종.
한서현이 공개 수배되기 전까지 정호산은 한서현의 행방에 대해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한조희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이제 겨우 넉 달째. 그 넉 달 사이 한서현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넌 이신이를 찾고 있는 거냐.’
복수를 위해, 벨츠머츠라는 범죄 조직에 들어가기까지 한 건가. 정호산의 속은 복잡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자신의 친구와 한서현.
벨츠머츠라는 빌런 조직에 소속된 이상, 한서현은 누구보다 거침없이 강이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정식으로 길드에 소속된 정호산은 할 수 없을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하겠지.
‘이신이가 죽게 둘 수는 없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이신이 죽는다니. 상상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저어질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복잡한 속을 가라앉히며 정호산은 바깥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고 다시 나올 생각이었다.
누군가 정호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쪽이 정호산?”
“네, 그런데요.”
“강이신에 대해서 좀 물으러 왔는데.”
그 질문에 정호산의 기세가 순간 달라졌다. 눈앞의 두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선량한 사람들이 아닐 거라는 직감이 왔다.
슈트를 차려입은 반반한 낯짝의 남자는 몰라도 그 뒤에 선 거구는 확실히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는 듯 험악한 인상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댁 친구가 나한테 빚을 지고 그냥 도망가서 말이지요.”
정호산의 말에 대답한 건 거구의 앞에 선 남자였다. 그제야 상황을 짐작한 정호산이 끌어 올렸던 마나를 흩으며 말했다.
“그쪽이 이신이한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잡니까?”
“사채?”
“흠흠, 이러지 말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라도 하시죠.”
남자가 얼굴을 구기는 사이 덩치가 끼어들었다. 정호산은 그 덩치를 보며 눈을 좁혔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길바닥에서 언제까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왔다. 정호산은 그제야 두 사람의 이름을, 아니, 팀장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푸쉬 앤 캐시라는 곳의 팀장, 최인혁.
“형님, 아, 아니! 팀장님 뭐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예, 그쪽은…….”
“뭘 사 줘. 아무거나 먹으라고 해.”
“여기 1인 1음료라…….”
“됐어, 그럼 아메리카노로 통일해.”
“헉, 저는 달달한 거 먹으면 안 됩니까?”
철없는 덩치, 김두식의 말에 최인혁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김두식은 결국 추욱 어깨를 늘어트린 채로 카운터로 향했다.
최인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에 찾아온 건, 혹시나 정호산 씨가 친구인 강이신을 숨기고 있진 않은가 확인해 보고 싶어섭니다.”
그 말에 정호산은 얼굴을 구겼다. 저런 더러운 의심이나 하다니.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그쪽은 이신이한테 뭘 믿고 1억 3천이나 빌려줬습니까? 애초에 이자가 말도 안 되던데…….”
“하, 우리 쪽 이자는 다 적법한 수준 내고요. 하도 간절하다 해서 내가 선량한 마음으로 빌려준 걸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애초에 그쪽이 친구로서 영 미덥지 않으니까 나한테 온 거 아니냐고.”
정호산은 최인혁을 노려봤다. 안 그래도 자신을 괴롭히던 생각이었다. 내가 영 미덥지 못하니 사채를 빌린 게 아닐까, 하고.
그 말을 이런 더러운 사채업자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신이를 팔아넘기려고 빚을 지운 건 아닙니까? 이것도 다 쇼 아니냐고요. 본인이 이신이를 다른 데에 팔아넘기고서는 괜히 저를 찾아온 거 아닙니까?”
“무슨 헛소리야! 나는 피해자야! 돈 떼먹힌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뭐? 팔아넘겨?”
“애초에 거짓말이라는 재능을 알고서 이신이를 노린 거 아니냐는 겁니다.”
“아, 거짓말? 그래, 그 새끼가 애초에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나한테는 저주파나 쓸 수 있다고 했단 말이다!”
그렇게 소리를 지른 최인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로 모르는 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이신에 대해서 아는 게 정말로 쥐뿔도 없는 거다.
“하.”
역시 이런 식으로 강이신을 찾는 건 무리 같았다. 기대도 크게 안 하긴 했지만…….
“됐어, 친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최인혁의 말에 정호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최인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늦게 음료수를 받아 돌아온 김두식이 당황해 외쳤다.
“혀, 형님! 나가십니까?”
“그래!”
“음료수는요? 테이크아웃으로 바꿀까요?”
“그냥 좀 와!”
뒤에서 울려 퍼지는 말을 들으며 정호산은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친구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최인혁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정말로 자신은…….
‘난 네 친구가 맞긴 하냐, 이신아?’
강이신이 눈앞에 있다면 꼭 그렇게 묻고 싶었다.
* * *
“좋아, 좋아!”
나는 손에 쥔 팔찌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혈마 추마걸을 만나고 난 뒤 생긴 위기감 때문에 팔찌를 만드는 데에 온 집중을 쏟아부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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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 보조 팔찌 / B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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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세서리ㆍ보조
미스릴을 담금질한 뒤 몬토로 달팽이 껍데기를 장식하여 만들어진 팔찌.
쉽게 발열되지 않으며 가볍고 유연하다.
충전 장치에 충전된 마나석에 있는 마나를 착용자에게 전송한다.
전에 만들었던 팔찌는 C급이었지만, 이건 B급! 오른 등급만큼이나 설명도 긍정적이었다.
가장 큰 소득은 단열재로 쓰이는 몬토로 달팽이의 껍데기를 박아 넣어 팔찌가 달아오르는 걸 잡았다는 거다. 이제 더는 내 팔찌에 내가 데어 화상을 입는 일은 없어지겠지.
참고로 이 재료는 주변 길드 창고에서 ‘얻어 왔다’.
전보다 훨씬 벨츠머츠의 악명이 높아진 지금 암시장에 가는 건 부담스러워져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재료를 빌려 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에는 벨츠머츠라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구나.
‘큼, 큼.’
마정석을 정제하는 것도 끝났다. 정제가 끝난 마정석은 마치 호박(琥珀)처럼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모래를 다루던 예브리카의 마정석이기 때문일까. 안에는 모래 입자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시간이 잘 갔다.
놈에게 붙은 이름은 호안의 마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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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의 마정석 /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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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ㆍ마정석
초고열에서 가열되어 불순물이 제거된 마정석.
예브리카의 마나를 품고 있다.
정제가 끝난 마정석의 등급은 A급. 이 집을 지을 때 들어갔던 홍염의 마정석과 같은 등급이었다.
정제되기 전 크기가 워낙 대단해서 어쩌면 S급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는데, 정제 방식이 무식해서인지 아니면 정제되면서 크기가 줄어서인지 A급으로 나왔다. 그래도 이 정도면 A급 중에서는 최상급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놓은 나뭇가지를 들고 왔다. 나뭇가지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내가 직접 이 숲을 뒤져서 찾은 제일 오래된 나무에 번개를 내려쳐서 만든 마나가 깃든 나뭇가지거든.
거기에 나는 10개가 넘는 마나 회로를 새겨 넣었다. 마나 보조, 활력 보강, 기력 보강, 간단한 방어 회로 몇 개.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미리 틈을 내놓은 나뭇가지에 마정석을 끼워 넣었다. 두 개의 아티팩트는 부드럽게 맞물렸다.
그 순간 눈앞에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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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의 스태프 / A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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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ㆍ스태프
번개 맞은 고목에 호안의 마정석을 박아 넣은 스태프.
착용자의 마나를 보조하며 마나 발현을 매끄럽게 한다.
예브리카의 마나를 이용하여 사용자를 돕는다.
24시간마다 헤이스트ㆍ실드 사용 가능.
대박이었다. 무려 A급 스태프라니! 물론 재료가 엄청나게 좋아서 그런 거지만, 내 손으로는 처음으로 A급의 물건을 만들어 냈다.
그나저나 예브리카의 마정석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아이템에는 ‘예브리카의 마나’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이건 좀 특이한데.”
━뭐가 특이하다는 거냐.
“굳이 예브리카의 마나라고 남긴 걸 보니까 그놈이 쓰던 스킬 일부가 여기에 달라붙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괜히 이 세상의 시스템 창이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무슨 기능이 붙거나 그래도 알려 주는 적이 없다. 그나마 설명에 있는 헤이스트, 실드 같은 경우는 대놓고 발현식을 적어 놔서 뜨는 거고 나머지 기능은 알려 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아티팩트를 앞에 두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티팩트의 진정한 기능을 실험해 보는 거다.
나는 스태프를 쥐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오.”
스태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내 마나는 황금빛으로 빛났다. 황금빛의 모래가 된 거다.
“오.”
예브리카의 마나로 만들어진 모래는 예브리카가 죽는 순간 전부 흩어졌었다.
나는 마나를 끊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들어 냈던 모래는 곧바로 흩어져 버렸다.
‘모래가 유지되는 건 마나가 유지되는 순간까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마나를 공급하는 동안에는 예브리카의 모래를 마음껏 다룰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예브리카 토벌 당시 활약했던 한서현의 검은 모래를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대박인데?”
나는 스태프를 한서현에게 내밀었다.
“우, 우와아아!”
한서현은 내 기대보다도 훨씬 더 스태프를 좋아했다. 하긴, 내가 봐도 이건 진짜 잘 만들어졌으니까.
“감,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이걸 제대로 활용하는 법부터 익혀 둬. 모래를 잘 다루게 될수록 네 능력도 늘어나는 거니까.”
다루는 언데드가 역소환되는 순간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던 약점을, 모래로 완전히 덮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래는 마나로 불러내고 조합할 수 있으니 페널티가 전혀 없었다.
내 말에 한서현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적어도 내가 목표로 했던 몇 가지는 해치웠다.
애들이 나와 상의도 없이 주워 온 박상편의 검은 레이가 맡아 분석 중이다.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마나 회로가 아주 안에 꼭꼭 숨어 있어서 말이지.
보통 아티팩트는 겉면에 마나 회로가 보이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팔찌만 해도 안쪽에 마나 회로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마검은 다르단다. 아예 속 안에 마나 회로든, 아니면 저주받은 무언가든 숨겨 둬서 파악이 어렵다나.
분석이 전부 완료되기 전까지는 검을 잡는 건 금지해 뒀다. 나중에 이 아티팩트를 제대로 분석하고 바꾸는 데에 성공하면 김재호에게 줄 생각이지만, 금세 끝날 작업 같지는 않았다.
인터넷을 가득 채우던 벨츠머츠에 대한 뜬소문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리 큰불이라도 장작이 사라지면 꺼질 수밖에 없는 법. 애초에 이렇게 오랫동안 불타던 것도 신기했다.
이번 겨울까지는 조용히 보낼 생각이다.
그렇게 푹 쉴 계획을 세워 둔 내게, 신경을 거슬리는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시리우스의 특급 루키 유선제! 드디어 데뷔전」
유선제의 데뷔전 소식이었다.
제9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