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94
33 세레나의 빙궁 (1)
훈련실 가운데에 꽂힌 더미에 막대한 마나로 만들어진 번개가 내리꽂혔다. 번개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훈련실에는 동시에 수십 갈래의 번개가 나타났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번개가 일제히 한 곳을 향해 내리치는 장면은 기적과도 같았다. 번쩍, 번쩍. 빛이 나타날 때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진 더미의 몸에는 상처가 늘었다.
깨지고 부서져도 스스로 수복하는 힘을 가진 아티팩트였지만, 자신을 향해 일제히 내리치는 벼락에는 끝끝내 견뎌 내지 못했다.
푸스스, 결국 더미를 가루고 만들어 버린 남자는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신비로운 푸른색의 눈동자의 가운데에 있는 동공은 희게 빛나고 있었다.
“선제 씨! 슬슬 바깥으로 나가셔야 할 것 같아요. 진연화 부길드장께서 오신다고 하기도 했고.”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선제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와 얼굴을 마주 본 지유리는 새삼 빛나는 그의 얼굴에 얼굴을 붉혔다.
매일 보지만 참 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외모였다.
홍채까지 파랗게 물든 눈동자는 한국인에게 퍽 어울리지 않았지만, 유선제에게만은 예외였다. 마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그는 인종이 달라 보일 정도로 모든 생김새가 완벽했으니.
하지만 그의 완벽한 외모에 하나의 흠결을 잡자면 지독할 만치 아무런 변화도 없는 무표정이려나. 유선제의 곁에서 그를 보조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웃는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지유리의 말에 유선제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답은 했지만, 유선제의 기분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유선제가 자신에게 접근한 수많은 길드 중 시리우스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대한민국에서는 제일가는 길드여서. 그리고 두 번째. 자신이 완벽하게 다듬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꺼내지 않겠다 약속해서.
유선제는 자신이 깨부순 더미를 노려보았다.
A급 헌터들이 온종일 두들겨 대도 흠 하나 가지 않을 더미였지만, 유선제는 끝끝내 그 더미를 가루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선제의 시선은 부서진 더미 옆에 있는 그을린 자국으로 향했다.
유선제는 자신이 부른 수천 갈래의 번개를 모두 저 더미에 적중시키고자 했다. 허나 그의 신기에 이른 마나 제어로도 몇 가닥이 새어 나가고 만 것이다.
수천 갈래 중에 겨우 몇 갈래가 새어 나갔으니 감탄이 나올 만큼의 성과였지만, 유선제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일점(一點). 유선제가 완성하고자 한 기술의 이름.
수천 갈래의 번개를 단 한 점에 꽂아 넣는 번개 기술의 극치.
번개란 원래 자연의 것. 한낱 인간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유선제의 마나는 컨트롤이 유독 힘들 정도로 자유분방했고, 파괴적이었다.
그 힘을 하나로 모아 조그마한 과녁에 맞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실제로 번개술사 대부분은 섬세하게 번개를 제어한다기보다는 최대한 넓은 곳에 강력한 번개를 부르는 걸 목표로 했다.
번개의 재능의 특성상 한 명의 강력한 적보다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에 알맞기도 했고 번개를 제어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을 꿈꾸는 유선제는 자신의 번개마저 자신의 제어 아래 완벽히 있기를 바랐다.
아직 기술을 채 완성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이 세상은, 진연화는 유선제를 시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내보내길 원했다.
“후.”
사실 이것 또한 자신의 욕심이라는 걸 안다.
자신은 충분히 강하다는 것도.
하지만 아직인데.
벨츠머츠의 번개 능력자 때문에 일정이 당겨졌다는 것 정도는 유선제도 알고 있었다.
‘겨우 그깟 놈 때문에.’
유선제가 보기에 벨츠머츠의 번개 능력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파괴력만큼은 대단했지만, 번개를 조종하는 능력이 아주 형편없었다.
열화된 화질이었지만, 이곳저곳으로 멋대로 뻗치던 번개는 확실히 제어에서 벗어나 있었다.
번개를 그저 불러와 떨어트리는 게 전부였던 그의 컨트롤을 떠올린 유선제의 미간이 아주 미미하게 좁혀졌다.
벨츠머츠라는 놈들과 자신을 엮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유선제는 이번 기회로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적어도 번개를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은 이 대한민국에 없다는 걸, 증명하러 갈 생각이었다.
훈련실을 나온 유선제는 지유리가 걸쳐 주는 재킷을 얌전히 입었다.
몇 시간 동안 훈련을 하다 나왔지만, 그의 몸에서는 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완벽한 자기 통제 덕분이었다.
“그럼 가실까요?”
고개를 끄덕인 유선제는 지유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직 제대로 데뷔전조차 치르지 않은 루키였지만, 유선제가 걸어가는 곳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기도 하지만, 이 대한민국에서 몇 되지 않는 S급 각성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에 S급 던전으로 데뷔전 한대잖아.”
“A급도 건너뛰고 바로 S급이라니. 하긴 유선제라면 그럴 만도 하지. 이번 게이트만 깨면 바로 7성급 인증받으려고 하려나?”
기대, 부러움, 질투, 아주 약간의 두려움까지. 유선제에게는 익숙한 눈빛이었다.
지유리는 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푸른 빛이 빛나고 문이 열렸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진연화가 슬쩍 몸을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 드디어 왔구마안.”
“안녕하십니까! 진연화 부길드장님!”
지유리는 허리가 꺾어질 듯 그녀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진연화의 시선은 그 옆에 있는 유선제에게로만 향했다.
유선제도 마찬가지로 진연화 부길드장을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
“부르셨다고요.”
“일단 앉을까?”
이 말 또한 유선제만을 향한 것이다. 의자는 1인용이었으니. 유선제는 소파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뭐냐아, 다 알겠지마는 이번에 선제 씨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어요. 자! 박수!”
그 말에 손뼉을 치는 것은 지유리뿐이었다. 심지어 진연화의 뒤에 선 이혜원 또한 미동도 없었다.
지유리는 멋쩍은 얼굴로 손뼉을 멈췄다.
“뭐, 여튼 그렇게 됐어요오. 어떡하지, 내가 약속했던 것보다 일정이 빨라졌는데.”
그 말에 유선제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일점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유선제는 이미 엄청나게 강하다. 경험 또한 하위 게이트를 돌며 철저하게 쌓아 뒀다. A급 게이트를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S급에 곧바로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 것은 자만이 아니라 자신이다.
이미 내부 정보로 몇 번이고 진연화도 확인한 사실일 터.
미안하다는 말은 빈말일 게 분명했다.
유선제를 바라보는 진연화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선제씨도 알겠지만, 이번에 날뛰던 빌런들 때문에 우리 꼴이 좀 우스워졌거든요오.”
벨츠머츠. 그가 쏜 번개는 유선제도 봤다. 막대한 마나로 내리꽂은 번개. 자신의 것처럼 아름답지도 섬세하지도 않았다.
그 번개를 떠올리면, 한심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제법 대단해 보였을지도 모르나, 유선제의 눈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벨츠머츠를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건…….
“복합 재능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놈입니다.”
놈이 무려 수 속성을 다룰 수 있다는 거였다. 번개와 물은 상성이 매우 좋다. 놈이 정말 수 속성과 뇌 속성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각성자라면, 유선제 또한 쉬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번개를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요. 혹시 모릅니다. 숨어 있던 제4의 멤버가 있을지도.”
솔직히 A급, S급의 복합 재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보다는 제4의 멤버 설이 훨씬 더 말이 되긴 했다.
“그렇지이! 확실히 그편이 더 말이 되지요오. 역시 선제 씨다워. 그래도 말이야, 그놈들의 추종자가 쓸데없이 많아졌단 말이죠오. 그래서 어쩔 수가 없네.”
그렇게 말한 진연화의 눈이 가라앉았다.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지?”
그 말에 유선제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좋아!”
숨 막힐 정도로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럼, 작전을 이야기할게요오.”
그렇게 말하기 전, 진연화의 눈동자가 지유리에게로 향했다.
“거기 매니저 씨는 좀 나가 줄래?”
지유리는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푹 수그린 지유리는 방 밖으로 나갔다.
제아무리 유선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그녀라도, 이 작전을 듣는 것만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보안을 신경 쓴 것치고는 진연화의 작전은 간단했다.
시리우스는 공략에 굳이 이런저런 애를 쓰지 않아도 된다. 시리우스라는 거대한 공룡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너무나도 튼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만큼 진연화 또한 비장의 한 수를 숨겨 뒀다.
“걱정하지 마요.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선제 씨만큼은! 꼭 살려서 돌아올 방법이 있으니까.”
* * *
날이 밝았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S급 게이트의 앞에서 진연화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늘 편한 차림을 고수하던 진연화도 오늘만큼은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곧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유선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꾸며 놓으니 꼭 연예인 같은데요오.”
“감사합니다.”
“선제 씨는 너무 재미가 없다니까아.”
그렇게 말한 진연화가 공략대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군요.”
시리우스 공략대의 현황은 이랬다.
7성급 헌터 둘.
6성급 헌터 서른.
5성급 이상의 서포터 서른.
짐꾼 마흔.
총인원 백둘의 공략 팀.
S급 게이트를 돌파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출한 인원이었다. 보통의 S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나가는 공격대의 평균 인원이 300명 이상인 걸 생각해 보면, 그 반도 안 되는 수로 공략에 나선 꼴이었다.
물론 시리우스라면 더 많은 헌터를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인원으로 S급 게이트를 공략한다는 게 중요했다.
수는 적지만 저곳에 참여하는 인원 모두가 진연화가 아끼고 아끼는 전력이었다.
S급 게이트는 몇 번이나 공략해 봤던 멤버고, 모두가 엄청난 가격대의 아티팩트로 무장했다.
수는 적지만, 모두가 정예.
특히 시리우스 내에서도 추리고 추린 서포터들이 대단했다. 그 어떤 형태의 게이트가 나와도 무난히 공략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전력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게이트 공략 실패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공략 팀이 들어가고 나서 게이트를 지킬 인원에도 신경을 썼다.
혹시 모를 게이트 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세기의 도전을 알리기 위해 이 현장에는 수많은 기자가 와 있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도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진연화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선제, 여기로 와 봐요오.”
진연화의 옆에 유선제가 서자 주변에 서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요란하게 사진을 찍어 댔다.
그 뒤로 이어진 인터뷰도 집요했다.
“S급 게이트 공략은 처음으로 아는데 긴장은 되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가는데,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시리우스 길드지만, 무리라는 여론도 있는데요. 정말로 완벽한 공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유선제가 했다.
“네. 가능합니다.”
유선제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저런 식으로 했다.
재수 없게 들릴 말이었지만, 이곳에서 그걸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의 유선제는 충분히 그런 말이 어울리는 각성자였으므로.
게이트에 공략대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
기자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가장 앞에 선 헌터들이었다. 헌터들은 공략의 핵심이자 주인공이었으니까.
그 뒤로 선 서포터 팀에 시선을 보내는 이도 몇 명 있었다. 서포터들이 없으면 편하게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탐지면 탐지, 길 찾기면 길 찾기. 전투시의 버프까지. 그들은 소금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에서 자질구레한 편의를 봐줄 짐꾼들. 사실 짐꾼들이라지만 최소 3성급 이상의 각성자들이다.
한번 게이트에 들어가고 나면 공략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짐꾼이라도 마나 중독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등급이 높아야 한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짐꾼은 초짜 헌터보다도 몸값이 비싸기도 했다.
허나 짐꾼은 짐꾼.
그 누구도 짐꾼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몰랐다.
그 짐꾼 사이로 불청객 몇 명이 끼어든 줄.
제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