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1
00011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11)
일발 폭격이 끝난 뒤, 장내는 쑥대밭이 되었다.
어디 하나 온전히 남은 지대가 없다.
후면은 땅이 뽑혀 나오고 전면은 토사에 매몰됐다.
폐쇄된 갱도를 막고자 대량의 폭약을 터트린 꼴이다.
결과는 어쩠냐고?
없다.
소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비주얼은 굉장한 데 정작 죽은 악마가 없다.
포인트도 안 들어오고, 굉장한 규모의 뻘 짓만 한 거다!
“끄으응……. 나 척추가 부러진 것 같아.”
“어. 힐(Heal).”
쉬이이잉──!
악마들이 서로에게 손을 뻗자 상처가 나았다.
이게 악마인지 아크프리스트(Arc-priest)인지 원.
질긴 생명력과 뛰어난 치유마법이 합쳐지니 금세 멀쩡해진다.
그런 것치고는 묘하게 이쪽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하긴, 지팡이 치고는 제법이지?
이 정도 위력의 마법은 꽤나 수준 높은 편이고.
실은 부작용이지만.
죽어도 거기까지는 말할 수 없다.
“아, 아가야!”
“우에엥! 나 나 다리 까져써!”
“엄마가 금방 치료할게! 그레이트 힐링(Great Healing)!”
슈화아악──!
뭔가 성녀쯤 돼야 보일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얘네 진짜 악마 맞아?
그보다 뭔 놈의 치유마법을 이리 많이 익히고 있어?
아니 잠깐.
그 낙반에 깔리고도 다리밖에 안 까졌다고!?
얘들이 단단히 빡치면 나 이제 어떡하지?
내 공격력으로도 딜이 안 박힌다는 거잖아!
“으음… 대단한 지팡이다. 그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을 펼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이 따위 마법은 우리도 쓸 수 있다네!”
“그렇지. 누구도 죽지 않게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
빨갱이 군단장의 말에 파랭이 군단장이 깜짝 놀랐다.
“마나폭주에 가까운 위력을 발산하고도 사망자가 없다니!”
“마법사라면 능히 마나를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는 7써클 이상의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게 틀림없다.”
“무시무시하구나. 이건 실로 범상치 않은 지팡이다.”
뭔가 나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말만 두고 보면 무슨 전설의 아티펙트 취급을 하는데.
이거, 기분이 나쁘지 않네!
-낭자아이 : ㅉㅉ 개복치 주제에 고평가 받고 좋아 죽네
-퐁삽 : 얻어걸림 인정합니다.
-알파고 : ㅇㅈ
-쓰레기 : ㅇㅇㅈ
-구아악 : ㅆㅇㅈ
너희들 평가가 너무 박한 거라고는 생각 안하십니까?
나쁜 자식들아!
“레드-12-E! 거짓말을 했다면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정말로 저런 자비로운 지팡이가 널 죽이려했단 말이냐?”
“저, 정말이에요!”
“어딜 감히 거짓말을!”
거대 악마가 손찌검을 하자 애가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어이, 당신 애가 죽는다고!
방금 애가 벽에 충돌하며 ‘쾅’ 소리가 들렸는데?
염력으로 돌덩이 날릴 때보다 데미지가 커 보이는데!?
“저만한 실력의 지팡이가 작정하고 널 죽이려했다면 진즉에 네 목숨이 끊어졌을 거다! 감히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려 들다니! 넌 참으로 바람직한 악마로구나!”
음음.
악마도 부모는 부모라는 건가.
좋은 훈계라고 생각해버릴 뻔했다.
뭐야 저거.
마무리가 이상하잖아.
심지어 인간이라면 즉사를 면치 못할 데미지를 입고도 빨갱이가 비척거리며 일어난다.
나 판타지세계가 아니라 드X곤볼에 와있던 건가?
“악마군단장의 자식이라면 능히 세상을 속일 각오를 해야 하는 법. 오늘 네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이 어미를 속일 정도로 능숙한 거짓말을 해내지 못한 데에 있다!”
“치잇……!”
“훗훗. 더욱 큰 분함을 느끼거라. 커다란 분노만이 너를 비열한 악마로 성장시켜 줄 거다.”
악마들의 육아관이 무섭다!
어쩐지 취급이 막장이다 싶더라니.
지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고관이 다른 거였어!
이건 그건가?
사자는 어린새끼를 절벽에서 내던진다는.
실로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이 지팡이를 어찌 해야 할까.”
“내 아들 블루-13-D의 말에 의하면 지팡이는 근거리에 진입하면 머릿속에 음성을 전달한다고 하더군.”
“뭐? 그냥 평범하게 말로 하는 게 더 쉽잖아.”
그게 안 되니까 전언 스킬을 배운 건데요.
게다가 나, 지팡이라고.
말 같은 거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망할 악마군단장들아.
“그럼 어디 한 번.”
으아악!
악마군 청색군단장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얼굴 너무 커, 게다가 징그러워!
콧구멍부터 동굴 같다고!
“…과연. 굉장히 상처받는 말을 해대는 데.”
청색군단장이 시무룩해하며 나를 집어 들었다.
파랭이들은 어미나 자식이나 소심하네.
조금 신기한데.
그보다 잠깐.
이거 손가락에 힘만 주면 파삭, 하고 부러지는 거 아냐?
명색이 드래곤에게 선물도 받은 지팡이인데.
정말로 취급이 너무하잖아!
“드래곤? 드래곤을 만났단 말인가?”
“뭐? 그 지팡이가 드래곤을 만났다고?”
“선물도 받았다는데?”
“그러니까…… 지팡이가 선물로?”
“아니, 지팡이한테…… 선물을? 드래곤이?”
악마군단장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뭐, 그게 보통이겠지.
드래곤, 성질머리는 더러운 만큼 출몰빈도도 낮으니까.
걔들은 시끄러운 걸 싫어해서 대륙 각지의 오지에 처박혀있다.
오죽하면 제트기류를 타고 다니는 녀석도 있겠는가.
저쯤 되면 정말 중증의 정신병자이다.
“지팡이시여. 드래곤에게 무슨 선물을 받으신 겁니까.”
‘멍청이. 너 같으면 알려주겠냐?’
“그런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나 지금 적색군단장하고 대화하고 있다고?
메인 시나리오 [악마군 침공]에서는 왕국도 멸망시키는 놈인데.
이렇게 편하게 대화해도 되는 건가?
“메인 시나리오? 악마군 침공? 내가 왕국을 멸망시킬 영웅이라는 건가?”
“헉… 그 지팡이, 설마 지금 예언을 한 건 아니겠지?”
“뭐!? 맙소사. 이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가 인간들의 왕국 하나를 멸망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다고? 정말 대단한 예언을 들었군!”
『악마군 적색군단장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호감도 40/100(경외)』
적색군단장은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이거 뭐야.
일어나지도 않을 이벤트를 앞당긴 기분인데.
아 몰라.
몸도 없고 왕국은 구경도 못하고 있는데 뭐.
망하든 말든 알아서 살아보라지.
“성향도 마음에 들어. 이건 뚜렷한 악성향 아닌가.”
“마치 우리 악마들을 위해 만들어진 지팡이 같아.”
“아들이 말하기로는 고대악마 백두면귀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보물창고에 감춰두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준 거라던데.”
백두면귀는 삽시간에 인격자가 되었다.
“역시 선조님은 츤데레였어.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시다니.”
“보물창고라지만 그거, 뱃속에서 꺼낸 거겠지?”
“그러네. 왠지 냄새가 나더라니… 뭐, 이 정도는 상관없지만.”
상관없는 거냐!?
백두면귀도 뭔가 내가 기억하는 거하고는 전혀 다른데.
굳이 녀석의 명예를 헐뜯을 필요는 없겠지.
일단은 고대 악마이고.
존중받는 대상을 무시해서 득이 될 건 없다.
“대단하군. 악명을 존중하는 심성이라니.”
“우리 악마군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지팡이다!”
“지팡이시여, 저와 계약할 마음은 없습니까?”
네? 계약이요?
악마랑? 그것도 악마군단장이랑?
에이, 설마.
당연히 농담이겠지.
현생은 기본으로 팔고 옵션으로 내세와 영혼까지 받아가잖아.
그런 기분 나쁜 녀석들하고 함부로 계약할 리가 없지.
이놈들도 계약서도 안 만들고 다짜고짜 계약할 리도 없고.
인간일 때 악마랑 계약 한 번 맺어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딜? 딜!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75페이지짜리 계약서(契約書)를 써버렸다.
종이 한 장짜리가 아니라 정말로 책자를 받아버렸다고.
일개 악마조차 그러할 진데 악마군단장은 몇 페이지일까.
팔만대장경 정도 되는 방대한 계약서를 꺼내지는 않겠지?
그런 거, 절대로 안 읽는다.
『지성을 지닌 존재가 당신을 습득했습니다.』
『상대는 페르뒬 산 제 6 계층에 서식하고 있는 악마군 적색군단장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입니다.』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를 주인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스템 알림은 얘들이 아무 생각도 없다고 전해왔다.
계약서가 없다면 그만큼 자유롭기도 하고.
나한테는 딱히 손해가 되지는 않는다.
확실히 악마군단장 정도 되면 악마족 영웅급.
이만한 존재가 날 원하는 일은 결코 쉽게 오지도 않고.
그 증거가 지금 막 새로이 뜬 메인퀘스트.
바로 [악마들의 제안]이다.
『메인퀘스트 ‘악마들의 제안’이 발생했습니다.』
『페르뒬 산 제 6 계층의 악마군 적색군단장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가 당신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왔습니다. 악마들과 손을 잡아 함께 인간들을 멸망시키자는 내용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시, 향후 메인스트림(Main Stream)이 확정됩니다.』
『수락 시 : 악마군의 아티펙트로 활동한다.』
『거절 시 : 악마군 전체의 우호도가 5 하락한다.』
메인퀘스트.
이는 돌발퀘스트나 연계퀘스트보다 중대한 퀘스트이다.
앞으로의 플레이에서 큰 뼈대가 될 수 있는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이는 독자적인 ‘격’을 인정받아 ‘메인’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것이다.
악마군과 함께 한다면 내 입장에서는 꽤나 편리해진다.
몸소 보았다시피 악마들은 잘 죽지도 않는다.
돌덩이에 치이면 돌이 박살나고, 상처가 나면 치료한다.
‘악마군’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전사단, 마법사단, 궁수단, 사제단, 기사단, 그 외 특수병과 등등 온갖 인간부대과 아종족부대의 특성을 지닌 악마들이 수두룩하니 모여 있다.
어렵게 말하자면 한없이 어려우니 쉽게 말하자면…….
쌔다.
그것도 매우 많이.
인간과 비교하자면 대략 200배쯤 강할 거다.
그만큼 날 가지고 사냥도 많이 해줄 거고.
나도 포인트를 금방금방 모을 수 있다.
다만.
녀석에게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있다.
“뭐, 뭣!? 내게 결격사유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대체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부와 명예, 권력에 무력과 통솔력, 정치력, 기만술까지! 저만한 인재는 악마족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합니다!”
그야 그렇지.
딱 봐도 너 영웅급 캐릭터로 보이고.
덩치도 한 10m에 몸무게도 2.5톤은 되 보이니까.
악마군 적색군단장이라는 직책에 부하들까지 합치면 모르긴 몰라도 대륙 최강자 천위 안에는 들어갈 거다.
그런데 말이다.
나한테는 이 녀석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
부와 명예, 권력이라.
아이템이 그런 게 어디에 필요한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포인트로 사면 그만이다.
명예나 권력에 휘둘리는 오합지졸이던 시절은 진즉에 끝났으니, 나정도 되는 게이머라면 그런 시시한 거에 현혹되지 않는다.
사용자가 힘도 좋고 마법도 잘 쓰고 통솔력도 좋다?
그러면 편리하기는 하겠지.
좀 더 빠르게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인가.
나는 게이머.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강력해질 수 있다.
어떤 허접도 날 사용하면 덩달아 함께 성장해나간다.
내게 있어선 그런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 그럴 수가…! 그럼 당신과 함께 하려면 대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내 주인이 될 자격 말인가?
그런가.
슬슬 확실히 정해둘 필요가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기분을 느끼며 선언했다.
‘매력 50 이상. 내 마음에 들면. 날 절실하게 필요로 하면.’
다른 건 몰라도 매력은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건 그냥 타고난 능력치니까.
한 번 못생기면 죽을 때까지 못생기고, 한 번 예쁘면 죽을 때까지 예쁘다.
그런 자가 날 절실히 원한다면.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는 한 마음에 들 거다.
뭐, 말로 하면 이렇지만…
“반반하고 끌리는 계집을 원하시는 거군요! 이 무슨 귀축스러운 취향인지! 과연 악마에게 우호적인 지팡이답습니다!”
왠지 모르게 취향을 지지받았다.
그보다 뭐야 그게.
귀축이라니, 난 성실한 게이머라고.
몰라, 그런 거!
마음에 드는 상대가 좋다는 데 왜 그런 게 붙는 건데!
아무튼 넌 아냐!
『Yes / No ←』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의 호감도가 소폭 하락합니다.』
『호감도 35/100(우호)』
어라?
이쯤 되면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더니.
어째 호감도도 감소폭이 적다?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지요!”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저희 악마군 수천 명 중에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을지, 판가름할 기회를 드리지요!”
수천 명의 악마가 날 바라보았다.
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악마 수천 명이 날 돌려가며 만지겠다는 거냐?
평균 신장 3.5m인 존나 커다란 녀석들이?
-낭자아이 : ANG?
그거다.
정확히 지금 내가 느꼈던 심정을 알려줘서 고맙다.
망할 녀석아!
============================ 작품 후기 ============================
숙취로 고전하느라 늦었습니다.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취한 것 같은 글이 나왔습니다만, 정말로 맨정신으로 쓸 때랑 아무런 차이가 없군요. 평소의 나, 이래도 괜찮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