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4
00024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24)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결전이 확정됐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서로의 지략을 맞붙는 수밖에 없다.
물론 아무런 믿음도 없이 도전에 응한 건 아니다.
애초에 난 게이머이고.
게이머라는 족속들은 ‘공략’이라는 걸 무진장 좋아하거든.
개중에는 [스핑크스 수수깨끼 Q&A]라는 공략문서도 있다!
자, 덤벼라!
네가 무슨 수수깨끼를 낼지는 이미 알고 있다고?
“흐흐. 난이도 최상에 도전하다니. 오이디푸스 이래로 그처럼 용맹한 영웅은 없었거늘.”
물론 여기서의 오이디푸스는 게임 내 NPC의 이름이다.
엄친아 영웅NPC가 인생의 비애와 좌절을 느끼는 건데, 소문으로는 특정 조건만 갖추면 ‘회상퀘스트’로 오이디푸스의 몸을 빌려 과거의 이벤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던가.
시련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지나치는 영웅 따위, 누가하겠나.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이쪽의 오이디푸스는 시련 하나마다 1섹스다.
그것도 희귀한 교미대상과 희귀한 체위를 즐길 수 있다니.
수집욕구를 느끼는 상급 변태 게이머들의 필수 퀘스트라고 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이 에로 지팡이!”
‘미안. 게임 할 때마다 갤러리들한테 해설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설명충 습관이…….’
“아무튼 긴장하라고. 본녀는 그대만 믿고 있노라.”
암, 맡겨달라고.
공략본이 있는 한 나는 무적이니까!
“그럼… 난이도 최상급. 단판승부 수수깨끼를 제시하겠다.”
스핑크스의 히죽이는 미소에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슬며시 반개한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압도적인 자신감.
아무래도 정말로 만만찮은 문제가 출제되려는 모양이다.
그래봤자 답은 알고 있다지만.
저건 음모를 꾸미는 자의 눈이다.
스핑크스는 분명히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이거라면 틀림없이 먹힌다고.
나와 셀레나를 한 줌 먹잇감으로 전락시킬 수 있노라고.
그런 확신어린 눈빛이 나를 자극해온다.
‘얼마든지 덤벼봐라.’
비록 전투력은 게이머 전체를 통틀어 최하위에 속할지라도.
지금까지 게이머로 버텨온 건 마냥 컨셉으로 버틴 게 아니다.
아무리 불합리하고 불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력.
부족한 컨트롤을 보충하는 지식과 보조계열 능력들까지.
내 진가는 비전투상황에서 드러난다.
“주관식 문제다.”
과연 어떤 문제가 나올 것인가.
뭐가 나오든 상관은 없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가장 강력한 괴물보다 파괴적이고. 가장 사악한 악마보다 교묘하고. 가장 선량한 천사보다 자애로우며. 가장 위대한 신의 뜻보다 우선시된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
ARS 검색찬스를 사용할 시간이다.
-낭자아이 : 없는데.
-퐁삽 : 없어.
-줌벽 : 처음 보는 수수깨끼네.
…네?
없어?
아니, 진짜 농담치지 말고.
나 완전 진지하게 정색하고 있다고.
-형 : 최상급은 도전을 별로 안하니 이런 경우도 있네요, 형.
-다스 : 없네요. 새로 출제된 문제인 듯?
으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치트 하나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이러면 정말로 쌩으로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를 풀어야 되잖아?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마땅히 답을 내지 못했다.
갤러리들도 난처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폐급페도 : 야 야! 답은 로리야!
-퐁삽 : 극험; 소아성애자가 또;
-폐급페도 : 로리의 파괴력은 세계제일!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교활함과 자애로움은 악마나 천사를 뛰어넘지! 신? 로리가 신이야!
-쓰레기 : 경찰서가 없으니 페도들이 미쳐 날뛰네ㅅㅂ
동감이다.
아무리 그래도 스핑크스가 답을 로리로 낼 리는 없잖아.
문제와 정답은 대부분 출제자의 성향을 염두 해야 한다고.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줄만한 갤러리가 필요하다.
너희들 하이퍼 넷의 사용자라고!
22세기 지구 제일의 기술!
더 굉장한 게 있었는데 다 망한 거지만.
아무튼 너희는 굉장해! 시대의 지식인들이라고!
적어도 로리보다는 근사한 대답이 나와야 되지 않겠냐?
-침략자 : 저한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음
“뭔데요?”
-침략자 : 아 깜짝이야. 쟤 지금 개복치 통역 맡는 거?ㅋㅋㅋ
통역에 나선 건 셀레나였다.
어차피 마법은 쓸모도 없고 탄지공이 존재의의잖아.
이참에 통역사로 전직해버려, 망할 임시주인아!
“하아…”
-침략자 : 쟤 굉장히 지쳐 보이네. 힘내라고 전해줘.
‘갤러리가 너보고 엿 먹으래.’
의사소통 구도가 이상하니 드문드문 약이 오간다.
뭐 아무튼.
핵심만 간추리자면 갤러리계의 퀴즈 전문가를 모시자는 거다.
꽤 괜찮은 생각인데?
인간이야 별 거에 다 꽂히는 생물이니까.
컴퓨터에 꽂히기도 하고, 책에 꽂히기도 하고, 가끔은 말에 꽂히는 사람도 있지.
가끔은 좆을 좆대로 놀려서 칼에 꽂히기도 하고.
그런 거에 비하면 수수깨끼 성애자 정도는 정말 평범하군!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채팅방에 음성채팅이 연결되었다.
갤러리 침략자가 실시간으로 다른 갤러리에게 통화를 걸고 있다.
스핑크스야 수수깨끼에 시간제한이 없으니 침만 흘리고 있네.
셀레나의 육질을 품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치 특등급 한우를 눈앞에 둔 것처럼 굉장히 인상적인 눈빛이다.
근데 이거 수화음이 왜 이리 길어?
“지팡이여. 그대는 혹시 미친 거 아닌가?”
-낭자아이 : 다ㅋㅋ중ㅋㅋ인ㅋㅋ격ㅋㅋ
-구아악 : 퍄아아. 이래야 우리 개복치답지. 언제나 갈굼 당해.
-쓰레기 : 셀레나 마법사가 아니라 츤데레네. 근데 데레가 있었나?
하긴 얘는 갤러리 말이 안 들리니 좀 섬뜩하겠다.
무슨 다중인격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1인 수십 역 정도는 하는 걸로 비출까.
그건 진짜 무섭겠군.
츤데레여도 데레가 사라질만해.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근데 이거 수화음이 대체 몇 번을 울리는 거지?
이제 슬슬 받을 때 되지 않았나.
내 생각에는 한 100번 넘긴 것 같은데.
이 갤러리는 무슨 자동수화기 벨 울림 횟수를 최대로 맞춰놨나?
이거 자동수화기의 의미가 없잖아!
전화를 못 받으면 대신 응답을 해주는 건데!
기다리다 지쳐서 메시지를 남기기도 전에 끊겠다고!
-침략자 : 너도 어차피 멍청해서 수수깨끼 못 풀잖아. 작작 징징대고 좀 기다려.
어, 인정.
멍청한데 별 수 있나. 기다려줘야지. 제엔장.
벨 울림은 정확히 250번을 넘긴 뒤에야 연결이 완료됐다.
-침략자 : 선생님. 스핑크스 수수깨끼 새 질문이 업데이트 됐는데요. 정답 한 번 도전해보시라고 전화 드렸어요. 근데 뭐하느라 이렇게 늦으셨어요?
-네크로 : 인간은.. 누구나.. 현자가 되는 때가..
-침략자 : 네, 거기까지. 그 이상은 듣지 않아도 알겠습니다.
오.
네크로 선생님인가.
갤러리 중에서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인기를 끄는 건 게이머의 몫인데 컨셉이 확고하다고 해야 하나.
특정 방면에서의 엄청난 지식수준 때문에 알파고 못지않은 전문가형 갤러리다.
분야갸 겹치지 않아 여태까지는 지나가다 보는 정도였지만 소문만큼은 확실하게 들어서 알고 있다.
저 갤러리라면 확실히 수수깨끼의 달인으로 선정될 만하다.
미연시 전문가니까.
미연시가 뭐냐고?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그게 왜 수수깨끼 전문가가 되냐고?
22세기 미연시는 히로인들이 퀴즈를 내거든.
물론 덕분에 시원스레 망한 장르다.
가뜩이나 꼴린 상태로 수수깨끼에 막히면 얼마나 빡치겠어.
전쟁 전에도 성난 폭도들이 제작사 건물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마저 있다.
쓸데없이 게임 프로텍터가 철저해서 야한 장면만 따로 볼 수도 없다는 게 이유였었지.
“오. 그렇게 대단한 위자드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감성과 연애에 박식한 현자라니. 그대는 지팡이 속에 마치 수백 개의 다른 자아를 지니고 있는 것 같구나.”
셀레나의 찬사에 뭐라 대답하기가 애매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현자가 맞기는 한데, 참 심란하군.
모쪼록 수수깨끼를 들은 네크로 선생님은 거의 즉답으로 말했다.
-네크로 : 간단.. 넌센스 퀴즈.. 어렵지 않은 것..
-침략자 : 오. 상당히 빠르시네요. 정답이 뭔가요?
-네크로 : 답은.. 진히로인..
네?
-네크로 : 파괴적인.. 애정.. 교묘한.. 포지션.. 자애로운 심성.. 우선시되는.. 관계.. 모든 게 진히로인을 향하는 것..
-침략자 : …네?
-네크로 :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문제..
잘은 모르겠지만 이게 정답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괜히 셀레나의 시선에 나만 난처해졌다고.
이런 거 답이라고 어떻게 말해.
벌써 표정만 봐도 아무 말 말라고 하고 있잖아.
-네크로 : 힌트.. 답은.. 누구나 다르지만.. 같을 수도 있는 것.. 그것이 클리셰.. 정형화된 공식..
뚝.
영상채팅은 그렇게 끝났다.
ARS찬스는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수수깨끼의 달인도 나름의 힌트를 줬으니 뒤는 내 몫이다.
사람마다 답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건가.
이거 상당히 어려운데.
-형 : 이런 걸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폐급페도는 진성 소아성애자라서 로리가 답이고, 네크로 선생님은 전문 야겜.. 흠흠. 뭐 아무튼 각자의 분야에 따라 답이 다른 이유를 알면 될 거라고 봐요 형.
이건 상당히 고급 팁이다.
이 갤러리분께는 언제나 신세를 져서 미안해질 정도네.
누구나 답은 다르지만 같을 수도 있다.
클리셰.
그 이유라.
가만, 클리셰? 공식?
‘폐급페도는 로리, 프로 미연시 전문가는 진히로인.’
각자가 가장 큰 욕망을 느끼는 대상을 정답으로 손꼽았다.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클리셰, 공식만 보면 흡사하기도 하고.
실제로 괴물과 악마, 천사, 신보다 대단한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다.
그것을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조건은 모두 부합된다.
그러나 막연한 개인의 감상은 정답이 될 수 없겠지.
그런 식이면 이 문제는 누구라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최상급 난이도로 나온 것도 분명 그런 이유일거다.
생각을 게을리 하면 자신이 떠올린 답에 매몰되고, 그대로 그걸 정답으로 제시해서 탈락하는 방식이겠지.
혼자서라면 절대로 답을 맞추지 못했으리라.
뛰어난 갤러리와 게이머의 연계가 이뤄낸 결과였다.
그렇다.
나는 정답을 깨달았다.
내가 떠올린 단어에 셀레나도 희색을 띠며 감탄했다.
“과연. 정답은 [감정]이었는가.”
가장 강력한 괴물보다 파괴적이고. 가장 사악한 악마보다 교묘하고. 가장 선량한 천사보다 자애로우며. 가장 위대한 신의 뜻보다 우선시된다.
이것에 가장 적합한 것은 감정밖에는 있을 수 없다.
스핑크스는 노골적으로 혀를 차며 싫은 표정을 지었다.
“기어이 맞춰버렸는가.”
검은 색의 기운이 놈의 몸체를 훑더니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무거운 족쇄처럼 매달린 그 기운은 디버프 [실패한 출제자]다.
스핑크스의 시험에 응한 자가 정답을 말할 시 가해지는 페널티라고 할까.
디버프가 왜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그야 당연히 싸우려고 걸리지!
스핑크스 신화를 차용하든 말든, 기본적으로는 이거 판타지고.
칼부림에 마법 등등 온갖 종류의 전투가 만연하니까!
스핑크스가 입을 벌리며 음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뇌가 뒤흔들릴 정도로 섬뜩한 초고음의 음파였다.
“쯧, 공기를 매개로 사용하는 정신계열 마법인가!”
셀레나가 혀를 찼다.
그리고는 나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역장을 전개했다.
…뭐?
나를 전면으로 세워?
지팡이도 인권 존중 좀 해주시죠?
“시끄럽다! 그대는 어차피 무생물 아닌가! 게다가 봉인된 마왕이고! 정신마법 따윈 기합으로 버텨라!”
역시나 이 여자, 소년만화에서 잘못 넘어온 것 같다.
내게 근성 따윈 없어.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심지어 당당하게 나선 것 치고 방어마법 초 약하잖아.
실시간으로 몇 겹씩 와장창 깨지고 있다고.
급기야 모든 방어가 뚫리더니 공격이 내게 직격했다.
『스핑크스의 정신침식 마법이 발동합니다.』
순간,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멈춰서?
아니다.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강제로 파헤쳐지고 끄집어 나오며 인식에 렉이 걸린 까닭이다.
헌데 뭔가를 좀 하는가 싶더니,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던 기억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세상이 제 색을 되찾았다.
“헉! 흐윽! 흐으으! 뭐, 뭐냐 대체. 이런 건 있을 수 없어!”
“?”
“웃기지 마라! 나는, 나는 운명이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며 그들을 괴물로 집어삼키는 존재다! 악마도 아닌 일개 지팡이에게, 고작 지팡이 따위에게 압도당할──!”
아아, 그런 건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이해했다.
“괘, 괜찮은 건가?”
셀레나는 뒤늦게 내가 걱정되는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스핑크스의 정신마법에 넌 마치 여기에 있어야 해, 하는 느낌으로 매우 당당하게 내 몸뚱이를 들이밀었다는 사실을…….
검도 방패도 아닌 지팡이를 그렇게 취급했다고.
이제 와서 착한 척 하지 마라, 이 악마 녀석!
“그, 그건! 아, 아무튼! 스핑크스는 본녀가 해치우기에는 버거운 적이다!”
‘나라고 안 버거운 줄 아냐? 뭐, 지금은 알아서 삽질하다 죽을 모양이지만.’
저 녀석, 내 정신을 들춰봤으니까.
몇 천 번의 플레이, 몇 천 번의 인생을 살아온 게이머.
그런 비정상적인 정신을 지닌 존재에게 감히 덤벼들다니.
자살행위가 따로 없다.
정신계열에 한해서는 게이머 중 최약체인 나조차도 드래곤에 버금간다.
쿵!
『하이리치의 가디언 스핑크스를 사살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0p를 습득했습니다.』
『놀라운 업적! 당신은 세계 최초로 압도적인 정신력으로 스핑크스를 압살했습니다. 이 범상치 않은 기행에 10,000p가 지급됩니다.』
『특별보상으로 칭호 ‘스핑크스를 정신으로 압살(壓殺)한’을 습득했습니다.』
『종족 특성으로 인해 칭호가 아이템 설명 문구에 합쳐집니다.』
기어이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던 스핑크스의 숨이 멎었다.
과도한 정신적인 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 풀에 심장마비를 일으킨 모양이다.
이거 참, 폼이라도 잡아야 될 상황인데.
너무 제멋대로 죽어버려서 으스댈 타이밍도 못 잡겠다.
그보다 저놈의 칭호도 그렇고.
어째 보상은 포인트 빼고는 전부 쓸모없게 느껴지네.
뭐, 본판은 하이리치의 보물창고이니 상관없지만.
뭐, 그런 느낌으로 스핑크스의 시험은 통과했다.
……게이머인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야매로 극복한 것 같다.
스핑크스, 이름 값 좀 해라.
============================ 작품 후기 ============================
후기를 다시 보니 스포일러색이 짙더군요. 원활한 감상을 위해 후기를 삭제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