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17
00317 #14 – 잿더미 위의 꿈 =========================================================================
#14 – 잿더미 위의 꿈(1)
다이스 게임의 해저에서는 모든 사태가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뮤턴트 웨이브는 무사히 막았습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그래?”
“다렌 시 앞바다에서 예정된 규모 9.2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적어도 몇 달의 기한이 남아있던 해저지진이 발생했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서해안 부근의 도시는 모두 궤멸했다고 한다.
“그래도 늦지 않게 이사해서 다행이야.”
츳키의 위로에도 무거운 마음을 해소할 길은 없었다.
가뜩이나 세계 3차 대전 이후로 힘겹게 살아오던 생존자들이 이번 해저지진과 쓰나미로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국토의 이십분의 일이 이번 사태에 휩쓸렸고, 거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전멸했으리라.
“초상집 분위기가 따로 없군.”
암살자의 빈정거림에 나도 모르게 열이 올랐다.
“사람이 잔뜩 죽었다고요.”
“그래서?”
“그래서라니, 당신은 대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온 폭언이 덜컥 가로막혔다.
암살자의 눈.
거기에 담긴 감정은 분명한 [실망]이었다.
‘아.’
그제야 내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모두들, 웃고 있지 않다.
이 사태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얼마 전, 뮤턴트 웨이브를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라는 녀석도 참. 12년이나 지났으면 조금쯤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알파고의 힘없는 시선.
츳키의 떨리는 두 손.
무장요원의 피로에 지친 모습.
암살자의 무언가를 종용하는 무언의 압박에 이르기까지.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다들,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우윽.. 흐끅..”
“뭘 참고 있는 거야. 이럴 땐 솔직하게 울어도 좋다고?”
내 위로에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는지 츳키가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옷깃을 적시는 눈물은 언제나 그렇듯 뜨겁다.
알파고와 무장요원도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조용히 눈웃음을 지으며 그런 우리를 바라봐주었다.
“어떻습니까? 소소하게 작은 축하파티라도 열어보는 건.”
“좋죠. 지금은 다들.. 휴식이 필요할 때이니까요.”
“그럼 저와 알파고님이 축제용품과 식재료를 구해오겠습니다.”
모처럼의 축제이니 식품조리기의 자동 생성된 음식보다는 구식 재료로나마 조리를 하고 싶단다.
…알파고가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태운 요리에 입체영상 씌워서 먹이려는 건 아니지?”
“귀여운 알파고가 조리를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응. 너 요리 너무 맛없어.”
“…….”
이런 날까지 바삭하게 태워버린 음식이었던 무언가를 먹는 건 조금 고통스럽다.
덤으로 걱정되는 건 그녀만이 아니다.
무장요원 쪽도 우려가 들기로는 만만치 않았다.
“무장요원 씨.”
“말씀하십시오.”
“오늘도 뮤턴트 배달해오는 건 아니죠…?”
어째서인지 대답이 없다.
애매하게 시선을 돌리며 미소로 때우는 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님’이라고 변명하는 것 같다.
역시 이 둘만을 보내는 건 불안하단 말이지.
“암살자씨. 식재료는 볼 줄 아시나요?”
“험지에서의 생존은 암살자의 기본소양이다. 식재료 수색이야 어려울 것도 없지.”
“그럼 암살자 씨가 식재료의 수배를 해주세요. 알파고는 운전과 짐 나르기를 부탁해.”
암살자는 짐짓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괜찮은 건가? 거기까지 날 신뢰해도.”
“극동사령부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서 저희끼리 싸울 이유도 없잖아요. 실제로도 이렇게나 잘해주셨고. 왜, 독이라도 타려고요?”
“설마. 널 독살하는 데에 사용되는 독의 비용이 아깝다. 그럴 때가 되거든 싸게 날붙이로 처리하도록 하지.”
농담인 건 알지만 엄청나게 무서워…!
이 사람, 얼굴부터 엄청 무서우니까!
어인들이 바라보는 못지나간다의 외모가 이럴까 싶을 정도로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차가운 기백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부하들이 브레인 칩에 의해 몰살당한 지금, 그의 진심을 의심하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였다.
사람을 함부로 믿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다.
그러나 믿어야 될 때에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건 죽음보다 더한 배신감을 선사하는 짓이다.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모두 말이다.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무장요원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어째서 저는 함께 보내지 않으십니까?”
이렇게까지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어디 다녀오실 때마다 뮤턴트를 잔뜩 몰고 오시잖아요.”
“그, 그건…”
“무장요원 씨의 유능함은 알고 있지만, 가뜩이나 격전을 치른 처지에 뮤턴트와 휘말리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무장요원은 고개를 푹 숙이며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장요원 씨가 할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저희는 모두가 돌아오기 전까지 따로 파티 준비를 해두죠.”
간밤에 해치운 뮤턴트들은 전부 소각장에서 태웠으니, 남은 일은 파티용품을 꺼내거나 식품조리기를 세팅하고 식기와 술을 점검하는 정도였다.
“헉… 헉…”
물론 저질체력인 내가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희한하네요. 다른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사용한 근육이 덩달아 발달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고들 말하던데 유독 개복치님만 저질체력이니.”
“바보.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아가씨?”
“개복치라고 저질체력이고 싶어서 저렇게 된 건 아니니까. 사망패널티가 하도 중첩되어서 몸이 망가졌을 뿐이라고.”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만…”
허리까지 숙이며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무장요원.
뭔가 무섭다.
이 사람은 정말로 뭐든지 진지하게 임하는 구나, 싶어서.
“괜찮아요. 보통은 모르는 게 정상이니까.”
츳키의 통찰력에는 나도 상당히 놀랐다.
“어떻게 안 거야? 방송에서는 한 마디도 안했는데.”
“그런 거 조금만 생각하면 안다고. 이천 번도 넘는 사망페널티를 무사히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솔직한 심정으로 올해 들어서는 게임에서 죽을 때마다 진짜 무서웠다고.”
“현실에서도 죽을 까봐?”
“알면 잘해.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너, 진짜 위험해보이니까.”
“알고 있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이스 게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으니까.”
츳키는 깜짝 놀라며 내 옷 소매를 붙잡았다.
“설마 내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만큼의 운이 따라주는 플레이는 없어. 아마 이번에 실패한다면 평생 동안 노력해도 내가 다이스 게임을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거군요.”
“무장요원 씨의 말대로야. 웃기게 들릴지는 몰라도 나름 이번 회차에는 내 게이머 인생을 걸었으니까.”
“웃기지 않아.”
“…뭐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반복되는 꿈도 언제까지고 계속 꿀 수는 없다.
꿈만 꾸다가는 현실이 무너지니까.
육체도 정신도 솔직히 말하자면 한계는 진즉에 넘어섰다.
‘그런 점에서 몸을 안 써도 되는 지팡이가 되어서 다행이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검로를 이제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어나갈 신체적 움직임이 뒷받침되지를 못한다.
실력이 부족해서?
아니다.
정신의 감각 자체가 망가져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사람 행세는 하고 있지만…’
장대한 도시의 유골마냥 늘어선 고층빌딩의 형체나 다름없다.
겉보기에만 그럭저럭 멀쩡할 뿐.
제 성능을 발휘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상태가 나쁘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게이머들이 그만한 위험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게임에 임하고 있고,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도전과 패배를 거듭하며 망가져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지.’
나름 비결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신체감각이 투영되는 비율을 조종하는 동기화 비율.
그것을 임의대로의 조작으로 최저수치인 1에 수렴하게 맞춘다면 고통을 느끼는 강도는 현격히 낮아진다. 다이스 게임의 세계를 현실이 아닌 철저히 게임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짓은 더 이상 저지를 자신이 없었다.
‘셀레나. 발드 마이저. 그리고 모두를.’
그저 전기신호로 이루어진 가상의 산물로 여기며, 나와는 무관한 그저 소비제의 일부로 전락시킨다.
그건 그들을 향한 모욕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모욕이기도 하다.
그런 비겁한 짓으로 생존을 거듭하는 것도 더는 지쳤다.
‘그렇기에 동기화 비율은 낮추지 않는다. 이번 회차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임하고 있으니까.’
물론 그에 못지 않게 현실에서의 삶도 중요하다.
게임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다른 모두의 노력도 뒷받침되고 있으니까.
애초에 혼자서는 시작조차도 할 수 없는 모험이 아닌가.
알파고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츳키의 가세가 없었더라면, 무장요원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뮤턴트의 먹잇감으로 전락해서 뼈조차 남기지 못했겠지.
더욱 재수가 없었으면 뮤턴트에게 전염당한 채, 무너져가는 인간시절의 기억을 부여잡으며 처절한 괴로움을 느끼며 죽어갔으리라.
‘내게 기회를 만들어준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번 파티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다.’
적어도 이들에게 작은 보답이나마 해주고 싶다.
한 끼의 식사, 작은 웃음이라도.
함께 한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니까.
“이것이 최선입니까…?”
하지만 결과물은 참담했다.
“아니, 나, 나름 노력했는데.”
“커튼은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붙잡아 찢어버리고, 식기는 닦다가 놓쳐서 부수고, 술병은 들고 나르다가 미끄러져서 깨트려버리고…”
“아니, 그건 틀렸다! 술병을 놓친 이유는 [무거워서]니까!”
무장요원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병신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다.
“잘못했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자중해주세요. 개복치님은… 음…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토템 같은 거니까요.”
“힐링토템인가요?”
“저주토템입니다.”
“무슨 도움이야, 그게!?”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자니 부지런히 움직이는 무장요원과 츳키의 모습만 구경하게 되었다.
몸 좋은 무장요원 씨는 접이식 사다리에 올라타며 벽의 장식도 척척 해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사다리로도 손이 닿지 않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저건 무리겠지.’
무려 3m나 더 올라가야 되는걸.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사다리를 접고 어디론가 향한다.
다시금 돌아온 무장요원은 무려 전신장갑복으로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잠깐 스톱!!”
“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담이 걸려서 어깨를 풀어드려야 합니까?”
“영감님 대우는 그만둬… 아니, 그보다 그거! 실내에서 장갑복은 왜 입은 거예요!”
무장요원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장갑복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천장까지 올라가려고 합니다.”
“와트가 아까우니까 그만둬요! 천장까지는 장식 달아도 보통은 안 보니까!”
“알겠습니다…”
이 사람도 참 은근히 엉뚱한 구석이 있다니깐.
그에 비하면 츳키 쪽은 얼마나 얌전한지.
두 대의 식품조리기로 한 쪽에서는 식재료 수색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조리생성 값 세팅을, 마개조한 다른 조리기로는 장식용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저런 장식물품이 척척 뽑혀 나오는 게 손재주가 좋구나, 하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확실히 들기는 하는데…….
“어째서 죄다 호러풍이냐.”
“응? 그야 곧 있으면 할로윈이니까…”
“생존 축하파티를 드라큘라 가면이나 살인마 코스튬을 입은 채로 해야 하는 거냐.”
멋대로 폭주하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핫, 소리를 대며 엄청나게 당황해댄다.
“하아. 어쩔 수 없구만. 조금만 도와줄까.”
“그만둬!”
“에뮬레이터를 얕보지 말라고. 조리기에 비하면 훨씬 복잡한 연산프로그램도 제작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만하게 도전한 지 5분 만에 조리기 한 대를 고장 냈다.
“멍청이. 다이스 게임이었으면 1개월 치 놀림감인줄 알아.”
“무진장 반성하고 있어…”
“소 잡는 데 쓰는 칼로 닭을 잡으려니까 그렇지. 조리기가 복잡해봤자 얼마나 복잡하다고 그런 무식한 수식을 구겨 넣으려는 건데. 얘들은 인간처럼 변수가 많지 않다고.”
전문분야가 다르니 접근법도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넌 게임에서 힘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다들 네 플레이가 있기에 힘을 낼 수 있는 거니까. 적어도 현실에서만큼은 우리가 널 위해서 힘낼 수 있게 해달라고.”
“설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아, 앗차…! 이거 내가 알려줬다고 하면 안 된다!? 서프라이즈 파티로 생일축하를 해주려는 거였다는 건 절대로 비밀이니까!!”
대놓고 알려주면서 비밀이라고 하는 거냐.
정말이지, 어수룩하다니깐.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생일은 넉 달 전에 지나갔다고.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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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시작은 현실 일상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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