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31
00331 #14 – 잿더미 위의 꿈 =========================================================================
#14 – 잿더미 위의 꿈(15)
루드비히 엘드리고.
그녀는 우리의 접근을 눈치 채고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신속하게 결계를 찢고 하늘섬의 심층부로 나아갈 역량이 있으면서도 자리를 고수할 이유가 한 가지 이외에 달리 있을 리가 없다.
자신감.
그녀는 진심으로 우리의 추격이 자신을 해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단한 오만함이군.”
“얕보지 마. 이 몸이 긴장할 정도의 강자야.”
“조인족 최정예 전사들의 힘으로도 견제 이상은 불가능하겠어.”
켄이치와 발드 마이저, 조왕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었다.
“마도재능은 극상(極上)이다.”
“천부재질은 투골(投骨)이야.”
“전투재능도 천재(天才)로군.”
세 명의 실력자 모두가 직감했다.
이 상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러고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고 말이다.
“잘도 이만한 전력을 모아왔군.”
루드비히 역시 내가 모은 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작해야 3개월이 조금 넘은 시각.
게임 시작으로부터 이 정도의 시간이 경과할 무렵에 정석 인재도 아닌 변칙 플레이로 초월자 전력 둘과 일족의 지배자에 해당하는 자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건 가히 기적이다.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성취.
그러나 루드비히와 내 사이에는 결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마도재능으로는 저 마법사가. 천부재질로는 저 뱀파이어가. 전투재능으로는 저 조인족이 따라잡을 수 있겠지.”
‘뭐? 저 뱁새 새끼가 그렇게 잘 싸운다고!?’
“그렇지만 어느 한 명도 원숙한 경험은 손에 넣지 못했다. 자신의 힘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반쪽짜리 천재 셋으로는 진정한 천재를 상대할 수 없다.”
내가 한없이 기적에 가까운 성취를 이뤄냈다면.
루드비히는 기적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지녔다.
“보아라. 너와 나의 격차를.”
루드비히가 우수를 전방으로 펼치는 순간, 사색이 된 켄이치가 다급히 방어마법을 전개했다.
“모두 피해!”
“부질없다.”
콰장창!
미증유의 거력 앞에서 반투명한 역장은 단숨에 박살났다.
단숨에 펼쳐낸 일곱 결의 방어마법은 불과 2초의 시간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무참히 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발드 마이저가 역습에 나서기에는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거기까지야. 낭군님을 방해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전자계집의 잔재주 따위. 어설프다.”
“윽, 무슨 이런 괴력이…!”
뱀파이어의 영(影)속성 행동제어기가 루드비히의 그림자를 붙들었지만, 심령을 속박하는 힘조차 막대한 마력을 발산하는 루드비히를 가로막기에는 부족했다.
콰아앙!
단 한 번의 발 구름만으로도 끔찍한 파열음과 함께 그림자의 속박이 끊어졌다. 동급의 초월지경이라 부르기에는 투사로서 쌓아온 경험부터가 격이 다른 것이다.
‘지금이다!’
패색을 띠기에는 아직 이르다.
켄이치와 발드 마이저가 순차적으로 이목을 끄는 사이, 조왕은 루드비히의 시선을 피해 고공으로 비상했다.
가뜩이나 종족 특성상 엄청난 비행속도를 자랑하는 뱁새가 조인족의 수장으로 승급된 상황.
찰나의 급강하에 한해서라면 조왕의 최대 낙하속도는 음속을 돌파한다.
대기를 찢어발기며 쏜살같이 내리꽂힌 일격!
키이이이잉!
루드비히의 주변을 배회하는 마력폭풍이 거세게 반발을 일으켰지만, 잇달아 내리치는 소닉붐이 가차 없이 전장을 짓눌렀다.
흡사 거인의 손에 비견될만한 압박감.
나도 모르게 ‘해치웠나!’ 따위의 부활플래그를 입 밖에 내뱉을 정도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쓰레기 : 해치웠나!
-묵제 : 으아아! 말하지 말라고, 그런 거!
-낭자아이 : 절대로 일부러 한 거야! 이 쓰레기!
-로드롤러 : 그런 거 말한다고 부활할 리가 없잖아.
-살인전차 : 뭐 그렇지. 방금 거, 애초에 실패했으니까.
자욱한 먼지가 걷히며 전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조왕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피를 게워냈다.
정작 조왕의 필살일격을 받은 루드비히는 한 점 흐트러짐도 없이 오연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음속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다.”
허공으로 전개되는 마법진.
육각형이 팔각형으로, 팔각형이 십이 각형으로.
거침없이 크기를 불려나가며 세상을 양단할 기세로 확산된 마법진이 번쩍였다.
───!!!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대기의 울부짖음.
격렬하게 요동치는 격풍의 너머.
조왕은 단 일격에 빈사에 가까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 녀석, 강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이런 녀석의 발을 붙들라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맙소사. 조왕님이 일격에 저렇게까지 당하다니.”
조인족 최정예 전사들은 전투의사마저 꺾였다.
지금이다.
지금 당장,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면 이들로서는 절대로 루드비히를 막지 못한다.
‘난쟁이. 지팡이를 저 녀석을 향해 겨눠라.’
“우리의 목적은 리페일이라는 여자를 탈환하는 게 아니었나?”
‘이대로는 리페일을 탈환하기도 전에 이쪽의 전력이 먼저 전멸해버리고 만다.’
난쟁이는 굳은 낯으로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이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단 하나 뿐이다.
‘랜덤마법 발동.’
기적에 한없이 가까운 전력으로도 이길 수 없다면.
방법은 간단하지 않겠는가.
이번에야말로 기적을 일으키면 된다!
『랜덤마법으로 [화살표 공략]이 선택되었습니다.』
『지속 중인 디버프 [티타늄 슬라임의 저주]로 인해 [화살표 공략]이 [애로우 슬라임]로 변화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다!
이게 뭐야.
완전 쓸모없는 게 걸려버렸잖아!
*화살표 공략
-당면한 상황에서 위기를 타개하려면 어디로 향해야하는지 방향을 알려드립니다. 단, 신체능력이 부족하면 화살표를 보고도 따라갈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가뜩이나 [화살표 공략]은 전투용 마법도 아니다.
그게 지금은 무려…
한층 더 잉여스러운 [애로우 슬라임]으로 변해버렸다!
*애로우 슬라임(Arrow Slime)
-적의 약점을 향해 무작위 균체를 발사하는 마법입니다. 단, 발사된 슬라임의 크기와 종류, 강약과 지닌 효과는 모두 무작위입니다.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38』
『마법성공률 16%에 미달! 마법시전에 실패합니다!』
효능은 다이스갓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엎지른 물.
결과는 전적으로 부작용에 달렸다.
『부작용 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6』
『[부작용 No.6]의 효과로 마법이 필드마법으로 변화합니다.』
적어도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
부작용 넘버링이 하나만 더 줄어들었어도 위력이 백분의 일로 줄어들며, 거기서 하나가 더 줄어들면 애매한 효과를 일으키는 등의 있으나 마나한 게 걸렸겠지.
이거라면 아슬아슬하게 제 효력을 발동할 수 있다.
“이제 와서의 랜덤 마법인가.”
‘얕보지 마라. 내 랜덤 마법의 위력은 나 자신도 계측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니까!’
“…이게?”
필드마법으로 확장된 애로우 슬라임은 확실히 상당한 물량을 과시했다.
눈에 보이는 숫자만 무려 수천.
크고 작은 슬라임들이 밀집된 마력에 맺혀 탄생하며 쏘아지고 있다.
루드비히 말고.
이쪽을 향해서.
“꺄아악! 슬라임에 덮쳐져버려!”
“우왓, 기분 나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지팡이!”
루드비히는 싸늘한 조소를 띠었다.
“안됐구나. 운이 따라주지 못해서. 애로우 계열의 마법은 대기술사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성이라 해도 좋을 만큼 허접하지. 이렇게 조금만 대기를 비틀어도 제멋대로 뒤틀리니까.”
아군들은 무수한 슬라임에 얻어맞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거 전멸의 위기 같은데.
정말로 이렇게 허무하게 몰살당하는 건가!?
“어… 근데 이거 아프지가 않은데?”
“뭐지. 방금 치유 받은 기분이 들었어.”
“중독이랑 해독이 동시에 걸렸잖아?”
조인족 전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멀쩡하게 일어났다.
-프랑 : 과연! 효과가 랜덤이라는 건 이런 의미였는가!
-츳키 : 디버프랑 버프가 동시에 걸리다니!
-낭자아이 : 쓸모없는 마법이어서 다행이야! 적에게도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못했어!
이거 기뻐해도 좋은 상황 같은데.
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지.
랜덤마법이 대체로 잉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쓸모없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서럽다.
“재롱을 보는 것도 여기까지이다. 개복치. 너만은 특별히 살려주지. 공국이 멸망하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지켜봐야 할 테니까.”
‘랜덤마법이 단발성 마법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한 발 더 갈겨주지!’
“그런 느린─”
여유롭기 그지없던 루드비히의 안색이 급격히 경직되었다.
다급히 휘두르는 손.
그녀의 손짓에 따라 휘몰아친 바람이 한 무더기의 애로우 슬라임을 뿌리쳤다. 그러나 비틀거리며 경로를 이탈한 애로우 슬라임들은 다시금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성가신 수작을 부리다니.”
언제부터인가 랜덤마법으로 발산되는 슬라임들에 [유도] 기능이 첨부된 것이다.
그런가.
나는 그 이유를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화살표 공략은 본디 공략포인트를 알려주는 마법. 같은 수법으로 먹히지 않으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주지.’
심지어 그것이 버그 걸린 지팡이로 인해 무한한 대마력을 지니게 되고, 나아가 부작용으로 인해 필드마법으로 전개되며 수량의 한계를 벗어났다.
정밀도와 물량.
어느 한 쪽으로도 뒤처짐이 없는 자동화 공략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큭! 이런 재주 따위, 개복치가 지닐 리가 없건만…!”
유도성능만으로는 공략이 이행되지 않자, 애로우슬라임들은 저마다 뭉치며 점진적으로 크기를 불려나갔다.
편차는 있더라도 이제 1m 이하의 화살은 없다. 아니, 화살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공성추들이 수천 단위로 매 순간 거듭 탄생하고 쏘아진다.
막대한 마력을 실은 바람을 지속적으로 발산해내지 않는 한, 설령 그러더라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공세가 퍼부어지는 것이다.
“지금이다!”
“저 여자를 저지해!”
켄이치와 발드 마이저의 마법과 권능이 화력을 더하자 가공스러운 실력을 지닌 일류 게이머 루드비히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적어도 랜덤마법이 지속되는 한.
녀석은 이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수세를 굳힐 수밖에 없다. 상황을 타개할 힘은 있으나, 천마와 마주쳐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여력조차 남기지 않으면 교섭은 이루지 못한다.
그는 결코 약자와의 교섭을 따르지 않으니.
루드비히로서는 외통수에 놓인 것 마냥 어찌할 방도도 없는 것이다.
“지팡이. 네가 기대하던 기회가 드디어 왔군.”
‘음?’
“검사 리페일. 네가 애타게 찾던 여자가 대기마법과 랜덤마법의 충돌권에서 벗어나느라 따로 떨어져 나왔다.”
‘그런가! 실로 좋군!’
“곧바로 신속하게 추격에 나서지.”
비록 전심전력을 다해 내공을 소비했었다고는 해도 난쟁이 또한 초월지경에 접어든 초고수.
위대한 검주 씩이나 되는 자라면 이 정도의 휴식만으로도 충분히 추적에 필요한 내공은 회복할 수 있다.
다른 회차에 비하면 리페일의 현재 경지도 나름 상승한 것으로 보이나, 기껏해야 갓 검주급에 오른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신법을 펼쳐도 난쟁이를 떨쳐낼 수 없었다.
“거기까지다!”
쩌엉!
난쟁이의 일검을 받아낸 리페일이 바닥을 구르며 신속하게 임전태세를 취했다.
충격을 해소하는 움직임.
그녀의 전투경험은 결코 적지 않지만, 가늘게 경련하는 손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힘의 우위는 명백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리페일은 일찍이 사태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침중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신생마왕군의 참모. 마왕군 결전병기. 킹메이커. 재앙을 부르는 자. 마왕의 부군. 그런 자의 흑심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절대적인 열세.
승산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는 언제나 그렇듯, 뻔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두 눈에 깃든 감정.
자애로움과 선량함은 없다.
그녀의 눈에는 명백한 적개심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악의라는 건 언제나 마주보기 힘들군. 특히나 선량한 자에게 받는 악의는 더욱 더.’
“헛소리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군. 신생마왕군의 중추나 다름없는 존재가 악의를 두려워한다니.”
‘아무래도 루드비히가 단단히 입김을 불어넣은 모양인데. 단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네 생각만큼 나쁜 녀석이 아니다.’
리페일은 대놓고 개소리를 들은 표정이 되었다.
“그럼 묻겠다.”
‘증명인가? 바라던 바다!’
“대륙을 초토화시킨 자갈폭풍은 그대의 소행이렷다?”
음…….
‘그건 맞네.’
“세계평화를 주장하며 정상회의가 개최된 장소에서 정복왕에게 선전포고를 건 것 또한 그대렷다?”
으음…….
‘그것도 맞네.’
“루드비히의 대기마법에 따르면, 그대가 란도멜이라는 아녀자를 겁탈했다고 하더군. 그녀의 증언이 잘못되었는가?”
뭔가 존나 억울한데.
미친.
하지만 이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충분한 해명의 시간만 준다면… 에잇, 집어치워! 그래, 내가 란도멜을 겁탈했다!’
“하면 그대는 대륙에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인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며, 자신의 부하의 연인조차도 가차 없이 겁탈하는 쓰레기임이 틀림없군. 이 주장에 잘못된 바가 있는가?”
‘어… 이렇게 말하면 그럴싸하게 들린다만, 대체로 그거 다 틀렸는데.’
리페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검을 치켜들었다.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는 눈만 봐도 내가 뭐라 말하든 흘려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마치 그대와 내가 싸워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구나, 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엄청나게 억울하지만 정작 항변할 여지가 없었다.
진짜 변명도 못하겠는데.
뭐지.
나 실은 엄청나게 쓰레기였던 건가…!?
============================ 작품 후기 ============================
*설정1> 개복치는 최후의 선성향 게이머입니다.
*설정2> 뭔가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22세기 기준으로는 엄연히 선성향입니다.
*설정3> 물론 작가도 설정 내용을 그다지 신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