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38
00437 #18 – 잊고 있던 것 =========================================================================
#18 – 잊고 있던 것(14)
성검 엑스칼리버가 꽂혀있는 던전.
언뜻 듣기로는 난이도가 미쳐 날뛸 것 같겠지만 막상 몬스터나 함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유?
그거야 뻔하지.
벌써 완벽하게 공략이 이루어진 던전이기 때문이다.
“던전의 몬스터는 본래 주기적으로 부활하지 않는가?”
‘맞아.’
“헌데도 몬스터가 없다는 것은 던전에서 상주하는 고수들이 있다는 말이겠구나.”
드물게도 셀레나가 통찰력을 선보였다.
‘뭐 그렇지.’
“이곳은 폭포수의 안쪽에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높은 고도에 자리하지 않았는가? 식량 수급도 어렵고 거주에도 불편함이 많을 터인데 용케도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해발 5,000m의 악마군주의 대미궁에서 살던 네가 할 소리냐?’
참고로 비교하자면 성검 엑스칼리버의 던전은 해발 750m에 위치해있다.
찾는 것과 진입하는 것이 까다로울 뿐이지.
의외로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래는 진입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 아예 여기로 들어오라며 제대로 된 길도 있었으니까.’
“본녀는 그런 편리한 길을 본 기억이 없네만.”
‘당연하지. 여기에 상주중인 은거고수들이 어중이떠중이들한테 엑스칼리버를 빼앗기기는 싫다면서 길을 죄다 박살내버렸는걸.’
제가 가질 수 없는 보물은 남도 가질 수 없다는 심보다.
놀부 같은 녀석들.
고절한 실력에 걸맞지 않게 하는 행동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길이라고는 해도 애초에 이런 절벽까지 이어지는 길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아. 이거 원래 절벽 아냐.’
“뭐…?”
란도멜은 사기 치지 말라며 나를 노려보았다.
‘원래 여기가 어디였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어딘데.”
‘산 한복판이다. 대협곡이 아니라.’
그제야 란도멜의 기겁하였다.
“그럼 산을 부숴서 협곡으로 만들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은거고수라고는 해도 이 앞에 있는 건 개개인이 가르 아쉬란과 엇비슷하거나 좀 더 강한 녀석들이니.’
“으음…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나.”
정석적으로 가면 그렇겠지.
솔직히 좀 쫄린다.
은거고수들은 우국충정 같은 사명엔 조금의 관심도 없다.
애초에 국가에 환멸을 느끼거나 흥미를 잃은 놈들인걸.
칼슈마르 공국이 멸망해도 알 바 아니라고 할 거다.
그런 놈들이 그저 성검을 넘겨주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을 가로막는다면?
엄청 힘들겠지.
아무리 란도멜이라도 무려 다섯 명의 은거고수들을 모두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섯이 뭐야.
셀레나와 리페일이 하나씩 상대하고 남은 셋과 격전을 벌여도 필패하게 될 거다.
자신과 동격의 상대를 셋이나 한 번에 상대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정공으로는 성검 엑스칼리버와 마주하기도 전에 여정이 파탄나고 말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강자들인가.”
‘성격은 파탄 난 쓰레기들이어도 실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진짜배기이니까.’
어쩌다가 그런 쓰레기들이 고강한 실력을 얻게 되었는지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런 고약한 심보와 독기가 있기에 그만한 경지에 올라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란도멜과 리페일도 방향성이 다를 뿐이지 독기로는 결코 그 녀석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저기. 가는 것도 좋지만 식사는 언제 합니까?”
“식사? 그건 지팡이가 만들 수 있다네.”
‘그렇지. 포인트 상점에서 저렴한 걸로 구매하면 되니까.’
줄곧 묵묵하게 파티를 따라오던 공간술사가 자발적으로 입을 열다니.
꽤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신세를 진 것에 대한 답례로 적당히 먹음직한 녀석을 구매하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잠깐만 있어봐.’
“음? 왜 그러는가 그대여.”
‘공간술사 씨는 성검 엑스칼리버를 본 적이 있었지?’
공간술사의 얼굴이 급격히 썩어 들어갔다.
봤네.
저건 성검을 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그럼 성검이 있는 앞까지 한 번에 공간이동 할 수 있는 거였잖아.’
던전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것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
스산하다 못해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운 란도멜의 표정.
공간술사는 뒤늦게 어버버 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공간이동을 하고 싶어도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뭐야. 못하는 거였어?’
“던전에 거주하는 은거고수들이 뺀질나게 들락거리는 마법사들이 마음에 안 든다며 사비를 털어서 공간이동 방어술식을 던전 도처에 도배해버리는 탓에 그만….”
‘…….’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쓸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뭔가 아쉽게 되었다.
단번에 성검으로 향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미련을 가져봐야 소용없다.
우리는 착실하게 길을 따라서 전진을 거듭했다.
그리고 갈림길과 만났다.
친절하게 푯말까지 박혀있네.
[함정←] [→막다른길]이라고 써져 있다.
밑에는 작게 첨언도 달려있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인가.
“제대로 된 길이 없다!?”
“수상하다! 너무나도 수상하구나!”
란도멜과 셀레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태클이었다.
엄청 성가시네.
은거고수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건 확실한데 뭔가 영상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잖아.
분명 컨트롤마스터도 성검을 입수하기는 했었는데…
아, 맞다.
컨트롤마스터는 검강을 물처럼 쏟아 부으며 절벽을 박살내고 성검을 가져갔었지.
‘도움이 되지 않아!?’
실력 차이가 너무 현격해서 따라할 엄두도 못 내겠다.
그래도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지.
나는 고압적으로 공간술사를 다그쳤다.
‘어이, 공간술사. 길은 알고 있겠지? 이 쓸모없는 놈!’
“어째서 저를 핍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은 모릅니다.”
‘그럼 순순히 앞장서서 길안내를… 아니, 모르는 거냐!?’
공간술사는 정말로 억울해하며 따졌다.
“이곳의 은거고수들은 주기적으로 던전을 박살내며 미로를 만든단 말입니다. 대체 무슨 수로 즉흥적으로 바뀌는 던전 구조를 해석해낸단 말입니까.”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결국 모른다는 거 아닌가. 이 쓸모없는 놈!”
셀레나는 이유 따위는 관심 없다며 매도했지만 말이다.
아니 이런 건 왜 이리 빨리 배우는 거야?
애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짓을 따라하고 있지 말라고.
‘이건 왼쪽으로 가면 된다.’
혼란에 빠진 파티원들을 구하려면 역시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왼쪽은 함정이라고 써져있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함정이 있는 건 틀림없지 않겠는가. 아마도 거짓말이겠지만.”
‘엘프의 거짓말을 떠올려봐. 놈들은 함정과 막다른길이 있다고 했지, 함정의 난이도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어. 거짓을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처럼 두루뭉술 넘어가는 거지.’
“그렇다면… 함정의 난이도가 의외로 허접할 수도 있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표현이 허접하잖아.
맞는 말이겠지만.
원래 있던 함정은 저놈들이 다 해체했는데 위험성이 높아봤자 얼마나 높겠어.
“음?”
왼쪽 길로 가려던 란도멜이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란도멜의 소매를 붙잡은 리페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쪽 아니야.”
“지팡이는 여기가 맞다고 했는데.”
“멍청한 지팡이가 잘못 판단한 거다.”
뭐 인마.
지금 이천 회차를 거친 게이머의 식견을 무시하는 거냐.
“여기.”
리페일이 벽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드르르르르
그러자 기관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숨겨진 통로가 나타났다.
“어이, 지팡이.”
‘죄송합니다. 기고만장해서 죄송합니다.’
무시당해도 쌌다.
왼쪽 오른쪽 전부 다 가면 안됐었네.
“지팡이도 찾아내지 못한 숨겨진 길을 어떻게 발견한 건가?”
“은거고수들의 손에 함정이 해체되었다는 말을 듣고 직감했어. 해체된 함정이 고스란히 다시 매설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해체경험을 살려서 살상력은 더욱 높였겠지.”
“그런 건가.”
“그리 감탄할 것까지는 없다. 이 정도야 모험가의 기본소양이니까.”
“모험가라는 건 의외로 대단한 직업이었군.”
속지 마.
저런 모험가는 대륙에 열 명도 없어.
“으음. 정석 루트가 아닌 건 알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들러도 좋지 않겠는가?”
‘무슨 이상한 집착을 보이는 거냐. 왼쪽 길로 가봤자 갈 수 없는 길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고.’
“그래도 말일세. 던전이라는 건 그런 법칙이 있지 않은가.”
셀레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닌 곳에는 반드시 던전 공략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떨어져있지. 덤으로 보물상자도.”
태클 걸고 싶다.
그런 게임 같은 설정이 있겠냐며 무진장 태클 걸고 싶은데…
“그건 맞지.”
여기 게임이잖아.
리페일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도 은거고수들이 알짜배기는 다 가져가고 남겨둔 잡템일 뿐이야. 괜한 욕심 부리지 말고 목적지로 직행하는 게 나아.”
“그런가… 리페일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
왠지 모르게 셀레나의 리페일을 향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윽.
마치 내 여자를 빼앗긴 것 같은 좌절감이 드는 걸.
그러는 리페일도 내 여자지만.
그럼 이건 흐뭇해해야 하는 상황인 건가?
“셀레나. 거기서 정지.”
“음?”
“왼발 1.2cm 앞에 트랩이 있어.”
셀레나는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좀 더 빨리 말해줘도 좋았잖은가! 거의 밟기 직전이네!”
“으음… 미안하다.”
“좀 더 부지런히 색적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이게 바로 아쉬울 것 없이 자라난 마왕의 패악질인가.
내가 보기에도 부쩍 거만해졌군.
아무래도 셀레나에게는 좀 더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셀레나. 태도가 그게 뭐야. 모처럼 리페일이 우릴 위해서 힘을 써주건만.’
“그대는 검을 못 다루는 란도멜이나 서류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켄이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냥 이쁜 미녀네.’
“덤으로 못생기기까지 하다면?”
‘성격 좋은 추녀네.’
셀레나는 짐짓 화가 났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첨언했다.
“성격까지 나쁘다면?”
나는 셀레나의 조건문을 상상해보았다.
‘시발. 존나 끔찍해.’
“그게 본녀가 하고 싶은 말이라네.”
‘리페일은 성격 좋고 미녀에 색적도 잘하잖아.’
비교를 할 걸 비교해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문에 비견될 리가 있겠냐.
“윽…”
‘기억해두라고. 교만한 태도를 보여도 좋은 건 확실한 논리와 힘을 갖춘 강자뿐임을. 지금의 너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어.’
“미안하네… 앞으로는 보다 절차탁마하여 완벽한 수사학으로 중상모략을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네.”
암.
이래야 내 주인님답지.
-옷아람 : 선성향 코스튬은 어디다 두고 오셨어요?
몰라.
그런 거 묻지 마.
“잠깐. 뭔가 접근한다.”
함정을 해체하고 전진하기를 얼마간.
란도멜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단단히 긴장했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기의 덩어리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엑스칼리버와의 조우를 가로막는 최후의 경쟁자.
성검 습득에 일생을 건 절대자들.
검 하나만 보며 수십 년을 던전에서 살아온 은거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엑! 이 더러운 냄새는 무엇인가! 믿기지 않아! 몬스터에게도 이런 노린내는 날 수 없어!”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
“닥치거라! 더러운 입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지 않느냐!”
“…….”
멋지게 폼을 잡기도 전에 절차탁마한 셀레나의 극딜이 초라한 은거고수들을 두들겨 팼다.
하긴 은거고수라면 보통 위생적이라는 이미지는 아니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 잘 씻지도 않을 테고, 그만큼 게으른 생활을 이어왔을 것이다.
딱히 좋은 이미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저놈들에게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자기관리가 안 되는 은거고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