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507
00506 #20 – 킹메이커 =========================================================================
#20 – 킹메이커(25)
현실은 가혹하다.
다이스 게임이 제 아무리 수많은 사망플래그로 점철된 사행성게임이라고 해도.
실제 현실은 세계재건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4형 뮤턴트라는 재앙이 영역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구시대의 문명의 잔해들은 거악(巨惡)들의 노리개로 활용되고는 한다.
용사에 비견될만한 정신을 지녔거나.
군웅할거에 비견될만한 난놈이 없는 건 아니다.
허나 그 숫자는 다이스 게임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미처 재능을 개화하지 못하고 꺾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일수록 전란 속에서는 더욱 신속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남겨진 자들은 천운이 따라주어 목숨을 부지했을 뿐.
그마저도 겁쟁이나 악당이 태반이다.
심지어 4형 뮤턴트의 변덕 한 번이면 모조리 학살당하겠지.
‘그것이 네가 모르는, 세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네놈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권력은 한 줌의 데이터에 지나지 않으며, 그마저도 네놈과 관계없는 곳에서 전부 사라질 수 있지.’
욕망을 지니고도 제 것을 지킬 수 없다는 무력함.
싸워보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패배감.
진정한 의미에서의 [항거불능]이 황제의 뇌리를 연거푸 강타하였다.
“유감이군. 실로 유감이야.”
충격적인 폭로의 끝에서 펜하우어 3세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짐이라면 알 수 있다. 그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쯤은. 진정으로 이 세계가 하위차원에 불과하며, 만들어진 가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그늘진 얼굴의 위로.
“마왕군 결전병기. 네놈의 비장의 한 수라는 것이.”
흩날렸던 머리카락 위로 올린 다섯 개의 손가락.
그것이 가린 것은.
죄악감도.
절망감도.
압도적인 공포도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을 줄이야.”
‘……!!’
희열이었다.
“이 손아래에 무너진 생명의 무게는 적지 않았다. 때로는 정적을. 때로는 친족을. 때로는 사랑했던 연인마저도 죽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한 줌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그걸 아는 녀석이…!’
“그 희박한 죄악감을, 방금 네 녀석이 부숴주었다. 전부 거짓에 불과하다면. 그 존재를 거두어도 짐은 네놈들 게이머가 저지르는 죄악에 비하면 소악(小惡)에 불과하지 않은가.”
‘!?’
“몇 번이고 세계를 멸망시키고. 몇 번이고 무수한 인명들을 한 줌 유희를 위해 희생시켰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네놈이 마왕군 결전병기라 불리게 된 이유를.”
황제는 [나]를 향해 유열로 가득 찬 흉소를 지었다.
“네놈은 짐과 [동류], 아니 그 이상의 [선구자]적인 존재였다. 예정된 파국 아래에 발버둥치는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다. 세계의 비밀을 깨닫고도 쾌락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는 존재에 비하면, 짐의 욕망조차도 반딧불에 지나지 않을 터이니!”
틀렸다.
완전히 오판하였다.
녀석의 광기는, 녀석의 욕망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구 마왕군이라는 절망을 앞두고도 죄악으로 뒤덮인 길을 걸어왔던 황제였다.
거기에 세계의 비밀이 더해진다고 해도, 황제가 지닌 최소한의 브레이크인 [죄악감]이 사라질 뿐이다.
“그래. 킹메이커라 하였는가. 네놈은 옳았다. 이렇게나 훌륭한 왕을 만들었으니까.”
쩌적─.
갈라진 단선음의 너머.
황제의 얼굴이.
황제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이레귤러(Irregular)에 뒤덮인다.
“그렇다. 네놈이 짐을 만들어주었다.”
쩌저적─.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넘어서.
생명의 존엄이라는 무게마저 초월한.
사상 초유의 절망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신생마왕, 펜하우어 3세를!”
챙강──!
사슬이 부숴졌다.
그릇이 박살났다.
펜하우어 3세를 완성시킨 것은 구 마왕군도, 프리드리히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
한 순간의 오판으로 인해 나는 또 다른 왕을, 새로운 신생마왕을 탄생시켜버리고 말았다.
『세계관에 중대한 영향력을 지닌 레전드리 원(Legendary One)의 가치관에 격변을 일으켰습니다. 펜하우어 3세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마땅한 최소한의 존엄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지금의 그를 제어하는 요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월. 종을 벗어난 이레귤러가 마왕의 위에 눈을 떴습니다.』
『대륙에 새로운 절망, 신생마왕 펜하우어 3세가 출현했습니다.』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 당신은 세계 최초로 인류 진영의 전설적인 인물을 마로 타락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킹메이커다운 업적에 500,000,000p가 지급됩니다.』
『특별보상으로 칭호 ‘킹메이커’가 부여됩니다.』
『종족 특성으로 인해 칭호가 아이템 설명 문구에 합쳐집니다.』
트루엔딩은 세계평화로 이룩해야만 했다.
진정한 마왕은 셀레나가 되어야만 했다.
이런 절망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에픽퀘스트 ‘멸천의 마왕’이 발동했습니다.』
『신생마왕 펜하우어 3세는 순수하게 세계의 멸망을 염원하는 이레귤러 중의 이레귤러입니다. 그는 자신을 마왕의 길로 인도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합니다. 허나 그 대가는 고통 없는 죽음뿐입니다. 목전까지 치달은 데드 엔드(Dead End)로부터 벗어나십시오.』
『성공 조건 : 멸천의 마왕으로부터 도주한다.』
『실패 조건 : 데드 엔드(Dead End).』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늦어버렸다.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리고 말았다.
각성한 마왕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층 더 강화된 녀석의 권능은 어느 누구도 맞설 수…
“건.. 방.. 떨.. 지.. 마.. 라…!”
‘셀레나!!’
“지팡.. 이가.. 선택.. 한.. 마왕은.. 오직.. 본녀.. 뿐이다…!”
입가로 흘러내리는 선혈.
육체의 제어를, 권능의 제어를 정신력으로 극복한다.
거대한 분노는 능히 자신에게 걸린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바로 방금 전.
펜하우어 3세가 인륜의 길을 저버린 것처럼 말이다.
“꿇어라.”
“!!”
“네놈에게 짐과 시선을 마주할 자격은 없다.”
허나 격이 다르다.
마왕후보자가 아닌 마왕이다.
그 격의 한계는 제 아무리 셀레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다.
“세계를 지킨다는 막연한 희망. 그런 것들을 남김없이 짓밟으며 멸망을 부르는 것이야말로 능히 마왕이 취해야만 하는 길이지. 더는 네년 따위를 이용할 필요조차도 없다.”
히죽.
참을 수 없는 불길함이.
몇 번이고 맞보아온 무력함이 엄습해온다.
이 장면.
이와 같은 순간을 지금껏 나는 몇 번이고 맞이해왔다.
“죽어라. 네년의 손으로, 네년이 가장 사랑하는 부군의 앞에서 목숨을 끊어라.”
“!!”
‘그만둬어어!! 이 개자식아아아!!’
필사적으로 두 눈에 핏줄기를 세우며 저항하는 셀레나.
그러나 덜덜 떨리는 손은 착실하게 허리춤에 채워둔 검집으로 향한다.
의지를 초월하는 [종언].
언령의 극에 달한 녀석에게 저항하는 것은 나 정도의 정신력을 지닌 인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지금 이 자리에 그만한 저항력을 지닌 인물은…
“충분하다. 너는 잘 버텨주었다.”
“리..페일..!”
“이만 쉬고 있거라.”
리페일.
단 한 명 뿐이다.
그녀의 손이 단숨에 목덜미를 가격한 직후.
셀레나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자각이 없는 한, 권능의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기이한 계집이로군. 허나 상관없다. 네년도 [자살]해라.”
“통하지 않는다.”
“…!”
리페일의 정신력은 일찍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세계의 진실을 엿들었다.
일류게이머 루드비히의 악의어린 폭로에 의해서.
그녀가 들은 정보수준은 황제 이상이다.
지금의 황제가 어떠한 폭언으로 그녀를 짓누르고자 해도, 정신력의 총량에서라면 나조차도 넘어서는 것이 리페일이다.
“그런가. 이것이 네놈이 준비한 [최후의 한 수]였는가.”
만일 황제가 돌발적인 각성을 일으키지 않았었다면.
리페일은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초월무인의 빈틈을 뚫고, 제한적인 언령을 구사하는 황제의 숨통을 끊을 단 한 번의 기회를 말이다.
이제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기회는 셀레나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놓쳐버렸다.
“유감스럽지만 그리 오래는 버티지 못한다. 십초지적. 저 기사단장을 상대로는 기껏해야 그 정도가 내 한계다.”
‘충분해. 준비는 만전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젠 해볼 수밖에 없다! 1호 누님!’
(맡겨달라고!)
황제는 시시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기껏해야 최후의 발버둥. 남김없이 짓밟아라, 쉔.”
“존명.”
검기가 모여 검강을 이루고, 검강이 고밀집을 이루어 백뢰를 이루는 필살검초가 완성되기 직전.
황실기사단장 쉔의 검이 멈칫했다.
정면으로 쇄도해오던 리페일의 신형이 일순간에 수십 개로 늘어나며 사방을 점했기 때문이다.
“정령 녀석… 어느 틈에 이런 잔재주를 부린 거지?”
특급사막정령은 사막과 유사한 환경이 아니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그와 유사한 환경을 갖추면 얼마든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다.
『모래팩(1t)을 1,000p에 구매했습니다.』
천금보다도 귀중한 일 톤의 모래팩.
조금씩 틈을 노려 구매한 모래들로 환경은 갖추어졌다.
“부질없는 짓을. 경계를 넘지 못한 자는 절대로 초월자를 이길 수 없다.”
파아아아앙!
매섭게 몰아치는 칼바람이 삽시간에 장내에 분산된 분신들을 날려버렸다.
사막정령의 [신기루]가 발동되기 위한 조건인 모래가 검압에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수.
리페일의 칼이 황제에게 닿기도 전에 쉔의 백뢰검이 섬전같이 날아들었다.
쩌어어엉──!
둔중한 굉음과 함께 튕겨나가는 리페일.
허나 그녀의 입가에는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설마…!”
주공은 그녀가 아니었다.
신기루가 발동하기 위한 조건.
그건 모래만이 아니다.
고온.
공기층이 격변할 정도의 기온차이를 생성해내어 시야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위인가!!”
늦었다.
기사단장 쉔의 검이 도달하기도 전에 1호 누님이 만들어낸 초고열의 격류가 황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이 닿지 못해도 검압만이라면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카아앙!
“말했을 터다. 십초 내라면, 반드시 버텨낸다고.”
“큭!”
“황제폐하!!”
리페일의 검이 악착같이 쉔의 검로를 틀어막아 검압의 전개를 방해하였다.
이것으로 체크 메이트.
비록 언전에서는 패배했을 지라도, 전쟁에서의 승리는─
『멸천의 마왕의 멸좌의 성운(행운 92)이 빛납니다.』
『절대 불가침(absolute nonaggression) 발동.』
『황권에 근간을 둔 마왕의 권능은 모든 종류의 피해로부터 하루 중 5분간 무적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권능.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진 존재는 후요와 같은 수호신이 없더라도 개인이 지닌 멸업(滅業)에 의해 보호받는다.
사명을 달성하기 전까지 스스로를 지키는 세계의 의지.
시스템은 그를 정복왕 이상의 중요인물로 인식했다.
그런 인물의 돌발변수에 의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한 최종 방어 장치가 발동한 것이다.
“훌륭하군. 잘도 여기까지 저항해주었다.”
황제, 아니 마왕은 선홍빛 눈으로 우리를 향해 가늘게 눈웃음을 지었다.
“하면 남은 5분. 이건 어떻게 버텨볼 텐가.”
그야말로 악의가 넘쳐난다.
세계의 의지가.
마왕의 의지가.
멸망의 의지가.
역전의 기로에서 우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더는 두고 볼 것도 없다. 전부 죽여라.”
쉔이 검을 치켜드는 순간.
입술을 짓씹으며 검을 들고 자세를 낮추는 리페일.
그녀의 앞을 한 남자가 가로막았다.
“송구하오나 그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5분의 제한시간.
이에 맞서는 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차기 황태자.
시드너 펜하우어였다.
============================ 작품 후기 ============================
[주사위 판정 결과(Ver 2.0)]
셀레나 저항판정 D100굴림(1~5% 완전저항, 6~50% 부분저항, 51~70 극소저항, 71~95 굴복, 96~100 완전불곡)
Roll : 82(굴복)
결과 : 억제를 무시한 행동으로 인한 중대한 내상 발동.
리페일 저항판정 D100굴림(1~5% 완전저항, 6~35% 부분저항, 36~55 극소저항, 56~95 굴복, 96~100 완전불곡)
Roll : 3(완전저항)
결과 : 챕터 최종전 참전.
개복치 저항판정 D100굴림(1~5% 압도, 6~50 완전저항, 51~80 부분저항, 81~95% 극소저항, 96~100% 굴복)
Roll : 42(완전저항)
결과 : 챕터 최종전 참전.
펜하우어 3세 이성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30%, 굴림값 보정치 0%)
Roll : 19(성공)
결과 : 온전한 이성을 지닌 채 인격의 고리 파괴. 격상의 존재, 멸천의 마왕으로 진화.
리페일 습격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5%, 굴림값 보정치 0%)
Roll : 54(실패)
결과 : 황실기사단장 쉘에게 유효타 입히기 실패, 단순교착.
특급사막정령 1호 특수공격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30%, 굴림값 보정치 0%)
Roll : 12(성공)
결과 : 황제의 최종 방어 장치, [절대 불가침]을 가동시킴.
– – – – –
주요 등장인물이 사망하면 재밌어진다는 게 사실일까요?
제가 한 번 실험해보겠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