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59
00059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 =========================================================================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16)
미친 듯이 까이는 내구도는 초당 1씩 회복되는 속도를 훨씬 상회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자갈에 얻어맞다가 죽을 기세이다.
내구도 회복 포션?
아이템이라 마실 수가 없다.
내구도 무한 기능?
팔지도 않고, 사려고 하면 몇 백억 포인트로도 부족하다.
폴리모프 마법?
스킬을 구매해도 시전 할 손이 없다!
‘으아아아아!’
기어이 내구도가 1까지 급감했다.
영락없이 죽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지팡이님 약해!)
(너덜너덜해!)
(튼튼하지 않으면 안 돼!)
정령들이 다시금 날개를 펄럭이며 각질을 뿌려댔다.
그러자 희뿌연 막이 몸체 위로 어렸다.
팅. 팅.
사납게 날아들던 자갈들은 막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정령술의 파생 중 하나인 정령마법이 방어막을 펼친 것이다.
대체 언제쯤 효력을 발휘하려나 싶었지만 특급스킬 [정령의 벗]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했다.
이 스킬은 단순히 정령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다.
정령과의 친화도, 호감도를 대폭 상승시켜준다.
잘은 모르겠지만 스킬 배우면 페르몬이라도 나오나보지.
덕분에 정령들의 가호를 받으며 자갈폭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쓰레기처럼 내던져지며 지상으로 추락할 때는 무서웠지만.
어쨌든 살았다.
나는 살아남았다고!
‘이제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거지?’
네라고 해.
아니라고 하면 너흴 통구이로 만들어주마.
(우웅… 아쉬운데.)
(약속은 약속!)
(도와줄게!)
살았다.
어린애나 다름없는 성격이라 떼를 쓰지 않을지 걱정됐어.
스킬 등급이 미흡해서 친화력이 낮았거나 괜한 허세로 바쁜 티를 조금이라도 덜 냈다면 ‘보물찾기’를 빙자한 ‘생매장’도 해야 했겠지.
스스로의 현명한 판단에 다시금 마음 속 깊이 안도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가만.
정령들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대로 목적지로 직행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이왕이면 가기 전에 왕궁에 들러서 모두랑 합류도 하고.
그런 다음에 악마상인 마그람과 결판을 내는 거야.
이것이 내가 그린 빅─픽쳐!
큰 그림이다!
‘투르비쳬 공국 수도까지 직행할 수 있을까?’
정령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세게?)
(얼마나 강력하게?)
뭔가 스파이가 섞여있는 것 같은데.
빨리 가면 빨리 가는 거지 강력하게 가는 건 뭔데.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정령이니까 분명 굉장한 속도로 이동시켜 줄 수 있겠지.
작은 것들은 서로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언니 부를게!)
(언니 더 빨라!)
(언니 더 강해!)
상급정령이라도 부르는 건가.
정령들 사이좋네.
지들보다 위인 놈을 언니라고 불러주고.
-낭자아이 : 사막정령이 언니라고 부를 게 있었나?
-퐁삽 : 몰라. 근본도 없는 정령인데. 신규정령 나오겠지.
-스타펄수어 : 하이퍼넷 개념글 ‘정령도감 100%’ 저격 간다.
갤러리들이 모를 정도면 이것도 최초 발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위권 게이머들의 미공개 정보가 아니라면 업적 하나 뜨겠군.
정령들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뭔가를 질질 끌고 나왔다.
언뜻 보면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커다란 정령이네.
게다가… 예쁘다!
왜 진즉에 정령사를 하지 않은 걸까 후회될 정도인걸!
맑고 고운 노란 알갱이들로 이뤄진 몸체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스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지만 어째 짓는 표정은 육아에 지친 애기엄마인데.
(싫어! 안 놀아줘! 제발 그냥 잠들게 해달라고!)
머리칼이 붙들린 채 절규하는 정령의 모습에 가슴이 짠해졌다.
수면부족을 호소하는 처절하고도 절박한 외침이라니.
정령의 탈을 쓴 비글들한테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럴까.
하긴.
놀이삼아 자갈폭풍을 부르는 판국에 무슨 말을 더 하랴.
(놀이가 아니야!)
(지팡이님을 도와줘야 해!)
(멀~리 머~얼리 가야한다구!)
사막정령들의 성화에 예쁜 정령이 나를 쳐다봤다.
고운 노란색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마치 삶에 찌든 폐인이 삶의 활력을 찾아낸 꼴이다.
(에고 아이템? 정령의 친화력이 상당하네요.)
‘하하. 내가 한 매력 하지. 그렇다고 반하면 안 됨.’
『특급사막정령 1호의 호감도가 1 하락합니다.』
스킬빨 믿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지 말아야겠다.
근데 얜 이름이 왜 이래.
정령이 무슨 공장제품도 아니고 번호 붙여서 부르나.
『특급사막정령 1호의 호감도가 1 하락합니다.』
엑?
뭐야.
나 방금 천리전음 보내지도 않았는데.
설마 내 생각을 읽어낸 건가?
(그래요. 제게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죠.)
특급정령 무섭네.
앞담도 뒷담도 속담도 까면 안 되겠다.
(투르비쳬 공국 수도까지만 가면 되는 건가요?)
‘갔다가 인접도시까지 택시 한 번 더 태워주실 수 있나요?’
(택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멀지만 않다면야, 간 김에 선심 좀 쓰죠. 저희 애들이 여러모로 신세진 것도 있고 하니. 설마 에고아이템이 정령하고 놀아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요.)
전적으로 동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도 놀아달라는 건 사양이다.
이 짓도 두 번만 더했다간 원형탈모에 걸릴 것 같아.
(풋. 머리카락도 없으면서.)
와 시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낭자아이 : 웃는 얼굴로 극딜 미쵸
-졸라 : 통렬한 일격 크
-개드립 : 자라나라 머리머리!
농담과는 별개로 1호 언니는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드립이 끔찍하게 재미없어서 호감도는 떨어졌지만 투르비쳬 공국까지 셔틀은 태워준다지 않은가.
거기에 서비스로 인접 도시로 이동까지 해주신다니.
비글 같은 애기정령들에 비하면 의지할 수 있는 여자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우리 뭐 타고 이동합니까?
(자갈폭풍.)
또 그거냐!?
-침략자 : 미친닼ㅋㅋㅋㅋㅋ
-ㅇㅂㅇ : 한심..
-부두교졸개 : 개복치 최후의 날(Feat. 1호누님)
-점차장 : ㅋㅋㅋㅋㅋ
-묵제 : 답 없넼ㅋㅋㅋㅋ
난 배달하고 무슨 원수를 진 거 아닐까.
무장요원은 뮤턴트를 배달해주지를 않나, 1호 언니는 자갈폭풍으로 배달시켜준다지 않나.
뭐 양쪽 다 내가 먼저 요구한거기는 하지만.
암만 그래도 자갈폭풍은 너무 심하잖아.
‘다른 걸로는 안 되나요?’
(안돼요.)
단호박인줄 알았네.
안 된다는데 뭐 어쩌겠어.
태워준다는 대로 곱게 따라가야지.
‘모쪼록 빠르게만 부탁드립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다.
이틀이라는 타임아웃을 생각하면 정말 일분일초가 아깝다.
안전은 보장할 수 없지만 정령들의 정령마법을 생각하면 내 목숨은 지켜주겠지.
그런 계산으로 제의를 수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거였지.
애기정령들이 부른 자갈폭풍이 그 정도 규모인데.
그런 애기정령들이 친히 모셔온 1호 언니는 얼마나 더 큰 자갈폭풍을 불러일으키겠는가.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진 뒤에야 비로소 눈치 챘다.
-낭자아이 : 오늘이 둠스데이인가여
‘시발.’
대지와 창공을 잇는 거대한 황색 허리케인이 나타났다.
정말로 세계멸망이라도 시킬 기세의 특대형 자갈폭풍이었다.
***
사르갈 연합국은 사막에 세워진 국가들의 연맹체제이다.
이들은 기후 환경에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루가 머다하고 변화하는 사막의 환경 속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를 전담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가 바로 왕실천문관(Astronomer Royal, 王室天文官).
사르갈 연합국의 유수의 인재들이 모여 결성한 기후전담조직이다.
작게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부터 크게는 천문의 운행과 변동까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에 대한 정보를 관측, 수집, 분석, 예지하는 정보기관의 성향마저도 띄고 있다.
왕실천문관은 당대의 [파라오]가 세운 최대의 공적이라 여겨질 만큼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 백여 년간 이들이 행한 분석과 예지는 단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왕실천문관을 발칵 뒤엎을 파란만장한 사건이 벌어졌다.
“기, 긴급 상황입니다!!”
2급 천문관 노텔이 다급히 소리쳤다.
“또야? 수치 잘못 보고 호들갑 떤 거면 감봉 10%다.”
“부, 부당합니다!”
“그래, 우리 노답이가 뭘 보고 호들갑 떨었나 볼까.”
1급 천문관 에지오는 별 거 아닌 호들갑일거라 생각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구축된 천문관의 시스템은 지극히 체계적이다.
각종 변수에 대한 조사도 완벽한 만큼 아무리 사소한 징조라도 쉬이 간과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발견된 것이 바로 기후변동의 규칙성이다.
그간 축적된 데이터에 의하면 지금은 노텔이 호들갑을 떨만한 규모의 재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보다는 사람 쪽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애초에 노텔은 그리 신중한 성격도 아니었고 말이다.
“야. 너 제정신이냐? 기기 가지고 장난치다니 간도 크네.”
“저 안 미쳤습니다. 손목 잘리고 싶지도 않고요. 이거 실제 경보입니다!”
모니터에 비춘 경보등급은 블랙.
경보명은 [Unlimited Disaster]였다.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재앙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 백여 년간 경보등급 블랙이 일어난 건 단 한 번, 사막에 파묻혀서 잠들어있던 샌드드래곤(Sand Dragon)이 깨어나 미친 듯이 발광하던 시기뿐이었다.
그 무렵에 사르갈 연합국이 입은 피해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연합국에 소속된 열두 개의 왕국 중 세 왕국이 유사에 파묻혔고, 두 왕국이 열사에 휩쓸려 녹아내렸다.
지금부터 일어나게 될 재앙은 그만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전 직원 업무 중지. 비상 매뉴얼 코드 블랙의 대응지침에 따라 연합국 전체에 경고를 전달한다. 이후, 모든 계측활동은 현재 포착중인 특대형 자갈폭풍의 감시 및 분석, 이동경로 예측에 전념한다.”
“그래서는 마왕군 간부의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바보 같은 녀석!! 연합국이 멸망할 위기를 앞두고 마왕군 간부 하나가 뭐가 대수라는 거야!!”
마왕군 간부의 동향파악은 정보조직의 성향을 띠고 있는 왕국천문부에게 부여된 특수임무이다.
이들의 정보 수집력이라면 적어도 사르갈 연합국 내에서의 마왕군 행보를 포착, 저지할 수 있다.
각국이 그러한 판단을 내렸기에 지금까지 대륙 중부일대에서 마왕군은 발흥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왕군 간부의 동향을 놓친다면 앞으로의 사태가 어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연합국 자체가 멸망할 위기에 비하면 그조차도 양반이지만 말이다.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지금쯤이면 연합국에 소속된 모든 국가가 사태를 인지했을 겁니다.”
노텔의 보고에 에지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보고를 내려봤자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는 이미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누구도 이만한 자연재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래곤의 깽판에 버금가는 자갈폭풍이라니.
그런 건 지나가기만 해도 일국의 영토를 초토화시키고도 남는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번 자갈폭풍의 규모가 일국을 초토화시키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경로산출 완료! 목표는 북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경로 상에 포함된 연합국은 두 곳입니다.”
드래곤이 날뛸 때에는 열두 개의 왕국에서 다섯 개가 줄었다.
이번에는 남은 일곱 왕국 중에서 다시 두 개가 준다.
숫자 면에서는 적다고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국가가 줄어든 만큼 남은 국가들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심지어 각국의 경제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하나의 왕국만 멸망해도 다른 왕국들이 연쇄적으로 경제난을 겪게 된다.
20년.
아니, 어쩌면 한 세기가 걸릴 지도 모른다.
이번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까마득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멸망한 왕국이 재건되는 일은 없으리라.
“대체 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 모든 게 개복치가 1호 요정에게 셔틀 좀 태워달라고 졸라서 일어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두 국가를 멸망시키고 연합국의 미래에 암운을 가져다줄 폭풍은 지금 이 시각에도 거침없이 북진을 거듭했다.
바야흐로 대재앙의 서막이었다.
============================ 작품 후기 ============================
요즘 바람이 많이 불더군요. 그래서 폭풍을 넣었습니다.
햇볕에 죽어가는 날이 오거든 다이스 게임에는 가뭄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크. 현실의 기상환경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띵작이군요.
정말 쓸데없는 설정 같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