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67
짝퉁 스핑크스는 눈을 끔뻑이더니 앞발을 들어 올려 나를 가리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이번 대신관은 정식 대신관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석상이 그걸 대체 어떻게 들었는데.
‘아르마인가?’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전해 줄 사람은 어쩌면 아르마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 사람 정말 이런 장난 좋아하네.’
때때로 정말로 신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루실리온이 피곤해하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두, 두 번째 문제다!”
스핑크스가 두 번째 문제도 냈었나?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스핑크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제는 총 세 개니까 세 개 전부를 맞춰야 한다!”
짝퉁 스핑크스라 문제 수도 많은 모양이다.
내가 슬쩍 루실리온을 보자 루실리온이 빙긋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 그다지 즐거운 웃음은 아니라는 거다.
“그럼 두 번째 문제다.”
스핑크스가 근엄하게 말했다.
“두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낳는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것도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데.
내가 팔짱을 낀 채 가볍게 고심하자 짝퉁 스핑크스 사자가 척 보기에도 퍽 비열한 웃음을 흘려댔다.
“서로가 서로를…….”
작게 중얼거린 루실리온이 문득 고개를 돌리며 밖을 보았다.
어느새 해가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구름이 해를 가리자 주변이 살짝 어두워졌다.
“낮과 밤입니까?”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던 루실리온이 말했다.
“아, 맞는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어디에서 들어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스핑크스를 바라보자 스핑크스는 이제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잔데 왜 스핑크스처럼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저러다 울겠네.’
몸은 거대한 사자처럼 되어서는 왜 저렇게 글썽글썽한 얼굴인 거야?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치 곧 패배할 것 같은 삼류 악당의 대사를 내뱉는 짝퉁 스핑크스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맞죠?”
“그래, 정답이다!”
확답을 얻고서야 나와 루실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핑크스는 몸을 숙이고 앞발로 제 머리를 감싸 안으며 한참을 끙끙거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는 거야?”
내가 황당하다는 듯 묻자 짝퉁 스핑크스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워, 원래 내려고 했던 문제를 도전자의 수준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했을 뿐이다!”
“이게 게임이냐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히는 처사가 아닌가.
내가 중얼거리자 짝퉁 스핑크스가 퍽 당황한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앞발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도전자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어디 말해 봐.”
짐승과 대거리를 하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아 고개를 까딱이며 말하자 짝퉁 스핑크스가 눈을 매섭게 치켜뜬 채 입을 열었다.
“이것은 아침에는 커졌다가 정오에는 다시 작아진다. 그러나 오후에는 다시 커지고 밤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이건 무엇이냐?”
짝퉁 스핑크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나 난 이 이야기의 답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거는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건 확실히 기억난다.
“그림자.”
내 대답에 우쭐해 있던 짝퉁 스핑크스가 또다시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렇게 빠른 대답을 들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지 앞발이 둘 곳을 모르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떻게……!”
“그야…….”
내가 만들었을 테니까.
차마 거기까진 말할 수 없어서 말끝을 그냥 흩뜨렸다.
이게 바로 커닝페이퍼를 보고 시작하는 시험 같은 느낌일까? 어쨌든 빠르게 끝나서 상쾌하기 짝이 없다.
“이, 이건 무효다! 애초에 넌 대신관도 아니지 않느냐!”
짝퉁 스핑크스가 이번에는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번 억지는 좀 황당해서 절로 인상이 써졌다. 루실리온이 옆에서 작게 한숨을 뱉었다.
“적당히 하시는 건 어떨까요.”
루실리온의 입가가 설핏 찌푸려졌다.
그 부드러운데 은근히 스산한 목소리에 짝퉁 스핑크스가 눈을 번쩍 떴다.
“감히……!”
“감히.”
루실리온이 웃는 낯으로 짝퉁 스핑크스의 머리에 제 손을 올렸다.
“누구 앞을 가로막습니까.”
루실리온의 새파란 눈동자 안에 새하얀 빛의 고리가 느리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으려니 짝퉁 스핑크스의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보였다.
루실리온이 가볍게 짐승의 머리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짐승이면 짐승답게 납작 엎드려서…….”
쿵!
스핑크스의 머리가 아래로 처박히며 네 다리가 양옆으로 쫙 펴졌다.
“경배하십시오.”
“크르르…….”
“나는 짐승이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것이 참 싫습니다.”
루실리온이 작게 읊조렸다.
그가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스핑크스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나는……!”
“멍청한 짐승을 나는 아주 질색합니다.”
루실리온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문을 여십시오, 두 번의 선처는 없습니다.”
루실리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묵직한 문이 쿠구구구- 하는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루실리온이 몸을 돌려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요, 에이린.”
“아, 응.”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과 다정하지 않은 눈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루실리온은 항상 내 앞에서는 다정했으니까 말이다.
“못 볼 꼴을 보여서 부끄러워요.”
문을 향해 걸어가며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구는 표정이라 잠시 당황했으나 아직도 납작 엎드려 있는 스핑크스를 보니 조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그러게 왜 말을 바꿔서는.’
세 번의 수수께끼도 아마 거짓말이었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세 번째까지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건 확신에 가까웠다.
‘그야 난 예전부터 귀찮은 걸 질색했으니까…….’
뭣보다 여주인공의 세상에는 어려운 게 없었으면 했다.
“엄청 어둡네.”
“밝게 해드릴게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지하 계단이 있었다. 사위가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루실리온이 신성력을 모으자 그게 빛이 되어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졌다.
어두컴컴하고 아주 낡아서 이끼가 자라 조금 미끄러운 구석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딱히 이상할 것 없는 계단이었다.
“조심하세요.”
“응.”
루실리온이 은근슬쩍 손을 맞잡았다.
여기서 굴러떨어져도 죽지 않을 텐데 과보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과보호가 영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루시.”
“네.”
“너는 혹시 누구 좋아해 본 적 있어? 사귀어 본 적이나.”
“아뇨.”
루실리온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누군가를 보면 설레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그런 감정이, 저는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
뭐야, 나 좋아한다는 거 아니었어?
당황해서 멍청한 반문을 내뱉자 루실리온이 느릿느릿 길을 찾으며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요, 에이린이 처음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고…?”
“아뇨. 하지만, 당신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내 품에서만 웃었으면 좋겠고 제 시선이 닿는 곳에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응.”
단어로 들으니 퍽 적나라해서 말문이 턱 막혔다.
이걸 좋아한다고 하는 거지 뭐라고 하는 거야. 거의 소유욕에 가깝다.
‘괜히 물어봤네.’
나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뺨을 문질렀다. 사위가 어두워서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이린은…….”
“응?”
“누구 좋아해 본 적 있습니까? 사귄 적이나.”
내가 던졌던 질문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어…….”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난감해졌다.
나는 사람을 좀 많이 만나기는 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애인도 여럿 사귀어 봤었고.
‘대개 안 좋게 끝나긴 했지.’
처음에는 서로 좋다가도 어쩐지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내게 심드렁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별지기가 또 무슨 수를 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내가 참 못난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에이린?”
내가 대답하지 않으니 루실리온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어왔다.
“으음…….”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뺨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린으로선 없고 그 전의 삶이라면…….”
아무래도 나이가 있었으니 있지…….
“…그렇군요.”
어쩐지 스산해진 목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여기선 제가 처음인가요?”
“어? 으응, 그렇지. 네가 처음이야.”
어? 말이 이상하네.
우리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내가 당황해서 눈을 끔뻑이며 다시 입을 열려는데 루실리온이 싱긋 웃었다.
“제가 처음이군요.”
읊조리는 목소리가 퍽 만족감에 부풀어 있다.
어쩐지 말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