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작은 눈덩이 (5)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던 유리.
그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성의 쩌렁쩌렁한 비명에 고개를 까딱 들었다.
“어라?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난 또 며칠은 걸릴 줄 알았더니만,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오다니.
‘저쪽에서도 제법 급했나 봐?’
기다리던 손님이 왔음에도 유리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까딱거렸다.
[으악! 테, 테레시아 양! 거, 거기는 아니 되오!]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을 음악 삼아.
어느 능글맞은 변태의 무언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기를 기대하며.
유리는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빈둥거리던 그는 남자의 구슬픈 비명이 사그라들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차, 어디 한번 가 볼까?”
몰래 찾아간 테레시아의 거처.
유리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벌집이 된 옷을 걸친 괴츠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테레시아가 화난 얼굴로 창을 들고 서 있었으니.
그 모습이 너무도 위풍당당하여, 꼭 포로를 사로잡은 장군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둘의 관계는 그와 비슷했다.
테레시아가 눈을 부라리자, 무릎 꿇은 괴츠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가 다소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테레시아 양, 오해네.”
“뭐가 오해라는 거죠?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남의 집에 여자를 끌어들여… 그 짓거리를 한 게 오해라는 건가요?”
“아니, 그… 그 짓거리는… 그… 올빼미 군이 방해해서 하지는 못했…….”
“…….”
“…가 아니라, 그건 내가 입이 열두 개여도 할 말이 없네! 다만, 그것 말고 오늘 내가 이곳엔 온건 무단 침입을 한 게 아니라 다 약속한 게 있어서…….”
“괴츠 선배.”
“왜… 왜 그러나?”
“닥치세요.”
“…그러겠네.”
무릎 위에 공손하게 손을 올려놓은 괴츠가 고개를 푹 떨궜다.
이에 테레시아의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저 이전에 이곳에서 사셨던 분이라고 해도, 그렇게 마음대로 드나드시는 건 현재 살고있는 저를 배려하지 않은…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하네.”
“여자가 사는 집에 여자를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기물 파손까지.”
“여자가 사는 집인 줄은 몰랐네. 분명 그 점은 나 역시 잘못했다고 생각하니 별말은 않겠네. 그런데 다만… 기물 파손은 무슨 소리인가?”
“발뺌하시는 건가요? 제가 만들어 놓은 나무 문까지 부숴 놓으셨으면서?”
“나무 문? 아니, 그건……!”
괴츠가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말하려는 찰나 몰래 숨어 지켜보고 있던 유리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이야, 손님 대접 잘하고 있었어? 어때? 내가 그랬지, 딱 보면 무슨 대접을 해야 할지 알 거라고.”
그렇게 큰 목소리로 유난을 떨며 들어갔기 때문에 둘 사이 대화의 흐름은 끊기며 유리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유리가 말한 ‘대접’이 어떤 건지 찾아든 불청객을 보며 확실하게 느낀 테레시아였다.
그리고 그 대접을 확실하게 받았다는 증거가 바로 괴츠의 옷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이었다.
이를 보고 테레시아를 향해 엄지를 쓱 치켜올려 준 유리.
그는 무릎 꿇은 괴츠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슬쩍 고개를 괴츠의 구멍 뚫린 바지를 흘깃거리는 유리.
“아직… 붙어 있지?”
“…창날이 손가락 반 마디만 더 안쪽으로 들어왔어도 세상은 절세의 미남 한 명을 잃었을 걸세.”
“대신 절세의 미녀 한 명이 생겨났겠지.”
“정확히 봤네, 올빼… 가만, 자네 이러려고 일부러 여기로 약속 장소를 잡은 겐가?”
“네? 무슨 말씀이시죠?”
유리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럴수록 괴츠의 의심 섞인 눈초리는 더욱 가늘어졌지만 말이다.
이에 피식 웃은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람 내가 데려갈게. 더 할 거야?”
“아니, 됐어. 나도 이제 쉴래.”
테레시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괴츠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한 번만 더 그딴 짓을 한다면 그 쓸모없는 물건… 반드시 꿰뚫어 주겠어요.”
“며, 명심하겠네.”
양손을 고이 모아 허벅지 사이를 가린 괴츠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그만하고 가자고.”
“가, 갑세!”
괴츠는 유리를 따라 테레시아의 거처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후 그들이 향한 곳은 유리의 거처였다.
그곳에 도착한 괴츠가 옅은 감탄을 터뜨렸다.
“허, 이 칙칙한 동굴을 이렇게 꾸밀 수도 있는 거군. 3년 차 거주 구역보다 차라리 여기가 훨씬 나은데?”
아닌 게 아니라 유리의 거처는 그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이 장소가 그저 어둡고 평범한 동굴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가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릴 때.
“그만 기웃거리고, 거기 좀 앉지?”
유리가 손을 가리키자 괴츠는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동굴의 한쪽에서 무언가를 달그락거린 유리가 작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 왔다.
그는 괴츠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드디어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참, 길고도 길었던 시간을 정산할 때가 도래했다.
유리가 고개를 스윽 앞으로 내밀었다.
“자,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흠, 그러지, 나도 딱히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라.”
“왜, 애인이랑 야밤에 놀러 가기로 했나 보지?”
“오? 어떻게 알았나?”
살짝 놀란 듯한 괴츠의 반응에 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5년 차 애인?”
“호오? 자네 혹시 점쟁이인가? 진짜 어떻게 알았는가? 신통방통하군.”
“혹시 말야…… 하아, 아니다.”
“……?”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유리.
‘이건 그냥 모르는 게 약이다.’
원래 의뢰주에 관해 깊게 알려고 하면 안 되는 게 이 바닥의 규칙이었다.
깊게 알고 싶지도 않았고.
하여 유리가 다시 그 화제를 전환했다.
“성공 보수는? 가져왔지?”
유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괴츠가 탁자 위로 포인트 꾸러미를 올려놓았다.
달그락-.
10만 포인트짜리 열 개.
이를 본 유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네.’
처음에는 이 100만 포인트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 개고생을 해 가며 시작의 숲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는가.
물론 지금도 100만 포인트는 상당히 큰 액수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제 손에 수천만 포인트가 있으니, 100만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참 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에 유리는 흠칫거렸다.
‘잠깐… 내가 만족을 한다고?’
그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지, 아니지! 이, 멍청한 새끼가!’
고개를 도리질 친 유리는 그딴 멍청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작고 필요 없는 돈이 없듯이, 작고 필요 없는 포인트는 없다!’
계좌에 수천만 포인트가 있다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1포인트를 무시한다?
‘이 얼마나 우매하고 썩어빠진 정신 상태란 말인가!’
그렇게 유리는 100만 포인트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한참 동안 말없이 정신 무장을 단단히 새로 했다.
그런 유리의 상태를 모르는 괴츠는 다채롭게 변하는 유리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올빼미군?”
그의 부름 덕분에 정신을 차린 유리.
“아아, 미안,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물건을 꺼내 놓았다.
부스럭-.
유리가 들고 온 작은 가죽 주머니.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유리는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괴츠를 향해 말없이 손짓했다.
휘휘-.
그건 가져가라는 손짓이었다.
이에 괴츠가 종이를 가져가 살폈다.
꼼꼼히 내용을 읽은 괴츠.
그가 턱을 쓸었다.
“흠, 이게…….”
종이에 적힌 내용은 분명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맞았다.
하지만 괴츠는 되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본 유리도 덩달아 인상을 썼다.
“뭐야, 그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은?”
그의 취조하는 듯한 말투에 괴츠가 움찔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내 솔직히 말하겠네. 이거 진짜 맞는가?”
“맞아, 거기 직인도 찍혀 있잖아?”
“그렇기는 하네만…….”
“뭐가 불만인데?”
“너무…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
“이게 만약 진품이라면… 흑검병단은 왜 이렇게 조용한 겐가? 이걸 찾고자 흑검병단에서 분명 움직여야 했을 텐데.”
괴츠는 유리가 의뢰에 실패했다고 여겼었다.
그 이유는 너무도 조용한 흑검병단 때문이었다.
중요한 문서 하나가 없어졌는데도 그동안 흑검병단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괴츠의 의문에 유리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글쎄? 그게 딱히 중요한 물건이 아닌가 보지.”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만… 혹은 이게 진품이 아니기에 조용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진품 맞아.”
“확실한가?”
“딱 보면 몰라?”
“…….”
괴츠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유리에게 이 물건을 구해 달라고는 했지만, 그에게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별할 능력은 없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유리가 비웃음을 날렸다.
“기껏 물건을 구해다 줬더니, 의심부터 하는 거냐? 거래의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네.”
“…….”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듀란에게 가져가서 물어봐. 내가 이걸 훔쳤는데, 당신이 작성한 문서가 맞냐고.”
“훔친 건 내가 아니라 자네지 않은가.”
“뭔, 양심 후려 터진 소리를 하고 있어. 그거 당신이 훔친 거 맞아. 내가 대신해 주기는 했어도.”
“…….”
“직접 하지 않았다고 그게 당신이 안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안 그래?”
맞는 말이라 괴츠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에 유리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의뢰를 했으면 좀 믿어. 이게 다 서로서로 믿고 한 의뢰잖아? 큰 소란 없이 물건을 손에 넣었으면 좋은 거지 뭘 의심하고 있어. 안 그래?”
“으흠… 그렇긴 하지.”
“그럴 때는 그냥 ‘아, 내가 의뢰한 이의 능력이 출중해서 잘 처리했구나!’라고 생각하라고.”
“그래서 묻는 거네만… 이거 어떻게 빼낸 건가?”
“영업 비밀입니다. 남의 밥줄을 알려 달라고 하면 안 되죠, 고객님.”
싱긋 웃는 유리를 보며 괴츠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건을 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유리도 탁자에 놓인 100만 포인트를 집어 들며 손을 내밀었다.
“자, 이걸로 거래는 끝?”
“그래, 끝일세.”
괴츠가 유리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눴다.
가볍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유리가 능글맞게 말했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고객님. 이번처럼 또 큰 건 있다면 언제든 찾아주십쇼.”
“오늘 그쪽의 능력을 확인했으니, 내 큰 건이 있으면 또 찾아오리다.”
괴츠 역시 능글맞게 받아쳐 주고는 이내 애인과 좋은 시간을 보낸다며 떠나갔다.
그렇게 괴츠가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잘그락-.
품에서 100만 포인트를 꺼내 공중으로 던졌다 받은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시바, 들킬 뻔했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렇게 모든 일이 다행스럽게도 완전 범죄로 끝났기에 유리는 이번 일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던지고 잊어버린 이 작은 눈덩이가.
근 미래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그는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