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탕진 (3)
꿀꺽-.
유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복불복 상자라…….’
일단 이름에서부터 찐득찐득한 사행성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는 상자를 자세히 살폈다.
가로, 세로, 높이 1m 정도의 크기.
손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 하나.
그리고 그 구멍에 검은 천을 덧대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구조까지.
대충 봐도 그 용도가 무엇일지 충분히 짐작 가는 모양새였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으니.
‘…저 숫자는 뭐지?’
검은 사장의 윗면.
그 한쪽 귀퉁이에 쓰여 있는 49란 숫자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유리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본 코코가 피식거렸다.
“눈썰미는 좋네. 이 숫자가 뭔지 궁금한 거겠지?”
끄덕끄덕-.
유리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자 코코가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탁-.
바 테이블 밑에서 검은 상자 하나가 더 올라왔다.
이를 본 유리가 눈을 끔뻑였다.
‘똑같은 게 또 있어……?’
생긴 건 똑같았지만, 이번에 새로 꺼내진 검은 상자의 귀퉁이에는 50이란 숫자가 쓰여 있었다.
유리에게 그 상자를 보여 준 코코가 웃었다.
“이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직접 보여 주마.”
그러면서 코코는 진열대로 다가갔다.
그러곤 유리가 물건을 구매하고 텅 빈 진열대에 있던 가격표를 집어 들었다.
물건의 이름과 가격이 적힌 작은 종이 가격표.
코코는 하급, 상급 비약의 가격표부터 시작해 각종 회복약의 가격표까지 전부 수거해 2번씩 접었다.
그렇게 꼼꼼히 접힌 종이들을 50이란 숫자가 적힌 상자 속으로 넣고 흔드는 게 아닌가.
슥탁- 슥탁- 슥탁-.
상자 안에 이미 꽤 많은 종이가 들어 있는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몇 초 뒤.
탁-.
상자를 내려놓은 코코가 묘한 눈길로 물었다.
“자, 그럼, 이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마치 ‘네가 이 문제의 답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라는 듯한 눈빛.
이에 유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거 50기들이 산 물건의 가격표를 모두 모아 놓은 상잡니까? 49란 숫자가 적힌 상자는… 지금까지 49기들이 산 가격표를 모아 놓은 거고?”
그런 유리의 답변에 코코는 검지를 좌우로 까딱였다.
“아쉽게도 땡.”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닌데요?”
“맞아, 사실은 별로 안 아쉬워.”
“그래서, 그 숫자가 무슨 의민데요?”
유리의 재촉에 코코가 궐련을 깊게 빨아들였다.
후욱-.
짙게 내뱉어진 연기 속에 그녀의 말소리가 섞여들었다.
“49란 숫자는 이 상자가 49기가 들어온 해에 만들어졌다는 뜻이고, 50은 50기가 들어온 해에 만들어졌다는 뜻이지.”
“음……?”
잠시 의문을 표했던 유리.
곧 그의 뇌리로 깨달음의 번개가 내리쳤다.
“설마?! 그 상자에… 작년 특판에서 판매한 모든 상품의 가격표가 들어 있는 겁니까?”
“98점짜리 정답.”
“98점?”
유리는 자기 말에서 모자란 2%를 금방 찾아냈다.
그가 놀라 눈을 끔뻑였다.
“…특할판에서 판매한 상품들까지?”
그제야 코코가 밝게 미소 지었다.
“축하해, 100점이다.”
“와우.”
놀라는 유리를 보고 코코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49번째 상자는 작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간 요람에서 판매한 특판 및 특할판 제품의 모든 가격표가 들어 있지.”
“…….”
“올해가 끝나면 폐기되겠지만, 그 전까지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그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유리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 번 뽑는 데 얼맙니까?”
“1년 차는 백만.”
“……?!”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에 코코가 피식거렸다.
“뭘 놀라? 1년 차만 백만이고 다른 연차는 그것보다 더 비싼데.”
“백만이라…….”
처음 백만이란 소리를 듣고 떠오른 생각은 ‘비싸다’였다.
하지만 이내 유리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저 상자에 든 게 1, 2년 차에게 판매된 물건들뿐이라면 분명 비싸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코코는 모든 특판 및 특할판이랬다.
그건 다시 말해 작년 3, 4, 5년 차가 산 물건들도 들어 있다는 뜻.
또한, 많은 포인트를 가진 상위 연차인 만큼 그들이 산 물건 역시 그 값어치가 높을 것이다.
‘백만 포인트를 써서, 하급 비약, 혹은 상급 비약이라도 하나 뽑게 되면…….’
본전을 넘어 몇 배의 이익을 보게 되는 거였다.
그걸 생각하면 100만은 결코 비싼 게 아닐 터.
심지어 꽤 합리적이기까지 했다.
‘1년 차만 100만이라… 연차별로 포인트 차등을 둔 것도 상위 연차들이 꼼수 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겠지.’
상위 연차에게도 100만 포인트라면 아마 그들은 신이 나서 복불복 상자에 포인트를 쏟아부을 것이다.
자신만 해도 그럴 테니까.
유리가 신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거 모두 몇 장인데요?”
후욱-.
말없이 그저 연기만 뿜어내는 코코를 보고 유리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답을 기다리는 대신 그는 진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올라온 물건은 40여 개. 그러니 40을 평균으로 잡는다면 1년 동안 모든 연차에게 판매된 특판 물품은…….’
유리는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2,400개.’
물론 그 물품이 전부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아가 판매된 특할판 물건도 있을 거다.
그렇기에 오차 범위를 상정해서 대충 절반 정도라고 쳐도…….
‘그럼 못해도 천이백 개의 종이가 저 상자 안에 있다는 뜻인데.’
그마저도 확실한 게 아니다.
이에 유리는 웃고 말았다.
“복불복 상자라더니… 이름값 제대로 하네.”
작년, 한 해 동안 특판과 특할판에 어떤 물건들이 올라왔을지.
그것들이 얼마나 팔렸을지.
전부 다 복불복이었다.
심지어 이제는 거기서 어떤 물건을 뽑을지도 복불복이지 않은가.
‘그래도 특할판 물건이 있다는 건 다행이네. 그거… 어? 가만, 특할판?’
순간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가 대뜸 50번째 복불복 상자에 손을 탁 올렸다.
“저,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뽑겠습니다!”
이에 코코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탁-.
매몰차게 유리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개수작 부리지 말렴.”
“쳇.”
유리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대신 그가 신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거 정말이죠?”
“뭐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특판은 물론 특할판에서 팔린 물건의 가격표가 전부 들어간다는 거.”
이미 자신했던 이야기를 또 반복하는 유리.
코코는 그가 왜 이러는지 알고 웃었다.
“그래, 그런 거로 거짓말 안 해. 이 상자에…….”
그녀의 손가락이 50번째 상자를 툭 건드렸다.
“올해 특할판에서 팔린 모든 물건의 가격표가 들어 있지. 1년 차의 것도 예외 없이.”
“그거면 됐습니다.”
코코의 확답에 유리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는 50번째 복불복 상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저기에 있다는 거지?’
이번 1년 차 특할판에서 자신이 산 물건 중 하나, 골족의 비전.
이른바 엘릭서의 가격표가 지금 저 50번째 상자 안에 들어 있단다.
이는 또다시 엘릭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
50번째 복불복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유리가 물었다.
“저거… 언제 뽑을 수 있나요?”
“1년 동안 푹 숙성시킨 다음에?”
유리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망에 코코는 속으로 웃고 말았다.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골족의 비전이 뭔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대놓고 욕망을 드러낼 리 있겠나.
어찌나 뜨거운 욕망인지 저대로 두었다가는 상자가 타 버릴 듯싶었다.
이에 코코가 제지에 들어갔다.
“그래서 할 거니 말 거니? 안 할 거면 이거 집어넣는다?”
49번째 복불복 상자를 툭툭- 치는 코코의 모습에 유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합니다.”
그제야 유리는 49번째 상자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은 여전했다.
‘좋아, 다 뽑아 주겠어!’
자신의 전 재산을 털면 총 17번을 뽑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
유리가 생각하는 ‘뭐라도 하나’는 당연히 매우 값진 물건이었다.
1,700만 포인트를 상회하는 그런 물건.
유리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복불복 상자로 바짝 다가갔다.
그때 유리를 잠깐 가로막은 코코가 말했다.
“혹여라도 마나로 장난질 치다 걸리면…….”
사악-.
코코의 표정이 무감정해지고 주변의 온도가 삽시간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목소리.
“네 팔 단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오싹-.
정제된 농후한 살기에 유리의 본능이 끊임없이 경고를 보냈다.
‘역시… 평범한 흑검병은 아니었어.’
이전부터 유리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코코란 여자의 경지.
어쩌면 그레타 위건보다 위일지 모른다고.
코코의 경고에 유리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장난질은 무슨. 아니, 장난질을 왜 칩니까? 제가 바로 행운의 사나이인데!”
“그래, 자칭 행운의 사나이라는 애송이 씨? 시간 없으니 얼른 뽑으시죠?”
코코가 상자를 유리에게 들이밀었다.
이에 유리는 거침없이 손을 그 안으로 넣었다.
부스럭-.
손과 팔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유리의 얼굴이 대번 굳어졌다.
‘많다.’
이 커다란 상자가 종이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있을지 모를 상황.
유리는 신중하게 손을 휘저었다.
부스럭- 부스럭-.
‘좋은 거… 제발 좋은 거!’
열심히 뒤적거리는 유리를 보고 코코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칭 행운의 사나이인 것치고는 상당히 신중하네?”
그 말이 자극이 된 것일까?
“갑니다! 핫!”
유리가 재빠르게 한 장을 뽑아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바로 펼쳤다.
동시에 유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환호성.
“좋았어!”
그가 자신이 뽑은 종이를 코코에게 보여 주었다.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 2,500,000P
“오?”
살짝 감탄하는 코코의 눈빛에 유리가 대번에 의기양양해졌다.
“봤죠?”
자신이 행운의 사나이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단번에 이득을 본 상황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그것도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하급 마나 증강 비약이지 않은가.
한 번의 성공을 맛본 유리의 눈에 더 큰 자신감이 깃들었다.
그는 고민조차 안 하고 곧장 다시 상자로 손을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빠르게 종이를 빼내 단번에 펼친 순간.
“……?!”
0.1초 만에 그의 낯빛이 굳어 버렸다.
-강의 신청서 10,000P
유리의 입에서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내 99만 포인트…….”
99만 포인트가 공중분해 된 상황.
유리는 철렁거린 심장을 애써 다독여야 했다.
‘괜찮아! 아직 51만 포인트 이득이야.’
동시에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여기서 그만둬?’
이득을 봤을 때 그만두는 게 좋다는 건 일곱 살 꼬맹이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리는 일곱 살 꼬맹이가 아니었다.
한창 유혹에 취약한 16살의 소년이었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유리.
“한 장만 더…….”
그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에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강의 신청서 10,000P
“…….”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유리의 두 눈에 살짝 핏발이 섰다.
‘괘, 괜찮아… 하급 비약 하나만 더 뜨면… 본전이야.”
도박판에서 돈 잃은 사람을 더 바보로 만드는 게 뭔지 아는가?
바로 본전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헛된 희망이었다.
유리는 바로 그 헛된 희망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
연달아 강의 신청서를 세 장 뽑아낸 유리의 눈에 핏발이 더 짙어졌다.
그가 코코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이거… 맞아요? 조작이다… 조작이 확실하다!”
“풉, 조작은 무슨, 그냥 네가 운이 없는 거란다. 불운의 사나이 씨?”
“이, 이럴 리가… 내… 내 포인트!”
벌써 400만 포인트 가까이 날려 먹은 유리가 머리를 감쌌다.
그때 그의 귓속으로 악마의 속삭임이 흘러들었으니.
“하나씩 뽑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여러 개를 한 번에 뽑으면 뭐라도 하나 걸릴 듯싶은데?”
“……?!”
그제야 유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그런 거였어!’
어차피 확률은 거기서 거기지만, 코코의 말이 이상할 정도로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유리는 굳은 결심을 굳히고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종이가 뭉텅이로 걸려 나오니.
코코가 웃으며 이를 세어 보았다.
“보자, 하나, 둘, 셋… 딱 열 개네? 그거 전부 깔 거니?”
“당연하죠!”
유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걸로 유리가 쓴 포인트는 모두 1,600만 포인트.
“후우… 제발.”
길게 숨을 내쉰 유리가 첫 번째 종이를 깠다.
-골족의 최상급 절상 회복약 1,000,000P
“좋아!”
깔끔하게 딱 본전은 챙긴 첫 시작.
유리는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첫 끗발이 개끗발인 법.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강의 신청서 10,000P
연달아 6장의 강의 신청서가 나왔을 때, 유리의 입에서는 쌍욕이 튀어나왔다.
“썅! 미친놈들인가! 뭔 강의 신청서를 이따위로 많이 샀냐고!”
광분하는 유리를 보고 코코가 킥킥거렸지만, 유리는 이미 이를 눈치챌 수 있을 만큼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렇게 된 이상!’
오기가 생긴 유리가 이를 악물고 남은 3장을 단번에 펼쳤다.
그리고 유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짐승 같은 포효.
“우오오오오!”
유리는 감격에 젖어 울부짖었다.
-강의 신청서 10,000P
-중급 마나 증강의 비약 5,000,000P
-골족의 상급 해독약 1,000,000P
세 장 중 강의 신청서 한 장이 문제기는 했지만, 무려 중급 마나 비약이 뜬 것이다.
거기에 100만 포인트짜리 해독약까지!
“후욱, 후욱-.”
유리는 길게 심호흡하며 정산에 들어갔다.
‘쓸 만한 거 950만 어치에… 찢어 갈기고 싶은 강의 신청서 12장.’
강의 신청서만 생각하면 손이 덜덜 떨렸지만, 차마 1만 포인트짜리를 찢을 수는 없었다.
짜증이 한가득 담긴 유리를 보고 코코가 웃으며 물었다.
“어찌, 마지막 한 판 더?”
그녀의 부추김에 유리의 동공이 갈등으로 흔들렸다.
‘갈까? 말까?’
이제 통장에 남은 포인트는 120만 포인트 정도.
딱 한 번 더 도전할 기회가 남은 셈이었다.
이를 떠올린 유리의 눈에 광기가 번뜩였다.
‘그래, 어차피 꼰 거, 100만 포인트 더 꼰다고 티도 안 난다!’
이미 얼마만큼의 포인트를 손해 봤는지 계산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니, 안 하련다!
‘마지막 한 방을 노리겠어! 한 방에 복구하는 거다!’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갑니다!”
“이야, 얼굴은 예쁜데 하는 짓은 상남자네!”
코코가 웃으며 상자를 내밀었다.
덜덜거리며 나아간 새하얀 손이 상자 안을 뒤적거리고.
스륵-.
마지막 종이가 유리의 손에 딸려 나왔다.
그걸 꼬옥 쥔 유리는 확신했다.
‘느낌이 좋아.’
유리는 마지막 종이만큼은 단번에 펼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종이를 한 번 펼치고, 반 접힌 상태에서 사선으로 종이를 살살살 밀기 시작했다.
가격표의 판매가만 보이게끔 말이다.
그렇게 유리의 엄지가 서서히, 매우 세심하게 종이를 밀었고.
스윽-.
가격표의 마지막 자리만 아주 살짝 드러났다.
‘우선 0이 하나…….’
그리고 두 번째 자리의 0과.
스으으-.
조금 더 올라가니 세 번째 자리의 0이 보였다.
거기까지는 거침이 없었다.
다만 이제 곧 네 번째 자리.
종이가 서서히 위로 미끄러질수록 유리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렇게 네 번째 자리의 0이 보인 순간.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거… 최소 0이 다섯 개 이상이다! 크, 큰 거 온다!’
스륵-.
그걸 직감한 순간, 종이를 밀던 유리가 손가락을 신속하게 밑으로 내려왔다.
그로 인해 애써 밀어 놓았던 종이가 다시 반으로 접혔다.
한편, 유리가 하는 짓거리를 재밌게 구경하고 있던 코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확인을 안 하냐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지, 지금 너무 쫄려서…….”
유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했다.
“…60초 뒤에 마저 깔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