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고인물 (1)
종이에는 다른 설명 없이 세 자릿수 숫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188.】
이를 먼저 확인한 테레시아는 이미 굳어 있었고.
이후 그녀의 옆에 어깨를 붙이고 점수를 확인한 유리도 곧이어 굳어 버렸다.
하지만 둘의 반응은 확연하게 다른 의미의 반응이었다.
먼저 유리, 그의 얼굴에서는 ‘겨우?’라는 생각이 그대로 읽혔다.
반면 테레시아에 얼굴에 드러난 건 순수한 놀람이었다.
둘이 동시에 말했다.
“188? 고작 188이라고?”
“188? 첫 시도에 바로 188이라고?”
목소리가 겹치자 둘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까워진 얼굴에 흠칫 놀라 얼굴을 뒤로 물린 둘.
그러다 이내 테레시아는 유리의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188은… 높은 점수야.”
그녀의 답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이게?”
“그래.”
“텟샤 선배는 198점이잖아?”
“나야……! 하아, 아무튼, 188점이면 충분히 순위권 안에 들어갈 점수야.”
“그래 봤자, 20위권쯤이겠지.”
“무려 20위권이나 되는 거지. 첫 시도에.”
자신의 설명에도 여전히 미간을 펴지 않는 유리를 보고 테레시아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녹색 동굴이 별 2개짜리이기는 하지만, 사실 난이도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것보다는 훨씬 높아.”
“확실히 그런 거 같긴 하더라.”
그건 유리도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에 별 반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이 퀘스트가 별 2개가 된 이유는… 반복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이야.”
그녀의 이야기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던 유리는 이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반복 도전해서 받은 점수가 전부 기록으로 인정돼?”
“그래.”
“아아!”
그제야 유리는 꽤 난이도가 있는 이 퀘스트가 왜 별 2개인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반복 도전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는데 기록 측정의 제한도 없다라… 이러면 난이도가 높아도 별 2개가 될 만하지.’
어느 위치에서 어떤 함정이 나오고.
그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여러 번 반복 도전을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 학습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요람이라면 당연히 기록 측정을 하는 거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제한을 뒀을 거라고 여겼었는데…….
그런 제약마저 없단다.
도전하면 도전하는 족족 기록으로 인정해 준단다.
이런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다면 그게 더 이상한 법이었다.
유리가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이자 테레시아가 손짓했다.
“따라와.”
유리를 달고 테레시아가 향한 곳은 순위판이 있는 간이 건물이었다.
거기에는 아까 전부터 졸고 있던 사내는 여전히 깨지 않고 있었다.
그를 한 번 흘끔거린 테레시아가 탁자를 두드렸다.
똑똑-.
그럼에도 졸고 있는 사내에게서는 반응이 없었다.
저 정도면 조는 게 아니라 그냥 숙면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사내가 도무지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살포시 한숨을 내쉰 테레시아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흠흠.”
곧 그녀의 입에서 굵직하고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
“페터 레만, 전투 준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잠들어 있던 흐리멍덩한 인상의 사내가 번쩍 눈을 떴다.
그러고는 곧장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대며 매서운 기세를 흘렸다.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한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
턱턱턱-.
다만 연신 허리춤을 더듬는 손이 조금 처량해 보였다.
이내 검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리고 다시금 흐리멍덩한 얼굴로 돌아왔다.
페터가 반쯤 감긴 졸린 듯한 눈으로 테레시아를 응시했다.
“…뭐야, 테레시아였냐? 너, 내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페터 씨가 한번 잠들면 안 일어나니깐 그렇죠, 일과 중에 자지 마세요.”
“내버려 둬라, 어차피 사람도 별로 없고 할 일도 없는데…….”
생긴 것만큼이나 상당히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그가 쩌억 하품하며 물었다.
“흐아아암, 그래서 왜 깨운 거야?”
이에 테레시아가 유리에게 손짓했다.
“그거.”
“그거?”
“점수 종이.”
“아아.”
고개를 끄덕인 유리는 점수 종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 페터의 시선이 잠시 유리에게 닿았다가 다시 테레시아에게 되돌아왔다.
“누구?”
“후배요. 50기.”
“웬일로 네가 다른 사람을 데려왔냐? 백날, 천날 혼자서 기관 돌파만 하던 애가? 그것도 후배를?”
“…….”
테레시아가 말없이 노려보자 그 사나운 시선에 페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슬쩍 시선을 회피하며 유리의 점수 종이를 집어 들어 펼쳤다.
거기에 적힌 숫자를 보고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호오? 188점? 50기 중에서 순위권에 입성한 건 네가 처음이네. 이건 몇 번 만에 받은 점수냐?”
자신을 향해 던져진 페터의 질문에 유리는 덤덤하게 답했다.
“첫 번째요.”
“…처음? 정말?”
“이런 거로 구라 안 칩니다.”
페터가 테레시아를 바라보았다.
저 말이 사실이냐는 듯한 눈빛.
이에 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멍하던 페터의 눈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용패, 그리고 이름.”
그 요구에 용패를 꺼내려던 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눈빛.
그건 과연 테레시아에게 자신의 용패를 보여 줘도 되는지에 대한 망설임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극히 찰나에 불과했다.
유리는 곧장 자신의 용패를 꺼내 들었다.
검디검은 흑룡패의 등장.
이에 유리가 테레시아의 반응을 슬쩍 살폈지만, 그녀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다.
이미 유리가 흑룡패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 말이다.
오히려 흑룡패를 보고 놀란 것은 페터 쪽이었다.
“흑룡패? 아아! 너구나, 이번 50기에 들어왔다는 흑룡패가. 이름이… 유리 홀랜드였던가.”
“잘 알고 계시네요.”
“흑룡패주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거든.”
페터는 유리의 흑룡패를 건네받아 살피고 되돌려준 뒤, 이번에는 작은 나무패를 꺼냈다.
슥슥-.
“보자, 188점이면… 여기겠군.”
순위판을 보며 그리 중얼거린 페터가 명패에 글자를 채워 넣었다.
【22위/ 50기/ 유리 홀랜드/ 188점】
그러고는 원래 22위이던 나무 명패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유리의 이름을 걸었다.
자신의 할 일을 끝낸 페터가 다시 몸을 돌려 유리를 바라보았다.
“첫 도전에 바로 22위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그의 얼굴에 옅은 감탄이 서렸다.
“너는 과연 얼마 만에 저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참고로 테레시아 쟤는 여기서 다섯 달을…….”
“페터 씨!”
테레시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에 페터와 유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그녀가 다급한 기색을 지우고 태연하게 답했다.
“…유리한테 퀘스트 보상에 관해 설명해 주셔야죠.”
“뭐, 그럼 그러지.”
테레시아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는 페터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리고 안 그래도 그것이 궁금했던 차라 유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페터의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선 이 퀘스트는 100위권에 들어야지만 포인트가 지급된다. 100위에 들면 1천 포인트를 받고, 거기서부터 순위가 1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1천 포인트가 지급되지. 76위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75위부터는 51위까지는 5천 포인트.
50위에서 26위까지는 1만 포인트.
마지막 25위부터 1위까지는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5만 포인트가 지급된다는 거였다.
“그렇게 1위를 하게 된다면 총 받을 수 있는 포인트는…….”
페터의 말보다 유리의 계산이 더욱 빨랐다.
“1,650,000포인트.”
“정확하네.”
페터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에 유리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생각보다 정말 포인트가 짭짤하잖아?’
1위를 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했지만, 일반 퀘스트가 165만 포인트나 준다는 건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유리의 눈이 뒤집힐 소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1위 특전이 있다.”
“역시 요람이라면 당연히 1위 특전이 있어야지! 혹시… 165만 포인트의 10%를 추가 지급?”
그건 일전의 사례가 있기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특전이었다.
그리고 유리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어느 정도만.
“추가 지급하지. 매달.”
“…예?”
“165만 포인트의 10%. 즉 165,000포인트가 매달 20일에 네 통장으로 들어간다. 1위를 하게 되면.”
“……?”
자신이 뭘 들었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눈만 끔뻑이는 유리.
하지만 곧 그의 입에서 경악성 뒤섞인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매, 매, 매달? 165,000포인트를 매달 준다고요? 1위를 하면?!”
“그래.”
“어, 언제까지요?”
“네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
어찌나 놀랐던지 유리의 눈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졌다.
유리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마, 만약 제 기록이… 제, 제가 수료할 때까지 깨지지 않는다면?”
“그럼 그때까지 매달 165,000포인트를 받는 거지.”
“…….”
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그저 멍하니 순위판을 바라볼 뿐.
이에 페터가 크게 하품하며 말했다.
“흐아아암, 그럼, 일단 오늘 치 정산부터 해 볼까? 22위를 했으니까…….”
그가 그리 말할 때였다.
턱-!
멍하니 있던 유리가 갑자기 탁자를 내리쳤다.
순간 유리에게 쏠린 좌중의 시선.
그와 동시에 그에게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으니.
“…받지 않겠습니다.”
“응?”
“오늘 치 정산…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 외치는 유리의 두 눈에 거대한 불꽃이 화르륵- 피어올랐다.
그가 입으로도 뜨거운 열기를 토해 냈다.
“어차피 1위는 접니다. 정산은… 그때 한 번에 몰아서 받을 겁니다!”
“…165만 포인트로?”
“예, 165만 포인트로!”
닿으면 데일 듯, 이글거리는 눈빛을 받은 페터는 처음으로 작은 미소를 보였다.
“좋은 패기네.”
그리 중얼거린 페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라. 나도 일 여러 번 안 해서 좋군. 그럼 볼일은 이걸로 끝인가? 흐아아암!”
페터가 다시 크게 하품하는 순간.
여전히 뜨거운 불길을 꺼뜨리지 않은 유리가 강렬하게 페터를 응시하며 물었다.
“다른 건요.”
“응?”
“저거 말고 다른 순위판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저 뒷면에 있는 순위판이라든지.”
그 질문에 페터와 테레시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특히 테레시아는 신기한 얼굴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쟤, 저 순위판을 보고 다른 건 묻지 않았었지.’
그는 순위판을 보고 곧장 녹색 동굴로 향했다.
마치 저 순위판이 녹색 동굴의 순위를 기록해 놓은 거란 걸 알고 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런 테레시아의 속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페터가 질문을 던졌다.
“순위판이 저거 말고 다르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 그것도 이 뒤에 있다는 건 어찌 알았고?”
이에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그딴 것도 질문이냐는 듯.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줄줄이 죽어 나가는 난이도의 퀘스트를 100명이나 성공했을 거 같지 않아서?”
“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시아와.
“그리고 명패를 걸 때 ‘이 뒤에 공간 있어요!’라고 알리듯 벽이 흔들리는데 어떻게 모릅니까?”
“아아.”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는 페터.
그리고 페터가 벽을 툭 쳤다.
그러자.
드르르륵-.
벽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그 뒷면이 드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도 나무 명패가 걸려 있는 벽이 나타났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걸려 있는 나무 명패의 수가 극히 적다는 것뿐.
황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유리는 명패의 개수를 본 유리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저건 몇 위까지 집계합니까?”
“7성 동굴, 그러니까 적색 동굴의 순위는 10위까지만 집계된다. 그런데…….”
툭툭-.
페터가 가볍게 벽을 두들겼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나온 사람은 이 여섯 명뿐이지.”
그건 다시 말해 살아 나오기만 해도 순위권 안에 들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최소 7위로.
이에 눈을 빛낸 유리가 물었다.
“적색 동굴 퀘스트의 보상은요?”
“기본 생존 보상 200만 포인트에 순위를 하나씩 뛰어넘을 때마다 받는 포인트가 200만.”
“……?!”
“아, 물론 네가 살아 돌아와서 7위가 된다면 밑에 비어있는 8, 9, 10위 포인트도 정산받을 수 있다. 기본 생존 보상에 7~10위 기록 보상을 합치면 총 1,000만 포인트군.”
“하?”
유리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 퀘스트가 생기고 적색 동굴에서 처음 살아나온 사람은, 바로 1위… 2,200만 포인트를 공짜로 먹었겠네요?”
“원래 운빨도, 선착순도 실력인 거다.”
그 말에 유리는 혀를 내둘렀다.
‘어쩐지 무모하게 적색 동굴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더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저 살아 나오기만 해도 1,000만 포인트인 거다.
이러니 눈이 안 뒤집히겠는가.
그리고 만약 1위를 하게 된다면 2,200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고.
그때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 설마?!’
그가 기대 섞인 말투로 물었다.
“혹시 이것도 1위 특전이?”
“매달 2,200만 포인트의 10%가 네 통장으로 들어갈 거다. 네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는.”
“……?!”
유리가 주먹을 울끈 말아 쥐었다.
‘다, 다달이… 220만 포인트!’
거기에 녹색 동굴의 포인트까지 더하면 2,365,000포인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그 정도를 매달 얻을 수 있다는 소리.
유리는 심장이 벌렁거려 미칠 거 같았다.
그때 그의 이성을 조금은 되돌려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
“단, 7성 동굴에 도전하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까 잘 기억해 둬라.”
이에 유리는 콧김을 한 번 킁- 뿜어내고 적색 동굴에서 생존한 6인의 이름을 쭉 살폈다.
3~6위의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은 그냥 빠르게 넘기고.
【2위 / 49기/ 테레시아 윈체스터/ 165점】
2위의 이름을 발견한 유리의 눈이 아주 잠시 멈칫했다.
이미 테레시아가 7성 동굴에 도전해 살아 나왔다는 사실과.
그것도 당당히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
모든 게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현재 유리에게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바로 다시 1위로 시선을 올렸다.
【1위 / 48기/ 권터 라이더/ 188점】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 순간 유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번에도 너냐?’
2성 동굴과 7성 동굴의 1위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권터 라이더.
이를 보며 유리는 웃었다.
“후후후.”
검주의 아들이라든지.
혹은 또 다른 흑룡패주라든지.
이젠 그 어떤 것도 유리를 신경 쓰이게 만들지 못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권터 라이더는 그저 1위 자리에서 치워 버려야 할 이름일 뿐.
‘흐흐흐, 해 먹을 만큼 해 처드신 거 같은데…….’
그러니 썩 꺼지시지?
유리의 눈깔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