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벌레잡이 (6)
삼삼오오 흩어져 쉬고 있는 50기 사이에 자리한 회색 머리의 소년.
슐레만 한스는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겉표지가 검은 가죽으로 되어 있는 튼튼해 보이는 수첩.
이는 슐레만이 어렵사리 구한 물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수첩이 특별한 물건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요람에서 수첩을 구하는 게 어려웠다는 뜻일 뿐.
심지어 구할 당시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수첩에 불과했다.
이를 매만지며 슐레만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에야 아직 평범한 수첩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자신이 속지에 채워 나갈수록 이 수첩은 특별하게 바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수첩의 앞쪽은 어느 정도 채워져 있었다.
슐레만이 수첩을 펼쳤다.
사락-.
단단한 겉표지가 넘어가자 수첩의 첫 장이 드러났고.
* * *
이름: 유리 홀랜드
나이: 16세
용패: 흑룡패
무력 수준: 특급
성격: 더러움
기타 특이 사항:
-백보 의식의 기록: 15보(용의 요람이 생긴 이래 최고 신기록)
-아린 헬가,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와 친분이 있음.
-고아인 것으로 추정.
-군터 아이언스와 같은 지역 출신으로 추정.
-북쪽 구역에 생겨난 이상한 목재 건축물이 유리 홀랜드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
-계산이 빠르고 이기적인 성향이 있음. 욕심도 많다고 함.
-다혈질에 성격이 좋지 않은 데 실력은 뛰어나니 50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
* * *
그곳에는 유리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사락-.
종이가 한 장 더 넘어가니 이번에는 군터의 정보가 드러났다.
그 외에도 아린과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 등.
몇몇에 관한 정보가 더 적혀 있기는 했지만, 유리의 것만큼 상세하지는 않았다.
파르르륵-.
슐레만의 손에서 수첩의 낱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새것에 가까운 속지들.
턱-.
빠르게 속지를 넘긴 슐레만이 이내 수첩을 닫았고.
그의 두 눈이 맑게 빛났다.
‘이 수첩이 완성되면 요람에서 날 어찌할 존재는 없을 거다.’
그에게 있어 수첩이란 그저 단순히 종이를 모아 놓은 물건이 아니었다.
그 어떤 칼보다 날카롭고, 매서운 최강의 무기였다.
‘무력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보뿐이다.’
혹자는 말한다.
재력으로 무력을 살 수 있다고.
권력으로 무력을 부릴 수 있다고.
하지만 슐레만의 생각은 달랐다.
강자 독식의 체계가 완성된 이 검주의 시대에.
그 어떤 것도 무력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압도적인 강함은 남의 재물을 마음껏 제 것으로 삼을 수 있고.
권력자의 목을 손쉽게 꺾어 버릴 수도 있다.
하여 슐레만은 고민했다.
검주의 시대에 무력을 넘어설 힘이 과연 존재할까?
그런 고민을 이어 가고 있을 때.
그가 살던 영지에 한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어린 현상금 사냥꾼이 190㎝가 넘는 거구의 현상 수배범을 잡아 온 것이다.
심지어 그 수배자는 퇴역하기는 했지만, 정규군 훈련까지 받은 인물이었다.
일신의 무력도 상당했기에 수배자임에도 선뜻 그를 잡아가려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무서워하며 피하기 급급할 뿐.
그런데 마체술조차 익히지 않은 평범한… 아니, 오히려 또래 소년보다 병약해 보이는 소년이 흉악한 현상 수배범의 목을 잘라 온 것이다.
거기다 그 소년이 수배자를 죽인 방식이 매우 놀라웠다.
바로 주점 똥통에 숨어 있다가 수배자가 큰 볼일을 보는 순간에 검을 찔러 넣은 것.
그게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소년을 보고 독종이라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어린 소년이 그 냄새나는 화장실에 며칠간 숨어 있었다는 독기보다도 더 슐레만을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슐레만은 어린 현상금 사냥꾼을 찾아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수배자가 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것을 알았냐고.
그 물음에 어린 소년은.
[에이, 스벌! 안 그래도 똥독 올라 힘들어 죽겠는데, 엔간히 귀찮게 하네. 야, 그리고 답이 듣고 싶으면 양심상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맨입으로 알려 달라고? 아앙?]…라고 했다.
검지와 엄지로 동그란 원을 만들어 보이며.
이에 슐레만은 집사를 시켜 몇 골드를 쥐여 주고 나서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뭐, 별거 아냐. 그 새끼가 원래 그 가게 단골인데, 술을 꼭 뒈지기 직전까지 퍼마시는 놈이라 취하면 거기서 숙박하더라고. 거기다 며칠 더 지켜보니 이 새끼가 술안주로 꼭 매운 걸 시키네? 매운 안주에 술까지 들이붓는데 다음 날 배 속이 무사할까? 이건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화장실 직행이지.]이후 소년은 며칠을 더 지켜본 뒤 확신을 얻고 나서야 화장실 똥통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그 결과, 소년은 보란 듯이 모두가 무서워하는 수배자의 목을 잘라 현상금을 챙길 수 있었다.
[답 됐지? 난 간다.]그리 답을 준 현상금 사냥꾼 소년은 똥독이 오른 얼굴을 긁으며 떠나갔다.
현상금 사냥꾼 소년이 떠난 뒤, 슐레만은 충격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게… 별거 아니라고?’
소년은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어린 슐레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깨달았다.
‘무력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힘… 그건 정보력이구나!’
어린 소년이 거구의 현상범을 잡을 수 있게 해 준 원동력.
그건 소년이 며칠간 현상법을 관찰하고 얻어 낸 정보였다.
그렇게 그날, 어느 이름 모를 현상금 사냥꾼 소년이 준 가르침이 지금의 슐레만을 만든 것이다.
꾸욱-.
슐레만은 가죽 수첩을 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는 무난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유리 홀랜드의 무력이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강한 것 같았지만, 그게 계획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스쿼드는 우리를 빼고 열둘.’
이 전력을 잘 이용해 유리 홀랜드의 1스쿼드를 처리하는 게 슐레만의 1차 계획이었다.
그다음으로 이어질 2차 계획.
그 계획명은 ‘상잔’이었다.
‘유리 홀랜드라는 공통의 적을 처리하고 나면 남은 스쿼드들은 서로 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군터의 스쿼드가 남은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군터의 스쿼드가 어쩌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한 전력인 것은 아니었다.
하여 실력이 비슷비슷한 이들끼리 무슨 일을 벌이겠는가.
‘하나뿐인 우승을 위해 서로를 노리겠지.’
심지어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거기다 자신이 약간의 바람만 잘 불어넣는다면 그들 모두가 대대적으로 맞붙는 결과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슐레만이 바라는 최종 국면이었으니까.
‘모두를 관찰할 수 있는 큰 싸움이라…….’
슐레만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그가 어중이떠중이들을 모두 제물로 던져 버린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에 관한 건 자신의 수첩에 적을 가치가 없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자신과 맞붙을 확률이 높은, 실력 있는 자들의 정보만이 수첩에 적을 가치가 있었기에.
슐레만은 이러한 계획을 세운 거였다.
‘이번 퀘스트의 우승은 포기해도 좋다.’
우승을 포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집하는 것이 그의 목표.
그렇게 쌓은 정보가 향후 이 퀘스트의 우승보다 더 큰 가치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라고, 슐레만은 굳게 확신하며 수첩을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웅성웅성-.
한쪽이 시끄러워지며 일단의 무리가 등장했다.
‘2소대가 돌아온 모양이군.’
그건 곧 3소대인 자신이 작전 교대를 해야 한다는 뜻.
이에 슐레만이 몸을 일으켰다가 2소대 쪽으로 모여드는 인파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인파를 헤치고 다가간 슐레만은 상처를 입은 다수의 2소대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기절한 이.
자상을 입고 쩔뚝거리는 이.
그리고 팔다리에 화살이 꽂힌 이들까지.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대략 7명 정도가 다친 듯싶었다.
이를 본 슐레만이 인상을 굳히고 9분대장에게 물었다.
“어찌 된 거지?”
그의 물음에 9분대장 클라리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보면 모르냐. 유리 홀랜드에게 당한 거지.”
“저 화살은? 유리 홀랜드가 활도 사용했던가?”
“아린 헬가다. 그녀가 궁수였다. 솜씨가 제법이더군. 아무튼, 유리 홀랜드와 아린 헬가가 습격을 해 왔고 몇 차례 교전을 나누다가 도망쳤다.”
“둘뿐이었나?”
“그래.”
“흠… 치고 빠지는 기습을 선택한 건가?”
“그런 거 같다. 보비크… 아무튼 그 덩치는 기습에 안 어울리니 아린 헬가와 둘이서 다니는 거 같더군.”
그 의견에 슐레만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클라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고생했다. 이후 작전은 우리가 맡으마.”
“…….”
제 어깨에 올라온 슐레만의 손에 클라리스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멈칫했다.
“그래, 수고해라.”
하지만 이내 그런 내색을 지우고 뒤돌아 떠나갔다.
그런 클라리스의 뒷모습을 보며 슐레만은 수첩을 꺼내 ‘클라리스 반’에 관한 정보를 몇 글자 추가했다.
-암기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나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평균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정.
다시 수첩을 갈무리한 슐레만은 웃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비록 타 소대에 속해 있기에 무력적인 측면의 정보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있으니 성격, 지적 수준, 습관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에는 매우 수월했다.
하여 슐레만은 유리를 응원했다.
‘내가 정보를 충분히 모아야 하니까… 너무 빨리는 잡히지 말라고, 유리 홀랜드.’
슐레만은 유리가 있을 숲 안쪽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2소대를 한바탕 휘젓고 은신처로 복귀한 아린과 유리.
“집 잘 지키고 있었지?”
“배고프다!”
“오구오구, 우리 뽀삐 잘했어!”
자신들이 밖으로 나간 사이 문지기로 전락한 뽀삐를 칭찬해 준 아린이 이번에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꾹꾹 눌러 참아 왔던 궁금증을 마침내 입 밖으로 꺼냈다.
“유리유리!”
“왜.”
“네가 시켜서 하기는 했는데… 그거 사실이야?”
“뭘.”
“네가 외우라고 한 대사.”
그 물음에 유리는 피식 웃었다.
“아아, 그거?”
“응.”
“그건 말이지… 궁금해?”
“응!”
“그냥 막 던진 거야.”
“……?”
순식간에 찾아든 적막.
자신을 바라보는 아린의 시선에 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 사람을 그렇게 썩은 생선 보듯 쳐다보냐?”
“내가 지금 안 그러게 생겼어? 정말? 그냥 진짜 막 던진 거였어?”
“응. 처음부터 끝까지 구라였는데?”
“…….”
“캬! 역시 감쪽같았지? 내가 또 그런 대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짠다고! 안 그래?”
“…그렇게 막 거짓말해도 되는 거야? 금방 들통날 텐데?”
사기꾼을 보는 듯한 아린의 눈빛에 유리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쯧쯧, 우매한 인간이여. 얘가 아직 뭘 모르네. 내가 짠 대본이 진실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럼?”
“내가 던진 게 작은 불씨라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무슨 소리야?”
“그 불씨를 꺼뜨릴지, 혹은 큰불로 키울지는 저들의 몫이란 거야. 그리고 난…….”
그쯤에서 말끝을 흐린 유리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곧 큰불이 날 거라고 확신한다. 무조건!”
* * *
3소대가 임무를 교대하고 떠난 그 시각.
한쪽으로 다수의 분대장들이 은밀하게 모여들었다.
그들을 불러 모은 건 다름 아닌 9분대장 클라리스 반.
임무를 나간 3소대의 분대장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분대장이 모인 자리.
“그래, 뭐 때문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을까?”
“얼른 끝내지? 좀 쉬고 싶은데?”
이 모임을 왜 만들었냐는 듯한 다수의 눈빛에 클라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두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너희를 모았다.”
그리 말한 클라리스가 한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와 함께 한 소년이 나타났으니.
“누구야?”
“쟨, 눈은 왜 저 모양이냐?”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상태로 나타난 소년이 쭈뼛쭈뼛 제 옆에 서자 클라리스가 턱짓했다.
“아까 나한테 해 준 이야기… 이들에게도 똑같이 해 줘 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흠흠, 내 이름은 길버트 베커다.”
짧은 소개와 함께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길버트는 제 눈을 가리켰다.
“이거 보이지?”
좌중의 시선이 제 멍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그가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내가 유리 홀랜드와 치열한 접전을 나눈 끝에 아쉽게 패배하며 얻은 상처다.”
“…….”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해 줄 이야기는 이 몸이 기절한 척하고 겨우 알아낸 정보고.”
“…정보?”
“유리 홀랜드 그 자식, 내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워 올린 이들을 보고 길버트는 진지한 얼굴로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