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 세경 워커 (4)
난데없는 상황에 혼비백산 정신이 없는 다른 이들과 달리 유리는 흘러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저 미친 듯이 날뛰는 난쟁이가 누군지.
왜 여기서 저러고 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유리였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는 거였다.
“이야…….”
분명 율리아에게 ‘절 만나고 싶게 만들면 됩니다. 아마 그쪽에서 먼저 찾아올걸요?’라고 말한 건 유리 본인이 맞았다.
하지만…….
‘…이게 되네?’
진짜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그 말 그대로의 상황이 일어날 줄은 유리도 예상하지 못한 거다.
그가 율리아에게 한 말은 그냥 ‘저쪽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 정도로 열심히 자극해 보겠다!’라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일 뿐.
하여 유리도 대충 쌍욕 적힌 답장 정도나 올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나타날 줄이야.’
그는 볼을 긁적이며 산산조각이 난 목책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저건 어떻게 때려 부순 거래?’
그런 유리의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오냐! 이 잡놈의 새끼가 드디어 기어 나왔구나!”
다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어슴푸레한 새벽에 선명하게 떠오른 시퍼런 안광이 유리를 향했다.
“히익!”
“배, 배고프다!”
“……?!”
세경 워커의 눈빛이 어찌나 서슬 퍼렇던지 공연히 유리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질겁해 뒷걸음질 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훼까닥 눈깔이 돌아간 난쟁이가 어깨에 무언가를 걸쳐 올리는 것을 말이다.
‘저건 뭐냐?’
유리는 세경이 어깨에 올린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건 대충 길이가 110㎝ 정도 되어 보이는 금속 원통이었다.
직경은 15㎝ 정도며, 속은 텅텅 비어 있는 진녹색의 원통.
“흐음?”
“뭐야 저게?”
아무리 봐도 도무지 무엇에 쓰이는 건지 알 수 없는 물건의 등장에 유리와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그들이 멀뚱멀뚱 서 있는 가운데.
“곱게 뒈져랏!”
거친 악담과 함께 천둥이 쳤다.
콰강!
짧지만 강한 폭음을 토해 낸 원통.
그리고 비어 있을 것이라 여겼던 그곳에서 불똥과 함께 시커먼 구체가 쏘아졌다.
그 반발력이 어찌나 강하던지 세경의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
“……?!”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검은 구체를 본 순간 유리의 등줄기로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그건 유리의 본능이 보내 온 경고였다.
‘저건… 위험하다!’
위험을 감지하기 무섭게 유리는 곧장 앞으로 뛰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오는 구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륵- 티릭!
검날과 구체가 맞닿으려는 찰나 유리가 검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구체가 검의 옆면을 타고 흐르면서 방향이 뒤틀렸다.
직선으로 날아오던 구체가 유리를 기점으로 20° 각도로 어긋나 날아간 것이다.
후–.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
–우우우우웅!
아린과 뽀삐, 테레시아는 자신들의 옆으로 날아가는 검은 구체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검은 구체가 뒤편에 자리한 목책에 틀어박힌 순간, 느려졌던 시간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고.
콰아아아아앙!
곧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나무 목책이 박살 난 채 사방으로 흩날렸다.
“히익!”
“저, 저게 뭐야?!”
“배, 배고프다!”
검은 구체는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폭발물이었다.
드드드드-.
검은 구체가 폭발한 지점으로부터 반경 3m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땅을 통해 전달된 여진에 유리 일행은 조금 전의 폭발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았다.
또한, 이 새벽에 자신들을 깨운 게 무엇인지도 이번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에 유리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고작 단 한 번의 폭발로 저 정도 범위를 일거에 날려 버린다고?!’
만약 본능의 경고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리고 구체를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베어 내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면.
지금 사방에 흩날리고 있는 건 나무 조각이 아닐 거다.
자신의 내장 조각이었겠지.
꿀꺽-.
유리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시퍼런 안광이 다시금 일렁였다.
“어쭈? 막아?”
고개를 삐뚜름하게 비튼 세경 워커.
그가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머금고 주머니에서 검은 구체를 꺼내 원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콰강-!
원통이 다시 불과 천둥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검은 구체의 위력을 똑똑히 알게 된 유리.
‘온다!’
그는 조금 전보다 더욱 신중하게 검을 놀렸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온전히 시체조차 건지지 못하는 개죽음이 되리라.
스륵- 틱!
아름답게 휘둘러지는 검로에 또 한 발의 구체가 원래 날아들던 경로에서 이탈하여 뒤쪽의 목책을 박살 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앙!
콰강 콰릉!
연이어 천둥을 뿜어내는 저주받을 원통.
이에 유리의 뒤편에 있던 테레시아와 아린, 뽀삐는 그들 옆으로 쉼 없이 날아가는 검은 구체를 보며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콰아아앙!
그러다가 이번에는 제법 근처에서 발생한 폭발에 아린이 뽀삐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며 외쳤다.
“방패! 방패 들어! 이런 거 막으라고 있는 게 방패잖아! 얼른!”
“배고프다!”
“덩치는 산만 해서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그래!”
“배고프다!”
“이씨! 고작 이거 막아서 팔 부러진다고 할 거면 너, 앞으로 근력운동 하지 마! 이 근육 돼지야! 밥도 반만 먹어!”
“배, 배고프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그렇게 아린과 뽀삐가 아웅다웅하는 데 정신이 팔린 사이, 테레시아는 은근슬쩍 그들의 뒤로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후배 둘을 고기 방패로 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실로 요람의 선배다운 위기 대처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사이 세경도 유리를 행해 악을 썼다.
“이익! 이제 그만 좀 처맞아라!”
“미쳤냐! 맞는 순간 고기 조각이 될 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바다!”
세경은 세경대로.
유리는 유리대로.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로 인해 북쪽 구역에 폭음은 끊이지 않았고.
폭음이 한 번 들릴 때마다 유리와 친구들이 몇 주에 걸쳐 공사했던 요새의 기초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콰앙!
그렇게 유리의 뒤쪽으로 대부분의 목책이 사라졌을 때.
다시 말해 공들여 만든 목책의 절반이 날아갔을 때가 되어서야 천둥소리가 멎었다.
“흐억, 흐억.”
거친 숨을 몰아쉬던 세경.
“이… 잡놈의 새끼가.”
한참 동안 숨을 고른 그는 유리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개소리를 씨부린다면 오늘처럼 고이 넘어가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봐도, 이게 그냥 고이 넘어간 거는 아닌데?”
“퉷!”
어이없다는 듯 쫑알거리는 유리를 보고 걸쭉한 침을 내뱉은 세경.
그는 찬바람을 폴폴 휘날리며 뒤돌아 떠나갔다.
그 바람이 어찌나 차던지, 차디찬 냉기에 질려 유리조차 세경을 붙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떠나가는 세경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던 유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드러난 광경에 또 한 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몇 날 며칠에 걸쳐 만들었던 목책이 완벽하게 증발해 버렸다.
휑하니 드러난 공간 너머로 울창한 숲이 보이는 가운데.
들인 공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에 절로 한숨이 지어졌다.
그때 테레시아와 아린, 뽀삐가 유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테레시아가 세경이 떠난 방향을 흘끗거리며 물었다.
“누구였어, 그 사람?”
“…내가 강의 신청서 쓴 사람.”
“강의 신청서? 그런데 대체 왜 저러는 건데?”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녀의 어투에 유리가 볼을 긁적이며 솔직하게 답했다.
“어… 음… 그냥 평범하게 쓰면 별로 효과가 없을 듯싶어서 신청 사유를 조금 자극적으로 적었거든.”
그때 아린이 불쑥 끼어들었다.
“뭐라고? 부모님 욕이라도 한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가 아린을 향해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야, 내가 아무리 경우가 없다고 해도 적정선은 지키거든? 날 고작 그따위 쓰레기로 여겼던 거냐!”
유리가 격분하자 이번에는 자신이 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아린이 먼저 사과했다.
“…미안.”
“됐어. 앞으로는 그러지 마.”
“응,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별말 안 했어. 방구석 폐인인 주제에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 쓸데없이 허비하지 말고, 내가 배워 준다고 할 때 냉큼 와서 가르치라고 썼지.”
“…….”
“그리고 언제 어디서 객사할지도 모르는데 미리미리 후진 양성에 힘쓰라고, 내가 그쪽의 마지막 제자가 되어 줄게, 라고도 했고.”
“…….”
“또, 내가 만들어도 그쪽보다는 잘할 거 같으니 차라리 나한테 원천기술 넘기고 은퇴하라는 말도… 뭐야? 다들 왜 그렇게 봐?”
자신이 아린에게 보였던 경멸의 눈초리를 고스란히 돌려받은 유리가 억울함을 표출했다.
“아니, 뜻만 그렇다는 거지, 진짜 그렇게는 안 썼어! 정중하고 예쁜 말로 잘 포장해서 썼다고!”
그가 항변했지만,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한 경멸의 시선은 쉬이 풀릴 줄을 몰랐다.
아니, 더욱더 심해져 있었다.
“…저 악마 새끼.”
“예쁜 말로 지랄 떨면 상대방이 기분 안 나쁜 줄 아나 봐.”
“배고프다.”
아린부터 테레시아, 뽀삐까지.
난리를 치고 간 난쟁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 세 사람은 너도 나도 한마디씩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 뽀삐의 ‘배고프다’에서 유리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니.
“야, 뽀삐. 너 지금 쌍욕 했지? 뭔가 상당히 기분 나쁜데?”
그런 질문에 뽀삐는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배고프다.”
그걸 통역해 준 아린.
“이제야 상대방 기분을 좀 알겠냐는데?”
“…….”
유리의 뚫린 주둥이가 꾹 다물어지자 뽀삐가 그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고 떠나갔다.
마치 잘 생각해 보라는 듯이.
이에 질세라 아린과 테레시아도 말없이 유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뽀삐의 뒤를 이었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유리.
그는 정말 억울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거 진짜… 열심히 자제해서 쓴 건데.”
자신이 말을 예쁘게 포장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 저런 소리를 하지 못할 거라고.
유리는 그리 생각했다.
* * *
광란의 새벽 사건이 있은 일로부터 하루 뒤.
유리는 검지로 탁자를 톡톡 두들기며 고민에 빠졌다.
그가 두들기는 검지 옆에는 [거절 불가 강의 신청서]가 놓여 있었으니.
그게 바로 유리가 고민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걸 언제 쓰지?’
일단 세경 워커가 자신이 찾던 그 골족인 게 확실해졌다.
하여 이제 [거절 불가 강의 신청서]를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 난리를 겪고 나니 괜히 지금 이걸 썼다가는 분명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음… 뭔가 달랠 게 필요한가?’
원래 채찍질도 당근이 있어야 더 잘 먹혀 드는 법.
유리는 세경 워커를 다독일 만한 무언가의 필요성을 느꼈다.
느끼긴 했지만…….
“에이 씨, 내가 왜 이딴 걸 고민하고 있냐!”
유리가 돌연 왈칵 짜증을 냈다.
‘내가 언제부터 남 기분 맞춰 주며 지랄했다고?’
물론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면 좋긴 좋다.
그만큼 길들이기도 수월하니까.
하지만 그건 유리의 방식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고통에 익숙해질 때까지 채찍을 휘두르는 게 그의 방식이지 않은가.
“좋아”
유리는 [거절 불가 수강 신청서]를 작성하고자 펜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유리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펜을 집으려던 손이 황급히 되돌아와 옆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동시에 유리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던 살기 담긴 물체가 튕겨 나갔고.
우웅-.
잘게 진동하는 검신에 유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침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