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52
151화. 깽판 (1)
유리는 몇 시간 전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텟샤를 찾으려면 일단 그 갈림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른 선택이다.’
마왕성 침입 경로가 어찌 되는지는 모르지만, 시작 지점은 49기가 모두 모인 장소일 터.
하여 텟샤와 헤어졌던 [49기 진입로]를 따라간다면 이 퀘스트의 시작 지점이 나올 거고, 거기서부터 수색을 이어 나간다면 테레시아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 생각으로 움직인 유리였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응?”
그의 정면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노란색의 견장이 유달리 돋보이는 그들의 등장에 유리가 눈을 끔뻑였다.
‘49기?’
그들은 제리의 농간에 자신들이 가고 있는 길이 [오욕의 길]이라고 믿고 출발한 이들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유리는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했다.
‘저것들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텟샤도 여기서 나타날 수 있다는 소리인데?’
유리가 반색하며 49기를 향해 후다닥 뛰어갔다.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유리를 보고 49기 3명은 당황했다.
‘빨간 견장? 50기?’
‘너 뭐야?’
‘50기가 어째서 거기서 나오는 거지?’
이곳이 [오욕의 길]로 빠지는 길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유리의 등장은 예상 밖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은 그들의 예상을 더더욱 벗어났다.
스륵-.
달려오던 유리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곧이어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49기의 왼쪽 측면.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멀뚱히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퍽- 우득!
검집째 휘둘러진 검이 가장 왼쪽에 서 있던 이의 후두부에 작렬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그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일격에 그대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이에 남은 두 사람이 다급하게 무기를 뽑아 들었다.
‘빠, 빠르다!’
‘이 자식, 뭐야?!’
난데없이 나타난 50기
그리고 경우 없는 습격.
거기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외침이 더해졌다.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하면 얌전히 보내 드리겠습니다!”
유리의 외침에 남은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람을 때려눕힌 시점에서 이미… 얌전히가 아니잖아?!’
‘질문을… 질문부터 하라고!’
어이가 없어진 둘은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이미 49기에서 가장 빠르다는 테레시아를 넘어선 유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콰즉-.
퍽- 퍽- 퍽.
“…컥?!”
유리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또 다른 한 명이 머리를 후드려 맞고 그대로 침묵했고.
그나마 남은 한 명은 3대를 얻어맞은 뒤, 명치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다행히 그는 기절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맷집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유리가 일부러 힘을 조절해서 그를 깨워 둔 것일 뿐.
그렇게 세 명이 전부 바닥을 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
쿨럭쿨럭-.
바닥을 뒹구는 49기 생존자는 실눈을 뜨고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유리… 홀랜드!’
처음에는 경황도 없고 머리마저 짧아져서 못 알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하위권 성적자라고 해도 49기 셋을 순식간에 때려눕힐 50기라면 유리 홀랜드뿐이었다.
거기다.
‘이 익숙한 아픔!’
이 명치에 직통으로 꽂힌 통증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유리 홀랜드, 백보 의식의 신기록 보유자.’
그리고…….
‘내 토끼 가죽을 전부 쓸어 간 양심 없는 새끼!’
그랬다.
그는 가죽 모으기 퀘스트에서 토끼 역할로 참가했다가 유리에게 가죽을 홀라당 몰수당한 이였다.
게다가 유리에게 덤벼든 죄로 호되게 당한 이력도 가지고 있었으니.
그 덕분에 그는 유리 홀랜드가 어떤 놈인지 대략이나마 파악하고 있었기에 절로 몸을 사렸다.
“어… 어째서?”
그는 어째서 갑자기 자신들을 공격했냐는 듯.
매우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유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하면 얌전히 보내준다고 해도 ‘50기 따위가 건방지게!’라면서 버럭 했을 거잖아?”
“…….”
“그래서 그 쓰잘데기 없고 비효율적인 대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드잡이질로 넘어간 거지. 어차피 결국에는 주먹질이 오갈 텐데 시간 아깝게 뭣 하러 주둥이를 놀려?”
“…….”
…이 새끼가, 그걸 왜 네 마음대로 생략해?
…우리 의견은?
‘다른 놈들 다 한 번에 기절할 때 3대나 처맞은 것도 억울한데…….’
유리의 태연한 소리에 그의 억울함이 더욱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는 다급하게 재촉해 왔다.
“자, 시간 없으니까 묻는 말에 빠르게 답합시다, 그래야 신상에 이로울 테니까. 혹시 49기 전원이 이쪽 길로 올라오는 중인가? 그럼 혹시 텟샤 못 봤어?”
“……?”
“흠, 이상하긴 하네, 텟샤 정도면 분명 선두에 속해 있어야 할 텐데? 왜 너희 같은 쩌리가 먼저 올라온 거지?”
“아…….”
“혹시 길이 여러 개인데 텟샤는 다른 곳으로 간 거야? 여기가 가장 쉬운 난이도의 경로?”
“어, 그…….”
“텟샤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 몰라?”
“아니, 그게…….”
“아, 진짜 시간 없다니까! 조금 있으면 무서운 아저씨가 맴매하러 온다고! 빨리 불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유리의 눈에 살짝 초조함이 깃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마나까지 담아 있는 힘껏 짱돌을 집어 던지기는 했지만, 그자가 고작 그 정도에 나가떨어질 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약간의 시간만 벌었으리라.
하여 다급해진 유리가 팔을 걷어 올렸다.
“하, 진짜 내가 좋게 말로 해결하려 했는데 끝까지 입을 안 연다고?”
“…….”
“좋아! 우리 선배님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지… 두고 보겠어.”
우득우득-.
어깨를 빙빙 돌리며 다가오는 유리를 보고 창백하게 질린 그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소리쳤다.
“자, 잠깐!”
그 간절함이 닿은 건지 유리가 우뚝 멈췄다.
이에 그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유리를 올려다보았다.
“그, 그래서!”
“……?”
“…텟샤가 누군데? 그걸… 알려 줘야 답을 하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억울함 가득한 눈빛에 유리는 힘을 실었던 주먹을 슬그머니 풀었다.
* * *
“자, 우리도 이제 슬슬 움직이자고.”
제리가 그리 말하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에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벌써? 아직 올라올 사람들이 더 남은 거 같은데? 안 기다려도 되겠어?”
“일단 여기는 한두 명만 있어도 되고, 슬슬 우리도 위로 올라가서 지랄 발광을 떨고 있을 그것들 제어해야지.”
“제어?”
“자신들이 간 길이 마왕성인 걸 알면 다시 돌아오려고 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우리가 길 끝까지 욱여넣어야지. 힘으로.”
“아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제리의 이야기에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의견대로 이후 올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 한 명을 남겨 두고 모두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 ‘진짜 마왕성 진입로’로 들어섰다.
그렇게 무리 지은 이들의 숫자가 30여 명에 달했다.
이에 제리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나 많이… 의리를 지킬 줄은 몰랐는데.’
처음에는 ‘가짜 마왕성 진입로’로 들어서는 이가 몇 명 되지 않기에 제리는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었다.
이 요람에서 약속을 지키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흐를수록 가짜 마왕성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 대다수가 월말 평가 상위권 실력자에 속하는 이들.
오히려 하위권 실력에 속한 이들은 편한 길을 선택하고자 오욕의 길로 들어섰다.
이에 제리는 깨달았다.
‘이건 신의를 지키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위험한 도전을 피하지 않고 높은 곳을 노리는 이들과.
제 안위를 위해 편한 길을 선택한 이들.
이번 갈림길은 바로 그 차이를 명백히 가려 냈다.
‘그 차이가 상위권과 하위권의 나눈 건가…….’
도전하는 자만이 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한 중간 결과.
이에 협박만 아니었다면 배신하려 했던 제리는 심장이 뜨끔거렸다.
‘나 진짜…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어쩌다 보니 이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더욱 부담됐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제리와 그런 그를 따라 걷는 30인.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진짜 마왕성으로 향하는 30인의 결사대를 멈춰 세운 건 전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음이었다.
“끄… 끄흑…….”
“크륵…….”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두 사람이 젖은 걸레처럼 나무에 걸려 있었고.
또 두 사람은 나란히 포개져 밟힌 벌레처럼 다리를 바들바들 떨어 댔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아오, 진짜 시간 없어 죽겠는데, 왜 그냥 가겠다는 사람을 불러 세워서 시비를 걸어? 죽고 싶냐!”
찰싹-.
…멱살이 잡힌 채 찰싹찰싹 양 볼을 얻어터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뺨을 두들기던 이가 손을 떼었다.
“하, 운 좋은 줄 알아, 시간 없으니 여기까지만 한다… 는 무슨! 딱 두 대만 더 맞아라!”
찰싹찰싹-.
정말 딱 2대를 더 때리고 그제야 쥐고 있던 멱살을 놓으니.
이미 진즉에 기절했던 이가 철퍼덕 바닥에 널브러졌다.
눈앞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을 본 제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 참혹한 광경을 만든 이를 보고 얼굴에 핏기가 가신 거였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 유리… 홀랜드?”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에 무법자가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반갑게 손을 휘휘 흔드는 유리.
“어? 쩨리 선배!”
가볍게 인사한 그는 격하게 움직이느라 꽤 헐거워졌던 상의를 다시금 질끈 동여맸다.
힘의 결정이 떨어지지 않게 말이다.
그러고는…….
“내가 오늘은 바빠서…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자고.”
빠르게 제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에 제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그냥 갔어? 저 새끼가?’
유리와 만나고 조용히 넘어간 날이 없던 제리였다.
그것도 늘 유리가 먼저 지분거리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오늘은 바쁘다고 자신을 괴롭히지도 않고 그냥 갔다?
이게 말이 상황인가?
의외의 상황에 제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사이 난데없는 상황에 놀랐던 49기 사이에 술렁임이 퍼져 나갔다.
“아까 그 녀석 분명 50기지?”
“제리가 그랬잖아, 유리 홀랜드라고.”
“그 유리 홀랜드? 그런데 그 녀석이 여긴 왜 온 거지?”
“아니, 그것보다 쟤들은 왜 유리 홀랜드한테 처맞고 있던 건데?”
너도 나도 유리 홀랜드의 출현과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를 유추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가 중구난방 뻗어 나갈 때.
“나… 봤어.”
49기 중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좌중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뭘?”
“아까 그 녀석이 상의를 동여맬 때, 살짝 보였거든.”
“그러니까 뭘?”
“힘의 결정.”
그 말에 다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래, 맞아. 힘의 결정이 왜 그 녀석한테 있어?”
술렁임과 놀람이 그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지만, 대다수가 이를 헛소리로 치부했다.
다만 한 사람.
제리는 이야기를 꺼낸 이에게 후다닥 달려와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화, 확실해? 그거 분명 힘의 결정이었어? 잘못 본 거 아냐?!”
“맞아, 확실해! 크기가 꽤 크기는 했지만, 그거 분명 힘의 결정이었다고!”
자신도 힘의 결정을 먹어 보았고.
경매장에서도 여러 번을 보았다며.
절대 자신이 잘못 보았을 리 없다는 동기의 확신 가득한 발언에 제리의 머릿속에 불똥이 파바박- 튀어 올랐다.
‘이, 이거였구나!’
모든 퍼즐이 하나로 짜 맞춰졌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자신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정도로 유리가 바빴다는 점.
거기다 그가 새로이 나타난 길목이 [마왕성 진입로]였다는 것과.
심지어 마왕성으로 향하는 동기를 공격해 처참하게 때려눕혔다는 것도.
‘거기에 결정적으로… 마왕이 가지고 있어야 할 힘의 결정마저 그 녀석에게 있다는 건?!’
제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곧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율리아, 네 예상은 틀렸다! 마왕은 실력이 아닌 인성으로 뽑은 거였어!’
이번 마왕은 실력이 아닌 정말로 인성이 더러운 놈을 그 자리에 앉힌 것이리라.
요람이 이런 반전을 준비했다니.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오른 제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잡아!”
“잡으라니? 뭘?”
“아까 그 새끼!”
“…아까 그 새끼? 유리 홀랜드?”
“그래! 그 새끼!”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기들을 향해 제리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 새끼가, 유리 홀랜드가… 마왕이라고!”
“……?!”
제리의 외침에 좌중의 경악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고.
30여 명이 동시에 유리가 사라진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후 그들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제리가 알려 준 결론에 맞춰 상황이 재조립되기 시작했으니.
진짜 마왕성으로 가는 진입로.
피떡이 되어 버린 동기들.
힘의 결정까지.
유리가 마왕성을 탈출한 공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이들의 눈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그들은 왔던 길을 향해 몸을 틀었다.
“잡아!”
“저 새끼만 잡으면 된다고!”
“가자!”
너도 나도 의지를 다진 이들이 유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무리를 이끄는 건 제리였으니.
“넌 뒈졌다, 이 새끼야! 프흐흐.”
자신과 함께 마왕을 쫓는 동기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든든하다고 여겨진 제리.
그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상당히 신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