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6
15화. 마나 (4)
유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요한의 표정이 변했다.
‘이놈이 드디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마나의 변화는 자신이 일으킨 게 아니었다.
유리 스스로가 일으킨 변화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마나를 깨우쳤구나!’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녀석은 자신의 의지로 마나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일정치 않게 요동치는 불안정한 마나의 흡수율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딱 봐도 마나를 처음 흡수하는 초보의 솜씨였다.
이에 요한은 작게 한숨은 내쉬었다.
‘고비는 넘겼구나.’
대다수 사람이 마나를 인지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위적으로 품을 수 있는 이는 소수다.
즉, 마나를 인지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마나를 흡수하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요한의 입장에서는 마나를 흡수하는 것도 고작 준비 단계일 뿐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요한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유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듣거라.”
잔잔하게 깔리는 요한의 목소리.
“본디 마나란 쉬이 흩어지는 성질이 강한 법. 마나를 육신으로 끌어들여 봤자 이내 흩어질 뿐이다.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너의 육신에 응집시켜야 한다. 마체술에서는 이를… 핵이라 부른다.”
핵(核).
그 작디작은 씨앗을 만드는 작업이야말로 마체술의 진정한 첫 단계라 할 수 있었다.
“핵의 특성은 어떤 마체술을 익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마체술을 익혔느냐에 따라서 핵의 쓰임이 달라지는 것이지.”
심장, 명치, 머리, 팔과 다리, 발 등등.
마체술의 특성에 따라 핵의 구성 및 위치, 심지어 개수조차 달라진다.
그리고 요한이 유리에게 전수할 마체술의 근간이 될 씨앗을 심어야 할 곳.
그곳은 바로 배꼽이었다.
신체의 중심이자, 마나의 수발이 가장 자유롭게 균형을 이룬 곳.
요한이 익힌 레드너 가(家)의 마체술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만들어 낸 마체술 역시 이 배꼽에 핵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놀라지 마라.”
그리 말하며 요한의 손이 유리의 등에 닿았다.
“이제부터는 나의 마나가 너의 마나를 유도할 거다. 잘 기억해라. 이것이 앞으로 네놈이 평생을 갈고닦을 마나의 길이니.”
동시에 요한도 자신의 마나를 풀어 유리의 등을 통해 밀어 넣었다.
자신의 마나로 타인의 육신을 관조하는 일.
이는 마나를 다루는 데 있어 어지간히 조예가 깊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못 할 작업이었다.
곧 유리의 등에 맞닿은 손을 타고 그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요한의 뇌리에 생생히 펼쳐졌다.
이에 요한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빠르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유리의 마나 흡수력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니 단순히 흡수력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축적률, 투과율, 전달률… 모두 상당한 수준이다!’
흔히 마나의 3대 효율이라 불리는 기준들이 평범한 수치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나와 엇비슷… 아니, 어쩌면 나 이상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유리를 비교한 요한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유리가 지난 마나의 재능이 최소 자신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란 것을.
기가 찰 노릇이었다.
‘프흐흐.’
처음에는 마나를 못 느끼는 글러 먹은 놈인 줄 알았건만, 막상 그 실체를 까 보니 웬 괴물 새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요한의 입꼬리가 슬며시 비틀렸다.
그가 짓고 있는 미소는 마치 유리가 화신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았다.
‘괴물 새끼!’
요한의 가슴속에 다시금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 어린 괴물이 자신에게 또 무엇을 보여 줄지.
또 어떤 것으로 놀라움을 줄지.
사뭇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을 품고 요한이 마나를 움직였다.
그에 따라 청량한 마나가 유리의 육신에 한 줄기 길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자, 따라와 봐라!’
세상에는 수많은 마체술이 있고, 그마다 특색을 지닌 ‘마나 로드’가 있다.
비전의 마나 로드를 운용한다면 그에 걸맞은 핵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금 요한이 유리에게 전해 주려는 것은 반드시 검주를 꺾겠다는 의지 하나로 탄생시킨 집념의 산물.
수없이 연구했으나, 단 한 번도 씨앗(核)을 만들어 내지 않은…….
요한조차 익히지 못한 새로운 체계의 마나 로드가 처음으로 유리의 몸에 새겨지고 있었다.
유리의 마나 역시 요한의 인도에 따라 거침없이 길을 익혀 나갔다.
‘그래, 그거다!’
비록 첫선을 보인 마나 로드였지만, 요한은 이로 인해 핵이 만들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마나 로드를 탄생시키기 위해 무려 십수 년의 세월을 쏟아부었다.
자신이 쏟아부은 그 세월이라면 실패 따위는 없으리라.
‘영광인 줄 알아라! 이 마나 로드의 주인이 된 것을!’
그런 요한의 확신처럼 마나 로드는 점점 선명하게 유리의 몸에 새겨졌다.
그렇게 거침없이 내달리던 마나가 유리의 배꼽 부근, 종착지에 도착했다.
핵이 탄생할 자리에 말이다.
‘드디어!’
오랜 세월 끝에, 마침내 최초의 열매가 맺으려는 순간.
‘어서 모습을 보여라!’
그래야 했다.
분명 열매가 맺어야 했는데…….
‘……?’
요한의 사고가 굳어 버렸다.
‘으잉?’
이제 남은 것은 유리의 배꼽 인근에 아주 작은 핵 하나가 탄생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 없어?’
핵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핵은 고사하고 유리의 내부에 있어야 할 마나가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놀란 요한은 당황함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금 마나로드를 돌렸다.
한번 길을 새겼기 때문인지 마나는 더욱더 빠르고 정확하게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두 번째 시도가 끝나고.
‘어, 없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핵은 고사하고 기껏 길을 따라 돌던 마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요한이 몇 번이고 마나 로드를 따라 마나를 흘려 보았으나 좀처럼 핵은 응집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리의 등에서 손을 뗀 요한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있었는데… 없어? 있었는데… 없어!”
요한의 절규에 유리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마나! 네놈 아까 그 마나를 어디다 팔아먹었냐! 그거 어디다 꼬불쳤어?!”
“아, 그거?”
유리는 요한의 물음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어찌 모를까.
제 몸에서 벌어진 일인 것을.
길은 안내한 것은 요한이었지만, 마나를 움직인 건 자신이었다.
그러니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야 나도 모르지. 헤헤.”
자기 몸에서 마나가 증발하듯 사라진 원인은 유리 역시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는 그냥 마나가 증발한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유리가 히죽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이자 요한은 복장 터진다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들겼다.
“대체 왜애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면 안 되는 거냐? 이 빌어 쳐먹을 새끼는 뭐 하나 평범하게 넘어가는 게 없어?! 뭔 놈의 마나핵 하나 만드는 게 이리도 지랄맞은 게야!”
마나 한번 익히려 했을 뿐인데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뭐가 이리 많은지.
요한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유리는 당당하게 맞섰다.
어깨를 쫙 펴고.
배를 쭉 내밀면서.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
“천재에게는 시련이 깃드는 법이라고.”
“천재는 얼어 뒈질! 다물고 마나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나 불어라, 이 미친놈아!”
“입을 다물고 어떻게 불어! 바보야?”
“여튼 불어!”
요한이 유리의 멱살을 부여잡고 짤짤- 흔들었다.
유리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 모른다니까!”
“왜 몰라! 왜! 네놈 몸에서 벌어진 일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영감탱이가 알려 준 그 마나 움직이는 방법이 잘못된 거 아냐?”
“이놈이, 그게 어떤 건 줄 알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다른 거는 몰라도 그게 잘못될 리는 없다!”
“확실해? 증명할 수 있어? 확실하지 않은 데 승부를 걸면 안 될 텐데?”
“확실하고 자시고, 애초에 그 마나 로드가 잘못됐으면 네놈 사지 육신 중 뭐 하나는 진즉에 뒤틀렸을 거다! 증명? 지금 네놈이 멀쩡히 살아 있는 게 바로 그 증거다, 이 애새끼야!”
“…이 미친 영감탱이가?! 그런 건 내 몸에 때려 박기 전에 미리 알려 줬어야지! 사람 잡을 일 있나!”
“내가 왜?”
유리와 요한은 열을 올리며 한참을 투닥거렸다.
그러다 사라진 마나의 행방을 알아낼 때까지 시도해 보기로 합의한 둘은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는 마나 로드를 따라 마나를 돌리는 일의 무한 반복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의 마나 운용은 점점 더 능숙해져 갔지만 그럼에도 핵은 생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차례의 시도 끝에 요한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나가 외부로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더더욱 의문이었다.
그 많은 마나가 외부로 배출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육체 내에서 어찌 감쪽같이 증발한단 말인가?
‘오랜만에… 오기란 게 생기는구나. 허허.’
요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만약 이 마나가 유리 내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 행방을 찾아내리라.
요한은 모든 감각을 끌어모아 집중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오늘처럼 집중한 날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요한의 노력이 통했음일까?
‘잡았다, 요놈!’
수십 차례의 마나 순환.
마나를 돌리는 유리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할 때쯤, 요한은 마침내 사라진 마나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다음 차례에서 그는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마나에 따라붙는 데 성공했다.
이어진 시도에서 요한은 마침내 마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마나를 순환하는 유리도 지치고, 이를 분석하는 요한도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상황에서 얻어 낸 값진 결과물.
하지만 요한은 기뻐하지 못했다.
자신이 알아낸 진실에 오히려 경악하기 바빴다.
유리의 마나가 사라진 곳.
그곳은 다름 아닌…….
‘이… 이… 미, 미친?!’
영혈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었다.
유리의 육신에 마나가 쌓이지 않은 이유.
유리가 축적한 마나를 핵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쪽쪽 빨아먹은 원흉!
‘허허……’
그 실체에 요한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환장하겠구먼.’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리의 영혈 안쪽에는 그토록 만들길 원했던 핵이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영혈에… 영혈에… 핵이 박혀 있어?’
이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결코 핵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
아니, 핵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곳이 바로 영혈이였다.
‘이게 가능한 일이냐?’
하지만 그런 의문을 품기에는 눈앞에 너무도 명확한 증거물이 있지 않은가.
명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쌓아 올린 그간의 지식과 상식이 유리 하나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유리를 바라보는 요한의 눈매가 일그러지고, 속마음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을꼬?”
그것은 깊게 우러난 농도 짙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추가로 이어진 한마디.
“이 새낄… 한번 해부해 봐?”
요한의 눈깔이 희번덕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너무도 진지한 눈빛에 유리는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