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 무룡대전 (7)
—-다아아아-!
갑작스러운 거인의 등장과 메아리치는 괴성.
이에 관중들은 물론, 아리스까지 넋이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뽀삐가 순식간에 방패를 뽑아 아리스를 향해 던졌다.
슝-.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방패에 놀란 아리스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비틀었다.
다행스럽게도 방패는 일직선으로 날아왔기에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후황-!
둥근 방패가 아리스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고.
콰즈- 콰아앙!
굉음을 내며 경기장의 벽에 파고들었다.
만약 맞았다면, 아니, 스치기만 했어도 최소 중상일 위력이었다.
그런 공격을 운 좋게 피해 낸 아리스.
하지만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방패는 미끼로 내던진 뽀삐가 강하게 땅을 내디디며 도약했다.
쿵-!
단 한 발자국을 뛰었을 뿐이건만, 그는 어느새 아리스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고.
달려온 속도에 허리의 회전을 실어 아직 온전히 자세를 잡지 못한 아리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후훙-.
어지간한 성인 남성 상체보다 더 큰 주먹이 광풍을 일으키며 다가오자, 아리스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이, 이건 피해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뽀삐의 주먹은 그의 생각보다 더 빨랐고.
‘아, 아니, 막아야?!’
그의 생각보다 더욱 단단했으며.
‘커, 커헉?!’
그의 생각보다 한참이나 더 강맹했다.
‘무, 무, 무슨 힘이?!’
얇디얇은 그의 검으로 막기에 너무도 역부족일 정도로 엄청난 힘.
쾅!
“컥?!”
맨주먹과 검이 부딪혔건만 흡사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아주 잠시나마 주먹을 저지하던 검이 가장 먼저 부러져 나갔고.
드직-.
이내 검을 쥔 두 팔마저 부러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은 거대한 주먹은 그대로 아리스를 후려쳤다.
콰아앙-!
드득- 드득-.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아리스는 순간 자신의 몸 곳곳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자신의 육신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훨훨 날아간 아리스는 그대로 경기장 담벼락을 무너뜨리며 그 잔해에 처박혔다.
곧장 그곳으로 달려간 뽀삐.
“배고프다아아!”
그가 잔해 속에 누운 아리스를 향해 주먹을 내려찍으려던 그 순간.
“그… 그만!”
미약한 외침에 뽀삐의 주먹이 아리스의 코앞 3㎝ 지점에서 정확히 멈췄다.
황-!
주먹이 일으킨 엄청난 바람을 맞으며 아리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 그만… 내가… 졌 …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를 본 거인은 말없이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압도적인 경기와 그 결과에 관중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허…….”
그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본 건 사람 대 사람 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전설 속 괴수가 튀어나와 인간을 유린한 것일 뿐.
충격에 빠져 좌중이 침묵하는 가운데 뽀삐의 육신이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득구둑-
그리고 마침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뽀삐는…….
“배고프다!”
사색이 되어 옷도, 방패도 줍지 않고 그대로 경기장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에?”
“어?”
“엉?”
갑작스러운 상황.
그리고 너무도 다급해 보이는 그의 뒷모습에 관중들은 너도 나도 모두 넋이 빠지고 말았다.
잠시 뒤.
군터가 챙겨 온 옷을 입고 방패까지 등에 찬 뽀삐.
“배고프다!”
무언가 개운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 얼굴에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유리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새끼, 진짜 똥 마려웠던 거냐?”
장난삼아 했던 말이 진실이었다니.
이에 테레시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심하게 긴장하면 막 배 아프고 그러니?”
“배고프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뽀삐를 보고 유리는 혀를 찼다.
‘내가 그렇게 보여 달라고 해도 안 보여 주던 거인화까지 써 가며 시합을 속전속결로 끝낸 이유가… 이거였냐?’
괄약근이 약해지는 순간 벌어질 대참사를 알고 있는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건 어서 빨리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탈출하는 것뿐.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뽀삐는… 기꺼이 근손실을 감수했다.
* * *
아린의 시합이 충격적이었다면, 뽀삐의 시합도 여러모로 충격적인 시합이었다.
싸움에 있어 체급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된 시합.
그렇게 1년 차 둘이 연달아 엄청난 시합을 보여 주자 좌중은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군터 아이언스, 유리 홀랜드, 아린 헬가, 보비크르탄카푸르타비까지.
이번 무룡대전에 참여한 50기 중 넷이나 12강에 진출한 상황이었다.
무룡대전이 열린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던 일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50기의 마지막 참가자에게 쏠렸다.
“저 녀석도 앞에 녀석들과 비슷하려나?”
“뭐, 보면 알겠지.”
모두의 관심 속에 11조에 속한 1년 차, 클라리스 반이 등장했고.
쾅-!
불과 15초가 지나기도 전, 상대인 4년 차 기수에게 얻어맞고 경기장 벽에 처박혔다.
“이런…….”
“저런…….”
50기가 기권하지 않고 경기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나…….
이전 경기들, 특히 앞서 연달아 펼쳐진 두 경기에서 50기들이 활약하는 것을 본 좌중은 맥없는 패배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이번 50기가 전부 다 특출난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네.”
이번 50기가 특별한 게 아니라, 유리 홀랜드와 그 주변인들이 특별한 것이라고.
그리 안도한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24강 12조 경기는 반젤리스가 가볍게 49기를 꺾고 승리를 차지함으로써 12강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 * *
12강의 12명이 전부 정해지며 마무리된 하루.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거처로 돌아온 유리는 나무 문 사이로 풍겨 나오는 고약한 냄새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오, 진짜 냄새 배겠네.”
그리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선 유리를 반겨 준 것은 정좌한 채 청동 솥을 붙들고 있는 요한의 모습이었다.
‘흠…….’
유리는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침에 만들어 놓고 나간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또 끼니를 거른 건가?’
무룡대전이 시작된 날.
요한은 잡탕, 아니, 조화신수 제작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저 자세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이틀째 끼니마저 걸러 가며 말이다.
‘한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가 걸린 댔나? 설마 그때까지 계속 저 상태로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데 어제부터 계속 눈을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였다.
‘오늘도 나가서 자야겠네.’
요한이 말하길 조화신수의 제작에는 꽤 많은 마나와 심력이 소모된다 했다.
또한, 도중에 외부에서 충격을 받으면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하여 유리는 제 거처를 내주고 밖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아니었어도 밖에서 잠을 잤겠지만.
‘진짜 뭔 냄새냐고, 이거!’
유리는 코를 찌르는 냄새에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요한이 조화뇌정을 부여잡고 몇 시간이 지나서부터 퍼져 나오기 시작한 구린내.
도무지 온갖 영약들 때려 넣은 냄비에서.
그것도 조화신수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비약을 만들면서 나오는 냄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유리는 슬쩍 조화뇌정 안을 살폈다.
불을 피워 데우는 것도 아닌데 뇌정 안에는 열기를 품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그 열기 때문인지 그 안에 자리한 영약들이 서서히 조금씩 뭉개지고 있었다.
아마 요한이 예상한 시간이 되면 저 영약들 또한 모양이 바뀔 터.
영약에서 시선을 뗀 유리가 이번에는 조화뇌정의 밖을 살폈고.
그전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 조금 녹이 슬었는데?’
처음에는 거무튀튀했던 청동 솥이 이제 여기저기 조금씩 푸르른 색이 작은 반점처럼 생겨나 있었다.
마치 오래된 청동이 머금는 그런 푸른색이 말이다.
유리는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끼익- 달칵-.
다시 문이 닫히며 폐쇄된 공간.
스으으으-.
쉼 없이 마나를 불어넣는 요한과 서서히 달궈지는 조화뇌정이 이내 어둠에 잠겼다.
* * *
어제는 수련장에서 잤던 유리.
그래서 오늘도 수련장으로 갈 줄 알았던 그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리가 향하는 곳은 요새에 자리한 4개의 첨탑 중 한 곳.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꼬인 계단을 따라 올라간 끝에 목적지에 도달한 그는 의외의 장면을 목격했다.
“…뭐냐, 저것들.”
하나의 문 앞에 옹기종기 모인 테레시아와 군터, 그리고 뽀삐.
키가 작은 순서로 켜켜이 머리를 맞댄 그들은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유리가 그들의 뒤로 다가갔다.
“뭐 하냐?”
인기척을 느낀 이들이 쪼르르 고개를 돌리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쉬이!”
“배고프다!”
그러고는 다시 문틈으로 시선을 돌리는 세 사람의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유리도 동참했다.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문틈으로 바라본 그 안쪽.
그곳은 꽤 널찍한 방이었다.
바로 높은 곳이 좋다며 첨탑의 꼭대기는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한, 아린의 거처였다.
넓이에 비해, 자리를 차지한 물건들이 없어 휑하게 보이는 공간.
그리고 문짝만 하게 커다란 창가에는 무릎을 끌어안은 아린이 있었으니.
나무 창을 활짝 열어젖힌 그녀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숲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젖은 듯 보이는 옆모습.
이를 본 유리는 어째서 자신보다 먼저 온 세 사람이 안을 훔쳐보고 있던 것인지 깨달았다.
아마도 아린을 위로해 주러 왔다가 너무도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당황하여 문밖에 서 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 모든 걸 안 유리는…….
“쯧, 난 또 뭐라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자세 그대로 방문을 걷어찼다.
쾅-.
달그락 달그락-.
어찌나 세게 찼던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앞뒤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방문.
그리고 굉음에 놀란 아린이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 그녀가 본 건 켜켜이 얼굴을 쌓은 채 경악하고 있는 테레시아, 군터, 뽀삐와.
주머니를 손에 넣은 채 불량스럽게 다리를 쭉 뻗은 유리였다.
끔뻑끔뻑-.
난데없는 상황에 아린은 그저 눈만 동그랗게 떴다.
그러는 사이 유리가 터벅터벅 걸어가 그녀 옆에 섰다.
올려다보는 아린과 내려다보는 유리의 시선이 마주하고.
“…….”
“…….”
그 순간 자신의 거처를 나선 이래 한 번도 주머니에서 빠진 적 없던 오른손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어?”
무언가를 본 듯 놀란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는 유리.
이에 아린 역시 자연스럽게 유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빠악-!
빠르게 휘둘러진 유리의 손이 사정없이 아린의 옆통수를 후려갈겼다.
쿠다당당-.
어찌나 강하게 후려쳤던지 옆으로 고꾸라진 아린은 창틀에서 떨어져 방바닥에 철푸덕 널브러지고 말았다.
난데없는 유리의 폭행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놀라 입을 뻥긋거렸다.
한편, 남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빵긋 웃은 유리.
“아, 시원하다.”
앓던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개운하고 환하게 웃은 그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뒤돌아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은 너무도 산뜻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