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22
221화. 용패갈이2 (6)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유리는 일단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1년도 더 된 일을 이제 와서 묻는다고?’
무언가 이상했다.
그리고 자신은 들킬 만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만약 들킬 거였으면 이미 진즉 그때 들켰어야 했을 터.
그런데 1년을 잠잠히 있다가 이제 와서 과거의 일을 묻는다?
무언가 수상해도 너무 수상쩍지 않은가.
하여 유리는 일단 모르쇠로 나갔다.
“예?”
유리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듀란이 살짝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모른 척을 하는 건가?”
“모르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이러는 겁니다만?”
“알고 있을 텐데?”
“심문인지 유도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간에 상황을 좀 자세히 설명해 주고 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대뜸 서류에 손댔냐니.”
“…….”
“뭐, 그 부분에 대한 제 대답만 필요한 상황이라면…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떳떳한 유리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듀란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에 유리도 지지 않고 그의 눈을 응시했다.
“…….”
“…….”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의 눈싸움이 이어지고.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건 의외로 듀란 쪽이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루 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침입자가 내 집무실을 뒤지고 사라졌다.”
그 이야기에 유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 전 일인데 그걸 왜 저한테 뭐라고 합니까? 전 그때 요람 본토에 있었는데!”
“너라면 요람 본토와 이 섬을 충분히 오갈 수 있을 테니까. 이미 한번 해 봤을 텐데?”
‘난 네가 작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듯한 눈빛에도 유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작년 1월 1일, 자신이 특할판을 이용한 사실을 듀란이 알고 있는 모양.
‘요람의 일을 흑검 부단장이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지.’
하여 유리는 그냥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제가 굳이 그 개고생을 해 가면서 뭣 하러 부단장님 집무실을 텁니까?”
“이미 한 번 털고, 심지어 걸려 본 적도 있는 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영 신뢰가 가지 않는군.”
“…….”
이번에는 유리 쪽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작년에 그 개고생을 하며 듀란의 집무실을 턴 전적을 가진 이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괜히 발끈하여 소리쳤다.
“그러니까 작년에 한 번 걸렸으니 이번 일도 저를 범인으로 몰아가시겠다?”
“몰아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동종 전과자를 용의자로 두는 건 수사의 당연한 절차지.”
“아, 진짜 전 아니라고요!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거리를 또 합니까!”
“그 미친 짓거리를 넌 작년에는 했었지.”
“…그때의 전 철이 없었습니다. 잊어 주시죠.”
“지금은 철이 들었다는 거냐?”
“적어도 그때보다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야 무지에서 온 용기로 그 짓거리를 했지만, 이제는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는데… 미쳤다고 공인 9단의 부단장 막사를 털겠습니까?”
“글쎄다? 네놈이라면 그 사실을 알아도 충분히 그 미친 짓거리를 할 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만?”
“아오, 나 진짜 아니라고! 아니,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제가 그 미친 짓거리를 또 해서 뭘 털었다 칩시다!”
“치면?”
“그러면 털어도 비싼 곳을 털지, 감수해야 할 위험 대비 소득은 쥐뿔도 없는 부단장님 막사는 왜 텁니까? 부단장님 막사에 있는 거라고는 홀애비 쉰내 나는 담요뿐인 걸 이미 작년에 확인했는데!”
“…홀애비 쉰내 나는 담요라는 대목이 상당히 거슬리기는 하나 그래도 이번 변론은 제법 타당성이 있군.”
“그러면 저 이제 가 봐도 되는 겁니까?”
유리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이 정도면 자신의 변론이 충분히 먹혀들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아니, 넌 얌전히 대기해라.”
“왜요!”
“진범이 잡히거나 완벽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 넌 용의자 신분이다. 경고하는데 어디로 튈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리 말하면서 눈을 부라리는 그 모습에 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제대로 코 꿰였네.’
애초에 유리는 용패갈이에 딱히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남들이 예상했듯, 유리에게 용패갈이는 큰 의미 있는 퀘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수련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
다만 이번 기수에 무치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변했다.
‘그 코찔찔이가… 정말로 들어온다고?’
유리는 꽤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야, 코찔찔이. 너, 나랑 또 한판 붙고 싶다고 했지?] [어? 응!] [그럼 너도 준비해서 요람으로 와.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응! 꼭… 반드시 갈게!]사실 약속보다는 곰탱이 영감을 놀리기 위해 반쯤 장난삼아 했던 말.
한데 요한에게 듣기로, 무치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꽤 노력을 했다고 한다.
무려 공인 1단을 넘어 2단을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단순히 그런 사실 하나로 유리가 무치를 만나고자 용패갈이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
그가 귀찮음을 감수하고 용패갈이에 참여한 이유.
그건 그냥 무치가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는 별로 어렵지 않게 무치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뭐냐, 이게.’
예상치 못한 난항에 부딪혀 계획했던 일들을 시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유리는 슬쩍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중천으로 향하고 있는 태양.
‘대충 오전 10시쯤 되는 건가.’
1월 1일 00시까지는 아직 제법 시간이 남아 있지만, 유리에게는 빠듯한 시간이었다.
‘늦어도 세 시간 안에는 무치를 찾아야 한다.’
다만 문제는 자신의 구금이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거였다.
이 흑검병단에서조차 하루가 지났음에도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면 진범은 만만한 존재가 아닐 터.
그래도 흑검병단이라면 분명 그 진범을 찾아내기야 할 테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지. 그렇다면…….’
유리는 결심했다.
그가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제가 하겠습니다!”
난데없는 유리의 외침에 듀란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뭘?”
이를 마주한 유리는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 진범… 제가 잡겠습니다!”
이대로 시간을 뺏길 거라면 차라리 그 빌어먹을 진범을 직접 잡아 자신의 누명을 벗기는 수밖에.
그런 유리의 당찬 포부에 듀란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으니.
“…너 용의자 신분인 걸 잊었냐?”
“못 믿겠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절 쭉 따라다니시든가요.”
“…….”
“그리고 도둑놈은 도둑놈이 잘 아는 법! 먼저 털어 본 전적이 있는 선배로서 후배 도둑놈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치겠습니다!”
“…그게 그리 자랑스럽게 말할 일이었나?”
“단! 만약 제가 진범을 찾아내면 제 요구 조건 좀 들어 주십쇼.”
“요구 조건? 뭐냐 그게.”
“제 요구 조건은…….”
유리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요구 조건을 털어놓았다.
잠시 뒤.
이를 들은 듀란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까지 저놈이 보인 억울함은 진짜인 거 같았으나…….’
그간 보여 준 행보를 생각하면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흠… 어쩔까나.’
꽤 오래 고민을 이어 가던 듀란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좋다, 한번… 맡겨 보지.”
듀란의 결정에 유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 * *
유리가 흑검병들에 의해 발이 묶인 사이.
시작의 숲으로 쏟아져 들어온 50기.
곧이어 시작의 숲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사람들 누구야?!”
“으아아악! 아, 안 돼! 그것만은……!”
“내 용패!”
지금껏 수많은 선배가 그러했듯.
예비 51기 또한 휘몰아치는 50기의 기습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우후죽순 털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그 중심에는 군터를 필두로 한 넬리, 이반, 파나, 클라리스, 다니엘, 슐레만 등등의 상위권 실력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상상 이상의 광기를 보여 주었다.
“흐하하! 좋아, 좋아! 이거지 이거야!”
“맨날 처맞고 다니다가 이렇게 후드려 패고 다니니… 기분 째지는구만! 시발, 이게 인생이지!”
“유리 녀석은 맨날 이런 기분으로 우릴 팼던 거야? 크하하하하!”
‘이 서열전은 너희가 시작했지만, 끝내는 건 나다!’라며 매일매일 막무가내로 칼부터 날리고 보는 유리에게 50기는 늘 시달려야 했고.
자연스럽게 서열전은 대련이 아닌, 면담이란 이름을 뒤집어쓴 매타작 시간으로 변질해 버렸다.
특히 그중에서도 상위권 서열에 있는 이들의 시달림은 더욱 극심했다.
그러나 유리와의 실력 차가 너무 현격히 나서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
아니, 반항도 하고 반격도 하긴 했다.
그러나 하면 뭐 하나.
온 힘을 다해 공격을 날려도 유리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하는데.
때문에 그들은 언젠가부터 자신들이 요람의 기수가 아닌 유리의 연습용 허수아비가 된 게 아닐까…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 난 요람의 기수였어!’
‘난 연습용 허수아비가 아니었어!’
‘나도 공격할 수 있다고! 내 공격도 쓸 만하다고! 내 공격도 무언가를 맞히는 데 쓰이는 거였다고!’
그들은 예비 51기를 후드려 패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50기 대다수가 광기에 휩싸여 시작의 숲에서 미쳐 날뛰고 있을 무렵.
화제의 인물을 처음으로 발견한 50기는 넬리와 클라리스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진짜네?”
“진짜였네?”
유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짜로 있었던 것이다.
“와… 머리털 난 뽀삐다.”
“털 난 뽀삐!”
뽀삐보다는 다소 작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
하지만 대머리가 아닌 머리털이 존재하는!
유리의 표현에 따르자면 머리털 난 뽀삐가 정말로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방패가 아닌 거대한 도끼 창을 휘둘러 대는 중이었다.
훙-.
붉은 광풍을 일으키는 도끼창.
그 속도와 위력을 본 클라리스와 넬리는 머리털 난 뽀삐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적어도 우리와 맞먹을 정도다.’
‘51기에도 괴물 하나가 있었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존재가 낭패한 기색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훙-.
거칠게 횡으로 휘둘러지는 도끼창.
이를 열댓 명의 소년·소녀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넬리와 클라리스가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쟤들 실력이 크게 모자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털 난 뽀삐가 밀릴 정도는 아닌데?’
‘도끼 창 녀석 정도의 실력이면 저런 떨거지 열 명이 아니라 스무 명도 충분 상대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
그저 그런 실력을 지닌 소년·소녀 열댓 명이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본 두 사람.
잠시 뒤, 클라리스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영악하네.”
그의 말에 넬리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두 사람이 영악하다고 하는 건 다름 아닌 무치를 상대하고 있는 소년·소녀들이었다.
“시작의 숲의 규칙을 저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제법 잔대가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이 있나 보군.”
이 버러지 거름통의 절대 규칙 한 가지.
그건 바로 살인을 금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여 명의 소년·소녀들은 바로 그 규칙을 역이용하여 머리털 난 뽀삐를 궁지로 밀어 넣고 있었다.
‘도끼 창의 공격을 못 받아 낼 거 같으면 오히려 그 공격에 몸을 내던지고 있어.’
‘지독하네, 경상이나 중상을 입을 공격은 무조건 피하고 치명상이 될 것 같은 공격에만 의도적으로 몸을 들이대다니. 저 녀석들 상대가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상대를 죽이지 않기 위해 머리털 난 뽀삐는 창을 제어해야 했고.
그때마다 막대한 체력 손실은 물론 빈틈까지 내주고 마는 거였다.
‘이게 목숨이 보장된 싸움이 아니었다면… 상황은 진즉에 결판났을 텐데.’
‘도끼 창이라는 대형 무기, 그리고 실력 차가 너무 크게 나는 상황이 오히려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군.’
상대를 피곤죽으로 만드는 거면 모를까.
비슷한 실력의 상대도 아니고 약한 상대를 적당히 상처만 입혀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건 도끼 창이란 무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머리털 난 뽀삐에게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이 대체 얼마나 이어진 것인지 그의 낯빛은 별로 좋지 못했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이를 클라리스와 넬리가 몰라볼 리 없었다.
클라리스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넬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 유리 홀랜드가 했던 말 기억나냐?”
“머리털 난 뽀삐 신상 조지면 우리 신상도 조진다는 거?”
“어.”
“당연히 기억하지.”
그걸 그사이 잊을 리가 있겠는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다만 문제는 머리털 난 뽀삐가 위급해 보이는 현재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저 머리털 난 뽀삐의 신상… 조져지겠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저거 저대로 둬도 되는 걸까?”
“음…….”
두 사람은 고민했다.
저대로 머리털 난 뽀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놈’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말이다.
넬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런데 쟤 신상 조진 건 우리가 아니잖아?”
이에 곧바로 뒤따른 반박.
“그걸 유리 새끼가 ‘아, 그랬구나, 니들은 아무 죄가 없구나?’ 하고 넘어가 줄까?”
“…….”
“…….”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똑같은 걸 떠올리고 있었다.
‘봐줄 리가 있겠냐!’
‘그 지랄 맞은 새끼라면 무조건… 우리부터 조진다!’
이제 어느 정도 유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된 50기였다.
아니, 그렇게나 당했는데도 모른다면 그건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는 유리라면…….
[머리털 난 뽀삐의 신상이 조짐? → 니들 잘못은 없지만 어쨌든 조졌네? → 그러니 니들도 조짐.]…으로 답을 귀결할 것이다.
즉,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머리털 난 뽀삐의 위기 상황은…….
“아, 안 돼!”
“머리털 난 뽀삐… 반드시 구해야 돼!”
…50기 전체의 위기라는 뜻이었다.
눈을 번쩍 뜬 넬리와 클라리스가 무기를 뽑아 들고 현장으로 호다닥-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