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26
225화. 내 동생 (3)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 날을 위해 악착같이 참아 왔다.’
1년 전, 처음 복불복 상자의 맛을 보고 강렬한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유리는 이를 인내하며 버텨 냈다.
오로지 이 날을 위해서 말이다!
유리가 황금빛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바(bar) 테이블을 내려쳤다.
쾅-!
“자, 얼른 꺼내시죠? 푹 숙성된 50번째 복불복 상자를!”
작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특할판과 특판에서 판매된 모든 물품의 판매지가 들어 있는 상자.
훅훅- 콧김을 뿜어 대는 유리를 본 코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작정했구나.”
요람의 역사상 유리처럼 대리 뽑기를 하려 한 이가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비 1년 차를 데려와 대리 뽑기를 하는 놈은 장담컨대 이놈이 처음일 거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엘릭서 때문이군.’
이번 50번째 상자에 엘릭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녀석.
그렇기에 혹여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걸 뽑아 가기 전에 선수를 치려는 것이다.
코코가 뚱한 눈으로 물었다.
“얼마나 뽑을 생각이니?”
이에 유리는 단호히 답했다.
“전 재산.”
“…그게 얼마인데?”
“대충 2억 포인트 정도 되나? 아까 1,500만 정도 썼으니 넉넉히 1억 8천 정도 남았을걸요?”
그걸 듣자마자 코코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어머, 미친…….”
2억 포인트.
이는 일개 기수가 고작 1년 만에 모을 포인트가 아니었다.
아니, 가능하기는 했다.
다만 그건 퀘스트 보상의 단위가 크게 늘어나는 상위 연차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고작 1년 차가 1년 만에 2억 포인트를 모은다?
단언컨대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리라.
그런데 그 불가능을 해낸 놈이 나타났다.
‘세상에… 독한 놈.’
코코가 알고 있기로 유리는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성적 1위를 놓친 적이 없었고.
또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특판을 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2억 포인트란다.
“대체 너…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거니?”
1년을 어떻게 살면 1년 차가 2억 포인트를 모을 수 있는 건지.
이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은 코코였다.
그녀가 그리 경악하든 말든 무시한 유리는 무치의 어깨를 강하게 짚었다.
“…내 목숨과도 같은 전 재산, 너에게 맡긴다.”
“으에?”
“그러니 너도 목숨을 걸어.”
“모, 목숨을 걸어요?”
흘러가는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목숨까지 걸 일인가 싶었다.
무치가 눈을 끔뻑이면서 슬그머니 몸을 빼내려 했으나, 어깨를 짚은 유리의 손이 그를 더욱더 강하게 부여잡았다.
“네 손에… 지난 1년간 내가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가 어찌 될지 달려 있다.”
“그, 그런 걸 왜 나한테… 그냥 형이…….”
“쓰읍!”
“서, 선배님이 하지……?”
그 말에 유리는 코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2년 차가 복불복 상자 한 번을 뽑는데 얼맙니까.”
“500만 포인트.”
이를 듣자마자 유리는 다시 무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지? 내가 뽑으면 500만이고 네가 뽑으면 100만이야.”
“차,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네요.”
“응, 그러니 네가 뽑아야겠지?”
“그렇기는 한데…….”
“물론 그냥 뽑기만 하면 안 돼.”
“예? 그, 그러면요?”
“잘.”
나직하게 깔리는 유리의 저음.
“자아아알! 매우매우매우매우 잘아아아알 뽑아야 하는 거다!”
안 그래도 낮은 저음이 더욱더 낮게 깔리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덤으로 시퍼렇게 번뜩이는 유리의 눈깔이 그 분위기를 키우는 데 한몫 보탰다.
“요람에 들어오자마자 관짝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잘해라.”
유리의 눈에 깃든 광기를 본 무치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무, 무서워…….’
자신이 바라고 바라던 유리와의 재회는 이런 게 아니었다.
1년이란 시간을 건너뛴 해후.
갈고닦아 온 노력을 견주는 시간 등.
무언가 가슴 벅찬, 그런 시간을 바랐건만…….
‘이건 뭔가 잘못됐어요!’
지금 이 상황은 자신의 바람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무치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할 때.
턱-.
“옛다.”
궐련 연기를 후- 뿜어낸 코코가 50이라는 숫자가 적힌 상자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이를 본 유리의 눈에 희열이 감돌았다.
‘역시 여기 있을 줄 알았다!’
복불복 상자는 모든 연차의 특판 상점을 통틀어 1개뿐.
유리는 그 상자가 분명 코코의 특판 상점에 있으리라 여겼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또한, 저 복불복 상자가 여기서 나왔다는 건…….
‘우리가 첫 개봉이다!’
아직 아무도 뽑기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는 아직 저 안에 엘릭서가 들어 있다는 소리.
후욱후욱-.
유리의 숨소리가 더욱더 거칠어지고.
“자, 시작하자.”
그가 복불복 상자를 무치의 앞으로 밀었다.
어서어서 손을 집어넣으라는 유리의 눈빛 공세에 무치는 눈을 질끈 감고 상자에 손을 넣은 채 휘적휘적 저었다.
그 모습을 유리는 물론 코코까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꿀꺽-.
마른침을 삼킨 무치.
부스럭-.
그의 손에 첫 번째 종이가 뽑혀 나왔다.
유리가 이를 단숨에 뺏어 들어 펼쳤다.
그 안에 적힌 글자를 읽은 무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 일만 포인트?! 좋은 거죠? 그쵸?!”
살짝 환해진 무치의 표정.
반면 종이를 쥔 유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으니.
-강의 신청서 10,000P
유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응, 좋아.”
“다, 다행…….”
“방금 이걸로 네가 들어갈 관짝 뚜껑이 열렸어. 아주 좋아.”
“…….”
“야 이 빡대가리 새끼야! 내가 이거 한 번 뽑는 데 백만이라고 했냐 안 했냐! 그런데 고작 1만 포인트짜리를 뽑아 놓고, 좋은 거냐고 처묻고 있어? 팍- 씨!”
“히, 히익!”
자라목이 된 무치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유리가 눈을 부라리며 신신당부했다.
“잘하자, 좀! 어엉?”
“넵!”
“다음!”
“다, 다음!”
바짝 얼어붙은 무치가 상자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또다시 딸려 나온 접힌 종이.
이를 본 유리가 소리쳤다.
“자, 날 따라 하며 종이를 펼친다. 좋은 거 나와라, 얍!”
“조, 좋은 거 나와라, 얍!”
무치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종이를 펼쳤고.
-강의 신청서 10,000P
“…….”
있어서는 안 될 글자를 봐 버린 무치는 슬그머니 다시 종이를 접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유리가 아니었다.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음.”
낮게 깔린 저음에 무치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무, 무서워…….’
유리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짙게 깔린 음영 속에서 시퍼런 살기를 머금고 있을 뿐.
이를 본 무치는 기도했다.
‘제, 제발 좋은 거!’
이러다가는 정말 자신이 살해당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반드시 손해를 만회할 좋은 걸 뽑아야 했다.
‘제발!’
그리 간절히 바라며 다음 종이를 꺼내 펼쳤고.
“아!”
무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급 마나 증강의 비약 2,500,000P
“비, 비싼 거 나왔어요!”
무려 250만 포인트짜리였다.
지금까지 날린 포인트는 만회하고도 47만 포인트가 남는 액수.
하지만 유리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무치야.”
“네?”
“이제 고작 3개 뽑았다. 대충 앞으로 180개 남았는데… 오늘 이거 뽑다가 날 샐래?”
“아… 아뇨.”
“그러면 후딱후딱 뽑아!”
“…네”
시무룩해진 무치가 다시금 상자에 손을 넣으며 조금 더 속도를 냈다.
그리고 무치가 무얼 뽑았는지는 녀석의 표정 변화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앗!”
“…….”
“아앗…….”
“…….”
“으아아앗!”
“…….”
“에…….”
100만 포인트보다 값어치가 높으면 대번에 표정이 밝아졌고.
그보다 낮으면 시무룩하게 유리의 눈치를 보는 무치.
그렇게 대략 25개의 뽑기를 했을 즈음인가.
유리는 무치가 뽑아 놓은 것들은 확인했다.
‘대충 2,000만 포인트 어치인가…….’
2,500만 포인트를 써서 2,000만 포인트를 건졌다.
피해가 막심한 상황.
그마저도 중간에 1천만짜리 상급 비약이 하나 나와 주지 않았다면 피해액은 더욱 컸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런 금전적인 손해보다도 유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점점 쌓여 가는 종이의 수였다.
‘180번 중 앞으로 155번 남았다. 과연 그 안에… 엘릭서를 뽑을 수 있을까?’
저 안에 들어 있는 수천 장의 종이 중 155번의 도전으로 엘릭서를 뽑아낼 수 있을지.
그러다 이대로 포인트만 낭비하는 게 아닐지.
기껏 상자 안의 종이 수를 줄여 놓았더니, 자신이 다시 포인트를 모으는 사이에 엄한 놈이 엘릭서를 뽑아 가는 건 아닐지.
유리는 너무도 걱정스러웠다.
그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본 무치도 덩달아 낯빛이 어두워졌다.
‘크, 큰일이다!’
대충 계산해도 벌써 500만 포인트를 손해 본 상황.
이대로 정말 관짝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긴 무치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님, 하늘님! 좋은 것 좀 주세요! 아까처럼 천만 포인트짜리로요!’
천만 포인트가 나왔을 때 유리가 살짝 웃은 것을 떠올린 무치.
그는 더욱더 간절히 기도하며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제발… 제발 좋은 것 좀 주세세요, 얍!”
그렇게 두 눈을 꼬옥 감고, 세상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염원을 담아 뽑아낸 종이.
부스럭-.
이를 펼쳐 든 무치가 살짝 실눈을 뜨고 거기에 적힌 글자를 본 순간.
“아앗…….”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우우…….”
시무룩하게 늘어진 무치의 눈썹.
그건 누가 봐도 크게 실망했다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또 강의 신청서를 뽑았겠거니 싶은 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얼른 주고 다음 거 뽑아라.”
“네…….”
“씁! 기합!”
“넵!”
굽어진 어깨를 펴고 바짝 상체를 세운 무치가 유리의 손에 종이를 넘기며 변명도 같이 곁들였다.
“그, 그래도 그거 30만 포인트짜리예요!”
“이야, 70만 포인트는 날려 먹고 아주 신나셨…….”
상급 절상 회복약이라도 뽑았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종이를 넘겨받던 유리의 동작이 그대로 우뚝 멈췄다.
그사이 무치가 유리의 눈치를 보며 소리쳤다.
“부, 분발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리의 굳은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한참을 손에 쥔 종이를 내려다보던 유리에게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
“하지 마…….”
“네?”
“분발… 하지 마.”
“예?”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치의 모습에 종이를 쥔 유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그에게서 우렁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분발 따위 필요 없다고!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까!”
“에?”
“시이이이바아아알!”
기쁨이 가득한 욕설이 쩌렁쩌렁 울리고.
이를 지켜본 코코가 입에 물고 있던 궐련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서, 설마?!’
복불복 상자에 들어 있는 종이만 족히 4,000장에 가까웠다.
그중에서 유리가 원하는 건 품목은 딱 한 장.
그걸 고작 26번 만에 뽑아냈다고?
“말이 돼? 그게?”
코코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릴 때.
그 중얼거림을 들은 유리가 그녀의 앞에 쥐고 있던 종이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쾅-!
“그 말이 안 되는 걸… 이 귀여운 녀석이 해냈습니다!”
테이블을 내려찍듯 종이를 내려놓은 유리가 무치의 등에 달라붙었다.
“아코아코, 요 귀여운 녀석!”
“에헤헤!”
“이 귀염둥이!”
“헤헤헤!”
등에 매달린 유리가 턱을 살살살 긁어 주니 무치의 표정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그사이 코코는 유리가 내려놓고 간 종이를 살폈다.
-골족의 비전(秘傳) 300,000P
겨우 30만 포인트짜리.
100만 포인트도 안 되기에 무치를 실망하게 만들었지만, 저 복불복 상자에 들어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값어치 있는 물건.
그것이 떡하니 나온 것을 본 코코가 어이없다는 듯 탄식했다.
“듀란아, 이 망할 듀란아… 너 이거 정말 어쩔 거니?”